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3/12/05 04:33:41
Name 루저
Subject 공격하는 임정호, 방어하는 이재훈
이재훈 선수는 자신에게 있어서나, 스타팬들에게 있어서 몇몇 역사적(?)인 경기로 인해 '한량토스'라는 다소 불명예스러운 명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량'이라는 말속에는 경우에 따라서 여유로운 그의 플레이에 대한 칭찬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인상적인 역전패의 빌미를 준 이재훈 선수의 방심에 대한 질책성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볼때 이재훈 선수가 당한 역전패에 있어서 키워드는 '한량'이라기 보다는 '수비'라는 말이 더욱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그 유명한 '50게이트 사건', 또는 장진남 선수와의 비프로스트 경기에서 중반이후까지 일정규모 이상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오히려 저그보다 더 많은 멀티를 먹고도, 가난한 상태에서 도박적으로 빨린 올린 저그의 테크트리로 인해 아드레날린 저글링과 소수의 울트라에 밀려버린 경기 또한 유리한 상황에서 나온 여유와 방심이 빛어낸 실수였다기 보다는 유리한 상황에서 결정타를 줄 다양한 체제변환등의 변화를 시도하지 못한체 소극적이며 동시에 방어위주의 플레이가 패배를 자초했다고 봅니다.

물론 저는 '방어적 플레이'를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은 취향이고 선택의 문제이며, 공격적인 플레이가 더 높은 확률의 승리를 보장한다고 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겠죠.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게임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수비하는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격하는 쪽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 승리로 가든, 패배로 가든지 말입니다.

따라서 이재훈 선수의 경기 스타일을 말함에 있어 '방어적'이라 함은 단순히 방어타워를 많이 짓고, 많은 멀티를 시도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유리한 상황에서도 경기의 흐름을 자신이 주도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변화에 따라 자신이 끌려간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본진이나 멀티에 엉창난 양의 포토캐논을 건설한다 해도, 그 포토캐논이 오히려 상대방에게 위협으로 다가오는 공격적인 전술이 되버리는 강민선수의 예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점에서 임정호선수와 이재훈선수와의 경기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한판이었습니다. 한선수는 상대방이 무엇을 하건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공격적 스타일의 경기운영으로 유리한 상황을 지속시키지 못하고 스스로 자멸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었다면, 또 한선수는 그와 반대로 유리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기 보다는 상대방이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다 불의의 역전패를 당해오던 매우 대조적인 모습을 가진 선수들간의 경기였기 때문입니다. 매우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야말로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습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승리는 '공격하는 임정호'선수에게 돌아갔습니다. 엔터더 드래곤에서의 첫경기 토스가 저그의 멀티를 두번이나 밀며 매우 유리한 상황으로 이끌어 나갑니다. 그러나 이순간 임정호 선수는 해설진들 조차도 납득하기 힘들게 만드는 스파이어를 건설합니다. 물론 뮤탈을 뽑지 않더라도 셔틀게릴라나 옵저버 테러등을 위해 스파이어를 올리는 것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그건 일반적으로 멀티가 안정적으로 돌아갔을때의 일입니다. 그러나 오버로드 속업을 생각하고, 동시에 다수의 발업된 히드라를 생산하며 럴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단순히 옵저버를 잡기위한 스커지 생산용으로만 스파이어를 짓기에는 멀티까지 파괴되며 극도의 가스부족을 느끼는 상황에서 생각하기 힘든 선택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임정호 선수의 의도된 훼이크 였는지(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만..)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재훈 선수는 그러한 의외의 스파이어 건설을 멀티까지 밀린 불리한 저그의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 뮤탈로의 도박적인 체제전환으로 판단하고 마는 최악의 판단을 하게 되었고, 이 한번의 판단미스는 결국 마이너리그 탈락의 빌미가 되버렸습니다. 러커를 예상하고 진작에 지어진 로보틱스에서 옵저버는 나오지 못했고, 스톰의 업그레이드를 누르며 히드라 럴커에 대한 방어를 준비하기 보다는 아콘으로의 합체를 선택하고 맙니다. 유리한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기 보다는 상대방이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 결과적으로 패배한 것이지요.

이 경기를 봐서도 알 수 있듯이 저는 이재훈 선수가 자만하거나 방심하는 선수는 아니라고 봅니다. 기본기에 있어 완벽에 가깝고는 칭송을 받는 선수가 이재훈 선수이고, 그 강력한 기본기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많은 연습과 노력을 기울인 성실함이 있어야만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선수가 자신에게 조금 유리하다고 자만하거나 방심해서 패배를 자초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잊을만 하면 반복되는 몇번의 역전패들이 이재훈 선수에게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운 플레이를 유도하게 만들고, 이런 소극적인 플레이가 다시 역전패를 불러오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제 이재훈 선수에게 필요한 건 역전의 빌미를 주지않기 위한 치밀하고 세심한 플레이는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그런 치밀함과 세밀함이 이재훈 선수를 소극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봅니다. 이재훈 선수에게 가장 필요한건 김동수 선수의 거만함과 강민 선수의 엽기발랄함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이재훈 선수와의 두번째 경기에서 보여준 임정호 선수의 '공격하는 해처리'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조여진 토스가 저그의 물량앞에 패배하는 평범한 형태의 경기였다기 보다는, 해처리를 멀티에 투자하지 않고 본진에서 극단적으로 늘려나가며 상대방을 압박하는 모습이야 말로 '공격하는 임정호'식 토스 조이기를 보여준 한판이였습니다. 다수의 해처리를 바탕으로 많은 수의 드론을 생산하는 것이 '부자저그'인 것 같으면서도, 멀티에 욕심내지 않고 그 자원과 타이밍을 공격에 활용하는 임정호 선수의 변화된 모습은 최근 조금은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홍진호 선수에게 하나의 해법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3/12/05 04:43
수정 아이콘
저도 임정호 선수의 플레이에 정말 놀랐습니다. 홍진호 선수뿐만이 아니라 다른 저그 유저들에게도 또 다른 해법으로 가는 어떤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재훈 선수에게 필요한 건 자신감이라는 말씀이 맞는 것 같네요...겸손함과 온화함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재훈 선수에게서 때때로 느낍니다. 좀더 자신감을 가져도 충분한 선수인데 그게 늘 안타깝습니다. 두 선수 모두 양쪽 리그에서 더 좋은 모습 보여주길 기대해 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크히어로
03/12/05 04:47
수정 아이콘
임정호선수 -0- 언제나 그에게서 저그의 또다른 모습을 아니면 오히려 저그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되는 선수에요
03/12/05 08:21
수정 아이콘
마법 저그가 위력을 발휘하면 정말 멋지죠! 그 경기를 보고 있자니 예전 김동준 해설과 임정호 선수의 게임큐 경기가 생각나네요. 그 때도 마법난무가 펼쳐졌던 재미있는 경기였죠. ^^
임정호 선수의 심각한 오프라인 징크스가 이번 게임을 계기로 완전히 사라지길 바랍니다~
졸린눈
03/12/05 08:29
수정 아이콘
어제 임정호 선수의 경기는 정말 인상적이였습니다.

본진 5해처리 , 멀티 2해처리까지 7개의 해처리가 초중반에 돌아갔던걸로 기억합니다. 보면서 해설자 분들도 본진 3해처리까지는 "네 , 좋습니다" 하다가 4개, 5개로 올라가자 "어~~어~~-_-;" 하시면서 당황하시더군요.^^;;
얼핏 보기에도 앞마당 멀티 1개 +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스타팅 멀티 1개를 먹은 상태에서 5개의 해처리를 돌리는 플레이는 참 황당하더군요.

그런데 그 해처리의 힘이 이재훈 선수의 입구에서의 혈전에서 힘을 발휘하더군요.

나름대로 모아온 강력한 질럿 + 드라군 + 아콘 + 하이템플러 (후반에는 리버까지) 조합이 저지선을 뚫었는가 싶을때, 어디선가 달려오는 몇부대 규모의 추가 병력들....그 많은 본진 해처리가 아니였으면 불가능 했겠죠.

오랜만에 보는 독특한 스타일의 경기 운영이였습니다.

매지컬 저그 임정호 화이팅! ^^
불가리
03/12/05 10:33
수정 아이콘
어제 세중에서 이재훈선수를 응원했던 팬으로서, 정말 와 닿는 좋은 글이네요. 이재훈선수가 이 글을 좀 봤으면 좋으련만... 어제 패하고 엄청난 충격으로 자책하는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GiveMeAHellYeah
03/12/05 10:43
수정 아이콘
이재훈 선수의 자책...이 생각나는군요. 아쉬움이 묻어나던 얼굴...
그때 전 임요환 선수와의 기요틴 전이 생각나면서 이재훈선수 또 진출 못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루나
03/12/05 11:25
수정 아이콘
저로선 오래만에 '저그의 압도적인 힘'을 볼수있어서 너무 좋더군요.
혼자 '으하하하~~~' 즐거워하며 봤습니다. 공방2업정도 된듯한 임정호선수, (풀업인지는 좀더 지켜보고 판단하겠습니다.^^) 화이팅입니다!
Safer라지엘
03/12/05 11:47
수정 아이콘
게임중에 임정호선수가 퀸과 디파일러를 쓰면서 프토 유닛들에게 인스네어와 플레이그를 마구 뿌려대자.. 김철민캐스터 왈.."빨간색~ 파란색~ 신호등저그~~!!!" 정말 웃겼습니다 -_-;
메딕아빠
03/12/05 11:48
수정 아이콘
가장 저그스러운...신지양^^
리프린
03/12/05 12:48
수정 아이콘
재훈님께 가장 필요한 건 정말로정말로 자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감만 있으시면 어디서도 지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어제의 패배는 정말 너무 아쉬웠습니다.
MasTerGooN
03/12/05 13:12
수정 아이콘
임정호 선수 정말 멋지셨습니다 ^^
프로토스 유저로서 재훈선수가 패하신건 안타까웠지만요..;;
방송 경기에서 화려한 저그의 마법쇼를 보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앞으로도 정호선수만의 화려한 플레이 티비 앞에서 기다릴게요 ^^
ChRh열혈팬
03/12/05 15:43
수정 아이콘
흠. 제 생각에는 방패는 오히려 임정호선수였다고 생각하는데요. JR 메모리 경기에서 시종일관 공격을 한것은 이재훈선수였습니다. 결국 단단한 방패를 뚫지 못했을뿐이지.
하늘높이
03/12/05 15:54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보는 좋은글이군요..^^ 이재훈 선수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사실 경기는 못봤음..ㅠㅠ)
김범수
03/12/05 16:18
수정 아이콘
예..
좋은글이군요..
재훈선수를 응원했던 팬으로써
심히 와 닿습니다..
재훈선수 자신감만 가지십시오...
절대 지지 않을 선수가 될것입니다..
어제의 패배는 빨리 씻고
토요일 프리미어리그에서 선전하시길!!!
03/12/05 16:5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김동수 해설위원이 임정호선수에 대해서 해설할때 '마지막남은 스타일리스트게이머' 라고 하더군요. 초창기 스타크래프트시절때는 게이머마다 특유의 성향 및 빌드가 있었습니다. 리플레이가 없던 시절, 고수가 되기위해선 고수가 즐겨가는 피시방을 찾아가 옆에서 보고 배워야하던 시절이니 말이죠. 무한확장의 최진우, 히드라 밀어부치기 국기봉, 초가난저그 변성철, 가림토질럿, 한방임성춘등등,, 게임큐 시절만해도 플레이를 보면 해설 없이도 누구인지 대충 알아 맞출수 있을 정도로 스타일리스트들이 많았죠. 임요환선수의 드랍십부터 해서요. 그런데 1.08이후 이윤열선수를 위시한 신진 고수들의 시대가 오면서 부터 자신의 성향을 고집하는 것은 '날 잡아 잡슈' 하는 약점을 노출하는 것이 되어 버렸죠. 지금은 때론 공격적인 가난한 플레이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배째고 자원전으로 가기도 하고 또 때로는 도박적 빌드를 사용하기도 하고, 상대가 종잡을 수 없는 멀티플레이어만이 좋은 성적을 낼수 있는 시대죠. 그런데 임정호 선수는 정말 신기합니다. 게임큐시절부터 그대로, 무대뽀 밀어 붙이기 공격 & 공격 ;; 그리고 여지없이 등장하는 퀸과 디파일러 .. 때론 보는 입장에서 난감하기도 합니다. 임정호선수의 저그대 저그전을 보면 정말 할말을 잃습니다. 상대가 누구이던간에 저글링,스콜지에서 끝이납니다. 이기던 지던간요. 아쉽게도 요새는 질때가 더 많은 것 같지만요.
하여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정말 재밌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입니다. 응원하지 않을수 없게 만드는 매력적인 플레이. 조마조마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플레이.. 어~ 너무 무모한거 아니야~ 어라~ 어라~ 뚫어 버렸네.~ 상대방 황당하겠다~ ~ .. 저번시즌 첼린지리그에서 최인규선수와 나도현선수를 저글링 러커로 뚫어버릴땐 정말 감격했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고집탓인지 성적은 그렇게 좋지 않죠. 온겜넷에서 승률순위 바닥이던데 ; (엄재경 해설위원님은 맘 상하게 임정호선수만 나오면 승률 순위를 얘기하더군요.) 하여튼 마지막 남은 스타일리스트 임정호 화이팅!

더불어 몇 안되는 스타일리스트라고 하면 주진철선수가 아닐지 %^^;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5575 나더러 뽑으라고 한다면-지명식관련 [14] 캐터필러13596 03/12/06 13596
15574 [정보]2006년 독일 월드컵 예선전 조추첨을 Live로! [26] 막군11027 03/12/06 11027
15572 [잡담] 조지명식 재미있었나요? [29] 서쪽으로 gogo~10525 03/12/06 10525
15571 인간으로서 매력만점인 이윤열 [30] 이훈석13874 03/12/06 13874
15569 [개인 잡담]여러분 응원해 주세요~ [8] 고영7329 03/12/06 7329
15568 한빛스타즈 어리버리브라더스결성! [21] eritz12581 03/12/05 12581
15567 배울게 없다 [7] Ace of Base9720 03/12/05 9720
15564 남자이야기에서의 테란상대 [33] MoreThanAir11181 03/12/05 11181
15563 [그림&문자중계]NHN 한게임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조 지명식 [228] 막군14816 03/12/05 14816
15561 [잡담] 애니 종영의 후유증... [19] 세레네이8857 03/12/05 8857
15560 프테전에서의 가스의 추억=_= [13] 낭만다크8703 03/12/05 8703
15558 [잡담]임요환선수....에대해서.. [3] foreversunny10607 03/12/05 10607
15556 운명의 상대(1)........(갈라놓기 모드...입니다...;;;) Asianlife7820 03/12/05 7820
15555 2002년 전에 운전면허 따신분들 보세요.. [14] 이상8681 03/12/05 8681
15553 저기 테란 랭킹 젤마지막 자락에 최연성선수가 보이네요.. [10] [GhOsT]No.110106 03/12/05 10106
15552 저그, 그 새로운 전설을 기다리며... [14] Nabi8779 03/12/05 8779
15550 은하영웅전설에 관한 소식 하나 [12] optical_mouse8443 03/12/05 8443
15549 아~ 드뎌 오늘이군요. [7] GiveMeAHellYeah7453 03/12/05 7453
15547 저그가 우승하기 힘든 이유.. [4] People's elbow9064 03/12/05 9064
15546 대 테란전 스타게이트 출발 [22] 다린토9776 03/12/05 9776
15543 스타에 꼭 감독이 필요합니까? [24] 시인11914 03/12/05 11914
15542 공격하는 임정호, 방어하는 이재훈 [15] 루저10094 03/12/05 10094
15540 잡생각... [1] 거위의꿈6679 03/12/05 6679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