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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1/31 06:25:45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runch.co.kr/@wgmagazine/128
Subject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72. 볕 양(昜)에서 파생된 한자들 (수정됨)

이제 금(今)이 입 구(口)나 가로 왈(曰)을 뒤집어 놓은 모양이라면, 무엇을 덮어 놓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 글자가 무엇을 덮어 가리는 구름을 나타내는 이를 운(云)과 언덕 부(阜)와 결합하면, 덮어 가려진 곳에 드는 그늘 음(陰)이 된다. 이 그늘과 대비되는 것이 바로 볕 양(陽)이다. 이번에는 陽을 이루는 또 다른 볕 양(昜)의 자원과 이에서 파생된 한자들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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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昜의 갑골문, 금문 1, 2, 3, 제계 문자, 연계 문자, 진(晉)계 문자, 초계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설문해자》에서는 “엶이다. 날 일(日)과 한 일(一)과 말 물(勿)이 뜻을 나타낸다. 또는 날아오름이다. 또는 긺이다. 또는 굳센 것이 모여 있는 모습이다.”라고 풀이해, 日, 一, 勿이 모인 회의자로 분석했다. 그러나 갑골문의 모양을 보면 허신의 해석은 착오임을 알 수 있다.

갑골문에서는 日 밑에 丂처럼 생긴 문자가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한자를 한어다공능자고 사이트에서는 대만의 학자 취 완리(屈萬里)의 견해를 인용해 가지 가(柯)의 초문으로 보았고, 해가 나뭇가지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본뜬 상형자로 보았다. 나중에 昜이 잘 쓰이지 않게 되면서 해돋을 양(暘)과 볕 양(陽)이 대신 쓰이게 되었다. 지린대학 교수 리 춘타오(李春桃)는 이 한자를 지팡이 장(杖)의 초문으로 보았고, 포지도의 《광운형성고》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이 丂가 昜의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설은 위키사전에 있는 것으로, 갑골문을 日과 제단을 나타내는 보일 시(示)가 결합해 햇살이 제단을 비추는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보았다.

금문에서는 금문 2처럼 갑골문을 그대로 쓰기도 했으나 1, 3처럼 햇살을 나타내는 빗살무늬 획이 추가되었고, 각국의 전국시대 문자에서는 이 빗살무늬가 丂와 붙었다. 소전에서는 이 빗살무늬와 丂가 결합한 형태를 한 일(一)과 말 물(勿)이 결합한 형태로 잘못 분석한 것이다.

한어다공능자고 사이트에 따르면, 昜은 갑골문에서는 지금의 陽이나 暘의 뜻으로 쓰였다. 금문에서는 나중에 파생되는 날릴 양(揚)을 가차해서 쓰이기도 했으며, 허신이 昜을 날아오름이라고 해석한 것은 이 용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또는 말이마치장 양(鍚)을 가차해서 쓰이기도 했다.


昜(볕 양, 어문회 특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昜+土(흙 토)=場(마당 장): 장소(場所), 공장(工場) 등. 어문회 준7급

昜+手(손 수)=揚(날릴 양): 양력(揚力), 게양(揭揚) 등. 어문회 준3급

昜+攴(칠 복)=敭(날릴 양): 역양(歷敭: 역임), 이양하(李敭河: 수필가·영문학자) 등. 어문회 준특급

昜+日(날 일)=暘(해돋을 양): 양곡(暘谷: 해가 뜨는 곳), 우양(雨暘: 갬과 비 옴) 등. 어문회 준특급

昜+木(나무 목)=楊(버들 양): 양주(楊州), 수양(垂楊) 등. 어문회 3급

昜+水(물 수)=湯(끓을 탕): 탕기(湯器), 목욕탕(沐浴湯) 등. 어문회 준3급

昜+火(불 화)=煬(녹일 양): 양제(煬帝: 수나라 2대 황제) 등. 어문회 준특급

昜+玉(구슬 옥)=瑒(옥잔 창): 응창(應瑒: 중국의 문인으로, 건안칠자 중 하나) 등. 급수 외 한자

昜+田(밭 전)=畼(곡식나지않을 창): 급수 외 한자

昜+田(밭 전)=畼→暢(화창할 창): 창달(暢達), 화창(和暢) 등. 어문회 3급

昜+疒(병들어기댈 녁)=瘍(헐 양): 궤양(潰瘍), 종양(腫瘍) 등. 어문회 1급

昜+矢(화살 시)=⿰矢昜(다칠 상): 급수 외 한자

昜+石(돌 석)=碭(무늬있는돌 탕): 망탕산(芒碭山: 중국의 산) 등. 인명용 한자

昜+肉(고기 육)=腸(창자 장): 장(腸), 대장(大腸) 등. 어문회 4급

昜+艸(풀 초)=⿱艹昜(자리공 탕/창/양): 급수 외 한자

昜+虫(벌레 훼)=蝪(땅거미 탕): 철탕(蛈蝪: 땅에 사는 거미 종류. 《태평어람》) 등. 어문회 특급

昜+車(수레 차/거)=輰(수레 양): 양수(輰䡵: 수레의 일종. 《광운》). 인명용 한자

昜+金(쇠 금)=鍚(말이마치장 양): 누양(鏤鍚: 말 눈썹에 올리는 금제 장신구. 《시경》) 등. 어문회 특급

昜+阜(언덕 부)=陽(볕 양): 양성(陽性), 음양(陰陽) 등. 어문회 6급

昜+風(바람 풍)=颺(날릴 양): 양람(颺籃: 삼태기), 표양(飄颺: 바람에 날림) 등. 어문회 특급

湯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湯+火(불 화)=燙(데울 탕): 인명용 한자

湯+皿(그릇 명)=盪(씻을 탕): 격탕(激盪: 심하게 흔듦), 진탕(震盪/振盪), 어문회 특급

湯+竹(대 죽)=簜(왕대 탕): 노탕전(蘆簜田: 갈대밭과 대밭) 등. 어문회 특급

⿰矢昜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矢昜+人(사람 인)=傷(다칠 상): 상처(傷處), 손상(損傷) 등. 어문회 4급

⿰矢昜+歹(앙상한뼈 알)=殤(일찍죽을 상): 상사(殤死: 스무 살 전에 죽음), 요상(夭殤: 일찍 죽음) 등. 어문회 특급

⿰矢昜+角(뿔 각)=觴(잔 상): 상영(觴泳: 술을 마시면서 즐겁게 노래함), 남상(濫觴) 등. 어문회 1급

⿰矢昜+鬲(다리굽은솥 력)=鬺(삶을 상): 인명용 한자

⿱艹昜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艹昜+水(물 수)=蕩(방탕할 탕): 탕감(蕩減), 방탕(放蕩) 등. 어문회 1급

盪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盪+艸(풀 초)=蘯(쓸어버릴 탕): 인명용 한자(蕩과 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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昜에서 파생된 한자들.


昜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볕 양(陽)부터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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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陽의 갑골문, 금문 1, 2, 3, 춘추 금문 1, 2, 진(晉)계 문자, 초계 문자 1, 2, 진(秦) 석고문, 소전. 출처: 小學堂

陽은 《설문해자》에서는 “높고 밝은 것이다. 언덕 부(阜)가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낸다.”라고 풀이해 昜과 구분했다. 陰에서 阜는 云과 함께 해를 가리는 장치인데, 陽에서는 해가 나무 위로 높이 솟아(昜) 언덕(阜)을 비춘다는 뜻으로 풀이되어 햇볕을 받는 것으로 묘사된다.

陽은 갑골문에서부터 발견되어 昜과 역사를 같이 하며, 이때부터 阜와 昜이 합한 짜임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陽의 금문에서도 昜과 마찬가지로 1, 3처럼 햇살을 나타내는 획이 있기도 하고 2처럼 없기도 하다가 춘추시대 이후로는 이 획이 아래 丂와 결합해 지금의 陽의 모양을 갖춘다. 춘추 금문 1과 2는 햇볕이 산이나 땅을 비추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각각 메 산(山)과 흙 토(土)를 더했고, 초계 문자 2에서도 土가 확인된다.

陰에서도 언급했듯, 지구의 북반구에서는 산의 남쪽, 강의 북쪽이 햇볕이 드는 곳이기에 陽은 산의 남쪽, 강의 북쪽을 뜻한다. 그리고 해가 드는 곳이 살기 좋은 곳이기에 이 陽이 들어가는 지명은 陰이 들어가는 지명보다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서울이라는 이름을 서울특별시를 가리키는 데에 주로 쓰지만, 원래 서울은 수도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고, 그 땅의 원래 이름인 한양(漢陽)이 바로 한강(漢江)의 북쪽(陽)이란 뜻이다. 바이두백과에 실려 있는 서주 시대의 청동기 괵계자백반(虢季子白盤)의 명문에서 “뤄허의 북쪽(陽)에서 험윤(玁狁)을 쳐 정벌했다.”라고 해 이런 용법이 매우 오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뤄허의 북쪽에 있는 도시가 바로 지금의 뤄양(洛陽)인데, 지금은 중원의 한복판에 있지만 당시만 해도 비한족인 험윤이 있을 정도로 당시 중국에서 한족의 영역이 아닌 곳이 매우 많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陰과 陽은 그늘과 볕이라는 뜻에서 더 나아가, 우주의 일반 원리를 추상적으로 나타내는 두 가지 면모를 대비해서 나타내는 음양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음이 여성적이라면 양은 남성적인 기질을 나타낸다. 남자의 생식기를 가리킬 때에는 일반적으로 생식기를 나타낸다는 뜻에서 음(陰)이 들어간 음경(陰莖)을 쓰기도 하고 남성적인 물건이라는 뜻에서 양(陽)이 들어간 양물(陽物), 양근(陽根)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남자의 생식기를 자르는 행위도 《태평어람》에서는 '음'을 벤다고 했고[할음(割陰)] 〈애절양〉에서는 '양'을 절단한다고 했다[절양(絕陽)].

陽과 陰은 원래 글자에서는 언덕은 공통이고 해와 구름으로 대조했지만, 중국에서 간화자를 만들 때에는 陽은 해와 언덕을 남겨 阳이라고 한 반면 陰은 구름 대신 달을 넣어 阴이라는 글자를 새로 만들었다. 해를 태양(太陽)이라 하듯이 달을 태음(太陰)이라고 하는데, 이 말에서도 양의 성질을 지닌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해요, 음의 성질을 지닌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달이라는 인식이 엿보인다.

陽의 어원은 쉬슬러에 따르면 중국티베트어족이나 동남아시아 본토에 퍼져 있는 방랑어로 추측하는데, 버마어로 밝다는 뜻의 လင်း (lang:)이나 태국어로 밝다, 해가 빛나다는 뜻의 ปลั่ง (bplàng), 그리고 인도와 네팔, 부탄의 접경 지대에 사는 렙차인들의 언어인 렙차어로 반사광을 뜻하는 ᰣᰦᰜᰩᰵ (a-ló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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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場의 초계 문자 1, 2, 전국시대 문자, 소전, 전초고문자. 출처: 小學堂

마당 장(場)은 《설문해자》에서는 “신을 제사 지내는 땅이다. 일설에는 경작하지 않는 밭이다. 또 일설에는 곡식을 심는 밭이다. 흙 토(土)가 뜻을 나타내고 昜은 소리를 나타낸다.”라고 풀이했다. 전국시대 문자에서는 土가 오른쪽에 오기도 하지만, 소전은 土를 왼쪽에 두었고 이 형태가 지금까지 이어진다. 전승되는 고문자를 베낀 자료인 전초고문자에서는 昜 대신 길 장(長)을 소리를 나타내는 데 쓰기도 했다.

이 한자는 너무나 많은 일상 언어에 쓰이고 있어 일일이 그 예를 다 들 수도 없는데, 이 중 특이한 단어가 있으니 바로 장소(場所)다. 이 한자어는 중국 고전 원문을 제공하는 ctext 사이트에서는 딱 하나의 용례밖에 없고, 한국고전종합DB에서도 번역문이나 場과 所가 어쩌다가 앞뒤로 있는 문장이 아니라 정말 場所라는 낱말을 쓴 예는 딱 하나밖에 없는데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쓴 노상직의 《소눌집》이다. 이 한자어는 원래 일본어 고유 한자어인 바쇼(場所)의 한자 표기다. 일본어로 場을 훈독해 '바'(ば)라고 하는데, 이와 所의 음독인 '쇼'(しょ)를 결합한 것이 바로 바쇼다. 일본어의 한자 훈독은 표기만 한자인 순 일본어인데, 지금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이 장소라는 낱말이 자리를 잡았으니, 일본에서 한자의 본토로 한자어를 역수출한 것이다.

場이 들어가는 또 다른 일본제 한자어로 입장(立場)이 있으니, 이는 일본어 다치바(たちば)를 훈독 표기한 것으로 장소처럼 한국은 물론 중국으로도 역수출되었다. 일본어 순화 운동 때 입장을 처지(處地)로 순화하자는 책에서도 이 한자어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어서 맥락에 따라 처소 외에 적당한 다른 말을 써야 한다고 할 정도로, 이제는 한국어에 깊이 자리를 잡은 일본어에서 유래한 외래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고토바뱅크(kotobank) 사이트에서는 “사람이 서 있는 장소”라고 풀이해, 입장이 장소에서 나온 말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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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揚·敭의 금문 1, 2, 3, 4, 고문, 소전. 출처: 小學堂

날릴 양(揚·敭)은 금문에서는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공통으로 무엇을 받들고 있는 사람의 모양인 쥘 극(丮)이 눈에 띈다. 금문 1은 날 일(日), 금문 2는 구슬 옥(玉)을 들고 있는 모양으로 보인다. 즉 해나 옥으로 표시되는 귀한 물건을 높이 떠받드는 모습인 것이다. 금문 3과 금문 4에서는 소리를 나타내는 볕 양(昜)이 들어간다. 금문 4와 고문은 쥘 극(丮) 대신 칠 복(攴)이 昜과 결합하고 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손으로 받드는 모양을 다시 살리고자 손 수(手)가 들어갔고 이것이 현대까지 전해진다.

揚·敭의 어원은 쉬슬러와 중국티베트어 어원 사전과 유의어 사전(The Sino-Tibetan Etymological Dictionary and Thesaurus, STEDT) 사이트에 따르면 원시중국티베트어의 올리다, 들다를 뜻하는 *laŋ이며, 티베트어에서 올리다를 뜻하는 ལང (lang), 버마어에서 망루를 뜻하는 လင့်စင် (lang.cang)과 연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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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楊의 금문, 진(秦) 석고문, 진(晉)계 문자, 초계 문자, 진(秦)계 문자 1, 2, 소전. 출처: 小學堂

버들 양(楊)도 서주 말기 금문부터 지금의 형태인 나무 목(木)이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내는 짜임을 유지하고 있다. 楊의 어원은 위키사전에서 원시중국티베트어로 사시나무·버드나무를 뜻하는 *glaŋ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티베트어로 버드나무를 뜻하는 ལྕང་མ (lcang ma)를 동계어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양(楊)을 지명으로 많이 쓰는데, 경기도에 양주(楊州)가 있고 또 양평(楊平)도 있다. 양주는 한강 북쪽에 있다 해 원래 이름이 한양(漢陽)이었으나(이때에는 서울특별시도 양주 소속으로 같이 한양이라 불렀다) 고려 시대에 양주(楊州)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로 보아 양주의 楊은 陽을 대신하는 글자로 보인다. 양평은 양근(楊根)과 지평(砥平) 두 군의 이름을 합한 것이며, 양근은 《양평군지》에서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형을 버들 뿌리에 빗댄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에서 유래한 양(梁)씨가 많으나 중국에는 이 양(楊)씨가 많으며, 수나라 황실의 성이기도 하다. 수나라 양씨는 본래 선비족 왕조인 북위와 서위의 귀족으로, 북위의 한화 정책을 되돌릴 때 선비어로 버들을 뜻하는 보육여(普六茹)로 성을 고치기도 했다. 수나라 양씨는 한족 귀족인 홍농 양씨의 후손을 일컬었지만, 일부 중국 학자들은 이들이 선비족인 우문씨나 독고씨와 통혼했고, 수나라를 세운 문제 양견(楊堅)의 어머니가 한미한 집안 출신인 점을 들어 선비족·한족 혼혈 집안이 홍농 양씨를 사칭한 것으로 본다.

홍농 양씨는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현인인 양설힐(羊舌肹)을 시조로 모시며, 그가 진나라에서 양(楊) 땅을 식읍으로 받았기 때문에 양(楊)씨를 썼다고 한다. 양설힐은 춘추 시대 미모와 음탕함으로 이름을 날린 하희(夏姬)의 딸과 결혼해 양식아(楊食我)를 낳았는데, 이 양식아가 친구이자 진나라 대부인 기영(祁盈) 집안의 내분에 연루되어 집안이 멸족의 화를 당했다. 그러나 양설힐의 자손 중 화를 피한 사람들이 지금의 화인(華陰: 화음)시 일대로 도망해 목숨을 건졌다. 이 화인시가 한나라에서는 홍농군에 속했기에, 이들을 홍농 양씨라 했다.

그 후손 중에 초한전쟁에서 항우를 끝까지 추적하고 자결한 항우의 시체를 다섯으로 나누어 가져와 공신으로 봉해진 다섯 장교 중 하나인 적천장후(赤泉莊侯) 양희(楊喜)가 있었고, 양희의 증손이자, 《사기》를 쓴 사마천의 사위로 훗날 승상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양창(楊敞)이 있어 홍농 양씨는 한나라의 명문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이 양창의 현손이 후한에서 태위를 지내고, 자신에게 뇌물을 주려는 사람에게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네가 안다.”라고 일갈해 뇌물이 만연한 후한에서 청렴의 상징이 된 양진(楊震)이다. 이 이야기는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고사성어인 사지(四知)의 유래가 되었다. 홍농 양씨는 이 양진의 아들 양병(楊秉), 손자 양사(楊賜), 증손 양표(楊彪)까지 4대에 걸쳐 태위를 배출했으니 사세에 걸쳐 삼공(후한의 최고위직인 태위·사도·사공)을 지냈고, 이 사세삼공(四世三公)은 당대 명문가의 상징처럼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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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농 양(楊)씨의 일원이자 계륵·노우지독의 고사성어의 배경이 된 양수.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양표의 아들이 뛰어난 재능이 있었으나 조조가 한 계륵이란 말의 의미를 간파했다가 제거된 양수(楊修·楊脩)로, 조조는 양수를 죽여놓고 조정의 원로인 양표를 외면할 수 없어 “어찌 이렇게 수척해지셨습니까?” 물었다. 양표는 대답하기를 “(후환을 두려워해 미리 자식을 죽인) 김일제의 선견지명이 없는 것을 후회합니다. 그저 늙은 소가 송아지를 핥아 주는 사랑[노우지독지애(老牛舐犢之愛)]을 가슴에 품을 뿐입니다.”라고 해 조조의 낯빛이 변하게 했다. 이 이야기에서 어버이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노우지독(老牛舐犢)·지독지정(舐犢之情)·지독지애(舐犢之愛)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양수 사후에도 그 자손들은 위나라와 진나라에서 고관을 지냈다.

양진의 다른 후손인 양준(楊駿)은 서진을 세운 무제 사마염의 황후인 양지(楊芷)의 아버지로, 무제가 죽은 후 태후가 된 딸과 함께 어린 혜제 사마충을 보좌하며 권세를 떨쳤으나 혜제의 황후인 가남풍이 주도한 궁중 음모로 제거되었고 양준의 삼족도 함께 처형되었다. 다만 양수의 자손은 양준과 촌수가 워낙 멀어 삼족에 해당되지 않고 화를 면했다. 이렇게 홍농 양씨는 춘추시대부터 서진까지 숱한 풍운을 거쳤다. 수나라 황실 역시 홍농 양씨가 맞는다면, 이들 역시 수나라가 멸망하면서 각지에서 화를 당했기에 홍농 양씨의 역사는 숱한 영욕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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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湯의 금문 1, 2, 연계 문자, 진(晉)계 문자, 초계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끓을 탕(湯)도 금문부터 물 수(水)가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내는 짜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문 1은 昜이 햇살 없이 日와 丂로만 짜여 있고, 금문 2에는 햇살 무늬가 들어간다. 각국 전국시대 문자와 소전도 이 형태를 잘 계승하고 있다. 《설문해자》에서도 “뜨거운 물이다.”라고 풀이하니 뜻도 변화 없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STEDT에서는 湯의 어원을 원시중국티베트어에서 증기나 뜨거움, 또는 뜨거운 액체를 뜻하는 *r-la(w)ŋ로 보고, 티베트어에서 증기나 기체를 뜻하는 རླངས (rlangs)와 비교하고 있다. 쉬슬러는 목욕용 온수를 뜻하는 씻을 탕(盪)이나 녹일 양(煬)과도 관련을 짓고 있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 盪은 움직임을 뜻하고 있어 흔들다의 뜻이 있는 방탕할 탕(蕩)의 통가자로 나타나며, 그래서 이 사전에서 盪의 훈음은 “움직일 탕”이다.

이 한자는 지금까지 다룬 나머지 한자와 음이 조금 다른데, 昜·陽의 상고음은 정장상팡 기준으로 /*laŋ/, 湯은 /*l̥ʰaːŋ/으로 자음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 차이가 한쪽은 양으로, 한쪽은 탕으로 갈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원래 湯은 중국어로 1성으로 읽으면 /tāng/으로 따뜻한 물, 4성으로 읽으면 /tàng/으로 끓이는 동작을 나타내는데, 후자는 이 한자에 불 화(火)를 더해 데울 탕(燙)이라는 한자가 따로 만들어졌다. 정장상팡 기준으로는 燙의 상고음은 /*l̥ʰaːŋs/로 湯에 접사 -s가 붙은 형태다. 일반적으로는 -s 접사는 동사를 명사화하는 기능을 하는데, 湯과 燙의 관계는 이와는 정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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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煬의 진(秦)계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녹일 양(煬)은 소학당에서 수록한 자형이 매우 적은데, 이 형태는 소전만 있으며 이체자를 합해봐도 진나라 유물인 수호지죽간 중 《효율》에서 뜻 부분을 벼 화(禾)로 바꾼 ⿰禾昜만 존재한다. 《설문해자》에서는 “굽는 것이다.”라고 풀이하지만 어문회 급수 시험에서는 훈음을 “녹일 양”이라 하는데, 중국어로는 굽다와 녹이다라는 뜻으로는 성조를 달리해 굽다는 뜻으로는 4성, 녹이다는 뜻으로는 2성으로 읽는다.

File:Sui Yangdi Tang.jpg

염립본, 〈역대제왕도권〉 중 수양제.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이 한자는 원래의 뜻보다는 죽은 사람의 생전을 평가하는 시호로 더 유명할 것 같은데, 시호로는 “여자를 좋아하고 예를 멀리한다”(好內遠禮)라는 뜻이 있으며 실제로도 시호를 주는 대상을 여자에 빠져 정사를 어지럽혔다는 악평을 내리기 위해 쓰인다. 대표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홍농 양씨가 세운 왕조인 수나라의 사실상 마지막 황제 수 양제(煬帝)의 시호가 바로 이것이다. 양제 사후 수나라의 망명 정권에서는 그래도 자기네 황제라고 명제(明帝)라는 그럴싸한 시호를 내렸지만, 수나라 멸망 후 정통을 계승한 당나라에서 내린 시호가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양제가 황자 때 남조 진(陳)나라를 멸하는 공을 세웠는데, 수나라에서는 이 진나라의 마지막 황제 진숙보를 제후로 삼았고 죽었을 때 막 황제가 된 양제가 양(煬)이라는 시호를 줘 장성양공(長城煬公)이라고 부르게 했다는 것이다. 양제는 저 시호를 지어줄 때 자기도 똑같은 시호를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리라. (원래는 문제가 내린 시호로 잘못 썼는데, 닥터페인님 지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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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畼의 소전, 전한 예서, 한나라 도장 문자, 후한 예서, 暢의 서진 예서. 출처: 小學堂

화창할 창(暢)은 전래 문헌에서는 《맹자》처럼 선진·양한 시대의 문헌에도 나타나지만, 출토 자료에서는 서진 시대에서 겨우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한어다공능자고 사이트에서는 《설문해자》에 수록된 畼이 暢의 원형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畼은 《설문해자》에서는 “생장하지 못함이다. 밭 전(田)이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낸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暢의 본의는 지금의 뜻인 “통달하다”로 나온다. 어쩌면 뙤약볕이 완전히 말려 버려서 아무 것도 나지 못하는 휑한 밭에서 사방으로 통달하다는 뜻이 나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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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瘍의 진(晉)계 문자, 진(秦)계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헐 양(瘍)은 《설문해자》에서 “머리에 생기는 상처다. 병들어기댈 녁(疒)이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낸다.”라고 풀이했으나, 지금은 궤양(潰瘍)이나 종양(腫瘍)처럼 헌데를 나타내는 의학 용어로 쓰이고 있다. 뜻과 소리로 보아 다칠 상(傷)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춘추전국시대부터 나타나는데 이미 昜이 많이 뭉개져서 丂와 햇살 무늬를 분리해 보기가 어려운 소전의 글꼴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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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傷의 연계 문자, 초계 문자 1, 2, 전국시대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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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矢昜의 제계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傷은 《설문해자》에서는 “다치는 것[創]이다. 사람 인(人)이 뜻을 나타내고 ⿰矢昜의 생략형이 소리를 나타낸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또 ⿰矢昜는 “다치는 것[傷]이다. 화살 시(矢)가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낸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傷의 소리는 ⿰矢昜에서 왔는데 ⿰矢昜의 뜻은 傷이라고 하는, 약간은 혼란스러운 설명이다.

傷의 각국 전국시대 문자에서는 昜과 칼 도(刀)가 결합한 연계 문자와 초계 문자 1이 있고 또 창 과(戈)가 결합한 초계 문자 2가 있다. 즉 칼이나 창으로 인한 상처를 나타낸 것이다. 계통을 알 수 없는 전국시대 문자의 형태는 지금의 傷과도 비슷해 보인다. 중국의 학자 뤼쭝다(陸宗達)는 책형 책(磔)을 풀이하면서 이는 제사지내기 위해 동물의 시체를 찢어 내장을 공개하는 것을 가리키며 이에서 책형이 시체를 공개하는 기시형과 사람을 찢어 죽이는 형태의 사형을 둘 다 가리키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를 토대로 보면 중국인은 찢다와 열다를 연관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염두에 두면, 傷에 볕 양(昜)이 들어가는 것은 상처가 나면 원래는 숨어 있어야 하는 속살이 밖으로 열리기 때문에 이것을 양(陽)으로 여긴 것 같다.

쉬슬러는 傷의 어원을 瘍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보았다. 정장상팡 기준으로 傷의 상고음은 /*hljaŋ/, /*hljaŋ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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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觴의 금문 1, 2, 초계 문자, 주문, 소전. 출처: 小學堂

잔 상(觴)은 조그마한 술잔이나 물잔을 가리키는 한자다. 금문에서는 지금과 다른 짜임을 하고 있는데, 왼쪽 부분은 바로 예식용 술잔에서 벼슬, 작위라는 뜻으로 확장된 벼슬 작(爵)이다. 이 爵이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였다. 지금의 觴도 간단해 보이지는 않지만 금문을 그대로 계승했다면 무려 26획이나 되는 ⿰爵昜이라는 한자가 되었을 것이다. 초계 문자에서 처음으로 뜻 부분을 爵에서 술잔 재료로 많이 쓰인 뿔 각(角)으로 교체했고, 소전에서는 음이 상이라서 그런지 소리 부분을 昜에서 ⿰矢昜의 생략형으로 교체해 지금의 자형이 되었다. 허신은 《설문해자》의 爵 설명에서는 爵의 주문 형태를 따로 수록하지는 않았으나, 觴의 주문에서 昜의 윗부분이 바로 爵의 옛 형태임을 정확하게 분석해 냈다.

이 觴을 쓰는 고사성어로, 큰 사물도 기원은 아주 미약한 형태였음을 가리키는 남상(濫觴)이라는 말이 있다. 《순자·자도》에서 유래하는데, 공자의 제자 자로가 화려한 옷을 입고 공자를 뵈러 오자 공자가 그를 꾸짖은 말에서 나온다. 이에서는 강수(江水: 양쯔강의 옛 이름)도 발원지에서는 작은 술잔[觴]에 겨우 넘실거릴[濫] 정도에 불과했다면서, 크게 잘못되기 전에 일찍이 처음부터 행실을 고칠 것을 강조하는 데 이 표현이 쓰였다.

옛날 한국에서는 이 상(觴)을 쓰는 놀이가 있는데, 정원에서 상을 띄우고 자기 앞으로 떠내려 올 때까지 시를 짓는 유상곡수(流觴曲水)다. 신라 경애왕이 후백제 군의 기습을 받아 자결을 강요받을 때 있었던 포석정이 바로 이 유상곡수를 하기 위한 놀이터로, 위키백과에서는 한중일 삼국에서 가장 오래된 유상곡수 유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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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蕩의 소전, 전한 예서, 후한 예서 1, 2. 출처: 小學堂

蕩은 지금도 그렇고 옛날 모양도 영락없는 풀 초(艸)가 뜻을 나타내고 끓을 탕(湯)이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 같이 보이지만, 《설문해자》에서는 “강의 이름이다. 하내군 탕음현에서 발원해 동으로 흘러 황택에 들어간다. 물 수(水)가 뜻을 나타내고 자리공 탕(⿱艹昜)이 소리를 나타낸다.”라고 풀이했다. 《자원》에서는 강 이름으로는 tāng으로 읽는다고 해 일반적인 음인 dàng과는 구분했고, 이 음으로는 본 뜻은 흔들다는 것으로 풀이했다. 이 흔드는 행위에서 진동하다, 방종하다 등의 뜻이 인신되었다. 물 이름이든, 흔드는 것이든, 모두 물과 관련되는 것이니 허신의 분석이 옳은 것이다. 아마도 끓을 탕(湯)이 이미 있기 때문에 또 다른 탕 소리를 내는 한자를 찾아 물 수(水)와 결합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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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碭의 소전, 한나라 도장 문자, 후한 예서. 출처: 小學堂

碭은 《설문해자》에서 “무늬 있는 돌이다. 돌 석(石)이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낸다.”라고 풀이했다. 춘추전국시대 송(宋)나라에 탕산(碭山)이 있는데 아마도 무늬 있는 돌이 많이 났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얻은 것 같다. 이 탕산은 옛날부터 인근의 망산(芒山) 등 여러 작은 산 무리와 묶어서 망탕산(芒碭山)이라고 부르며 허난성과 안후이성의 경계에 있다. 망탕산은 해발 고도 156.8 m의 매우 낮은 산이지만, 화베이 평야 일대에 있기 때문에 눈에 잘 띄어서 진(秦)나라에서도 통일 이후 이 산의 이름을 따 탕군(碭郡)을 설치한 것 같다. 망탕산은 전한 고제가 한때 은둔한 곳이기도 하고, 소설 《삼국지》에서는 유비 삼형제가 흩어졌을 때 장비가 숨어 지내던 곳이기도 하며, 《수호지》에서도 망탕산 출신 도적들이 등장하는 등 난세를 피해 숨어 지내는 사람들이 몰려 오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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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腸의 초계 문자, 소전, 진(秦) 예서, 전한 예서, 후한 예서. 출처: 小學堂

창자 장(腸)은 전국시대부터 등장하며, 《설문해자》대로 창자, 장을 가리키는 한자다. 고기 육(肉)이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낸다. STDET에서는 원시중국티베트어로 큰창자, 대장을 나타내는 *g-jaŋ ~ m-jaŋ를 어원으로 본다. 어원이 같은 낱말로 할렘부 지방의 티베트어 방언에서 내장을 뜻하는 ནང་ཇུལ (nang jul), 중부 네팔의 체팡인들이 쓰는 체팡어로 장을 뜻하는 योङ्‌क्‍लीः (yoŋ-kliʔ)이 있다.

이 장(腸)이라는 한 글자로 장을 표현할 수 있는데, 나중에는 -자(子) 접미사를 붙여서 장자(腸子), 현대 중국어로는 창즈라는 새로운 낱말도 생겨났다. 현대 한국어의 장은 비교적 옛 중국어 腸을, 창자는 비교적 새로운 중국어 腸子를 받아들인 귀화어다. 그러면 순우리말로 장을 뭐라고 했을까? 《훈몽자회》에서는 腸의 이체자인 膓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 한자의 훈음을 “애 댱”이라고 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장의 순우리말은 애인 것이다. 관용 표현에 “애끊다”라는 말이 있는데 한자로 장이 끊어지는 슬픔을 나타내는 단장(斷腸)과 정확히 일치한다.

단장 역시 고사성어로, 출전은 위진남북조시대의 여러 소문과 일화를 적은 《세설신어》다. 동진의 권신이자 명장인 환온(桓溫)이 지금의 쓰촨성과 충칭시 일대에 있던 나라인 성한을 정복하러 출진할 때 한 병사가 새끼 원숭이를 잡았다. 그러자 어미 원숭이가 울면서 환온 군대가 탄 배를 수백 리를 쫓아와 배 위로 뛰어올랐고 바로 죽었다. 해부해 보니 장이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이를 안 환온은 분노해 그 병사를 쫓아냈다. 이에서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 더 나아가 이별의 슬픔을 단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번 이야기는 설에 쓰고 있는데, 가족들이 만나는 날이라서 그런지 슬픈 가족애를 나타내는 고사성어가 두 개나 나왔다. 노우지독,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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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鍚·鐊의 금문, 소전, 한나라 도장 문자. 출처: 小學堂

말이마치장 양(鍚)은 《설문해자》에서는 뜻 부분은 마찬가지로 쇠 금(金)이되 소리 부분을 昜 대신 陽으로 쓴 鐊으로 나오며, 말의 이마 치장이라는 뜻으로 풀이한다. 국어사전에는 나오지 않지만 《시경》에 언급되어 한국 고전에도 가끔 나오는 낱말로 말을 치장하는 금제 눈썹 걸이인 누양(鏤鍚)이 있다. 이 한자는 《이아》에서는 붉은 구리라는 뜻으로 풀이하는데, 금문에서 이 뜻으로 昜을 쓰는(위 그림 참조) 예가 있어 昜이 鍚·鐊의 뜻으로 쓰이다 나중에 새 형성자로 분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 한자는 비슷하게 생긴 주석 석(錫)과 쉽게 혼동된다. 진(秦)나라에서 중국을 통일하고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지금의 한중시를 중심으로 하는 한중군을 설치했는데, 이 한중군에서 관할한 현 중에 지금의 안캉시 바이허현 동쪽에 있는 양(鍚)현이 있다. 이 이름은 전한 역사를 서술한 《한서》에도 그대로 적혀 있는데, 후한 역사를 서술한 《후한서》에서는 석(錫)현으로 적혀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후한서》 외에 당대 유물에서도 鍚과 錫을 혼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우연히도, 위의 昜에서 파생된 한자들 중에 昜 대신 비슷하게 생긴 바꿀 역|쉬울 이(易)를 쓰면 다른 한자가 나와서 헷갈릴 수 있는 예가 거의 없다. 대부분 易이 들어가는 한자가 없거나, 있어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한자가 아니다. 그나마 이 鍚과 錫 외에도 땅거미 탕(蝪)과 도마뱀 척(蜴)이 있는데, 한국고전종합DB에서는 蜴을 써야 할 자리에 蝪을 잘못 쓴 용례만 있고 제대로 蝪을 쓴 건 없다. 鍚과 錫 짝도 錫 쪽이 훨씬 더 많이 쓰이는 한자고, 그래서 鍚을 錫으로 혼동하기가 반대보다 더 쉽다. 어쩌면 이걸 예측하고 혼동을 막기 위해 鍚 대신 鐊이라는 한자를 만든 게 아닐까? 공교롭게도 《설문해자》에서 陽이 소리 부분인 한자는 鐊 하나밖에 없다.


昜은 파생된 한자들에 볕, 나아가 햇볕에 드러남, 양성(陽性)의 뜻을 부여한다.

場(마당 장)은 土(흙 토)가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내며, 昜의 뜻에 따라 볕을 잘 받는 제사 지낼 땅을 뜻한다.

揚·敭(날릴 양)은 手(손 수)나 攴(칠 복)이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내며, 昜의 뜻에 따라 드러내기 위해 떠받들어 날리는 것을 뜻한다.

腸(창자 장)은 肉(고기 육)이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내며, 揚의 뜻에 따라 몸 속에 길게 날리는 장을 뜻한다.

颺(날릴 양)은 風(바람 풍)이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내며, 揚의 뜻에 따라 바람에 날리는 것을 뜻한다.

楊(버들 양)은 木(나무 목)이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내며, 颺의 뜻에 따라 가지가 바람에 날리는 버드나무를 뜻한다.

暘(해돋을 양)은 日(나무 목)이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내며, 昜의 뜻에 따라 해가 돋아 볕이 나는 것을 뜻한다.

湯(끓을 탕)은 水(물 수)가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내며, 昜의 뜻에 따라 볕을 받아 뜨거워진 물을 뜻한다.

燙(데울 탕)은 火(불 화)가 뜻을 나타내고 湯이 소리를 나타내며, 湯의 뜻에 따라 물을 뜨겁게 가열하는 것을 뜻한다.

盪(씻을 탕)은 皿(그릇 명)이 뜻을 나타내고 湯이 소리를 나타내며, 湯의 뜻에 따라 씻기 위해 준비한 온수, 온수로 씻는 것을 뜻한다.

煬(녹일 양)은 火(불 화)가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내며, 昜의 뜻에 따라 볕에 내놓듯 뜨겁게 가열해 굽거나 녹이는 것을 뜻한다.

暢(화창할 창)은 田(밭 전)이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내며, 昜의 뜻에 따라 볕이 뜨겁게 쪼인 황무한 밭, 또는 볕에 환하게 드러난 땅, 나아가 화창함을 뜻한다.

⿰矢昜(다칠 상)은 矢(화살 시)가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내며, 昜의 뜻에 따라 사람이 무기에 다쳐 속살이 드러나는 것을 뜻한다.

瘍(헐 양)은 疒(병들어기댈 녁)이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내며, ⿰矢昜의 뜻에 따라 다친 헌데를 뜻한다.

傷(다칠 상)은 人(사람 인)이 뜻을 나타내고 ⿰矢昜이 소리를 나타내며, ⿰矢昜의 뜻에 따라 사람이 다치는 것을 뜻한다.

殤(일찍죽을 상)은 歹(앙상한뼈 알)이 뜻을 나타내고 ⿰矢昜이 소리를 나타내며, ⿰矢昜의 뜻에 따라 사람이 다쳐 일찍 죽는 것을 뜻한다.

碭(무늬있는돌 탕)은 石(돌 석)이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내며, 昜의 뜻에 따라 돌에 무늬가 있어 화려하게 드러나는 것을 뜻한다.

鍚(말이마치장 양)은 金(쇠 금)이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내며, 昜의 뜻에 따라 말을 화려하게 꾸미기 위한 치장, 혹은 눈에 띄는 붉은색 구리를 뜻한다.

陽(볕 양)은 阜(언덕 부)가 뜻을 나타내고 昜이 소리를 나타내며, 昜의 뜻에 따라 볕이 언덕에 드는 것을 뜻한다.


이상의 관계를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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昜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요약

昜은 나무 가지{丂} 위로 해{日}가 돋아 햇살이 비추는 모습{彡}을 나타낸 회의자, 혹은 날 일(日)이 뜻을 나타내고 지팡이 장(杖)의 초기 형태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로 분석된다.

昜에서 場(마당 장)·揚(날릴 양)·敭(날릴 양)·暘(해돋을 양)·楊(버들 양)·湯(끓을 탕)·煬(녹일 양)·瑒(옥잔 창)·畼(곡식나지않을 창)·暢(화창할 창)·瘍(헐 양)·⿰矢昜(다칠 상)·碭(무늬있는돌 탕)·腸(창자 장)·⿱艹昜(자리공 탕/창/양)·蝪(땅거미 탕)·輰(수레 양)·鍚(말이마치장 양)·陽(볕 양)·颺(날릴 양)이 파생되었고, 湯에서 燙(데울 탕)·盪(씻을 탕)·簜(왕대 탕)이, ⿰矢昜에서 傷(다칠 상)·殤(일찍죽을 상)·觴(잔 상)·鬺(삶을 상)이, ⿱艹昜에서 蕩(방탕할 탕)이 파생되었고, 盪에서 蘯(쓸어버릴 탕)이 파생되었다.

昜은 파생된 한자들에 볕이나 볕에 드러나는 양성의 뜻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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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페인
+ 25/01/31 10:17
수정 아이콘
장문의 글 잘 읽었습니다. 덧붙여, 진숙보의 시호를 내린 이는 다름아닌 수 양제라고 합니다. “양견은 이미 같은 해 4월에 사망하여, 새 황제가 된 양광은 그를 대장군, 장성공에 추봉하고 시호는 양(煬)이라고 내렸다.” https://namu.wiki/w/진숙보#s-2.4 새 해 첫 달 매조지 잘 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계층방정
+ 25/01/31 10:24
수정 아이콘
위키백과가 잘못되었군요. 저도 수양제의 황제 재위 기간과 태상황제 재위 기간을 헷갈려서 실수했고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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