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3/09/19 11:12:00
Name 스톰 샤~워
Subject 남대문 열렸습니다
살다보면 아주 가끔씩 겪는 황당한 경험 중의 하나.

생면 부지의 사람이 슬며시 다가와서 은근한 목소리로 한마디 툭 던지고 갑니다.

"남대문 열렸습니다"

처음엔 '어. 저 사람이 뭐라고 했지' 하다가 생각해 보고는 아차! 하고 황급히 사태를 수습합니다.
그럴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지만 한편으론 그것을 지적해준 그 낯모르는 분의 마음이 감사하게 느껴지죠.

마찬가지로 내가 다른 사람의 남대문이 열린 걸 볼 때도 많은 갈등을 하게 됩니다.

'음. 분명 심각한 사태인데 저걸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말해주면 창피할 것이고 말 안해 주면 계속 저 상태로 활보할 터인데... 난감하네 -_-;;;'

그러다가 결국 슬그머니 다가가서 말해주죠.

"남대문 열렸습니다"

그 사람이 여자일 경우에는 더 난감하죠.
다행히 여자 후배랑 동행하거나 아내랑 동행할 경우엔 그들을 시켜서 전해주지만
저 혼자일 땐 그냥 모르는 척 먼 산만 바라보고 있을 밖엔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고 마치 내 일인양 안절부절 못하게 되죠.

그런데 만약에 누가 나에게 큰 소리로 "아저씨. 바지 지퍼 열렸어요."라고 외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나의 그곳(?)으로 집중될 것이고 폭소를 터뜨리는 사람도 있겠죠.
얼굴은 홍당무가 되고 큰 소리로 외친 그 사람이 원망스러울 것입니다.


요즘 PGR이 너무 살벌하다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저 역시도 어느 정도 공감하구요.
하지만 그런 사건의 발단을 보면 정말 사소한 것들에서 비롯됩니다.

대부분 원문에선 큰 문제점이 없지만 이에 대한 댓글들에서 문제가 시작되죠.

처음엔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네요' 하는 식의 댓글들이 붙다가
'대략 난감.', '통신체의 압박이..-_-;' 하는 식의 댓글이 하나 붙습니다.
그러면 '별 문제 없는데 너무 깐깐하게 굴지 마세요' 하는 식의 답이 붙고
그에 대한 반박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문제가 있긴 있습니다. 여긴 이렇고 저긴 이렇고...' 하는 식의
좀 더 논리적이고 따끔한 비판이 붙죠.
그 이후엔 원문은 간데 없고 서로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됩니다.

저도 가끔은 이런 공방의 와중에 끼어들긴 합니다.
저 스스로 끼어들어 그 논쟁의 한 당사자로 있을 땐
그 문제가 대단히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고 상당히 열심(?)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접속하지 않은 사이에 끝나버린 공방전을 방관자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약간은 우스운 느낌이 듭니다.
다들 잘 아시는 '짜장면과 짬뽕논쟁'이 생각 나기 때문이죠.
'짜장면과 짬뽕 논쟁'은 다들 잘 아시는 고전적인 유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 유머를 보면서 '정말 그래. 하여튼 웃기는 사람들이 많지.'하면서 끄덕이지만
막상 자신이 그런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느끼질 못하죠.

이곳 PGR의 글쓰는 기준은 '얼굴 마주하고 해도 괜찮은 수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정말 멋있는 말입니다.

댓글을 다실 때 조금만 더 상대를 배려해 주시면 PGR이 너무 삭막해졌다는 얘기는 사라질 수 있을 것 같네요.

물론 이 곳 PGR에 오시는 분 중에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함부로 막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별 악의 없이 한 말에도 상대방은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지퍼가 열린 것을 보고 '아저씨 지퍼 열렸어요'하고 그냥 사람들 많은데서 말해버리면 엄청 창피하겠죠.
그래서 쉽게 말 못하고 기회를 엿보다가 슬며시 다가가서 '남대문 열렸습니다' 하고 살짝 말해주는 것 처럼
댓글을 다실 때도 그냥 '통신체는 자제하세요'라고 하기 보단
'잘 읽었습니다. 통신어체만 더 줄이시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하고 조금만 더 격식을 갖춰주면
그 글을 받는 사람도 지적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댓글에 대해 다시 반박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문에 대한 지적이 글쓴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면 그 지적을 한 사람에 대한 지적 역시 그 사람에겐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자신은 나쁜 의도 없이 쓴 글인데 거기에 대해 '당신은 뭐 잘 났다고 그런 말을 하나' 하는 식의 비판이 올라오면
쉽게 동의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죠.
상대방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싶은 생각이 아니라면 날이 선 지적은 별로 효과적인 수단이 못되는 것입니다.
결국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매서운 북풍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인거죠.

모두들 잘 아는 이야기이지만 막상 쉽게 몸에 익혀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PGR을 사랑하는 것 처럼 글을 쓴 한사람 한사람에게 애정을 갖고 대하신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결국 내가 사랑하는 PGR이란 그 사람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니까요.

그럼 모두들 즐거운 PGR21 하세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3/09/19 11:22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동감합니다. 조금 더 따뜻하게 배려할 수 있는 pgr이 되면 좋겠네요. ^^
信主NISSI
03/09/19 11:26
수정 아이콘
이런 것도 있죠. 사람이 많아 질수록 좋은 글에 "좋은 글 감사합니다"란 말은 잘 안하게 되도... 안좋은 글에 "이런점은 잘못됐군요"라는 말은 많이하게 되죠.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비판적인 말이 늘어나는 것 같구요. 오늘 부터 좋은 글 보고 좋은 말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TossMania
03/09/19 11:33
수정 아이콘
옛날 아파님의 따뜻한 글과 자드님의 잡답, 항즐이 님과 날다님의 생생한 게임 예선 후기, 공룡님의 눈물나오는 글(유머와 일상적인 글) 그 외 기억안나지만 수많은 유저들의 평범한 글 안에서 서로 존중하며 즐겁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남기던 pgr이 그립습니다..
지금의 pgr의 좀 무서운 곳이 되었지만, 언젠가는 그런 따뜻한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요..(지금이 갑자기 회원수가 늘어나서 겪는 과도기라고 생각합니다.)
03/09/19 11:3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 _ _):;;
요즘 너무 칼에 날을 세우고 게시판에 오시는 분이 많아진 것 같아요 .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Pgr이 되기를 바라면서 ...
온리시청
03/09/19 11:37
수정 아이콘
대략 찬성....(농담입니다...^^;;....퍽~~)
좋은 말씀이십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하지요...
칭찬은 아낌없이.....지적은 신중하고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표현으로.....
이런 모습들 때문에 PGR이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장소로 여겨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As Jonathan
03/09/19 12:2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소모적 논쟁 즉 시간이 흐른후 뒤돌아 보았을 때, 내가 했건 내가 하지 않았건 간에 그 댓글로 인한 논쟁이 우습게 보인다면 이제 자제해야겠지요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는 "서로에게 칼을 겨누지 말자" 라는 말이 다시 한번 생각나네요..
칼을 사용하는 사람끼리 있을때, 그 칼을 남용하게 되면 전쟁이 되지만 그 칼을 꺼내지 않으면 평화가 찾아오죠. 한 사람이 자신의 칼을 꺼내든 순간 걷잡을 수 없게 되는 이 곳이 PGR인것 같습니다..
"가족같은 PGR.." 이라고 생각하시면 더이상의 싸움은 없겠죠.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물빛노을
03/09/19 12:35
수정 아이콘
좋은 글입니다. 항상 이런 마음을 간직해야만 할텐데ㅡㅡ;;
Lolita Lempicka
03/09/19 12:54
수정 아이콘
동감입니다. 너무 좋은글이네요~^-^
언젠가도 같은 말을 한적이 있는 것 같은데
상대방이 잘못을 해서 충고를 하게 되더라도
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셨음 좋겠네요.
그리고..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pgr이 되었음 합니다.
나쁜점을 지적하는 것도 좋지만 좋은점을 먼저 봐주자구요^-^
아트 블래키
03/09/19 12:5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좋은 분들과 부산에서의 8강전 열심히 응원하고 오겠습니다.^^
스톰 샤~워님! 자주 뵈요.^^
불가리
03/09/19 13:16
수정 아이콘
플토의 계절이라는 가을이라서 그런지, 질럿의 사이언검을 세운 분들이 좀 많으시더라구요. 남대문 열렸어요.. 하니까, 저도 예전에 대학교 때 여자애들에게 다가가서 귀속말로 '너 지퍼 열렸어'하고 여자애들의 당황하는 표정을 즐겼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인과응보라고... 검은색 정장 주머니에 양 손 넣고 전철 탔다가, 전철의 출입문 유리로 비친, 뭔가 허연 부분. 크림색의 제 속옷이 -_-;;;; 한번은 버스에서 어떤 젊은 여자 분이 치마 뒷 지퍼가 열려 있는 겁니다. 아무도 얘기를 못하고 난감해 하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큰소리로 "이봐~ 아가씨~ 뒤에 치마 자꾸(지퍼) 열렸어~' 그 아가씨는 물론 다음 정류장에서 급하게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스톰 샤~워님의 좋은 글 처럼 좀 더 따뜻한 피지알이 되었음 좋겠네요. 그러고 보니까 오늘은 유난히 따뜻하고 유쾌한 글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네요~ 아울러 부산에서의 온게임넷 스타리그도 성황리에 치러졌으면 하구요. 가시는 분들도 마음껏 즐기다가 오세요~
Elecviva
03/09/19 13:57
수정 아이콘
좋은 글입니다, 좋은 글.. 추천 꾸욱 한 방^^
03/09/19 14:11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_____^
러블리제로스
03/09/19 14:25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글이네요. pgr을 찾으시는 모든 분들께 의무적으로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사고뭉치
03/09/19 14:38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글입니다. 잘읽었습니다. ^^*
03/09/19 14:44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글 써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추천게시판으로 가야될글 같네요 ^^;
항상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felmarion
03/09/19 15:09
수정 아이콘
마음속에 따뜻함이라는 천지스톰을 뿌려주시는 군요^^
이런 스톰이라면 맞으면서도 행복한 웃음을 지을수 있을것 같내요.
좋은글 감사드립니다.[꾸벅]
이카루스테란
03/09/19 15:36
수정 아이콘
쪽지를 통해 전달하는 것도 좋겠죠?^^
03/09/19 16:19
수정 아이콘
모두의 마음에 여유를 던져주는 글입니다 ^^. 모두들 즐 PGR하십시요. 그럼 , 꾸우벅.
03/09/19 16:30
수정 아이콘
추천게시판으로 가는 것 찬성입니다. 지금 PGR에 꼭 필요한 글이네요.^^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이엠포유
03/09/19 16:37
수정 아이콘
순간 무지무지하게 뜨금해지는 제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머리속으로는 샤워님 말씀처럼 따뜻한 댓글을 달려고 생각하지만, 나도 모르게 툭툭 뱉어던지는 듯한 차가운 댓글...ㅜ.ㅜ(반성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쪼금식 아주 쪼금식 제 댓글에 따뜻함이 뭍어나도록 해야되겠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샤이닝토스
03/09/19 17:1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서창희
03/09/19 17:24
수정 아이콘
공감합니다. 추게로 가도 전혀 무리가 없는 글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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