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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6/25 22:29:53
Name 세이시로
Subject 그때 그 경기 - (1)
1999년 스타리그가 출범한지도 어언 7년째. 스타크래프트의 지속성이라는 끝없는 그 존재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아오면서도 e-sports는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두운 스튜디오 안에서 게임에 미친 어떤 나이어린 사람들이 하던 그 리그는 지금 수만 관중을 불러모으고 수십만 명을 티비 앞에 앉게 합니다. 그들 중에는 수억원대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도 있으며, 그들의 경기 하나하나가 넷상에서 큰 화제가 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그들의 경기를 지켜봐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팬'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로 우리입니다. 하나의 사회적 열풍이 된 e-sports와 프로게이머들의 화려한 모습을 동경하는, 비교적 팬이 된지 오래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7년, 아니 그 이전부터 장차 프로게이머라는 이름을 당당히 달게 된 그들과 함께 해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역사는 항상 변하는 것이고 과거는 현재와의 대화입니다. 하지만 지나간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당위성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이 글은 바로 그런 생각을 어느날 품게 된 한 올드팬이 쓰는, 작게는 추억의 편린들일 것이며, 크게는 그들과 우리의 역사를 기록하고픈 마음의 반영일 것입니다.

지금도 지난 7년간의 한 경기 한 경기가 거의 대부분 기억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얼굴을 비추는 사람 뿐만 아니라 단 한순간 얼굴을 내밀었다가 사라져간 그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 글이 올드팬들에게는 향수와 추억, 기억의 재생이 되고 이전의 역사를 모르는 팬들에게는 과거를 알게 되는 어떤 매개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금과는 약간은 설익은 열정을 품었던 그들이 펼쳐나간 그때 그 경기들을 하나 하나씩 써 볼까 합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최진우 선수입니다. 제1호 프로게이머 신주영 선수가 있었고 프로게이머로는 가장 유명세를 떨치던 쌈장 이기석 선수가 있었지만 스타리그의 시작을 열었던 선수는 바로 이 최진우 선수가 아닐까 합니다. 그는 스타리그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인 '재미'라는 것을 선사한 최초의 게이머였습니다.

1999년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시초가 된 99 PKO(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이 열렸습니다. 당시는 이외에도 많은 리그들(KIGL, KPL 등등)이 있었고 아마추어 팀들과 선수들이 이런 대회들에 출전했으나 이 99PKO는 특별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바로 전경기를 케이블 방송으로 중계하는 최초의 방송 리그였다는 것입니다. 당시 보급 단계에 있었던 투니버스를 통해 전국에 중계된 바로 이 리그가 오늘날 스타리그의 시발점이었습니다. 정일훈, 엄재경, 김도형이라는 전설적 중계진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 리그였습니다.

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의 참가선수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A조 봉준구, 김태훈, 최진우, 김성기
B조 임우진, 국기봉, 김태목, 정재철
C조 김동구, 빅터마틴, 이기석, 박상규
D조 김창선, 조정현, 최지명, 장경호

지금까지도 알려져 있는 선수들(김창선 해설자, 조정현 선수 등)도 있지만 당시 최고의 게이머는 누구라 해도 Ssamjang 이기석이었습니다. 이기석 선수는 맞이하는 경기마다 새로운 전략과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그의 이름값을 톡톡히 했습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약간은 독특한 경기를 보여주는 선수가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그가 FreeMuRa 최진우였습니다.

오늘 소개드릴 경기는 바로 이 최진우 선수가 16강 마지막 경기에서 태니 김태훈 선수와 가졌던 경기입니다.  지금까지 최진우 선수에 포커스를 맞춘 감이 있는데 김태훈 선수에 대해 잠깐 소개드리자면 그 또한 무시할수 없는 올드게이머로 초기 스타방송의 쌍벽을 이뤘던 iTV랭킹전1차리그에도 출전했던 게이머였습니다. 2001년부터는 보이지 않다가 재작년쯤 어떤 신문의 기사를 통해 그가 나이를 속인 게이머였다고 알려지기도 했습니다(대회 출전자격에 나이제한이 있던 당시는 이런 일이 많았습니다).

같은 조에서는 봉준구 선수가 일찌감치 2승으로 8강을 확정지은 상태에서 1승 1패인 두 선수는 8강을 놓고 맞붙은 자리였습니다. 경기맵은 로스트 템플(이 대회의 공식맵은 로스트 템플, 아쉬리고, 쇼다운, 스노우바운드였습니다), 최진우 선수는 12시 저그, 김태훈 선수는 6시 프로토스였습니다. 최진우 선수는 입구 해처리에 이어 앞마당, 김태훈 선수는 커세어 - 다크 전략으로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2게이트가 일반적이었는데 김태훈 선수는 커세어 다크로 앞마당을 빨리 가져가려는 의도였습니다.

커세어가 나오자 이에 맞서 최진우 선수는 특이하게도 히드라나 레어를 올리지 않고 챔버를 지어 입구해처리에 스포어를 만들어 오버로드를 보호한 뒤 미네랄 멀티까지 가져갔습니다. 그리고는 상당히 많은 수의 성큰을 본진입구해처리와 미네랄 멀티에 짓고 드론을 왕창 뽑기 시작했습니다. 김태훈 선수는 준비한 대로 다크로 정찰을 하며 앞마당에 빠른 멀티를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이때까지도 최진우 선수는 히드라덴이나 스파이어가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챔버만 지어져 있을뿐 뽑고 있는 것은 드론과 저글링 뿐이었습니다. 저그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김태훈 선수가 앞마당에 아콘과 다크를 모으며 8시 멀티를 가져갈 무렵, 갑자기 최진우 선수의 본진에는 해처리가 마구 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해설진도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이브가 올라가고 본진에 지어진 10개 가까이 되는 해처리에선 저글링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글링 한부대가 김태훈 선수의 앞마당으로 돌진해 가볍게 퇴치되었다 싶은 순간, 갑자기 미니맵에는 12시와 6시를 잇는 하얀 다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저글링 웨이브. 아드레날린 저글링들이 끊임없이 프로토스의 앞마당을 두들겼고 질럿 아콘 다크 포톤의 조합에 쉽게 죽어가던 저글링들이 어느 순간 폐허가 된 프로토스의 앞마당을 넘어 본진으로 돌격하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저그는 2시 앞마당과 본진, 미네랄 멀티까지 먹었고 멀티마다 드론이 꽉 차 있는 상태, 프로토스에게 남은 것은 8시밖에 없었습니다. 김태훈 선수는 8시 입구에 포톤을 잔뜩 짓고 입구를 다크와 질럿으로 필사적으로 사수했습니다. 이에 최진우 선수의 선택은 전 해처리에서 뽑는 저글링의 일렬 어택땅이었습니다. 포톤과 다크의 수비에 저글링들은 언덕 위로 올라가보지도 못하고 피바다를 이뤘으나 그 행렬은 끝이 없었습니다. 다크가 한마리 두마리 잡히고 포톤이 하나 둘씩 어떻게 파괴되어 갔으며 끝내 김태훈 선수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질 무렵 gg가 나왔습니다.

8강진출이 걸린 중요한 경기를 이렇게 황당하게 이겨버린 최진우 선수에 대해 중계진은 그저 놀라와할 뿐이었고,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던 시청자들에게 최진우란 이름은 그때부터 서서히 각인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그때 그 경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에는 99PKO 8강 경기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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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높이^^
05/06/25 23:28
수정 아이콘
FreeMuRa 최진우...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요...일명 사우론 저그를 방송경기에서 유감없이 보여준 선수지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저그 유저들 미니맵에 웨이브 만드는 것 무지 유행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웃음밖에 안나오지만 말이죠...^^;; 요새는 일렬로 들어와주면 얼씨구나 하면서 막는 플토 유저들이 넘쳐나지만 그 당시 대세는 정말 물량이었습니다..-_-;; 다른 글에서 아랑 박태건 선수 이름을 보고...이 글에서 프리무라 최진우 선수를 보고...감회가 새롭네요...^^
My name is J
05/06/26 00:40
수정 아이콘
멋진데요.
이글이 많은 분들의 호응을 받으면 더 좋겠습니다.
기억하는 이들은 기억을 해줘야 하는 거거든요! 으하하하-
덕분에...잘 읽었습니다.^_^
05/06/26 00:58
수정 아이콘
사실 최진우 선수의 겜을 본것은 (프리챌배 후) 왕중왕전 5연패의 참담함 성적뿐이어서 잘 몰랐죠. 그런데 다시금 새롭게 보이네요. 이렇게 옛선수들을 재조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좋은글 ^^
하늘높이^^
05/06/26 01:11
수정 아이콘
왕중왕전의 히어로는 기욤 선수였죠. 국기봉 선수 상대로 2:0으로 뒤지고 있다가 3:2로 역전승을 일궈내는 모습에 감동받아서 본격적으로 스타를 보게 됐습니다.
goEngLanD
05/06/26 01:59
수정 아이콘
멋짐
The Drizzle
05/06/26 02:44
수정 아이콘
그경기 기억납니다.
본진부터 출발해 일렬로 '꼬라박'하는 저글링들을 보면서
엄재경 해설이 어이없는 웃음을 웃으며
'허허허 저거 입구쪽에 좀 모아뒀다가 갈수도 있을텐데...허허허'
하던 멘트도 기억이 납니다.

한동안 친구들과 함께 끊임없이 회자했던, 당시로써는 (물론 지금봐도 어이없을정도의 쇼크가 올만한 경기입니다.)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경기였죠.

아콘, 포톤캐논, 다크아콘, 다크템플러가 버티고 있는 8시 지역의 좁은 입구를 본진부터 출발한 '일렬'(정말 일렬로 달려왔습니다.)의 저글링들이 '양'으로 쓸어내는 장면이었으니까요.
최진우 선수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것도 바로 이경기였습니다.

좋은기억 되살려 주신 글쓴분께 감사하네요^^
The Drizzle
05/06/26 02:53
수정 아이콘
FreeMuRa 정말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아이디입니다. 이선수의 정말 놀라운 경기의 또 하나는 나중에 '그때 그경기' 에서 분명 나오겠지만 김창선 선수와의 경기였습니다.

자신의 주종족이 저그인 최진우 선수와, 테란최고수로 알려져 있었던 김창선 선수가 대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창선 : 내가 테란 안하고 플토해도 니 저그 이길수 있겠다.
진우 : 제가 저그 안해도 형 테란 이길 수 있어요.
...대충 이런 대화가 오갑니다. 그리고 각자 종족을 바꾸어
최진우 선수 테란, 김창선 선수 플토를 선택한 후 경기에 임하죠.
[물론 경기 가운데 해설들의 멘트 가운데 이 이야기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혹시 김창선 해설께서 이 댓글이나 나중에 올려질 글을 보시게 되면 자세한 내막을 알려주세요-0-]

메카닉이 막 정립되어 투팩이 정석화 되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최진우 선수는 투팩으로 시작하고, 김창선 해설 역시 정석적으로 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사실 꽤 오래된 경기라 자세한 경기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역시 최진우 선수의 무서움(독특함?)이 잘 드러난 경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창선 선수의 프로토스가 막 캐리어로 전환하는 시점에서... 최진우 선수의 병력이 내려옵니다. (최진우 선수는 12시였고 김창선 선수는 6시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2시였던가요?)

아무튼 위의 글에서 알려진 저글링 만큼의 탱크가 최진우 선수의 본진에서 출발하는 모습이 옵저버에 잡힙니다. 대략 3부대... 그리고 수많은 팩토리에서는 계속 불이 들어오고... 탱크는 줄지어 계속해서 내려옵니다. 캐리어가 떠서 마구 공격을 하지만 정말 '개'같이 밀려오는 탱크들은 엄청난 화력으로 김창선 선수의 본진을 유린하며 GG를 치게 만듭니다.

이윤열 선수가 유행을 시켰던 엄청난 수의 탱크들... 그것의 방송경기 원조는 최진우 선수였던 것입니아. 그때 받았던 쇼크... 아직도 그 쇼크는 잊혀지지가 않네요.
05/06/26 02:55
수정 아이콘
매우 실감나고 정성스럽게 이 글을 써주신 세이시로님께 감사드립니다ㅋ

PGR분들이 제목만 보시고는..

"그냥 시시한 추억담인가보다.."

이런 생각인듯합니다;; 댓글이 별루없네요;

뭐 저두 보통 제목만 보고 그 글의 질과 재미를 결정해버리지만 -_ -..(아주나쁜습관;)

댓글 수로도 평가를 하죠 -_ -;

아; 우연히 윗글을 누르려다가 실수로 이 글을 보게 되었는데 저에겐 행운이네요;

보통 댓글 잘 안달지만;하나 달께요 -_~ 사람들이 좀 많이 봤음해서;

또 써주세요~
05/06/26 08:16
수정 아이콘
하아..이런건 어디서 다시 볼 수 있을까요...ㅠㅠ 예전에 전 게임큐거밖에 보지 못해서...
눈시울
05/06/26 09:06
수정 아이콘
저도 이 경기 후반부는 본 것 같네요. 8시에 프로토스가 있고 끊임없이 몰려드는 저글링.. 이 경기 였군요. ^^
아. 그리고 이 경기는 아마 다시 볼 수 없을겁니다(저도 예전에 열심히 구하러 다녔는데 결국 하나로 통신배만 구할 수 있었죠. ㅠ_ㅠ;;;;)

혹시 지금이라도 PKO, 프리챌배, 왕중왕전 볼 수 있는 곳을 알고 계시다면 리플 좀 부탁드려요ㅠ_ㅠ
세이시로
05/06/26 11:44
수정 아이콘
읽어주시고 좋은 반응까지 보여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The Drizzle님. 사실 이 글을 쓰면서 그 경기도 같이 써버릴까 했습니다. ^^ 이렇게 먼저 말해버리시니 다음 글은 어찌 쓴답니까~! ^^;;;
정현준
05/06/27 11:44
수정 아이콘
아~ 그 탱크웨이브는 정말 경악이었죠. 보면서 '뭐 이런 x가 다 있나~' 했었죠(나쁜 뜻 아닙니다~ 정말 대단했다는~)
Peppermint
05/07/02 12:15
수정 아이콘
아케미님 리뷰 덕분에 또 좋은 글 하나를 찾아 읽네요..^^
다음편도 기대할께요~
눈시울
05/07/02 12:38
수정 아이콘
The Drizzle님 때문인가요.. 다음 글 기대하고 있는데 올라오지 않는군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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