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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5/05 19:56:08
Name 아자
Subject [퍼옴] 별을 사랑하는 방식

아래에 공인에 대한 얘기가 있어서 퍼왔습니다.
'젊은 그들'이라는 글로 유명한 진산님이 쓰신 글이구요.
진산님께 허락 받았습니다.
출처는 다음넷 김동준님 카페(http://cafe.daum.net/N2Rookie)입니다.


별을 사랑하는 방식  

..  번호:10667  글쓴이:윈디문  조회:104  날짜:2001/09/27 03:59  ..  


..  전 공인이란 말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경기를 일으키는 편이죠. 어줍짢게도 제가 그 '공인'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공인이라는 말이 등장할 때 당연히 따라오게 되는 여러 가지 부속물들 '공인으로서의..' '공인이 어찌..'라는 말들에 대한 거부반응이겠죠.

물론, 가끔은 저 자신에게 질문하기도 합니다. 나약한 우리들은 이따금 우리들 속에서 누군가를 전범으로 세워두고 그에게서 내가 갖추지 못한 덕성의 체현을 바라게 되는 게 아닐까 하고요. 대속자로서의 예수가 가치 있는 이유는 인간집단의 그런 속성 때문이 아닐까 하고요. (결국 우리는 아무리 개인을 소중히 여긴다고 해도, 개미나 짐승 무리들과 비슷한 무리성을 띠고 사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아무래도 그걸 인정하고 살기는 싫더군요. 특히나 '내가 구경꾼으로서 스타를 바라보는 경우'를 상상할 때보다, '만약 내가 스타가 되어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어떤 요구를 당할 때'를 상상하게 되면요. 하하, 사실 보통 사람이 살면서 자기가 스타가 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겠지만 상상은 극단적인 쪽이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

솔직히 말해, 저는 누군가의 팬이 되어본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30이 넘어서야 겨우 그 일을 시작했죠. (이 까페에는 H.O.T나 듀스의 팬 클럽 활동을 열심히 해보신 - 팬덤 라이프의 선배분들도 계시더군요. ^^) 누군가를 우상화한다는 것의 위험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실 살아있는 사람의 팬 노릇도 잘 안했습니다. 이 까페에서도 처음엔 롬족이었죠.

저는 스타라는 존재가, 제 인생에서 해줄 수 있는 역할은 말 그대로 별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에서 빛나고, 그 별을 바라보면서 기분 좋아하고, 그리고 그 별로 인해 항로를 가늠할 수 있다면 - 그것으로 족하다고요. 별에 손 대 보려고 발돋움하고 애쓰는 것은 별에게도 못할 짓이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못할 짓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적당히 롬족으로도 행복했습니다.

흠, 그러다가 어느 날 - 우연히 땅으로 내려온 별과 마주쳤습니다. 짜잔. 헉 눈부셔.

처음 채널에 자주 드나들고, 사람들과 친해지고, 영광스럽게도 -_-;; 루키님과 게임도 하고 T_T 그러면서도 내내 저는 생각했죠.

"이래도 되는 건가? -_-;;; "

결국 '스타'도 사람입니다. 사람과 사람은 가까워질 수록 기쁨도 늘지만 아픔도 생기는 법이거든요. 차라리 모르면 생기지 않을 문제들이 거리가 좁혀지면 생기게 되니까요.

해결 방법은, 스스로 별에게서 멀어지는 거죠. 그러나, 그런 중용과 냉정함은 그렇게 쉽게 획득되지는 않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판타지 만화인 <그랑 로바>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혜로운 현자가 방황하는 젊은이에게 말하죠.
"내가 젊었을 때 길을 가다가 우연히 하늘에서 떨어진 별을 발견했네. 나는 그 별의 눈부신 빛과 영혼을 맑게 하는 차가운 한기를 손에 느꼈지. 하지만 결국 그 별을 하늘로 돌려보냈네. 그건 내 손 안이 아니라 저 하늘에 있어야 마땅한 거니까."
그 말을 들은 젊은이는 내내 고민합니다.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만약 내 손에 별이 들어오면 그렇게 하늘로 보낼 수 있을까?"

저도 생각했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답은 NO였죠.
우리는 소망도 많고 약점도 많은 인간이니까요.

하지만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해서 매번 손에 들어온 별에게 상처 받고, 혹은 별을 상처주고만 살아야 하는 건 아닐 겁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별도 '인간' 이니까요.

별과 인간 사이에, 한쪽은 하염없이 숭배하고 한쪽은 하염없이 지배하는 일방적인 관계만이 존재할까요? 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종종 우리들은 별에게 '좀 더'를 요구하기 때문에 일어나지요.
좀 더 도덕적으로, 인간적으로, 내가 기대한 바대로....
별이 아예 저 공기 희박한 하늘 높이에 있어서 지상의 우리들이 기원하는 자질구레한 소리 같은 것은 들리지도 않고 그저 멀리서 빛이나 번쩍여준다면
서로 속상할 일이 없겠지만 문제는 이 소리가 별에까지 닿을때 일어납니다.. ^^;;
처음 별을 좋아할 때 기대했던 것과는 무관하게, 가까워진 별에게는 요구사항도 많아지니까요.
특별히 어느 쪽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거리를 좁히면 일어나기 마련인, 감당해야 마땅할 사소한 상처들이겠죠.

하지만 현자처럼 딱 부러지게 '별과의 거리'를 유지할 만큼 중용을 지키지 못하는 범인인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타협은
별이 가까이 와서 생긴 지구 대기의 변화 .. ^^;; 와 폭발, 그리고 시력을 상실케 하는 지나친 빛 같은 것조차도 감당하는 대가를
치르는 겁니다. 사실 그 대가가 그리 비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별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영속적으로 책임져야겠지만 - 우리들은 아마 대부분 별에 대한 숭배를 영속적으로 하지는 못할 가능성이
많으니까요.

전 루키님의 게임 방식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게시판과 채널에서 자주 뵙지 못했더라도 그건 별로 변동없는 일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프로게이머 루키님의 게임 방식 이외의 장점과 단점들 - 그러니까 별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지금에 와서도, 그 모든 숭배 (^^;;)와 관심의 기본은 여전히 루키님의 게임 방식입니다.
그 이외의 바람은 거의 없어요. 저는 별이 저로 인해 자신의 궤도를 이탈하기는 바라지 않거든요.
그러면 이미 별과 사람의 관계가 아니니까요.

.. 다른 분들은 동의하지 않으실지도 모르지만.. ^^;;;
저는 루키님이 지금처럼 직설적이고, 싫은 거 싫은대로 다 폭발시키는 초신성처럼 사신다고 해도
별 불만 없습니다. 인간으로서의 루키님은 그렇게 자신의 영토를 지키면서 세월과 함께 이러저러하게
변화도 하고 성장도 하시겠지요. 그걸 지켜볼 수 있다면 그건 제 즐거움일 테고요.

별을 사랑하는 방식, 사람 마다 다 다르겠지요?
저는 별이란, 주로 바라보는 대상으로서 - 그리고 내 항로의 현 위치를 점검하는 기준점으로서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주관적인 바람을 거기에 담는 것이라든가, 내가 바라는 좀 더 이상적인 '인간'으로 별이 바뀌기는
바라지 않아요. 그럼 이미 그건 별과 나와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되니까요.

- 센치한 척 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냉정한 별 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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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theia
02/05/05 20:00
수정 아이콘
피눈물나는 글이군요. 진산님과 아자님께 감사드리며.
02/05/05 20:07
수정 아이콘
무협작가 진산님 이신가? ㅡㅡ;
가슴에 와닿는 글이군여...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아자님 퍼다주셔서 감사해요~~
항즐이
02/05/05 21:1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저도 예전에 루키님께 드렸던 글이 생각나네요.

"세상에 부담이 되지 않는, 그리고 받는 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될만한 격려와 응원이 있다면 드리고 싶습니다."
과일파이
02/05/05 21:37
수정 아이콘
적어도 별에게 할 말은 하고 싶군요. '당신 빛나는 방식이 맘에 안들어.' 라구요. 수용하던 말던, 그냥 하염없이 지켜만 보기는 싫습니다.
박선준
02/05/05 23:42
수정 아이콘
별이기에...나에게는 별이기에 좀 더 다른별보다 좀더 빛난는 별이 되어 달라고..별이 외 다른 별보다 빛나야 하냐고 묻는다면..당신은 나의 별이기 때문입니다
장희웅
02/05/06 04:12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글이군요.. 정말 무협작가 진산님이 아닌가하고 생각해 봤습니다만 아닌거 같네요..그리고 진산님은 굉장히 냉정한 별 소비자가 맞는거 같네요..^^ 저도 사실 냉정한 소비자이고 싶습니다. ^^
항즐이
02/05/06 04:31
수정 아이콘
무협작가 진산님 맞는데요 -_-;; 모르시고계셨나요?
스카이배 결승때는 무대에 올라오셔서 인터뷰도 하셨는데 +_+
언제고 꼭 PGR인터뷰에 모시고 싶은 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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