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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3/10/12 20:37:20
Name 글곰
Subject 현실은 언제나 네 등 뒤에서 너를 주시한다. 그러나 너는 앞을 보며 걸어가라.
위의 다소 긴 제목은 제 삶의 신념이랄까, 또는 가치관이랄까요. 반드시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곤 하는 두 개의 문장 중 하나입니다. 잠시 전 어떤 글에 댓글을 달았다가, 이 문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 글을 씁니다. 읽는 분들 중 단 한 분에게라도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영광이겠습니다.

"현실은 언제나 네 등 뒤에서 너를 주시한다. 그러나 너는 앞을 보며 걸어가라."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길을 저벅저벅 걸어갑니다. 그러나 그 길이 평탄할 리는 만무합니다. 현실이라 이름붙여진 두텁고 높은 벽이 길 중간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것은 흔하디흔한 광경입니다. 그리고 그 벽은 잔인합니다.

우리는 꿈을 가집니다. 꿈은 이상. 이루기 몹시 힘든 이상. 그러나 언젠가는 가능하리라 여겨지는 이상입니다. 단언하건데 꿈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현실은 꿈을 짓누릅니다. 사방팔방에서 들리는 현실의 냉혹한 목소리는 꿈에 젖은 마음을 사정없이 난타하고 두들긴 후 찢어발기고 할퀴어 댑니다. 그리고 처참한 몰골의 꿈 앞에서 무감각하게 선언합니다. 너는 살아가기 힘들 거다, 라고.

그리고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아득히 먼 옛날부터, 언제나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개를 두어 번 흔들고, 갑자기 당당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당대 사회의 지배층, 또는 주류층으로 편입되었습니다.

반면 [그래도 내겐 꿈이 있어]라고 중얼거리며 무작정 돌격해 가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머리를 들이받고 주먹을 휘두르고 고함을 지르고, 결국 대부분 높은 벽 앞에서 쓰려졌습니다. 그들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를 보고, 현실파들은 피식 웃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당당하게 외쳤습니다. 너희도 현실을 직시해!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나를 봐! 나의 신분, 나의 위상, 나의 옷, 나의 집, 나의 재산......





센티멘털함에 넌더리가 나십니까? 값싼 감정으로 남을 자극하려 든다고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센티멘털리즘(감상주의)은 바로 꿈과 이상의 원천입니다.

이승만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며 식민지배 국가를 일본 대신 미국으로 바꾸자고 나섰고,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며 남북한이 아예 갈라서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대통령이 되고 권력과 재력을 한손에 쥔 후, 4-19 혁명에 의해 하와이로 쫓겨나기 전까지 주류 중의 주류, 지배층 중의 지배층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승만과 동시대를 살았던 김구 선생께서는 똑같은 상황 하에서도 우리의 힘을 통한 독립을 추구하였고, 남북한 분열을 절대 반대하고 통합 정부 수립을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실천하다, 안두희에게 암살당했습니다.

김구 선생의 꿈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찌 김구 선생을 존경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어찌 그분의 모든 노력과 행동을, 현실이라는 말 한 마디로 판단해 버릴 수 있단 말입니까?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저는, 현실에 굴복하며 살지는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토월회라는 근대 연극 단체를 아십니까? 흙 토 자(土)자에 달 월 자(月)를 씁니다. 그 이름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실이라는 땅 위에 발을 디디고 선다. 그러나 이상이라는 저 하늘의 달을 바라본다.]

저는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게 바른 삶이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제 주변에서 외쳐 대는 소리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현안에 있어, 그들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라고 외쳐 댑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현실에 부딪힌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까. 스스로 어렵고 냉혹한 길을 택한 사람들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런 이들을 존경해 오지 않았습니까.



"현실은 언제나 네 등 뒤에서 너를 주시한다. 그러나 너는 앞을 보며 걸어가라."

저는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글곰 이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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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12 20:59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덕분에.. 제 삶의 방향을 잡은거 같군요
나루터
03/10/12 21:0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그것이 올바르다면 자신의 주관만을 꿋꿋이 내세워가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많았으면 합니다.
하지만 잠깐의 흔들림에 뒤를 돌아보면 보이는건 어두운 낭떠러지 끝.....
이게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죠.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 '젊음'과 '패기'와 열정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믿음' 만 준다면 정말 모든것을 바른 것으로
개선해 나아갈 용기와 희망이 생기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전 꿈을 꾸겠습니다.^^
언젠간 '이상'이 '현실'이 되는날을 기다리며 말입니다.^^;

Ps)글곰님의 정말 좋은 글이기에 이 부족한 댓글이 행여 글이 주는 엄청난 가르침에 영향이 된다면 어쩌죠?ㅠ_ㅠ
엘케인
03/10/12 23:21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글이네요..
'아싸 이거 울 카페에 퍼가야겠다!'라고 생각하다가 움찔 했네요.. ^^;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면접 한번 떨어졌다고 낙담하고 있던 한 학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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