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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7/09/19 22:35:51
Name 신불해
Subject 원말명초 이야기 (20) 교두보 마련


 갑자기 쏟아졌던 비. 이를 이용한 군사 작전까지.



 마치 하늘이 의지가 점지해 준 것만 같은 행운에 힘입어 주원장 군은 난관을 돌파할 수 있었다. 물론 기적처럼 보이는 행운에도 이유는 있었다. 1355년 음력 5월은 양력으로는 6월 중순이기 때문에 장마철이었고, 언제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군을 움직이는 그 시점에 때마침 비가 맞춰 내렸다는 사실은, 행운이 따른 일임에 분명했다.



 불어난 물을 통해 자유자재로 대군을 기동시키고, 비바람 속에 몸을 감춰 적을 습격할 수 있는 주원장 군이 만자해아를 크게 깨뜨린 것은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만자해아의 패주로 길이 열리자 이제는 어느 방향을 노리고 진군할 것인지 논의해야만 했다.



 대다수 장수들은 바로 집경, 즉 남경을 공략하자고 권했다. 주원장이 남경에 뜻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부대 내에서 비밀도 아니었다. 남경 공략은 주원장 군 전체가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최종 목표였다. 하지만 신중한 주원장을 고개를 저었다.



 “집경은 수비가 견고하다. 그곳을 공략하려면 필시 채석(采石)을 먼저 깨뜨려야 한다.”



 그렇다면 채석으로 가자는 것일까? 주원장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채석은 중요한 진(鎮) 이다. 반드시 수비가 견고할 터. 일단은 우저(牛渚)다. 우저를 먼저 공략하고 이쪽을 통해 공격을 퍼붓는다면, 분명 승리를 거둘 수 있다.” (1)



 최종적인 목표를 공략하기에 앞서 안전책을 취하고, 그 안전책을 선택하면서도 또 여기에 안배를 두는 것이다. 주원장이라는 사람의 대단함, 그리고 무서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대군을 거느리면서 하늘의 행운까지 얻어, 기세가 올라 의기양양할 만도 한데 그는 끝까지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그가 밑바닥에서 올라온 사람이었기에 그런 것일까? 유사 이래 수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범하는 우(愚), 즉 기세에 취한 나머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실책을 주원장은 저지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끊임없이 현상을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는 얆은 강이 있으면, 그는 바로 건너가는 대신 멀리 돌아가서 다리를 찾았다. 다리를 찾으면, 그 다리가 삐걱거리는 목재 다리인지 단단한 돌다리인지 확인했다. 다리가 돌다리라면, 한번 두드려보고서야 이를 건넜다.



 그렇게 집요한 사람이,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을 땐 정반대로 무서우리만치 과감하니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집착에 가까운 철저함과 광기에 가까운 직관을 모두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좋은 의미로건 나쁜 의미로건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1355년 6월 1일. 양력으로는 7월 10일 마침내 주원장 군은 장강을 건너 우저에 당도했다. 순풍을 탄 함선들은 막힐 것 없이 장강 연안에 이르렀다. 그런데 막상 우저에 도착하고 보니, 현지의 상황은 군사를 쉽게 상륙시키기 어려운 형세로 전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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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인즉슨, 아군을 막는 원나라 병사들은 우저의 물가 위에 진을 치고 있었다. 주원장 군이 이를 깨뜨리려 한다면 숫자로 밀어붙여야 하는데, 숫자가 의미가 있으려면 상륙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 상륙을 위한 공간을 적이 장악하고 있다. 소수의 병사가 그 사이를 비집고 기껏 상륙을 해봐야, 적에게 무참하게 도륙될 게 뻔했다.



 수많은 함선들이 뒤에서 속속 몰려들고 있었지만, 상륙해서 기반을 마련해야 할 선두의 병력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만 있었다. 기념비적인 장강 이남에서의 첫 싸움은 이런 지리적 여건 때문에 곤혹스러운 양상으로 전개될 우려에 빠지고 말았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달려나간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주원장 군을 따라온 졸병 상우춘이었다. 군선 사이를 뛰어다니며 앞으로 나아간 상우춘은 모두가 머뭇거리며 움직이지 못할 때 혼자 적을 향해 달려나갔다. 전투의 진행을 멀리서 살펴보고 있던 주원장은 그런 상우춘을 발견하고는 대뜸 벼락같이 소리쳤다.



 “전진하라!”



 그 말을 들은 것일까? 적진을 향해 비호같이 달려든 상우춘은 그 자리에서 적병의 창을 빼앗았고, 그 창을 휘두르며 공간을 만들곤 그 공간에 뛰어들어 소리를 지르며 수많은 적과 맞서 싸웠다. 상우춘의 신기에 가까운 용맹에 적진이 뒤흔들리자, 지켜보던 다른 제장들도 모두 칼을 빼들고 군대를 진군시키기에 이른다. (2)



 그 결과, 마침내 우저가 함락되었고 연이어 채석이 무너졌다. 채석이 함락되자 근처에 있던 장강의 여러 보루들도 항복해 왔다. 드디어 주원장 군이 장강 이남에 기반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일등공신이었던 졸병 상우춘은 그 즉시 총관도독(總管都督)으로 승진했다.



 쉽지 않을 줄 알았던 장강 도하와 전진 기지 건설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잔뜩 긴장해있던 장수들 역시 작은 성공에 고취되어 마음이 느긋해지고 긴장감이 풀어지게 되었다. 긴장이 풀린 이유 중에 하나로 이 전투로 “대략의 싸움이 다 끝났다.” 는 생각 때문도 있었을 것이다.



 앞서도 말했던 바지만, 당시 장강 이북은 탈탈이 이끈 대규모 원정군의 실패 여파로 초토화되어 기근이 불어닥친 참이었다. 주장군의 장강 이북 세력지 였던 화주 역시 이런 기근의 여파에서는 자유롭진 못했다. 이 때문에 장수들은 장강 이남의 양식과 제물을 모두 거둬들여,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날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주원장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주원장은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만 집으로 돌아갈 꿈에 부풀어 얼이 빠진 대부분의 장수들에게 그런 속내를 전부 드러냈다간 무슨 사단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때문에 그는 특별히 신뢰하는 서달을 불러 은밀히 속셈을 털어놓았다.



 "장강을 건너 실로 다행스럽게도 승리했소. 그런데 이제 여길 버리고 돌아간다면, 다시는 강동이 내 소유가 되지는 못할 것이외다." (渡江幸捷,若舍而歸,江東非吾有也)



 “그럼 어쩌실 생각이시오?”



 “서형, 날 좀 도와주시오.”



 서달은 비록 주원장보다 나이가 어렸지만, 늘 주원장이 “서형” 이라고 부르며 존중하는 상대였다. 그리고 서달 역시 지난날 주원장이 손덕애의 포로가 되었을 때 죽음을 무릅쓰고 그를 대신하려 했던 충성심을 보인 바 있다. 



 주원장은 자신의 많은 부하들 중에서도 그런 서달에게만 할 수 있는 요구를 비밀리에 부탁했다. 그만큼 놀라운 부탁이었지만, 우직하고 충성스러운 서달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주원장의 지시를 조용히 이행했다.



 다음날,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의 단잠에 빠져 있던 장병들은 갑작스레 들려오는 “배가 없다!” “떠내려간다!” 라는 외침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모두들 헐레벌떡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나가 보니, 충격적인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주원장 군이 타고 온 도합 1,000여 척의 함선들은 밧줄에 묶여 강둑에 정박해 있었다. 그런데 이 밧줄들은 하룻밤 사이에 어찌 된 일인지 모두 끊어져 버렸고, 지지대를 잃어버린 수많은 함선들은 장강의 거센 급류를 타고 유유히 떠내려가고 있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강가에 가득 차 있던 배들이 큰 배, 작은 배 할 것 없이 모두 시야에서 사라져버렸고, 몇 안되는 남은 배들 역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시야 너머로 마냥 흘러가고 있던 것이다.



 집에 돌아갈 생각으로 가득했던 장병들은 장군과 졸병을 막론하고 모두 경악해 어쩔 줄 몰랐다. 서로 큰일 났다며 수군거리고 있는데, 주원장은 혼란을 진정시키겠다며 모두의 앞에 나서 발언했다.



 “일은 이렇게 된 것은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바로 근처에 태평(太平) 지역이 아주 가깝다. 태평로에는 미녀와 옥백이 가득할 테니, 그곳을 함락시키고 나면 그 모든 걸 그대들과 함께 나누려고 한다. 어찌하겠는가?” (3)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어쩔 줄 모르던 장병들은 주원장이 내건 먹음직스러운 미끼에 혹해 그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깊숙한 곳의 추한 욕망을 자극해 이들을 움직인 주원장은 바로 태평으로 진군했다.



 태평을 지키는 사람은 원나라의 총관 근의(靳義)라는 사람이었지만, 근의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탐욕에 물든 대군을 전부 상대하기엔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다. 중과 부적임을 깨달은 근의는 항복하여 목숨을 구하는 대신 물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 이윽고 태평은 함락되고 만다.



 수비 능력을 상실한 태평로의 성문은 벼락을 맞은 듯 박살 났고, 무너진 성문 위로 수천 명이 넘는 주원장 군의 장병들이 성큼성큼 성 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곧 저항할 능력이 없는 양민들이 잔혹한 칼날에 모조리 도륙 당하고 부녀자들이 비참하게 겁간 당하기 직전, 갑자기 군중의 이곳저곳에 짦은 포고문이 뿌려졌다.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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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노략질을 금한다. 명령을 어기면 극형에 처한다』



 그 짦지만 강렬한 서슬 퍼런 선언에 맹수 같은 장병들은 움찔하며 머뭇거렸다. 포고문을 작성한 사람은 이선장이었다. (4) 하지만 이는 주원장의 의지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이선장이 관할하는 독찰대(督察隊)는 부대에 통금령을 내린 후, 순찰을 다니며 선언이 실제로 지켜지는지 감시하기 시작했다. 약탈의 욕망에 젖어있던 병사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물론 모든 병사들이 이런 조치에 순순히 납득한 것은 아니었다. 거친 전투를 치르며 한참 살심(殺心)과 물욕이 들끓던 병사들 중 한 명이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해당 병사는 무슨 변명을 해보지도 못하고 즉시 참수 되었다. 비명에 죽은 병사의 목이 경고의 의미로 군중에 돌려지자, 이를 본 다른 장병들은 모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대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전투 직후의 혼란이 수습되고 나자, 주원장을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이곳에 소재지를 둔 명망 있는 유학자 이습(李習), 도안(陶安) 두 사람이 바로 그들이었다. 이습과 도안은 지역의 유지 여러 명을 대동하고 홍군을 찾아 주원장을 영접했다. 주원장이 환대하자 도안은 조심스레 건의를 올렸다.



 “지금 천하에 수많은 군웅들이 일어나 성읍을 공격하며 자웅을 겨루고 있습니다. 이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미녀와 금은보화뿐이며, 이를 위해 살육과 약탈을 일삼을 뿐입니다. 만일 장군께서 다른 군웅들이 하는 것과는 달리 살인을 하지 않고, 노략질을 하지 않으며, 가옥을 불사르지 않고, 동쪽으로 나아가 집경을 취한 뒤 사방으로 출병해 나아간다면 가히 천하를 평정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흡족하게 여긴 주원장은 이습을 지부(知府)로 삼고, 도안을 군중의 일에 참여시켰으며, 태평로를 고쳐 태평부(府)로 하여 태평흥국익원수부(太平興國翼元帥府)를 두고 직접 원수의 일을 처리했다. 이선장은 수부도사(帥府都事)가 되었다. 



 대략의 정리가 끝나자 주원장은 좀 더 개별적인 일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총관 근의가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우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짦게 감탄하며 그를 기렸다.



 “실로 의사로구나.” (義士也)



 그는 근의의 시체를 물속에서 수습하게 해 장사를 지내고 예우를 갖추게 했다. 태평을 지킨 원나라 장수 중에선 근의 말고도 눈에 띄는 사람이 또 있었다. 바로 나하추(納哈出)라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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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추



 나하추는 원나라의 개국 공신인 무칼리(木華黎)의 후손이었다. 무칼리는 태조 칭기즈 칸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한 공신으로서, 칭기즈 칸이 호라즘 왕국을 정벌하는 서역 원정에 전념할 무렵 대중국 전선을 담당한 총책임자였다. 칭기즈 칸 시기의 몽골에 있어 북중국의 금나라는 최강최대의 대적이었고, 그런 강적을 상대하는 임무를 전담해 담당했으니 무칼리는 보통 능력 있는 장수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무칼리 사후 직접 군사를 이끌로 봉상(鳳翔) 원정에 나선 칭기즈 칸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만일 무칼리가 살아있었더라면, 내가 친히 이곳에 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使木華黎在,朕不親至此矣) (5)



 역사상 최고의 정복왕이라고 불리는 사람에게서 이 정도로 신임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당대에 그리 많지 않았다. 장장 40여 년에 걸쳐 수많은 전장에서 분골쇄신한 무칼리의 공적은 기라성 같은 몽골 장수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했고, 그 가문은 곧 최고의 명문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 후손들이 선조의 위업에 기대어 안주하기만 했던 것도 아니다. 무칼리의 아들인 보로(孛魯), 보로의 아들인 타시(塔思) - 스쿤차르(速渾察) - 바토로(覇突魯) 3형제, 그리고 이들 3 형제의 자식들에 이르기까지 이들 가문은 명신이 아닌 사람이 오히려 더 드물었다. 이미 집안이 제국 최고의 명문가에 이르고, 그 이름값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들의 활약상 탓에 무칼리의 가문은 모든 이들에게 존중받던 명가였다.



 그런 명가의 말예였던 나하추는 당시 태평의 만호(萬戶) 직을 하고 있다가, 태평이 함락되자 주원장 군의 포로가 된 처지였다. 주원장과 나하추는 이전까지 어떠한 접점도 없는 사이였다. 무칼리 가문의 후예인 그가 주원장 군에 항복할 가능성도 없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주원장은 이 명문의 후손에게 호감을 느꼈다. 주원장은 비록 그것이 자신에게 딱히 당장의 큰 이득이 될 일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포로인 나하추에게 극진한 대우를 했다. 그가 명신의 후예라는 것이 이유였다. 전설적인 태조의 곁을 지킨 위풍당당한 영웅의 후손과 한톨짜리 땅에 묶여 죽는 날까지 고생만 하다 죽은 농사꾼의 아들은 달라도 너무나 다른 운명을 산 사람들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호감을 느꼈을지 모를 일이다.



 앞서 다르다고 했는데, 이 두 사람은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의 ‘말’ 조차도 달랐다. 훗날 명나라가 개국한 이후 고려의 이색이 명나라의 조정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이색이 과거 원나라의 과거시험에 급제해 한림학사 벼슬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주원장은 그에게 중국어로 직접 말을 걸었다.



 갑작스러운 황제에 질문에 당황한 이색이 어물거리며 대답하자, 바로 알아듣지 못한 주원장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중국말 하는 것은 흡사 나하추 같구나!” (汝之漢語, 正似納哈出) (6)



 이 해프닝은 이색이 중국을 재방문 한 게 오래되어 중국 말 실력이 떨어진 탓도 있겠지만, 북방 대도의 원나라 궁전에서 몽골인들이 쓰던 중국 말을 접한 이색과 안휘성의 농민 출생인 주원장이 쓰던 말의 차이 역시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색의 중국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했던 주원장에 있어선 나하추의 말 역시 비슷하게 들렸을 게 틀림없다. 



아마 당시의 주원장에게는 그런 일 자체가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그는 이 정도로 고귀한 신분의 인물, 즉 비록 만호 벼슬이긴 해도, 옛날이야기에서나 들어본 영웅의 실제 후예이자, 일상적인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그래서 더욱 신기하게 느껴지는 귀공자를 만날 일이 전혀 없었다. 나하추는 그동안 주원장이 접촉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단연 독특한 인물이었다.



 나하추가 주원장에게 귀의했다면 이 집단 중에서도 가장 색다른 존재로서 큰 도움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거의 없긴 했지만 말이다. 몽골족인 그는 주원장에게 쉽게 항복하거나 귀의한 한인들과는 입장이 달랐다. 비록 환대를 받는 몸이긴 했지만 나하추는 언제나 원나라를 계속 그리워했다. 



 성자와 광인의 사이를 넘나드는 두 얼굴의 사나이인 주원장은 이때 큰 배포를 보였다. 그는 나하추를 포로 상태에서 해방하여 고향에 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니, 오히려 그가 북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도움을 주기까지 했다. 중국 강남의 군벌에게 포로로 잡혔던 나하추는 목숨을 건져 돌아가 머나먼 요동의 금산(金山)에 자리를 잡았고, 이 지역에서 추종자들을 모으고 가축을 키워 독자적인 군벌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7)



 그는 이후 한반도의 고려를 공격하기도 했는데, 이 사건에 대해선 나중에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넓고 넒은 천하 난세에서 스쳐 지나간 두 사람의 인연은 돌고 돌아 이후 훗날 또 한번 이어지게 된다. 이 두 사람이 다시 얼굴을 마주하게 된 것은 1387년이 되어서였다. 1355년의 겨울 12월, 주원장이 눈 길을 밟고 떠나는 나하추를 배웅한지 무려 32년 뒤의 일이었다.



 아직은 머나먼 일이었다. 그 두 사람에게도, 이 격동하는 난세에게도.










(1) 명사 태조본기
(2) 명사 권 125 상우춘 열전
(3) 명사 태조본기
(4) 명사 권 127 이선장 열전
(5) 원사 권 116 무칼리 열전
(6) 조선왕조태조실록 9권, 태조 5년 5월 7일 계해 2번째기사
(7) 명사 권 129 풍승 열전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12-29 14:55)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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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19 22:48
수정 아이콘
책으로 쓰셔도 될 정도 같습니다. 너무 재밌네요
선데이그후
17/09/19 22:50
수정 아이콘
항상 잘 보고 있고 감사드립니다.
신의와배신
17/09/19 22:54
수정 아이콘
동명이인이 너무 많은 원조라서 나하추란 이름이 고려사의 나하추와 동명이인인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필력에 감탄해서 여러 곳에서 연재하신 신불해님의 글들을 찾아 하나하나 읽어보는 중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블랙번 록
17/09/19 23:08
수정 아이콘
이???: 역시 주원장 간나 X끼.
보통블빠
17/09/19 23:10
수정 아이콘
이성계:나하추야 안녕~~
나하추:히익!!!
17/09/20 00:04
수정 아이콘
인연이란 정말 묘하네요
루크레티아
17/09/20 01:28
수정 아이콘
여기서 나하추가 나오다니 허허..
cluefake
17/09/20 03:53
수정 아이콘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17/09/20 06:18
수정 아이콘
나하추가 왜 거기서 나와 크크크크
AngelGabriel
17/09/20 07:17
수정 아이콘
진짜 "형이 왜 거기서 나와...?" 급인데요. 크크. 나하추라니.

글 연재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자유감성
17/09/20 12:09
수정 아이콘
요새 제일 재밌어요!
-안군-
17/09/20 12:28
수정 아이콘
충실한 내용에 필력까지 어마무시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나중에 묶어서 책으로 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캐리커쳐
17/09/20 13:39
수정 아이콘
나하추가 여기서 나오다니...?!!!
cadenza79
17/09/20 23:45
수정 아이콘
아니 그 나하추가 이 나하추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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