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3/06/13 08:52:53
Name 맛있는빵
Subject 신념을 지키며 사는 친구
전 90학번입니다.
대학시절... 저랑 아주 절친했던 친구가 한명 있습니다.
빼어난 노래실력을 가지고 기타도 잘치며 작곡도 할줄 알았고......무엇보다도 그 친구는
사회변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운동권학생이었지요
전.... 그냥 날라리 학생이었죠^^ 근데 그 친구랑은 이야기도 잘 통했고 특별히 거부감이나 이질감같은것도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전 과천에 살았고 그 친구네 집은 신림동 고시촌에서 고시원을 하는 집이었죠 집에 가끔 놀러 왔다갔다하기도하고 당구도 치고 술도 가끔 같이 했습니다.
그러다 그 친구는 92년초에 군대를 가고...전 대학원을 가려하다가 포기하고 4학년말에 군에 입대를 했죠 -_- 제가 군대가서 일병생활을 거의 다 마칠무렵...그 친구가 면회를 왔습니다. 음..강원도 화천철책부대였는데..와줘서 참 고마웠지요.
제가 95년말에 제대하고 96년에 복학을 했을때.... 그 친구는 ....지역에서 소위 말하는 운동권노래단체를 만들어서 거기의 단장이 되어있었습니다.
한총련의 지구 총련인 경기남부총련에 소속된 노래단이었죠
그 친구와 그 노래단은 투쟁의 현장에서는 언제나 나타나서 노래를 했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다른 노래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감동을 주었습니다.
결국 그해가 다 지나기전.... 그 친구와 노래단원들은 국가보안법에서의 이북에 대한 고무찬양이라는 죄목으로 전부다 수배자가 되었고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그래도 가끔 학교에서 만나면 서로 안부도 묻고 밥도 사주고 제 용돈도 모아서 그 친구에게 주기도 하고 했었고... 그 친구를 아는 다른 동기들 선후배들도 다들 저처럼 그 친구를 조금씩이나마 도왔습니다. 아주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기쁜마음으로 그럴수 있었죠...
전 학교를 마치고... 97년 6월에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전 순진한 마음에 그 친구에게 '야..나 결혼하는데 네가 함진애비좀 해라...'라는 무리한 부탁을 아주 쉽게 웃으면서 했습니다. 그 친구가 수배중이라는건 별로 고려하지 않은채 말이죠...
그 친구는 제가 하는 부탁이니까 그걸 승낙을 했고 .... 저는 거기에 '야 결혼식에 꼭 올꺼지?'라는 말까지 덧붙이는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음.. 결혼식날... 그 친구는 참석했고.... 그 친구가 국보법수배자라는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저는 뒷풀이에도 오라는 말까지 하고... 아무튼...결혼식을 다 마치고 폐백을 하고  친구들과 같이하는 뒷풀이 장소로 갔는데...거기에 그 친구가 없더군요.. 음.. 저야 뭐 결혼식날이라서 마냥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리고 신혼여행갈 생각에 들떠서 그 친구에 대해서는 잘 신경이 안써졌죠... 뒷풀이 재밌게 하고 해외로 신혼여행을 6박7일이나 잘 갔다왔습니다
갔다와서... 신혼집에 들어와서 며칠 정신없이 지내고 여기저기 인사다니고 뭐 어쩌고 하다보니... 한달쯤 후딱 지나가고.. 그러다가 문득 그 친구 생각이 났죠..
그친구의 후배에게 그 친구 지금 어딨냐고 물었더니.....음......
.
.
.
제 결혼식 끝나고 교회에서 나와서 뒷풀이 장소로 가다가 미행하던 보안수사대에 연행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형사 4명이 발버둥치는 그 친구의 팔다리를 붙잡고 억지로 차속에 밀어넣은후 그냥 .....
수원 구치소로 면회를 갔습니다.
면회실 유리벽 건너편으로....그 친구의 모습이 보이는데....
아....정말 미칠것만 같았습니다. 음..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나네요...
전 아무말도 못하고... 어이가 없고.... 뭐라 표현할수없는 미안한 마음... 오히려 그 친구가 저보고 자기는 괜찮다고 위로를 하는데...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보안수사대에서 저와 그 친구가 전화로 통화한것을 감청하여 결혼식장에
형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는;;;;;;;;;
전 그 친구에게 큰 빚을 지고 말았습니다 ..............................

fucking USA... 탱크라도 구속해... 주한미군철거가 같은 노래 들어보셨나요?
지금 그 친구는 결혼해서 아직도 노래운동을 합니다. 사회노래단체인 '우리나라'를 결성해서 대표로 일하고 있고요.... 작년....여중생사망사건이후... 촛불시위가 있거나 큰 집회가 있는 곳이면 그 친구의 노래단체는 꼭 그 자리에 참석해서 노래를 부릅니다.
그 친구를 아는 대학동기들...후배들 선배들은...다들 한달에 만원이라도 돈을 모아서 그 친구에게 부쳐줍니다. 왜냐면 그 친구가 가는 길이 정의로운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옳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 자신이 그 고난의 길로 가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특히 나이가 먹을수록 더더욱 그렇죠...
이곳 PGR의 분들은 이런 생각에 동의 하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지금 그 친구가 가는길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같이 갈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게....그 친구에게 참으로 미안합니다.
오늘은 미군의 장갑차에 여중생 2명이 목숨을 잃은지 1주년 되는 날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투쟁을 했지만 아직도 미군은 반성하는 빛이 보이지 않고 소파협정 개정에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네요
저녁에...와이프와 5살난 제 아들을 데리고 시청앞으로 갈겁니다.
힘없고 용기없고 소신없이 시류에 휩쓸려서 먹고살기 바쁜 어벙한 가장이지만.....
오늘 하루는 용기있는척하고... 촛불도 들고... 아직 철이없는 아들에게도 무엇이 옳고 그런지 가르쳐 주고 싶네요  
물론 그 친구가 나와서 노래를 부를텐데... 먼 발치에서나마 꼭 같이 따라부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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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진
03/06/13 09:29
수정 아이콘
아... 친구분이 천리마의 단장이셨군요... 어쩐지 우리나라와 목소리가 비슷하다 했는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같이 노래 따라불러도 되겠습니까?^^
맛있는빵
03/06/13 09:39
수정 아이콘
네..물론..얼굴을 뵙진 못해도.. 같은 장소에서 한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같이 외칠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플토매냐
03/06/13 09:45
수정 아이콘
저는 운동권이나 시위 같은것 참 허망하다고 생가하는 사람중에 하나인데요. 그사람들은 그 사람들 나름대로의 신념은 있으니 그 친구분의 얘기는 참으로 안타까워 보였네요.
마음이 정말 아프셨겠네요.
그분은 좋게 결혼도 하시고 건전하게 되셔서 좋으시네요.
제가 아는 분중에는 안 좋게 되신분이 있어서 더 운동권에 대해서 허망하게 생각되는 것 같습니다.
몽땅패하는랜
03/06/13 09:59
수정 아이콘
맛있는 빵님/ 저두 90학번입니다^^. 참 멋있고 치열하게 사시는 분을 친구로 두셨군요. 저 역시 대학때 친구 두 명이 운동권이었는데 덕분에 저는 졸지에 회색분자가 되어버렸다는 아픔이ㅠ.ㅠ. 천리마나 우리나라에 대해서 아는 것은 전무하지만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져볼까 합니다. 정말 우리나라가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옳은 판단을 해준 것은 언제나 이름없는 다수의 시민들과 자신의 이익같은 것은 포기하고 대를 위해 희생한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이제는 그 추억이 두분에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길 바랍니다. 저는 힘이 없지마는 따뜻한 웃음과 기도를 두분에게 보내드리겠습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마라(웬 오바랍니까 이게? ㅠ.ㅠ)
난폭토끼
03/06/13 10:01
수정 아이콘
전 운동권 자체는 싫어하지 않지만 '우리학교(부산대학교)' 의 총학생회만큼은 정말 저주증오합니다.

뭐 그건 여담이고 여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것이 있다면 지지와 사랑,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상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구요...

삼봉 정도전의 아버님이신 충의공 께서는 과거에 급제하여 출사를 하는 도전을 앞에두고 이런말씀을 하셨다죠,

'장차 바른말을 할때에는 굽힘이 없어야 하고, 옳은일을 할때에는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대부의 정신이자 기개이다.'

라고요...

우리가 어떤삶을 살든 무엇이 정의라 여기든 그것을 행함에 있어서는 굽힘이 있어서는 안될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맛있는 빵님과 친구들이 그분께 다문 만원이라도 꼭 부친다는 말씀에서 충의공의 기개가 생각이 나는군요...
IntiFadA
03/06/13 11:11
수정 아이콘
천리마와 우리나라 사이에 그런 연계성이 있었군요....몰랐어요....
친구분의 앞길에는 지나온 날보다 더 나은 날들만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03/06/13 11:48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 예전 운동권에서 율동을 배우던 후배를 따라 장난삼아 율동을 배운적이 있었습니다. 군대에 가게 되었고 한동안 잊었는데 부대 체육대회때 응원단장이 되었죠.(내성적인 제가 그런 일을 맡게 될줄은...) 박수를 치는 부대원들 앞에서 무의식중에 펼쳐진 응원모습은 바로 그 율동이었습니다. 부대원들은 왠지 절도가 있고 진짜 무슨 응원단같은 모습에 환호성을 울렸지요. 하지만 중간에 율동을 멈추고 얼버무려야 했습니다. 괜히 뜨끔했다고나 할까요^^ 지금쯤 그 후배들도 결혼을 하고 잘 살고 있을지...... 아니면 아직도 저처럼 홀애비에 빠듯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지...... 그것도 아니라면 아직도 저 위의 친구분처럼 그렇게 자신의 신념을 펼치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03/06/13 11:54
수정 아이콘
전 85학번(-_-;;)입니다. 그때도 운동권의 활동이 무척 많은 때였죠.
저는 그런 것에 대해 정말 무지하고 큰 관심을 보이지도 못했습니다. (별로 아는것이 없었죠..;; ) 그때 고등학교때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었는데 서로 집도 가까웠고 자주 놀러갔었죠. 그 친구 형도 운동권이었고 얼마후에 수사관의 추적을 피해 집을 무척 오래 비웠었는데 그 친구도 그 형의 영향때문인지 그것에 대해 심취했었습니다.(약간 단어가 부적절하게 나와도 이해를..;;) 전 뭣도 모르던 시절이었고 그 친구가 이야기하는것에 대해 '응...응... 그렇구나...'라는 정도였는데 하루는 그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집에 오는 중에 시커먼 차가 우리집까지 온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차안에서 양복입은 사람 둘이 나와서 저의 집을 힐끗 쳐다보더군요. 그 전에 그 친구 집 건너편에서 그 차를 얼핏 본 것 같았는데 그것이 따라올 줄이야... 아마도 그 친구 형이 수배중이어서 저까지 의심해서 따라온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다른 이야기가 나왔는데 글을 읽다보니 그때 생각도 나고 그런 상황속에서도 좋은 친구분을 두신것에 대해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그 믿음 하나로 끝까지 밀고 나가는 그 의지도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줍니다.
맛있는 빵님과 그 친구의 우정이 계속 변치 않으시길 바랍니다.
03/06/13 14:07
수정 아이콘
천리마.. 우리나라.. 피지알에서 이 이름들을 접하게 될줄은..^^;; 우리나라 열성팬으로서 정말 반갑슴다.. 그리고 맛있는빵님 같은 친구분을 두어서 그분도 정말 힘이될듯 하네요. 우리나라의 노래는 비단 '운동권'이 아니라고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노래들도 많아서 좋구요. 그리고 저도 화천에서 군생활을 했는데.. 같은 부대 선배님일지도 모른다는..
03/06/13 17:32
수정 아이콘
창살아래 네가 깃든 곳 살아서 만나리라...

아아 정말 가슴 뭉클해지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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