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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8/03 01:08:58
Name zeros
Subject Mr.Waiting - 13
나는 또 다시 지은이의 집 앞 벤치에 와 있었다. 잠시 산책을 나와 걷는 걸음이 그저 자연스럽게 이리로 또 인도해 버렸다. 난 고민하는 중이었다. 만약 그녀가 내 편지를 받고서도 또 읽었음에도 침묵을 지키는 거라면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그녀가 편지를 받지 못했다면…? 갈팡질팡 하는 나를 안정시키고 싶었다. 움직일 수 없는 분명한 현실이 내 앞에 자리하면 그 방향이 어느 쪽이 되었든 그 흐름에 편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빈 담뱃갑 속에 그 동안 피웠던 꽁초를 쓸어 담았다. 횡단보도를 건너 캔 맥주와 담배 한 갑을 사 왔다. 오후 4시. 주위를 지나는 사람들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새로 사온 담뱃갑이 많이 가벼워졌을 무렵 핸드폰을 들어 그녀의 이름을 찾았다. 핸드폰을 닫았다. 또 다시 담배를 물었다. 연기와 뒤섞인 맥주가 달콤했다. 다시 한 번 그녀의 이름을 찾았다.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녀에게 묻고 싶은 맘은 한 없이 컸으면서도 난 어떻게 물을지는 한 번도 생각해보질 않았다. 내 옆의 꽁초가 하나 더 뒹굴고 있을 때 난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네가 없으니까 되게 허전하구나. 내가 보낸건 잘 받았니?’

전송 완료 알림 메시지의 확인과 동시에 이유 없이 후회가 밀려들었다. 처음의 산책이란 목적은 어디로 갔는지 난 못 박힌 듯 정체되어 있었다. 맥주 캔과 함께 내 목구멍이 말라갈 때 쯤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뭘 보냈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나 아무것도 받지 못했어.’

사실 주소를 틀린 것도 아니고 우표까지 제대로 붙인 편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상대가 그녀였기에 이런 어긋남 마저 묘한 느낌이었다. 고민했다 이 어긋남을 받아들이고 그냥 흘러갈 것인지 아니면 나의 의지로 역행할 것인지. 아직 연습장의 그 페이지들은 내 것이었기에 다시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그 두 가지의 길 중에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가 고민 될 뿐이었다. 난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편지에 적힌 그 말들은 내가 그녀에게 하고픈 말이었다. 언제가 되었든 결국은 해야 할 말이 아닌가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며 몇 십 번 지나온 그 길을 다시 한 번 더 걸었다. 가방에서 연습장을 꺼내어 다시 한 번 편지를 옮겼다. 고쳐 쓰진 않았다. 그 때 내가 느낀 그 느낌과 생각들이 고스란히 전달되기를 바랐다. 이미 일어난 한 번의 어긋남 때문에서라도 내 손으로 직접 전달해 주고 싶다는 나의 말에 그녀도 동의했고, 내 눈 안에 나타나 주었다. 내가 입대하고 나서 한참 만에 했던 그녀와의 첫 통화처럼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했다. 지난 그 밤 그런 일은 그녀와 나의 대화와 웃음에 아무런 제지도 가하지 못하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나와 그녀는 이것이 당연하다는 듯 너무도 자연스러운 만남과 짧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를 보내고 항상 그녀에게 해줄 무엇인가가 쉴 새 없이 떠오르던 내 머리가 멈춘 듯 했다. 이제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나의 일은 기다림이었다.

기다림은 공허함과 손을 잡고 괴로움을 자아냈지만 길지는 않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그녀의 마음은 돌아서지 않았다. 마치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당연한 느낌이었다. 본인도 내가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에 놀라워했지만 내가 말했던 친구 같은 연인보다는 정말로 편한 친구가 되길 바란다고. 이미 그녀가 그럴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괴로움 속에 성장이 있던 것인지 그녀가 날 기다리게 할 때 또 내가 그녀를 기다리게 할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가 바라는 그녀와 나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난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는 생각. 그녀가 나와 함께 하던 하지 않던 내 마음이 쉽게 변하지 않으리란 사실 또한 명확했다. 또 다시 휴가를 나갈 날은 다가왔고, 그녀가 마시고 싶다던 맥주를 마시며 우린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었고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에게 내 생각을 꺼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문득 그녀와 고민을 공유하던 그 포장마차가 그리웠다. 함께 그 때 그 자리로 가보았지만 파란 포장마차는 자리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린 근처의 다른 술집으로 향했다. 주문을 마치고 기다리는 동안 그녀가 물었다.

“그래서, 넌 생각 같은 거 좀 정리했어?”

그녀와 이런 이야기를 꽤나 많이 해본 나이건만 그녀가 먼저 물어봐 주는 건 처음 인 일이었다.

“응.”

안주거리와 맥주 두 잔이 도착했고 덕분에 대화가 잠시 멈추었다. 이야기가 나올 목을 잡시 적실 때 그녀가 물었다.

“넌 담배 어떤 거 피워?”

그녀 앞에선 아직 다시 시작한 담배를 보여주지 않았지만 이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시간의 힘이라는 것이 이런 것을 의미하는가 싶었다.

“어. 난 마일드 세븐.”

나는 조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녀 앞이라 참았던 시간만큼 맛이 좋았다. 난 준비했던 내 마음을 꺼내 놓았다. 가슴 속에 들어왔다 나가는 연기가 음성에 섞여 마치 진심의 증명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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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05 02:04
수정 아이콘
친구 같은 연인보다는 정말로 편한 친구라.... 가능할까요?;;;;
후니저그
10/08/05 16:42
수정 아이콘
연인같은 친구.. 서로 같은 감정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지만.. 한쪽이 조금이라도 더 좋아하면 그것만큼 힘든게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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