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보면 솔직히 답하기가 참 애매합니다. 이 영화도 좋았고, 저 영화도 좋았고. 기본적으로 제가 줏대라는게 참 많이도 부족한 사람이고, 왠만큼 '망가진' 영화가 아니라면 대체로 괜찮게 봤다.로 귀결되는 류의 사람이라서 이런 저런 영화, 혹은 대충 좋아하는 감독 이름 몇몇을 대고는 대충 넘어가는 질문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생각해보면 아, 이때는 이런 영화가 좋았지, 저런 영화도 괜찮았지 하고 생각이 나고 마는 정도네요.
그리고 저는 기본적으로 영화는 영화관에서, 를 선호하는 사람입니다. 돈은 꽤... 들지만, 개인적으로 2시간 가까운 시간을 강제로 앉혀서, 어두운 곳에서, 몰입하면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관을 선호합니다. 그게 아니고서는 솔직히 말해 요즘 집중력이 계속 요즘의 주가처럼 폭락하기 때문에 2시간 가까운 시간을 앉아서 보는 경우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렇지만, 맨 처음 나왔던 질문을 약간만 바꿔서 이야기하면 이 영화 얘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가장 감정적으로 인상적인 영화가 무슨 영화였나요?'라고 질문을 바꾸면, 제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녀>요.'
그나마 비슷하게 공감하고 즐겁게 본 영화라고 할만한 <틱, 틱... 붐!>은 극장에서 보기라도 했지, <그녀>는 15인치 노트북으로 봤는데도 그래요.
<그녀>를 왜 좋아하느냐, 첫 번째로 아이디어를 다루는 방식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SF-로맨스의 탈을 쓰고 있고 이 아이디어에 대해서 꽤 진지해요. 그러니까 '실체가 있는 인간'과 '실체가 없는 AI'간의 로맨스에서 가능한 의문점을 던지기도 하고, 그 아이디어를 꽤 진지하게 탐구하고 소중하게 간직합니다.
두 번째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시각적 분위기입니다. LA인척 하는 (누가봐도) 상하이에서 촬영한 이 영화 덕분에 저는 상하이를 한번은 가봐야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톤은 굉장히 따뜻하고 뽀송뽀송합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로맨스 영화스러워요. 연애를 하고 데이트를 나가는 순간의 영화는 매우 따뜻한 화면을 그려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굉장히 차갑고 적막해지기도 합니다. 이 분위기의 톤을 정말 잘 조절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영화의 이야기에 관한 겁니다. 주인공은 연애 편지를 대필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누군가의 감정을 대신 표현하고 적막하고 차가운 도시 생활에 적응한 차가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만다는 AI로서('써'가 아니라 '서'로 쓰고 싶네요.) 주인공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만다는 주인공을 떠나고, 주인공은 전 부인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요.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생각, 자신이 느낀 것에 대해서.
저는 그래서 이 영화를 결국은 어느 애어른, 혹은 어른이의 성장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감정을 대필하던, 그 감정 뒤에서 머무르던 어느 사람이 다른 '객체'를 받아들이고, 결국 한 계단을 더 올라가는 이야기요. 이 영화는 어떤 답을 주거나 혹은 사랑은 어떤 것이다. 라는 류의 교훈을 찾기는 어려운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영화 상에 등장하는 두 커플은 모두 헤어지고, 한 사람은 소통의 벽을 느끼고 결국 종교에 귀의하게 되기도 하구요. 그렇기에 다른 로맨스 영화들과 차별화가 된다고 생각해요. 정확하게는 로맨스의 탈을 쓴, 어른의 성장기라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제가 이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한다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가장 차가운 로맨스, 가장 따뜻한 SF'
P.S. 어떤 영화는 누군가의 얼굴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저에게 <그녀>는 딱 그런 류의 영화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녀>하면 포스터에도 나오는 호아킨 피닉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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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공부하기 싫어서 쓴 글 아닙니다. 진짜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