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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11/14 22:46:08 |
Name |
unipolar |
Subject |
[공모] 지상 최후의 넥서스 #1 (by unipolar) |
[공모] 지상 최후의 넥서스 #1 (by unipolar)
#Prologue
임요환.
"나를 엠퍼러(황제)라고 부르지 마, 너희들만이라도. 5년동안 내 머릿속에는 이 저주받은 미래에 왜 왔는가,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 외엔 아무것도 없었어...... 내가 테란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나선 건 정말로 얼마 되지 않아. 나를 영웅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난 점점 힘들어지고 있어."
강민.
"나도 이제 당신들의 잘난 세계를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 줘요, 당신들이 그렇게 원하는 프로토스 공동체란 사실 다크템플러들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이상입니다. 내가 보여주겠습니다, 모두가 칼라에게 접속해 있는 이 숨막히는 집단 속에서 한 개인이 자기만의 꿈을 꾸기 시작할 때-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홍진호.
"저그의 힘을 부인하는 것은 테란의 오만일 뿐이야. 그리고 그런 자들의 운명이란, 프로토스가 젤-나가에게 버림받았듯이 창조주에게 외면당하는 것 뿐이지. 어쨌든 그 긴 시간 동안 내 아이덴티티는 저그였어. 지금은 그 사실이 내게 너무나도 가혹해."
이윤열.
"아직도 내가 이 전쟁판에서 더 이상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건 마찬가지야. 하지만 난 깨달았어-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전쟁이라면 빨리 끝내는 것도 차선은 된다고...... 그리고 내겐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이야."
서지훈.
"나라면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겠어요. 내가 내 운명을 알고,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면, 그리고 잘못을 되돌릴 기회가 있다면 난 얼마든지 내 운명을 바꾸려 들 거예요. 이건 내가 아닌 당신을 위해 하는 말이예요, 사라 케리건. 당신의 운명은 곧 모든 테란의 운명이니까."
#1
다리가 네 개였다.
그 괴물은 다리가 네 개였다. 한 마리가 앞발 든 개처럼 통통거리며 보도를 가로지르자 똑같이 생긴 다른 괴물들이 골목길에서 하나둘 튀어나와 줄을 지어 달려갔다. 분명히 인간이 지나가라고 만든 길인 것 같은데 인간이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밤색 머리칼의 남자가 숨을 죽이고서 상점의 유리벽 너머로 그 기괴한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숨기 위해 이 안에 들어왔지만, 사실 그가 고개를 돌린다면 머리와 한쪽 팔이 뜯어먹힌 채 내던져진 상점 주인의 시체를 볼 수 있을 터였다.
그의 왼쪽 어깨를 툭툭 두들기는 손이 있었다. 전형적인 동양인의 피부색에, 악기 아니면 키보드를 다뤘을 것만 같은 긴 손가락이다. 그 손가락이 가늘게 떨린다 싶더니 곧 똑같이 떨리는 목소리가 뒤따랐다.
"형, 내말 듣고 있어?"
그러나 밤색 머리칼의 남자는 딱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 대답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긴 다섯 손가락이 그의 어깨를 꽉 붙들자 이제 식은땀이 배어나기 시작한다.
"진호형. 저,저게 진짜 저글링이라고 말하진 말아줘...... 부탁이야, 그냥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우린......"
진호라고 불린 그 청년은 여전히 숨을 거의 멈춘 채로 고개만 살짝 돌렸다. 그의 시선이 동행자의 창백한 얼굴을 건너뛰어 벽 쪽에 머물렀다. LCD 캘린더. 11월 14일.
그의 동공이 커지는 것을 보자 긴 손가락의 동행자 역시 그 쪽을 주시한다. 캘린더의 꼭대기에 박혀 있는 숫자가 이번에는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절망이 섞인 탄식, 그 믿을 수 없는 네 자리 숫자는 바로 그들의 앞에 닥친 현실이었다.
......2335년이었던 것이다!
#2
"하지만 자네가 나의 배신을 연방에 보고하는 것보단 내가 자네를 죽이는 것이 더 빠를 텐데."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총을 꺼내드는 것을 댄 켈리는 그대로 보고만 있었다.
에드먼드 듀크 장군. 마 사라를 저그의 소굴이 되도록 방치한 자, 그리고 멩스크에게 알파 전대를 팔아넘긴 자-그리고 지금 내 가슴에 총을 겨눈 돼지 같은 놈.
댄 캘리는 볼을 움씰거렸다. 테란 연방(confederate)의 역사가 수많은 진실을 묻으며 자라왔듯이, 나의 피도 이제 암흑 속에 점점이 흩뿌려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진실은 감춰지겠지.
저 비둔한 돼지 듀크는 저그와의 첫 대결에서 박살난 후 비굴하게도 멩스크에게 달려갔다. 알파 전대가 멩스크와 '코랄의 아들들'의 손에 넘어가고 나면 타소니스를 저그의 손아귀에서 구출할 만한 병력은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악투러스 멩스크는 동족을 치기 위해 얼마든지 저그를 앞마당에 불러들일 만한 자다. 5년 전 처음으로 저그의 위협을 경고해준 나의 젊은 친구여, 이제 그대가 와줄 때가 되지 않았소?
듀크는 자신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는데도 켈리가 미소를 띠기 시작한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켈리 대령은 공포에 질리거나 무력감을 씹기는 커녕 이제 득의만면한 웃음을 짓고 있다. 댄 켈리의 태도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의 왼쪽 관자놀이에 금속성의 물체가 서늘하게 닿아온 후에야 듀크는 깨달았다.
"총을 내려놓으시죠, 듀크 장군님."
성조가 없는 특이한 언어가 왼쪽 귀에 먼저 들려온 후, 몇 초의 간격을 두고 영어로 번역되어 나온다. 그 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아마 총기어린 검은 눈을 빛내던 그 동양인과 그의 얼굴 한쪽에 걸린 인터프리터에서 나오는 말소리겠지-
그 젊은 이방인 청년만이, 텔레패스 고스트들의 감시를 피해 사령실로 잠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스트들은 이국의 언어 속에서 태어난 그의 마인드를 읽으려 한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따름이다.
"댄, 자네가 이 노란 놈을 데리고 그간 무슨 일을 꾸몄는지 이제야 알겠군."
듀크는 마지못해 총을 내던지며 경멸하듯 말했다.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의 그 청년이 총을 발로 차서 켈리 쪽으로 보냈다. 댄 켈리는 총을 집어들면서 한쪽 입가를 당겨 듀크를 마음껏 비웃었다.
"배신자의 입으로 내 젊은 동지를 그렇게 모욕하지 마시오. 이 사람이 누군지 아시오?"
켈리 대령은 무력해진 듀크의 두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그 청년에게 손짓을 하면서 전에 없던 위엄있는 목소리를 냈다.
"그는 테란 최후의 비밀 무기란 말이오...... 이리 오게, 엠퍼러(emperor)."
#3
강민은 끝도 없이 이어진 것 같은 유리 통로를 따라 걸어갔다. 다른 사람이라면 공포에 잠식당할 만한 상황이지만 그는 오히려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왜냐구? 난 이게 꿈이란 걸 알거든.
"이봐, 외계인들아, 무고한 인간을 잡아다가 생체 실험이라도 할 생각이냐?"
앞서 걸어가는 그들과의 거리가 좁혀지자 싸늘한 느낌이 전해진다. 그들의 체온은 인간보다 많이 낮은 걸까?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보란 말이다!"
그들 중에서 치렁치렁한 녹색 옷을 입은 자가 되돌아보았다. 정말로 입이 없었다.
강민은 머쓱해져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주황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눈에서 뿜어나오는 빛 때문에 그는 질식할 것 같았다. 민은 처음으로 긴장하고 있다. 손가락 세 개 짜리에 그리 상태 좋아 보이진 않는 피부 하며 저 외계인들은 도대체......
기분이 묘해진 민이 체념한 듯 통유리 창 밖을 쳐다보자 아까와는 다른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그의 입이 벌어져 닫힐 줄을 모른다. 도대체 이건?
'네, 넥서스야! 세상에!'
민이 발걸음을 멈추자 오른쪽으로 뚫린 복도에서 갑자기 요란한 발걸음 소리가 났다. 익숙한 저 어깨 장식, 흉갑, 굳세 보이는 정강이받이, 그리고 사이어닉 블레이드-
맙소사, 내가 이렇게 코믹한 꿈을 꾼 것을 알면 정석이도 재밌어하겠지? 내가 꿈 속에서 진짜 질럿과 하이템플러들을 보았다고 말이야.
민은 비로소 그들이 프로토스임을 알았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은 것 같다.
녹색 옷의 하이템플러가 손을 번쩍 들더니 질럿들을 돌려세웠다. 그리고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심장이 미칠 듯이 뛰기 시작한다. 마치 이 나약한 한 명의 테란조차도 그들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는 듯이-
그리고 이 괴짜 몽상가는 꿈과 현실이 가장 강렬하게 엇갈리는 순간을 생애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4
표지판으로 봐선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았다. 행정관들의 오피스가 있는 곳이니까 어떻게 통신이라도 시도해 보고 대체 여기가 어딘지라도 좀 알아내자, 잠깐 정신을 잃은 후 눈을 떠 보니 이 유령의 도시에 와 있었노라고 누구 한 사람이라도 붙잡고 하소연해 보자. 사람한테 말이다. 구역질날 것 같은 '진짜' 저글링들 말고, 인간한테!
"거의 다 왔으니까 힘내서 뛰자 윤열아. 그래도 아직까진 저글링을 안 마주쳐서 다행이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그러나 진호의 등 뒤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윤열의 헉헉거리는 소리가 갑자기 끊긴 것을 안 그는 싸늘한 기분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윤열이 보이지 않았다.
방금 쉭쉭거리는 끔찍스런 숨소리가 스쳐갔던 것을 기억한다. 진호는 온 길을 미친듯이 되돌아 달렸다. 골목길을 하나 지나칠 뻔했을 때 진호는 쓰러질 듯이 멈춰섰다.
'맙소사, 히드라리스크야!'
벌벌 떨면서 담장을 기어오르는 윤열의 앞에서 뱀 같은 괴물이 등을 곧추세우는 장면이 환상처럼 비춰졌다.
"안 돼!"
윤열이 민첩하게 담장 위로 몸을 올림과 함께 등뼈에서 튀어나온 바늘들은 하릴없이 담장에 꽂혔다. 히드라가 이번에는 진호의 비명 소리를 듣고 그 쪽으로 달려온다. 진호는 윤열이 무사한 것에 안도할 틈도 없이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엔진 소리가 자신을 쫓아오는 듯 했지만 신경쓸 수가 없었다.
히드라에게 거의 따라잡힌 그는 다음 블록에서 재빨리 코너를 돌았다. 막다른 길이 아니어야 할텐데-그 혼잣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진호는 자신의 눈 앞이 가로막힌 것을 보았다. 이대로 끝이구나. 젠장.
그리고 등 뒤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엎드렸다. 땅바닥에 박히다시피 한 그의 코에까지 역겨운 탄내가 실려왔다. 진호가 몸을 일으켰을 때, 그는 그 흉측한 가죽에 불이 붙은 히드라가 통구이가 되어 벽에 팽개쳐진 것을 보았다.
"진호형, 괜찮아?"
어느새 따라온 윤열이 진호가 무사함을 확인하고 한걸음에 달려온다. 두 사람의 앞에는 벌처 호버 바이크에 탄 마린이 화염 방사기를 들고 있었다. CMC-300 구식 전투 슈트를 입은 그는 화염방사기의 화력을 줄이지 못하고 뒤뚱거리고 있었는데, 그가 겨우 전원을 끄면서 불길을 확 돌리는 바람에 진호와 윤열까지 통째로 구워질 뻔했다.
'혹시 드라군 뇌를 이식받은 마린이 아닐까?'
"진호형!"
한국어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눈앞에서 들릴 리 없기에 진호는 윤열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윤열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이 부르지 않았다는 표시를 했다. 궁금해하는 그들 앞에서 전투복을 입은 남자가 갑자기 오른손으로 헬멧을 꺾어 올렸다.
놀랍게도 헬멧 속에 머리가 보이지 않는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이 자세히 쳐다보니 머리와 이마, 그리고 두 눈이 겨우 보였다. 빠꼼히 눈만 깜빡이고 있던 남자는 뭔가 레버를 찾는 것 같았다. 곧 푸슉!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머리가 툭 튀어 올라온다.
"에휴, 발 높이 조정하는 장치가 있는 줄 몰랐지 뭐야......"
"서지훈!"
진호와 윤열이 거의 동시에 외쳤다. 아직도 전투 슈트에 적응되지 않은 듯 뒤뚱거리던 그는 특유의 무심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이 지옥에 나만 떨어진 줄 알았어, 두 사람까지 여기서 고생하고 있는 줄 알았으면 덜 충격받았을 텐데!
유쾌한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만나서 반가운 심정을 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사실 최선이라면 형도 여기 오질 않았어야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만나지 못한 것보단 낫잖아......"
"여기가 어딘 줄은 좀 알겠니?"
"알아도 별 해결책은 없어. 우린 2335년에 떨어졌고, 여기는 지구에서 멀어도 한참 먼 곳이야-마 사라(Mar Sara), 스타크래프트 스토리에 나오는 그 가엾은 저그 소굴이야."
"지, 진호형, 우리 어떻게 하지?"
그는 새까만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비장하게 대답했다.
처음 눈 뜨던 순간에 마린 셋이 하반신을 뜯어 먹히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결심했어-이건 절대로 게임 속도 꿈도 아니라고.
반드시 탈출해야만 하는 현실이라고. 우리가 무력하게 눈을 감아버리는 순간에 우리의 삶은 영문도 모른 채 잘라 먹히는 거라고!
누가 이들을 미래로, 우주 건너편으로 데려온 것인가? 무슨 목적으로?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스타크래프트는 이들과 어떤 관련이라도 있는 것일까?
지훈은 곧 다음 전투가 벌어질 것처럼 익숙하게 벌처 호버 바이크의 시동을 걸었다.
이제 어떤 생명체도 남지 않은 것 같은 도시에 이들의 숨소리만이 커다란 반향으로 들려왔다.
※<지상 최후의 넥서스> 2편은 이번주 수요일 밤 11시 안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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