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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29 21:30
야사로는...하도 많이 해먹어서 세종이 엄청나게 감시를 했고
나중에는 더러워서 안먹는(?)다고 하는 수준으로 되었다고... 결국 강제로(타의로) 만들어진 청백리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3/01/29 21:37
부패정승 황희는 실록에 나와있습니다. 기사 내용의 출처도 실록이네요 조선시대의 어떤 역사서도 실록보다 정확하진 않습니다. 박포의 아내와 간통을 한것도 실록에 나와있구요 청백리가 왜곡된 사실이죠 크크크 하지만 워낙에 능력이 뛰어나서 중용되었다고 하더라구요
13/01/29 21:40
청백리는 분명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알짜배기 탐관오리 소리를 들을 정도도 아니라고 보는데.. 저 기사도 자세히 보면 실록 내용으로 넘겨짚는 부분이 은근슬쩍 들어있네요
13/01/29 21:43
황희의 청렴한 이미지는 사실 맹사성의 것인데 그게 어떻게 후대로 내려오면서 황희가 가져간 거 같더군요.
범죄자를 숨겨준 부분에 대해서는 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입니다. 세종실록을 편찬할 때 사초의 내용이 너무 감정에 실리고 근거가 부족하다 느껴서 정인지가 직접 다시 조사했고, 실제로도 근거가 부족하고 왜곡된 기록일 가능성이 높아 실록에서 삭제하려고 했었는데 무슨 일인지 실록에 그냥 실려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종실록만보면 사실로 여겨지겠지만, 단종실록도 같이 보면 이 사건에 대한 조사 과정까지 다 볼 수 있고 전체적인 정황을 봤을 땐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고 추측할 수 있지요.
13/01/29 21:44
일을 잘해서 등용되고 입신출세한거지
인격이나 도덕성은 낙제에 가깝다고 봐야죠 태종시절부터 눈도장찍기에 편들기(특히 양녕대군관련) 등으로 이방원이 하도 실망해 너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서 노모나 모시고 살아라 하며 내친일도 있었습니다. 능력은 출중해 이방원이 아들 충녕대군(세종)에게 너 재임시에 불러써라 단 잘 감시하며 라고 했지요
13/01/29 21:48
그래서 농담삼아 세종의 복수는 그를 관직에서 내치는 게 아니라 평생 관직을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거였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진짜 황희 입장에선 70살 넘어서부턴 관직을 미치도록 그만두고 싶어했는데, 결국 세종이 죽을 때까지 그만두지 못합니다. http://todayhumor.com/?bestofbest_82523 관련링크
13/01/30 05:57
늦었네요 (...); 이미 해주실 말 다 해주셔서;;;
능력 위주 등용이라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닙니다. 능력 중시했던 세종 대 부패했던 인물들이 능력으로 많이 등용됐거든요 -_-; 능력은 진짜 좋아서 (가령 박연은 음악 부분에서 워낙 독보적이어서) 자르기도 그랬구요. 유교에서 인성 중시하는 것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닌거죠. 그게 유교 중심이고 아무리 그래봐야 인성 안 좋은 놈들만 나왔더라 그리고 인성 좋아도 실무는 참 모르더라 그런 게 문제고 (...) 그리고 후대에는 다 착했더라 깨끗했더라 요런 식 ( - -)
13/01/30 07:58
그래도 명재상이긴 했으니까 그런 이미지가 씌어진 거겠죠 ^^; 지들 딴에는 찬양하고 본받자고 하는 거였겠지만 ( - -);;; 본문에 쓰신 계란유골의 송남잡기도 조선 후기 때 써진 거죠. 그 외에 고려에 대한 충성을 지킨 두문불출 중에 하나였다느니 하는 것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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