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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6/10 16:07:33
Name T
Subject 백수의 배낭여행 #1
나는 백수다.

지금은 허송세월을 하염없이 보내고 있는 28 청춘 백수지만,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주 6일 반쪽짜리 직장인 이였다.
“반쪽짜리“라는 것은 정사원이지만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급여는 정사원만큼 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주 6일로 일하면서 너무 힘들어 다른 곳에 이력서를 내고 합격발표가 나기 전에 관둔 것이다.

점장님께서는 2개월만 더 참으면 좋은 대우가 보장된다고 하셨지만 다른 곳에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4개월 동안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쉬는 날에도 업무를 봐주면서 일을 할 땐 항상 웃으면서 인사하고, 맡은 일에 정성을 다하며 항상 퇴근 시간이 지나서 집에 갔다.
성실히 일했다고 당당하게 나 자신에게 말 할 수 있다.

열심히 했으니까 일을 관둔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왜 그만뒀느냐는 친구의 묻는 말에 “여행 가려고“ 라고 했다.
무심코 뱉은 말이었지만, 머릿속에서 늘 맴돌았던 것 같다.
‘여행을 위해 그만둔 건 어쩌면 나에 대한 핑계일까?’
‘내가 삶에 지쳐 있었나? ‘
이런 생각도 든다.
모르겠다.
그냥 여행을 가야 했다.
일하면서 혼잣말로 “여행이 가고 싶어! “ 이 말을 한 후부터 준비를 했다.
시골 장을 검색하고, 도미 토리 숙소와 어디를 갈지 고민하면서 내가 가는 그곳엔 뭐가 있는지 알아봤다.

일을 관두고 이력서를 넣었던 두 군데 중 한 곳의 최종심사에 희망적인 부분을 기대했지만, 불합격 통보를 받고 마음을 먹었다.
한강에서 뛰어내릴 마음??? 죽을 마음?? 흔히 말하는 자살???
아니다.
평소에 나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더욱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런 마음은 가지고 있지 않다.
한강에서 뛰어내리면 우리 어머니 너무 마음 아파하실 거 아니까, 적어도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면 그 후에 열심히 살다가 나도 갈 거다.

언제 완성될지는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과 나를 위해서 써본다.
말투가 싹수없이 보여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
원래 “~다. “ 체가 싹수가 없어 보인다.
흔히 말하는 ”음슴체”로도 써볼까 생각했지만 그건 아닌 거 같다.


인터넷쇼핑몰에서 산 17,500원 배낭






5월 28일
생각만 하고 있었던, 생각만 가지고 지냈던 것이 이루어진다.
창 밖에 비추는 것은 꿈속에서만 보던 것이 아니다.
무언가 마음속에서 벅차오르는 기분과 두려움(?) 비슷한 기분이 교차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혼자 하는 여행이라 조금은 겁이 나지만,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이거 하나로도 충분하다.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이 기대와 설렘인지는 잘 모르겠다.
버스에 오르고 창밖을 보게 되는 시간이 많아지자 의외로 무덤덤해진다.
그래도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는 지금 이 기분은 좋은 것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세월이 지나서도 지금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여행.
비록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이 초라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날 비출 수 있는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






순천·여수행 버스가 되게 좋은 것 같다.
새로 나온 지 얼마 안 된 깔끔하고 세련된 차량이다.
내가 타봤던 일반 금호고속에서는 보기 드문 버스다.

출발부터 기분이 좋다.






피곤했는지 나도 모르게 잠을 잤나 보다.
눈을 떠보니 버스가 휴게소에 멈추고 있었다.
“우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롯데리아 매장이 있는 것이 아닌가.
보는 것만으로 웃음이 나온다.
보고만 있어도 그저 행복하다.

휴게소에 들리면 꼭 먹는 음식이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문어와 오징어라는 핫바, 또 하나는 2천 원 어치의 호두과자.
정말 좋아하는 휴게소 음식이다.
이번엔 찐 옥수수, 그리고 문어와 오징어 핫바를 두 손에 움켜쥐었다.




버스에 올라서 출발하기 전에 몽땅 해치우고 창밖을 바라본다.
시간은 항상 머물러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어느덧 훌쩍 커버린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백수.
나는 백수다.
어디 가서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백수.

조금씩 잊고 지냈던 것들이 생각난다.
하루하루 잊고 살았던 소중한 기억들이 필름처럼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취직을 하고나서야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벌었는지 깨달았다.
군대에서 항상 그리워했던 사람이 어머니라는 것을 알고도, 전역하고는 왜 잊고 살았는지 고개가 숙여진다.

나는 분명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는데 또다시 잠에 취해 졸았나 보다.
졸다가 용케도 서순천 톨게이트를 보고 사진을 찍었다.



나에겐 아이폰이라는 휴대전화 겸 카메라가 있다.
비싸고 좋은 카메라인 DSLR은 아니지만, 충분히 내 여행을 찍어 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사실 나에겐 디지털카메라로 불리는 사진기가 없다.
사진 찍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와 정말 많은 곳을 다녔는데, 찍어 놓은 사진은 별로 없다.

이번엔 정말 사진을 많이 찍고 싶다.
사진으로 추억을 남겨두고 싶다.

‘어쩌면 혼자 하는 마지막 여행이 될 수도 있잖아?’
마음은 알고 있나 보다. 28이란 적지 않은 숫자의 압박감을.

어느덧 순천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먹는 것 보다 잠자리를 해결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나 혼자 여행을 하면서 엄청 시골 같은 경우는 민박집이나 여관이 따로 없어서 더더욱 그렇다.
여름이라고 해서 새벽이 춥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간혹 우리가 새벽에 편의점 갈 때의 추위가 아니다.
한겨울만큼 춥다.
정말 춥다.

2007년 6월 초 친구와 돈 한 푼 없이 말 그대로 무전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전역해서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초여름이었다.
하지만 같이 한 친구는 이틀 만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혼자서 걷다가 배가 너무 고파 전라남도 영암 근처의 작은 마을에 들린 적이 있다.
이장님께서 특유의 사투리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자네가 싫어서 하는 말은 아닌디 지금 고마운 마음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갚는 것이, 지금 이 한 끼 밥값을 하는 거시여.”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말이다.

채소와 쌈장 된장국에 고봉밥, 한 끼 식사의 밥값으로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찍으려고 가져간 친구의 사진기를 드렸다.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비싼 물건은 그것이 전부였다.
한사코 받기를 거부했던 이장님을 대신해 멍멍이 목에다 예쁘게 걸어주고 길을 다시 나섰었다.

무전여행을 하려는 사람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남들에게 보이는 여행보다 자기 자신에게 생각의 길을 깨우칠 수 있는 여행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자신을 위해서 혹은 다른 이유 등의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때는 한없이 바라는 것보다 뭔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백수 주제에 주제넘어서 미안하다.

난 그때의 깨우침으로 인해 지금의 예쁜 여자 친구를 얻게 되었다.
인생을 살면서 정말 2007년 6월 초 여행은 도움이 많이 되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해피선데이의 1박2일? 그건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다.
제작진과 연기자 모두가 급여를 받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제작진과 연기자들이 얼마나 힘들지 알고 있다.

혼자서 하는 여행은 無錢旅行(무전여행)이든 배낭여행이든 어떤 여행이던간에 정말 힘들다.
힘들어도 또 하고 싶어지는 것이 여행이라는 것을 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지금 나는 내가 일해서 번 돈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백수지만 부자다.
그래도 아낄 수 있는 건 아껴야 한다.
돈은 최대로 쓰되 아낄 부분은 아껴야 한다.

순천에는 어머니가 생활하고 계시는 사택이 있다.
숙박비를 아끼는 것은 물론 어머니 얼굴도 볼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어머니가 계시는 순천으로 오게 되었다.
터미널로 마중 나와 계신 어머니와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순천 집으로 가는 줄 알았다.
아니 순천 집에서 자야 했다.
원래 일정이 부천->순천->광주->전주->여수->남해->김해->경주->부산->안동->제천->수원->미정->부천 이다.
하지만 어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여수에 가게 되었다.
지금 여수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어머니께 말씀드렸지만, 그냥 차를 모셨다.

그래도 “어머니”이다.
여행 일정이 변경된다고 조급함에 어머니에게 대들어서 정말 죄송했다.

내일부터 그냥 마음 가는 데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여행을 가기 위해 벌어둔 돈과 마음의 여유가 있지 않은가?’
백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부자라고 생각한다.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

어머니께서 나를 여수에 데리고 가는 이유를 알고 있다.

여수에는 아버지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다. 2000년도부터 알고 지낸 자상한 아버지 같은 분이다.
살아오면서 아버지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지만, 만약 누군가에게 하게 된다면 이분에게 하고 싶다.
그래도 아직은 어색하다.
많이 뵙지만 어색하다.

여수에 도착해서 간단히 세수와 머리만 감고 저녁밥을 먹었다.
짧게 일기를 쓰고 짐 정리를 하고 누웠다.
3G가 터지지 않는다. 바닷가 근처라 그런가?
꽤 춥다.


버스비 부천->순천 19,600 (직불카드)
하늘보리 1,400원
휴게소음식 옥수수 2,000원 문어와오징어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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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카드
11/06/10 17:26
수정 아이콘
좋네요. 약간 '그냥걷기' 느낌도 나는 것 같고..
기대해봅니다 :)
11/06/10 20:06
수정 아이콘
저도 앞으로 기대하겠습니다.
여행기 좋아요!
유닉스드라이
11/06/10 23:07
수정 아이콘
솔직히 연재게시판에 있는 글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는데

처음으로 끌리는 글이 생겼네요

앞으로 기대 많이 많이 하겠습니다!
11/06/11 02:16
수정 아이콘
연재게시판에 있는 글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는데

처음으로 끌리는 글이 생겼네요(2)

예전에 정말 미친듯이 좋아했던 만화 '모험도'를 그리신 작가분이 떠오르네요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abrasax_:JW
11/06/11 02:30
수정 아이콘
재밌겠다!
저는 순천 사람입니다. 대학교 다니느라 집에 너무 못 가서... 저도 가고 싶네요 ㅠ.ㅠ
라이크
11/06/11 07:40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sad_tears
11/06/11 13:43
수정 아이콘
저도 얼마전에 일을 그만둔 28살 한 사람입니다.

여행을 가고 싶네요
난그랬어
11/06/11 22:40
수정 아이콘
재미있습니다. 전 나이가 좀 더 많은데, 회사 그만둔김에 여행 다니고 있습니다. 해외쪽으로 다니고 있는데 돈이 좀 들지만 정말 좋네요.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여행 갈 수 있는 상황인데 용기가 안나서, 돈이 아까워서, 혼자라서, 외국어를 못해서(해외여행시) 망설이고 계시다면 용기내서 꼭 가십시요.
가고자 하면 걸릴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등짝이가살아나야제.
11/06/12 19:50
수정 아이콘
담백하니 좋습니다..
저도 여기저기 다녔을때, 그날그날의 내용을 써놓지못한게 아쉽네요 ㅠㅠ
다음글도 꼭 써주세요!!
11/06/14 16:19
수정 아이콘
28이라는 나이가 심란한 나이인가 보네요. 저도 28인데, 이번달까지만 하고 회사를 그만두거든요. 일단 다른데 알아보긴 하는데, 여행도 좀 가보고, 인생에 대해 생각도 좀 더 해보고 싶고 그러네요.
11/06/15 15:56
수정 아이콘
글이 담백해서 참 좋습니다.
11/06/16 19:11
수정 아이콘
재미있습니다 히힣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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