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9/03/06 14:17:33
Name 블레이드
Subject (09)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라.
"하면 된다!"

"하고자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어렸을 적에 나는 이런 말들을 듣고 자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꼭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그럴때마다 내 가슴속에 생기는 좌절감들.

그래도...그래도...그래도 할수있어.

애써 힘을 내어 주먹을 쥐어보지만

점점 내 안에는 할 수 있는 일들보다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짐을 느낀다.

20대 때에는 그나마 할만했다..

그러나 30대가 되고, 나이가 먹어가면서.

젊은 애들은 왜이렇게 힘도 좋고, 머리도 잘돌아가고 똑똑하고 아는게 많은지.

나도 한때는...나도 한땐 잘나갔었다구~~!!

누구나 경험했던 사실이지만, 지금은 누구도 믿지않는 말.

나도 한때는.

나도 한때는 농구를 좀 했었다.

포지션은 센터.

고등학교때나 대학때나 나는 항상 대표였다.

지금은...?

한때 골밑을 주름잡던 동네농구 센터는 지금 외곽슛만을 던지고 있다.

저들의 속공을 따라갈 수 없고
저들의 몸싸움을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다.

나에겐 오랜 경험에서 연마한 외곽슛만...

상대편 수비는 얼마나 편할까? 외곽밖에 못쏘는 늙은 아저씨를 막기란 말이다.


올드의 경기를 보는 건 그런 것같다.

어느샌가 초라해져가는 나 자신을 투영해서 바라보는 기분.

내겐, 저 올드 선수에게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험"이 있어!!

진짜일까?

진짜 "경험"은 그렇게 좋은 것이고, 많은 어드밴티지를 주는 것일까?

어쩌면 올드 선수의 경기 결과에 따라 울고 웃을 때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들은 나 자신의 미래를 바라보고 울고 웃는 것이 아닐까?

이운열선수가 졌다.

임요환선수는 제대후 한참동안 벤치다.

최연성선수도, 진영수선수도...

강민선수는 해설자로..

스러져가는 사람들이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삶이 나의 삶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가끔식 늘어져버린 뱃살과 삐그덕거리는 무릎을 추스려 코트로 나가본다.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 동료 어린 팀원들.

"이놈들! 나에겐 외곽슛이 있단 말이다."

매번 결과는 처참하더라도 나에겐 외곽슛이 있다. 경험이 있다.

그리고 외곽슛과 경험만 있을지도...

그럼에도 난 언젠가 나의 외곽슛이 불꽃슛으로 변할 때를 기다린다.

나에게 남은 것은 그것 하나 뿐이니까.

오늘 처참하게 져도, 내일이 있다.
그만큼 더 늙었지만, 그만큼 더 경험을 쌓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던진다.

올드들도 그러하길.

그렇게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면 그걸로 된거다.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9-17 03:30)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리콜한방
09/03/06 14:31
수정 아이콘
어제 경기 이후 올라온 수 많은 글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는 글이네요.
추천합니다.
09/03/06 14:46
수정 아이콘
느낌 좋네요 추천이요
DuomoFirenze
09/03/06 15:03
수정 아이콘
추천이요.. 잘 읽고 갑니다.
개념은?
09/03/06 15:22
수정 아이콘
많은 글들중에 진정으로 와닿는 글이네요.
사실 몇몇글은 와닿지도 않을뿐더러... 너무 자극적이였는데... 이거야 말로 정말 가슴으로 와 닿네요


그렇게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면 그걸로 된거다. ㅠㅠ
국제공무원
09/03/06 15:47
수정 아이콘
글좋습니다.(30대 이상은 완전 공감하실듯; 전 20대라 반쯤만 공감;)
09/03/06 15:49
수정 아이콘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만으로 만족 못합니다.
저도 30대지만 지금도 아직 충분히 젊고 해볼만 하다고 봅니다.
물론 술먹으면 맨날 자괴감에 빠지지만요 -_-;;;
나 살아있어 아직 한방있어, 이걸로는 만족 못하겠습니다.
저들에게도, 또 제 스스로에게도 말이죠.
09/03/06 15:53
수정 아이콘
정말 공감합니다.

"죽지 않았음"을 봤습니다.
김재훈
09/03/06 16:35
수정 아이콘
그의 시작부터 최전성기를 지켜보았던 팬으로서...
그의 부활을 믿습니다.
Dennis Rodman
09/03/06 16:37
수정 아이콘
어제 이윤열선수 경기후에 많은 글들이 올라오네요....

올드팬들이 점점 대동단결하는 거 같은데....

이러다 진짜 올드선수가 결승에라도 올라가서 우승이라도 하면 무슨일이라도 벌어질거 같은 예감이...........
Crossroad]]
09/03/06 18:18
수정 아이콘
아 진짜.. 흑흑.. 진짜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이윤열 선수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올드선수들만 보면 저절로 응원하게 되네요.
파이팅입니다! 죽지 마세요 이윤열 선수! (어감이 이상한.. 덜덜)
감전주의
09/03/06 18:31
수정 아이콘
은퇴하지 않는 이상 언제든 기회는 있는 법이니까요..
나다의 팬은 아니지만 어젠 가슴이 찡하더군요..
09/03/07 06:29
수정 아이콘
근데, 이윤열 선수 이름을 제대로 고쳐주시길..^^;

이윤열 선수가 보여준 경기력은 외곽슛이 아니었는데요. 나이는 집중력을 많이 흐트려 놓습니다. 젊기때문에, 왕년에 잘 나가는 게 아니라, 나이가 들면...생각할 게 많아집니다. 어떤 일이나 그렇겠지만, 특히나 스포츠쪽은 집중력 싸움이라고 할 수 있기에, 올드라고 분류되는 선수들이 집중력을 잃어가는 걸 안타깝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여기서부터는 올드, 신예 구분없이...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그 자신과의 싸움에서 늘 승리할 수 없겠지만, 이윤열 선수는 그 싸움에서 자주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존하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그게 프로의 세계니까요~
divingtosky
09/03/07 11:48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잘봤습니다... 이윤열선수! 올드의 힘을 보여주세요... 아이티비때부터 봐온 유저로써 올드들의 분발은 가슴이 찡해지는것 같네요..
저의 기억속에는 여전히 '리쌍택뱅'보다는 '임이최마'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사람이 옛날에 잘하긴 했었나?'라고 생각하는 초보유저분들에게 아직 죽지않았다는것을 보여주세요..
Ps. 86년생 프로게이머분들 저희는 아직 한창때라고 실력으로 말해주세요....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황제의마린
09/03/08 01:07
수정 아이콘
요즘은 30대만 되도 나이 먹었다는 표현을 쓰네요.......
40대인 전 뭐죠 -_-?;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413 내가 처음 봤던 가을의 전설이 프로게이머가 되고서도 아직 남아있다 [12] Ace of Base7069 11/09/14 7069
1412 허영무 반드시 우승해라. 웃으며 그 죄를 논하리라. [32] 비내리는숲9900 11/09/13 9900
1411 이제 bye bye 엠겜의 Top10 명장면들.. [21] 은하수군단7386 11/09/10 7386
1410 남자 셋, 여자 셋 [14] 순욱8216 11/09/16 8216
1409 (09)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라. [14] 블레이드6404 09/03/06 6404
1408 (09)So1 <3> [19] 한니발8099 09/03/07 8099
1407 (09)컴백 스페셜 - 한국 호랑이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 [49] 9035 09/02/21 9035
1406 그 때 그 날 - 과거 (1) 아버지와 아들 [12] 눈시BB3440 11/09/14 3440
1405 크롬에서 나눔글꼴 설정 [37] 금시조131267M7638 11/09/14 7638
1404 한국에서 고졸로 취업하기 (만화 첨부) [14] SNIPER-SOUND11180 11/09/14 11180
1403 (09)[서양화 읽기] 비슷한 것은 가짜다 [13] 불같은 강속구9565 09/02/20 9565
1402 (09)스타리그 부흥을 위한 궁극의 대안, 주7일제. [28] 애국보수6538 09/02/07 6538
1401 (09)연쇄살인범의 연쇄살인범, 덱스터(Dexter)와 세 편의 영화. [40] DEICIDE8306 09/02/04 8306
1400 살아가는 이야기. [60] 로즈마리6988 11/09/13 6988
1399 그 때 그 날 - 예고편 [15] 눈시BB4479 11/09/10 4479
1398 (09)등급별 종족 벨런스 [19] 김연우7054 09/01/19 7054
1397 (09)어제의 MSL의 조지명식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메세지... [28] 피터피터7985 09/01/09 7985
1396 (09)테저전 메카닉의 트릭... (테란 메카닉의 새로운 패러다임) [7] 피터피터6139 09/01/01 6139
1395 (08)제2멀티로 보는 향후 관전 포인트 [22] 김연우6650 08/11/28 6650
1394 (08)관대한 세금, 인정넘치던 나라 이야기 [38] happyend6389 08/11/14 6389
1393 (08)[서양화 읽기] 우키요에와 서양미술의 만남 1편 [15] 불같은 강속구9498 08/10/20 9498
1392 딸아이의 3번째 생일 [20] 영혼의공원4915 11/09/08 4915
1391 (08)그때는 몰랐던 것들 [7] 탈퇴한 회원4992 08/10/18 499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