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에서의 선수 존칭을 생략합니다. 양해해 주세요.]
10.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에이스 결정전 이윤열 vs 박태민 (맵 : 파이썬)
"어떻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까......??"
에이스 결정전에 임하는 박태민이 내세운 '비기'인 9드론 발업저글링에 제대로 허를 찔린 이윤열.
정찰 나간 SCV가 저글링을 발견조차 하지 못한 덕에 입구는 너무도 손쉽게 돌파당했고,
벙커를 지어 어찌어찌 막아내기는 했지만 설상가상으로 서플라이 두 개까지 헌납하면서 궁지에 몰리게 된다.
바이오닉 병력을 꾸준히 모아 겨우 본진에서 저글링을 몰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저글링으로 재미를 볼 만큼 본 뒤였고
테란의 본진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러나 남은 병력들을 가지고 이윤열이 선택한 것은 수비가 아닌 공격이었다.
아카데미의 스팀팩 업그레이드, 병력의 도착, 그리고 상대의 방심을 틈탄 실낱같은 찌르기.
그는 잃었던 시간을 찾았고, 그리고 이겼다. 본진이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건물이 깨져나가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경기 후 유니폼을 관중들에게 들어 보였던 이윤열. 그에게 존재하는 여섯 개의 우승자 배지가 허언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9. 곰TV 시즌 4 8강 3경기 이윤열 vs 박성균 (맵 : 블루스톰)
"이렇게 지기는 싫다. 아니, 질 수 없다!!!"
앞선 두 경기의 패배, 그리고 그 패배에서 드러난 경기력의 차이. 이윤열이라는 선수에게도
최초의(페널티가 없는, 공식 경기에서의) 다전제 3:0 패배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을 만큼 너무나 상황은 어려웠다.
그러나 배틀크루저가 깨져도, 본진에 상대의 탱크들이 시즈모드를 하고 건물을 부셔댈 때도 그는 GG를 치지 않았다.
늦게 먹은 12시만 제대로 돌아간다면. 그리고 상대의 맹공을 막아낼 수만 있다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SCV까지 전투로 내몰고 배틀크루저마저 상대방에게 먹잇감으로 던져주고 본진 건물이 깨져나가는 고통을 견디면서
'천재테란'이라 불리는 그는 가장 천재답지 않은 싸움을 했지만 가장 감동적인 승리를 손에 넣었다.
오랜 선수들에게 으레 던져질법한 질문인 '만일 천재에게 천재성이 없어진다면 무엇으로 세상을 이겨나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이윤열이 선택한 것은 경험이었고, 의지였고, 근성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길 수 있다는 집념이었다.
8. 신한 마스터즈 결승 제 4경기 이윤열 vs 마재윤 (맵 : 신 백두대간)
"내가 당하고 그냥 있을 것 같은가...?"
앞선 두 경기를 이겼지만 리버스 템플에서 저글링에 한 경기를 내주고 맞은 4경기. 게다가 맵은 상대인 마재윤이 선택한 신 백두대간.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즉흥적인,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구사한 전략인 몰래 팩토리가 먹혔고 저그 본진을 벌처가 휘저었다.
그러나 이윤열 역시 마재윤의 저글링에 앞마당을 제대로 돌리지 못하게 되었고, 딜레마에 빠질 법한 순간. 이윤열은 앞마당에 집착하지 않았다.
완성된 3배럭에서 나온 바이오닉 병력으로 최단거리로 앞마당에 진출하여 그대로 승리를 가져가고야 말았다.
이윤열은 절대 당하고 그냥 있는 선수가 아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걸어 놓으면 최초로 따고야 마는 선수이기도 했다.
마스터즈 결승전은 그것의 증명이었다.
7. 겜TV 3차 스타리그 결승 제 3경기 이윤열 vs 강도경 (맵 : Emperor of Emperor)
"이윤열, 전무후무한 칭호를 손에 넣다"
경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5시 지역으로 SCV를 보내 몰래 배럭 두 개를 건설한 뒤,
이윤열은 전략을 숨기기 위해 입구를 배럭으로 틀어막았고, 결국 이윤열의 몰래 배럭은 강도경의 진영에 내려앉았다.
유닛이 어느 정도 생산되기 전에 배럭 둘을 덮친 강도경의 저글링으로 인해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는 듯 보였지만,
막 생산된 파이어뱃에 저글링 여섯 마리가 모두 터지면서 상황은 급격히 이윤열에게 기울게 된다.
저글링밖에 생산할 수 없었던 강도경은 몰래 배럭의 파이어뱃에 속수무책이었고, 결국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윤열은 이 경기로 3:0 승리를 거두어 우승을 차지했고, 전무후무한 '그랜드슬래머'가 되었다.
경기 내용도 내용이지만 맵 이름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경기.
이 경기에 쓰인 맵의 이름은 어쩌면 그가 그랜드슬래머로 등극할 것을 미리 예상한 이름이었을까.
가끔 우스갯소리로 등장하는 '아이옵스배 이윤열'처럼...
6. 핫브레이크배 2003 1차 듀얼토너먼트 C조 승자전 이윤열 vs 강민 (맵 : 신 개마고원)
"4분 뒤......"
신 개마고원에서 vs 한승엽전과 더불어 기억에 남는 경기. 대각선에 위치한 두 선수는 이따금 펼쳐진 견제 이외에는
별다른 교전 없이 병력을 차츰 모아 나갔고, '물량'으로 이름 높은 이윤열의 화면을 가득 뒤덮은
탱크와 벌처의 대부대가 중앙으로 위풍당당하게 진출한다. 중앙에 자리잡은 탱크 병력들.
그러나 강민의 깜짝 템플러가 내뿜은 사이오닉 스톰과 두세 차례 이어진 마인대박.
순식간에 이윤열의 물량이 한 줌의 재로 사라지는 순간이었고, 이제 강민이 승자전에서 승리하는 것은 기정사실인 듯 했다.
하지만... 4분 뒤.
앞마당 먹은 이윤열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처음 잡아먹힌 병력만큼이나 다시 나온 탱크-벌처 물량.
중앙에 이중으로 탱크의 벽(Tank Wall)을 만든 이윤열의 병력에 다시 강민의 지상군이 달려들었지만
이번엔 한줌의 재로 사라진 것은 프로토스의 지상군이었다. 그리고 경기는 거기에서 끝났다.
'이윤열에게 시간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와도 다르지 않다.
5. 구룡쟁패 듀얼토너먼트 F조 1라운드 최종진출전 이윤열 vs 강민 (맵 : R-Point)
"옵저버가 10초만 빨리 왔어도 이길 수 없었을 승부"
최종진출전은 언제나 처절하다. 더군다나 우승자 출신인 선수 두 명 중 한 선수는 PC방으로 내려가야 한다면 더더욱 그렇고,
서로 막역한 사이인데다가 명경기를 많이도 양산해 낸 전례가 있는 선수라면 더더욱 그렇다.
초반. 이윤열의 입구를 질럿을 난입시켜 두들겨 테크트리를 늦추고 SCV도 꽤 많이 잡아낸 강민 선수의 우위는 분명해 보였다.
시즈모드도 안 된 탱크로 어찌어찌 막아내기는 했지만 동원된 SCV도 한동안 일을 하지 못했고,
프로토스는 어느새 게이트웨이 4개가 돌아가고 멀티 또한 쌩쌩하게 돌아갔다.
해설자들조차 동시 투멀티를 해야 한다고 했던 찰나. 이윤열은 오히려 3팩을 올린 다음 탱크와 벌처 포함해서
한 부대 남짓 되는 병력과 SCV 네댓 기를 데리고 R-Point의 앞마당과 본진을 잇는 입구를 조여 버린다.
드라군은 한 부대 넘게 있었지만 발업 질럿이 늦었던 강민의 드라군들은
서플라이까지 지으며 들어앉아버린 이윤열의 병력에 모두 녹아버렸고,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조이기 라인을 형성하기 전까지 탱크 시즈모드조차 보여주지 않았던 이윤열.
이윤열의 병력이 진출하고 난 뒤 10초쯤 지났을 시점에 이윤열의 본진을 봤던 강민의 옵저버.
옵저버가 10초만 빨리 와서 병력으로 한 방에 치고 나갈 거라는 전략을 보았다면, 절대로 이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10초가 승부를 갈랐다.
4. 당신은 골프왕배 MSL 승자 결승 제 5경기 이윤열 vs 박태민 (맵 : 레이드 어썰트)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머린에 이레디에이트까지..."
5경기까지 승부를 끌고 왔지만 5경기 맵은 테란이 모두 죽어나가던 맵 '레이드 어썰트'.
게다가 이 맵에서 진행된 1경기를 내주고 말았던 이윤열.
구름 배슬의 힘으로 캐스터 입에서 '배슬이 웬수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의 배슬 운용능력을 보여주었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모은 풀업 바이오닉 병력들로 저그의 디파일러 마운드를 깨 버리고, 5시 해처리까지 깨면서 승기를 잡았다.
마지막에 보여준 이레디에이트 머린과 배슬 지우개는 그의 여섯 번째 MSL 결승 진출을 자축하는 한 편의 쇼였다.
최종결승의 패배로 빛이 바랜 경기이지만, 불리한 전장에서 모든 것을 쏟아부어 이긴 NaDa의 경기.
3. KPGA 2차 투어 8강 이윤열 vs 이재훈 (맵 : 리버 오브 플레임) - "50게이트 사건"
"전설의 시작"
경기 내용에 대한 수식을 하는 것이 사족이 될 정도로, 7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자되는 명경기.
그전까지는 최인규를 이겼던 아마추어 이윤열이, 프로게이머 이윤열로서 알려지기 시작한 경기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이윤열은 KPGA 2차 투어 우승을 시작으로 KPGA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고, 곧이어 그랜드슬래머가 되면서
1년 남짓의 시간 동안에 다섯 번의 우승을 통하여 자신을 각인시켰다.
말할 필요도 없이 전설의 시작이라 불려도 아깝지 않을 경기.
2.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 2 결승 제 5경기 이윤열 vs 오영종 (맵 : 타우 크로스)
"전설을 삼키고 새로운 전설이 되다"
50게이트 경기가 전설의 시작이었다면 이 경기는 '가을의 전설'을 삼켜버리고 이윤열이라는 새로운 전설이 태어난 경기.
자신이 패배한 전장 타우 크로스에 다시 돌아온 이윤열은 뜻없는 병력 소모처럼 보이는 소규모 드롭으로 프로토스를 귀찮게 만들었다.
병력도 내리는 족족 손해를 보는 것 같았고 번번이 막히는 것 같았지만 그 드롭이 프로토스에게 작은 틈을 주었고
그로 인해 벌어진 틈으로 프로토스의 제 2멀티도 늦출 수 있었던 이윤열.
곧 캐리어가 찍힌다는 긴박감 속에 5팩에서 나온 한 방 병력이 타우 크로스 6시 지역의 앞마당과 본진 사이를 잇는 지점의
벽 뒤쪽으로 들어앉아 프로토스의 목줄을 쥐었고, 그 병력을 맞이하여 나온 프로토스의 지상 병력이 벌처와 탱크에 산화하는 순간 나온 GG.
이윤열은 '가을의 전설'을 깨 버리면서 골든 마우스를 쥐고 자신이 새로운 전설이 되었음을 알렸고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속에, 그리고 어머니가 보는 자리에서 우승을 했다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기억하는가. 골든 마우스를 주기로 한 시점에 이윤열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그러나 골든 마우스를 최초로 손에 쥔 선수는 나락으로 떨어져서 다시 올라올 기약조차 없었던 이윤열이었다.
나락에서 천상으로. 절망에서 영광으로. 그것을 최초로 보여준 선수 역시 이윤열이었고 골든 마우스는 그 증거가 되었다.
1. 스카이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안기효 / 이윤열 vs 임요환 / 박태민 (맵 : 철의 장막)
"한 명을 아웃시켜서 유리하다고? 다른 한 명이 이윤열이면 방심해선 안 돼."
최고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윤열의 경기는 이 경기 말고도 많지만,
센세이션과 더불어 최고의 논란까지 덤으로 선물한 이윤열 선수의 경기는 이 경기만한 경기가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이 경기에 대해서 여러 말들이 있다. 엄재경 해설위원의 말처럼 향후 5년간 말이 나온다 했으니
내후년까지는 적어도 말이 나올 것 같고 지금 상황에서는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아 보인다.
분명한 것은, 이 경기는 상대가 여유로웠기 때문에 이긴 경기도 아니다. 맵의 특성에 의해 승리가 거꾸로 돌아간 경기도 아니다.
이윤열이 포기하지 않았고, 이윤열이 손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이긴 경기이다.
아무리 저그가 가난했다 해도 이윤열이 한 순간이라도 손을 놓았고 한 순간이라도 생산을 게을리했다면, 이길 수 있었을까?
어쨌거나. 상대가 이윤열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로워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개인전에서만 통용되는 일이 아니다.
- The xi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