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기게 노린 집결지에 마지막 질럿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이...경기 포기 선언을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박대만 선수, 지금 대책이 있나요?"
"없죠, 프로브도 쉬고...그냥 질럿으로 그냥! 프로브도 쉬고 있습니다! 질럿 가네요!"
그리고 성큰과 저글링 상대로 내달리며 사라져간 질럿들...
"GG~~! 경기 마무리됩니다!"
"...반란을 진압하는 마재윤 선수입니다!"
지난 주 화요일이었다. 서바이버 예선을 통과하자마자 무서운 기세로 연승가도를 달리며 MSL에 진출한 한빛의 프로토스 박대만이 조용호와 변은종이라는 걸출한 저그들을 차례로 꺾고 8강에 진출, 마침내 MSL의 아성 마재윤과 만나게 된 날이.
많은 화제가 있었던 경기였다. '박대만'이라는 이름은 그 언제보다 기대를 받는 이름이 되었었고, 실제로 경기에 들어가자 두 명의 기세가 무서울 정도로 초반부터 날카롭게 부딪혔다. 일꾼의 신경전부터 준비된 전략, 몰아치는 시원함까지, 그 날의 박대만은 마재윤이라는 최고의 저그와 동등한 싸움을 해내는 프로토스였다.
MSL이라는 성에 어느새 자신의 제국을 차린 마재윤에 맞서는 이민족...의 대장, 박대만이라는 이미지는 명실상히 이번 MSL에서 가장 떠오른 화두였다. 내가 주목한 것은 그 유목민족, 혹은 야만족의 반란을 이끌고 쳐들어오는 박대만의 이미지였다. 그것은 엠비씨게임이 제작한, 이 8강 패자부활전 예고영상을 봐도 잘 드러나있다(
링크).
하지만 이 이미지는 사실, 꾸며낸 이미지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MBCgame이라는 방송국의 역사, MSL의 역사와는 관계가 없는 '빌려온 이미지'인 것이다. '무적 시대의 임요환을 꺾은 김동수', '광안리에서 최강 티원을 제압한 한빛', '물러서지 않는 한빛의 남자' 이런 것들은 온게임넷의 역사이다. 물론, 사람들이 박대만에게 기대한 것을 잘 포착해낸 영상(모르긴 몰라도 매니아 출신인 김영진 보조작가가 어느 정도 개입하지 않았을까?)이겠지만, 엄연히 '강자가 승리한다'는 컨셉을 가진 엠비씨게임과는 다른 테마를 지향했던 것이다.
그 점이 흥미로운 점이었다.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을 지닌 두 방송사의 테마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만나 부딪히는 지점이 생성되었다는 것이. 마치 아르센 뤼팽의 이야기에 출연한 셜록 홈즈를 보는 느낌이랄까. 예외가 있었다 해도 언제나 시대의 강자들, 도무지 지지않는 괴물들이 천하를 제압한 엠비시게임의 역사에서 과연, 이 홀홀단신의 이방인과도 같은 사나이에게서 온게임넷스러운 기적이 일어날까 기대가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반란은 진압되었다'. 그 누구도 아닌 MSL의 중계진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미 그들에게 있어서 마재윤은 MSL의 제왕이었던 것이다. 어제부로 그 마재윤은 이윤열과 최연성을 잇는 시대의 최강자가 될 수 있을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마재윤이야말로 많은 MSL의 팬들이 기다려온 명실상부한 '본좌'일 수 있겠다. 여기에 맞선 박대만은 그 경기가 내적으로 어땠든간에 결국 패배했고, 마재윤이 최강임을 보여준 어제, 조용히 지나간 8강 패자전에서 심소명에게 2:0으로 쉽게 무너짐으로써, MSL제국에 균열을 내고자 했던 그의 출정도 끝나게 되었다.
이렇게 또 한번의 반란, 혹은 이변이 지나갔다. 스프리스배에서 그렇게 저그들을 잡아댔지만, '예정된 수순대로' 강민에게 패배해 탈락한 김환중처럼, 박대만도 잊혀질지 모르겠다. MSL은 기본적으로 패자들을 기억해 주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걸 보면 '강자가 승리하는' 엠겜과, '우승자를 하늘에서 내려주는' 온겜의 차이는 선수들의 마인드나 운에 의해서나 하여튼 참 끈질기다는 생각도 든다.
박대만의 앞날에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든, 한동안 나는 그를 응원해 보겠다.
그런 작은 변혁을 꿈꿨던 약자들의 드라마도 사랑하기에.
화이팅, 한빛의 대장.
* hom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10-09 1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