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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1/18 12:36:24
Name edelweis_s
Subject Protoss : 영원한 투쟁 01~02
Protoss : 영원한 투쟁


1. Aldaris





  아주 늦은 시각이었다. 낮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을 거리엔 어둠이 짙게 깔리고, 사람들은 그 어둠에 쫓겨나기라도 한 듯,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란하게 정렬한 군인들을 연상시키는 가로등만이 길가를 따라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가끔씩 흙먼지와 엔진소리를 내며 어둠을 가로질렀던 자동차들의 질주도 이젠 뜸해졌을 때였다.

  지지직-. 홀연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는 그다지 시끄러운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디넓은 거리를 꽉 메울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주위가 너무 고요한 탓. 괴음이 흘러나오는 근원지에는 어느새 키 큰 남자 한 명이 발에 땅을 딛고 있었다. 마치 본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처럼…….

  짙은 어둠을 헤집고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색이 짙은 검은 눈썹과 대비되는 푸른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난다. 남자는 키가 아주 크고, 잘 다져진 근육이 몸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곁눈질로 한 번 스쳐보아도, 장대한 기골이 눈에 박힐 듯한 훌륭한 신체였다.

  강철에라도 박혀 들어갈 듯한 남자의 날카로운 시선은 사방을 에워싼 어둠을 일직선으로 관통하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주위를 경계하던 남자의 눈매가 갑자기 가늘게 떨리기 시작한다. 남자의 차분한 푸른색 눈은 잊혀진 줄만 알았던 기억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치는 분노에 점점 이성을 잃어 가며 살기등등한 안광을 뿜어냈다. 곧이어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지고 입술이 씰룩씰룩하더니-

  “케리건……! 그리고 아이어를 등진 배신자들……! 모두 죽여버리겠다-!”

  남자의 입에서 폭발하듯이 터져 나온 일갈은 땅을 울리는 무서운 기세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그나마 어두운 거리에 한 가닥 빛을 빌려주고 있던 가로등들은 엄청난 파워가 담긴 목소리에 하나둘씩 펑펑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깜빡깜빡-……. 결국 마지막 가로등의 불빛마저 꺼져버리고 온 세계가 어둠과 고요에 휩싸인 것 같았다.

  늦은 밤……. 남아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농도 짙은 어둠 속에 숨겨져 있는 무한한 분노 뿐.

                                         ********************


  잔혹한 광경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시선을 두는 곳마다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과 콧속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비릿한 피 냄새……. 나는 이미 그 피로 물든 땅,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의 중추에 놓여 있었다. 나뿐이 아니라, 끝없이 샘솟는 지혜를 가진 페닉스Fenix, 어둠에 몸을 숨기고 적에게 심판을 내리는 제라툴Zeratul, 인간이지만 프로토스 못지 않은 용기를 가진 레이너Raynor……. 그리고 나를 따르는 수많은 템플러Templer들. 모두가 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소용돌이의 중심에 놓여 힘겨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소용돌이의 근원은 바로- 오버마인드Overmind다.

  - …….

  이건 잔혹할 정도로 거세게 몰아치는 소용돌이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카오스Chaos도 아니다. 오버마인드……. 저 흉측한 괴물만 물리치면 모든 것이 평화로워 질 수 있다. 악취 나는 크립으로 뒤덮여버린 우리들의 고향 아이어Aiur와 고향을 지키기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내던지는 템플러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 전함 간트리쏘, 좌현으로-!

  나의 모함 간트리쏘의 거대한 선체가 천천히 좌측을 향해 몸을 꺾기 시작했다.

  - 전속력 전진-! 목표는 오버마인드!

  위이잉-! 간트리쏘의 후미에 달린 추진기에서 신성한 사이오닉 에너지를 뜻하는 푸른 불꽃이 거세게 터져 나왔다. 나와 모함 간트리쏘에 탑승한 템플러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전진하는 간트리쏘에 몸을 맡기고- 그리고-

  - 자폭한다!

  그 순간만큼은 잔혹한 참상은 더 이상 내 눈 앞에 보이지 않았다. 과거의- 너무나도 아름답고 깨끗했었던 우리의 고향- 아이어가 펼쳐져 있었다. 아니, 그 것은 과거가 아니었다. 내가 나의 몸을 던져 지켜낼 나의 고향, 프로토스의 고향…. 아이어가 ‘되찾을’ 미래의 모습이었다. 갑자기 아이어의 모습이 사라졌다. 나의 얼굴을 직접 볼 순 없지만 난 확신한다. 내 눈은 감상이나 우수에 젖어 있다거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점점 더 크게 다가오는 점 = 오버마인드를 향해 끝없이 솟아오르는 증오를 표출했을 뿐…….

  콰지지직!

  - My life for Aiur!

  - Doom to all threaten Homeworld!

  오버마인드와 충돌하는 순간 들려오는 템플러들의 목소리. 아아, 한없이 용감하고 투지에 불타는 프로토스의 템플러들아. 너희들의 이름은 젤-나가Xel-naga 사원에 새겨져,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영광을 누릴 것이다. 그렇다……. 모든 것은 오직 하나 아이어를 위하여…….

  “My life for Aiur!"

                                              ********************


  “야, 강민!”

  “……!”

  뾰족한 칼처럼 날이 선, 둔탁한 몽둥이처럼 울리는 호통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나는 무겁게 가라앉은 눈꺼풀을 억지로 치켜 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덕분에 정면을 향하게 된 시선은 바로 내 앞에 계신 선생님의 얼굴로 향했다. 난 멍하니 입을 벌리고 선생님의 모습을 응시했다.

“너 이 눔의 자식-! 수업시간에 식은땀을 흘려가면서 잠을 자? 썩 교실에서 나가!”

  뭐, 내 입으로 이런 말 한다는 것이 좀 그렇긴 하지만- 수업시간에 잠을 자서 쫓겨나는 건 내게 그리 흔치않은 일도 아니다. 이미 학급 수준을 넘어 전교에 퍼져버린 나의 별명은 ‘잠만보’다. 그러니까 이제 선생님께 혼나 교실 밖으로 쫓겨나는 일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 정도까지 와버린 것이다.

  -라곤 하지만. 그래도 친구들 보기 부끄러운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겐 늘 ‘밤늦게까지 공부해서 그래’라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지만, 시험을 본 후에는 그 참담한 결과에 더욱 놀림당하는 일만 늘어날 뿐이었다. 쳇, 잠이 유난히 많은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거지. 애써 자위를 해봐도 자꾸 쏟아지는 수마(睡魔)는 내게도 전혀 반갑지 않은 존재였다.

  더군다나, 요즘엔 이 수마가 제 친구인 몽마(夢魔)라도 데려왔는지, 잠에다가 내용을 알 수 없는 이상한 꿈까지 겹쳐 날 괴롭히고 있었다. 근래에 잠 들 때 항상 꿈을 꾸곤 했던 것이다. 신기한 것은- 식은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생생했던 꿈이 눈만 뜨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기억나지 않는 다는 점이었다. 그 꿈은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일이었다. 어딘가 낯설지 않고, 가슴이 저리도록 장열(壯烈)한……. 그렇게 날 듯 말 듯 기억이 나지 않는데, 정말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원래도 잠이 많았던 내게 자꾸 정체를 알 수 없는 꿈이 찾아와 잠을 설치게 만드니, 평소보다 수업시간에 조는 빈도수가 높아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수업시간에 잠깐 조는 틈에도 그 몽마가 찾아와 날 괴롭히다니. 허허.

  선생님의 노여움과 아이들의 놀림을 애써 무시한 채 밖으로 나왔다. 땀으로 흠뻑 젖은 옷 탓에 가뜩이나 추운 복도가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떨치려 해봤자 이미 복도를 가득 에워싸고 있는 차가운 공기는 끈질기게 내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난 양손으로 각각 반대편 팔을 문지르며 애처롭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문득, 창 밖의 광경이 내 시선을 끌었다. 제대로 청소되지 않아 먼지가 껴 불투명해진 유리는 용케도 밖의 광경을 투영해 내 눈에 전달했다. 학교 후문과 마주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입구였다. 점심시간이 다가와서 그런지 한가롭게 거리를 노니는 할아버지들도, 부산하게 수다를 떨며 걸어가는 아줌마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 곳엔 양복을 입은 키 큰 남자와, 파란색 잠바를 입은 호리호리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는 광경이건만 난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호기심에 그 둘을 계속 주시했다. 그리고-

  난 한순간 나의 눈을 의심했다. 눈을 세게 감았다 떠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 눈은 정상이었고, 현실의 상황을 직시하고 있었다. 파란색 잠바의 양손이 날카롭고 긴 칼처럼 돌변했다. 칼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팔 전체가 날카로운 칼로 변화했던 것이다. 파란색 잠바가 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금방이라도 양복의 목을 내려칠 태세였다.

  잠깐- 이봐, 아저씨 위험하잖…. 미처 소리칠 틈도 없이 파란색 잠바의 팔-이 변한 칼-이 맹렬한 기세로 양복의 목을 향해 짓쳐들었다. 목구멍 언저리까지 나온 소리는 무언가에 의해 턱 막혀 버리고, 엉겁결에 손을 뻗었다. 지금 두 남자가 서 있는 곳의 살기등등한 대기가, 팽팽하게 긴장된 공기가 여기까지 들어온 듯 피부를 경직시켰다. 그리고-

  나의 뇌는 방금 내가 본 그 장면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듯 강하게 저항했다. 말 그대로 찰나에 일어난 일이었다. 난 강하게 요동치는 나의 뇌를 진정시켜 내가 본 장면을 하나하나 조립했고, 경악에 물든 눈을 치켜떴다. 분명히- 파란색 잠바는 양복을 향해 칼을 내리쳤었고 목 바로 옆까지 칼날을 들이밀었던 상태였다. 그런데 오히려 목이 날아간 것은 파란색 잠바 쪽이었다. 양복이 무엇을 했는지는 보이지도 않았다. 엄청나게 빠른 움직임이었는지, 아님 요술이라도 부린 건지 양복은 너무나도 쉽게 파란색 잠바의 목을 따버렸다. 터져나오  듯 솟구치는 피는 양복의 얼굴과 그가 밟고 있는 땅을 붉게 색칠했다.

  갑자기 온몸의 털이 곤두서며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구역질을 해대기 시작했고,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이 떨려왔다. 그리고 어쩌다 창문 밖으로 넘어간 시선이 양복과 부딪혔다.

  양복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끝이 보이지 않는 짙은 파란색 눈동자는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은 채, 그저 무심한 눈길로 날 향하고 있었다. 난 그 말라붙은 눈빛에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가 중얼거린 말이 여기까지 들릴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난 똑똑히 들었다. 현실감이 결여된, 잔뜩 갈라진 목소리.

  - 날 기억하나? 오랜만이군, 테사다.













** 저번에 올렸던 거 분량이 작아서 같이 올립니다.

에휴 약간 어거지로 쓴 듯한 느낌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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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비
05/01/18 13:45
수정 아이콘
오옷+_+ 오랫만에 보는 소설이군요 +_+ 건필하세요~
키쿄우™
05/01/18 13:59
수정 아이콘
저번에꺼 후편인가요?; 그런데. 그 양복암살자가 알다리스인가요?
흐음.. 스토리가 참 재밌네요
계속 써주시길 ~
아케미
05/01/18 15:48
수정 아이콘
"야, 강민!"이라니요T_T 점점 재미있어집니다. 계속 기대합니다~ ^^
양정민
05/01/19 08:22
수정 아이콘
오우...흥미진진한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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