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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9/16 01:54:18
Name 네로울프
Subject '우리 혁이'에게 부쳐....


내게는 남동생 하나와 여동생 하나가 있다...
우린 두살 터울로 모양을 짜맞추었는데 내
바로 두살 밑이 남동생인 혁이다.
다른 사람에게 그 녀석을 말할 때 난 항상
'우리 혁이'라고 한다.
'우리 혁이'.....
내가 벌써 스물 아홉을 살았더니 그 놈도
어느새 스물 일곱이 되었더라..
기억이 닿는 가장 먼곳에서부터 항상 우린
함께 자랐다. 둘이 같은 이불에 자고 같은
밥상머리에서 반찬을 다투고 같이 아버지
한테 쫓겨나곤 했다.
내가 언제나 그 녀석보다 두학년이 빨랐고
두해 먼저 몽정을 했으며 두해 먼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가끔 어긋나기도 한다. 대학을 들어가면서
난 재수를 했고 '우리 혁이'는 삼수를 했다.
어쨌건 우린 서로를 참 많이 안다. 그리고
서로를 무척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우린
상당히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우린 각자가
반에서 몇등을 하는지도 몰랐고 무슨 대학
에 갈건지에 관심이 없었으며 해마다 서로
가 몇학년이 되는지도 잘 모른다. 그래서
가끔 물어보곤 제각기 놀라곤 한다. 관심
면에서는 그 녀석이 나보다 좀 더 세심한
것 같기도 하다. 집에 내려갔다 서울로 돌
아가는 날이면 '우리 혁이'는 항상 역까지
함께 가준다. 가면서 서로 별 이야기를 하
는 건 아니다. 그냥 같이 갔다가 차시간이
되면 "잘가라" 이러곤 만다. 그렇지만 '우리
혁이'가 배웅을 나와주면 난 참 기분이 좋다.
집을 떠난지 벌써 9년 가량이다. 천성 상
난 별로 집에 연락을 안한다. 집을 걱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별 연락을 안해놓곤
집에 별일이 없겠지 하고 안심하는건 '우리
혁이' 때문이다. 그 녀석이 항상 거기서 집을
지키고 있기에 그런 것이다.
우리 고모가 어릴 때 부터 항상 이런 말을
했다. 나중에 부모님한텐 '우리 혁이'가 더 잘할
거라고................
설에 우린 간만에 술자리를 같이 했다. 둘이서
재법 소주 네댓병을 마셨더랬다. 느즈막히
시작한 내 꿈을 이야기 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그리곤 둘이 들어와
대강 얽혀서 잤다.
'우리 혁이'는 춤을 춘다. 자기 말로는 이제
제법 잘춘다고 한다. 팔을 어깨 높이 쯤 턱
쳐들고는 '이 자세가 아무나 나오는 게 아니
라니까' 하곤 한다. 그 녀석은 춤이 무척 좋
단다. 그게 꿈이 될지는 아직 모르는가 보다.
하지만 뭔가 비슷한 꿈의 냄새를 맡는 것 같다.
함께 술이 거나한 그날밤 난 '우리 혁이'가
장고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꿈을 꾸었다.
'우리 혁이'가 춤을 추면 참 맵시가 있을 거다.
그 녀석은 나보다 한뼘쯤 더 크다. 제법 훤칠
하고 보기좋은 몸을 가졌다.
설 치르고 올라온지 보름 채 지나지 않아서 사촌
동생 결혼식이 있어 다시 집엘 다니러 갔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썩 유쾌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보다 한살 적은 사촌 남동생이
결혼을 하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불과 오십여미터
떨어져 사는 우리 고모네엔 아들이 둘 있는데
한명은 나보다 형이고 또한명은 결혼을 하는 바로
그 동생이다. 사촌형은 벌써 2년전에 결혼했다.
그리고 이번엔 사촌동생이 결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집은 큰놈인 내가 아직 결혼을 안
하고 있으니 부모님 심기가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결혼식 끝나고 바지런히 다시 서울가는 기차를
타러 갈때 언제나 처럼 '우리 혁이'가 따라왔다.
근데 그날은 어쩐지 그냥 훌쩍 가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차편이 마땅찮다는 핑계로 밤 12시 기차를
예매하곤 혁이와 술을 마시러 갔다. 돼지 수육을
한접시 시켜놓고 허름한 술집에서 우린 다시 소주를
네병 마셨다. '우리 혁이'가 갑자기 물어왔다.
"형님 니 한테 제일 섭섭한게 뭔지 아나?"
집히는게 있었다. 내가 이제서야 하려고 하는 거
그것 때문일 것 같다 했더니 그렇단다.
"그래..나도 하고 싶은게 있는데 형님 니 말 들으
니까 가슴이 답답하더라."
"난 형님 니가 그거 할라고 하는건 진짜 좋다."
"형님 니한테 어울릴거라고 생각하거든."
"근데 그라먼 내가 부모님 책임지야 되는 거지."
"형님 니 하고 싶은 거 하고 나도 내 하고 싶은 거
해버리면 부모님은 어떡하노."
"어쨋든 당장 둘다 안정되지 않을 거 아이가."
"내가 집에 들어가야지."
"대신 나중에 형님 니 자리 잡히면 그 때 나는
내 하고 싶은거 하께."
"그때는 형님 니가 내 도와줘야 한다. 알았제."
가슴이 정말 답답해 왔다. 우리 어머니를 떠올리면
난 정말 가슴이 지긋이 아프다. 정말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이다. 내 근원인 어머니....
내가 바다를 종내 잊지 못함이 그 바다에 어머니가
어려있기 때문이다. '우리 혁이'에게도 나와 똑같은
느낌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서너시간을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술잔을 비워갔다.
차시간이 다되어 우린 술집을 나섰다. 부산역 앞
지하도를 건너 광장까지 올라왔다가 '우리 혁이'가
이제 그만 가겠다 한다.
그리고......
"형님 니 절대 뒤돌아 보지 마라."
"주변도 보지말고...."
그러고 우린 헤어졌다. 저만치 쯤 뒤돌아 가다 '우리
혁이'가 다시 큰소리로 외친다.
"어이 가래이...."

우린 참 서로 무뚝뚝한 형제다. 둘이 기껏해야 한
서너달에 한번 전화통화 한번이거나 삐삐 음성 한
번이다.
이번 학기엔 무슨 과목을 듣는지 지금까지 학점은
어떻게 되는지 또 서울에서 뭐하는지 무슨 학원
다니는지 묻지도 않는다.
반년정도 만에 서로 만나도 기껏 하는 말이라곤
'어 왔나?' 정도밖에 없다.
하지만 우린 서로를 정말 잘 안다.
그리고 서로를 참 좋아한다.
더불어 난 '우리 혁이'를 친구로 생각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

오래 된 글들을 정리하다 삼년쯤 전에 소주 한잔
댓바람에 썼던 이 글을 발견한다.
내가 녀석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늘 말해 주고
싶었었다. 녀석에게 편지를 할 요량으로 쓴 글이다.
하지만 종내 부치지를 못하고 그로부터 1년 쯤인가
후에 녀석이 서울로 나들이를 왔을 때 둘이서 소주
서너병을 마시고는 내 자취방에 들어와 녀석에게
툭 던지듯 이 글을 보여줬었다. 술기운으로 불콰한
얼굴로 녀석의 옆얼굴을 쳐다보다 내가 먼저 눈꼬리가
아파와 술이나 한잔 더 하자는 말을 던지고 자취방
근처 가게로 술을 사러나갔다.
맥주 서너 캔을 방바닥에 늘어놓고 우린 또 앞서거니
뒷서거니 술만 삼켰다.
한시간여를 별 말 없이 술만 켜다 자리에 몸을 눕히니
괜한 짓을 했다 싶다.
내 저 녀석이 날 얼마나 사랑하는 질 안다. 녀석 또한
내가 자길 얼마나 사랑하는 지도 안다.
그런 건 말로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쪽팔리는 짓인게다.

다음 날 아침 ‘우리 혁이’는 집으로 내려갔다. 역 앞에서
우린 또 예전처럼 싱숭한 인사를 나눈다.
‘어.. 잘 가라’
‘어.. 가께’
‘뭐 전화 좀 하고’
‘오야.. 드가봐라.’

……………………..

그러고보니 녀석과 전화 통화 한지도 또 벌써 한 반년은
족히 되었다 싶다.
난 여직 자리를 잡지 못했으며 또한 결혼도 하지 않았다.

녀석은 학원 강사를 하는 틈틈히 춤을 배우러 다니는가 보았다.
지난 주에 문득 녀석이 전화를 해 부탁을 했다.
아주 좋은 춤공연이 서울에서 있는데 부산이라 자기는 보러가지 못하니
나에게 비디오로 좀 촬영을 해달라는 거였다.
'남무, 처용아비의 춤'
시전자들이 대부분 고령이라 어쩌면 다시 보지 못할 춤이라 했다.
한량의 기방춤, 사찰학춤, 농부의 덧배기 춤, 고깔 소고, 채상소고...
춤들이 하나씩 흘러갈 때 마다 뷰파인더를 들여다 보는 내 눈에
자꾸 눈물이 흐른다.
그 춤들이 너무 대단하여서기도 하고, 그 춤사위가 자꾸 '우리혁이'의
몸짓 같기도 해서였다.
춤 때문에 아득해지고, 정 때문에 또한 아득해진다.

돌아오는 길에 오랫동안 마음 한켠에 접어두고 애써 외면했던 생각을
오늘에사 풀어내 흩어본다.

'내가 내꿈에 닿으려 너의 꿈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몇일 뒤의 추석에 아무래도 난 또 녀석과 밤을 내어 술을 들어야겠다.

.......................zz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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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9/16 02:29
수정 아이콘
표현하진 않지만...동생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겠네요...
훔..
저는 무녀독남 외아들로 혼자 자라서 인지...동생, 형, 누나 가 있었음 좋겠단 생각을 많이 한답니다. 많은 친구들로 그 외로움을 달래고 있지요..
좋은 동생과의 깊은 우애...죽을때까지 평생도록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식용오이
02/09/16 04:58
수정 아이콘
네로울프님. 삶과 꿈이 갈리는 꼭지점 한 켠에서도 따스한 형제간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여동생들만 있는 저로선 어릴 때 형이나 남동생이 참 아쉽고... 뭔가 말이 잘 안통한다는 느낌에 답답함도 가졌는데, 나도 동생들도 나이 먹고, 같이 애를 키우는 입장이 되면서 대화나 이해, 그리고 애정의 폭도 넓어지는 것을 느낀답니다. 저도 오랜만에 고향에서 동생들이랑 매제들이랑 술 한잔 해야겠습니다. ^^

그리고... 부산사나이들, 거 말 좀 하고 지내세요. ^^
아트 블래키
02/09/16 11:09
수정 아이콘
오랬동안 훈훈한 느낌을 전해받았답니다.^^
사소한 일로 토라져있는 우리남매.
이참에 화해를 할까합니다........;;;
02/09/16 11:18
수정 아이콘
말하는거 어려븐거 아입니데이..
내 해봐서 아는데예.. 마.. 한 두어번.. 해 대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나오더라니까예.. ^^

화이팅.. 하십쇼.. ^^

말이 전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
Michinmania
02/09/16 11:43
수정 아이콘
저도 형이 하나 있는데 형을 무척 좋아하죠..
근데 남자끼리라 그런지 네로님처럼 별 말없이 지내고 사네여..
떨어져 사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가끔 형이 내 던지는 말 한마디...
"술한잔 하러갈까?"
이 말에 무척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형이랑 술한잔 해야 할 듯...
이번에 제가 술한잔 사야겠네요..
Dr. Lecter
02/09/16 12:15
수정 아이콘
'가족'이란 노래가 생각나네요. 이승환이 부른...
"사랑하는 나의 마음들을 그냥 말하고 싶지만 어색하기만 하죠."
저는 막낸데 형들하고 나이차이가 너무 나서 공감하는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생긴 것들이 나이가 들어도 풀어지지가 않네요.
Dark당~
02/09/16 16:22
수정 아이콘
나이가 들어 갈 수록 형제만큼 좋은게 없는거 같습니다... 전 7-_-남매의 중간인데.. 어렸을 땐 그게 그리 챙피하고, 또 투닥투닥 싸우기도 많이 하면서 컸는데... 그래도 조금씩 철들어 가면서 젤루 가깝고 좋은게 형제지간인거 같습니다..
저도 사실 네로님 못지않게 표현을 잘 못하는데... 그래도 네로님은 자주는 아니라 하시더라도, 참 멋지게 표현을 해주셨네요... 음... 저도 동생들 목소리라도 함... ^^.. 윽~ 근데 이눔들은 용돈이 필요할 때만...찾는군요.. -_-...
02/09/16 19:07
수정 아이콘
흠.. 저 역시.. 부산 사나이 답게 무뚝뚝한데요.. 얼마전에 예비군 훈련때
훈련도 받고 여동생도 볼겸 겸사 겸사 내려갔더랬습니다. 게임때문에 설 올라온지 4년이 넘었는데 동생 얼굴을 거의 못보고 지내서..
밤에 빠에서 빠텐더 하는데.. 동생 가게 가서 마칠때 까지 같이 이야기 했었습니다. 너무 좋더군요. 어리게만 봤던 동생이 돈을 벌고, 자기꿈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네오 울프님 보니 동생 생각이 더욱 간절 하네요
감사합니다 좋은글....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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