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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6/29 13:58:51
Name Bar Sur
Subject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짧은 기억


호박색 조명이 비추는 레스토랑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남녀가 앉아있다. 두 사람의 거리는 약 50cm에 지나지 않고, 테이블 위의 커피잔에는 양쪽 모두 손이 향해있지 않다. 무언가 말을 건네는 듯한 남자의 시선은 여자를 향하고 여자의 시선은 테이블 쪽으로 내리깔려있다. 그저 남자는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손에 쥐고 다만 만지작거릴 뿐인듯 보인다. 그저 여자는 왼쪽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지탱하고서 그렇게 턱을 괴고 있다.


우리는 흔히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를 추측한다. 테이블 하나에 한정된 그 둘 사이의 거리, 애매모호한 시선, 끝을 흐리며 주고받는 말투, 조심스러운 손동작. 그리고 우리는 기억해낸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빛이 나던 순간들을.


누가, 무엇이, 그들을 만나게해서 지금 이곳에 있게 하는가.

그것은 도저히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 당사자의 입을 빌어 듣는 걸로는 아무래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세상에는 놀랍게 아름답지만 결코 손대거나 꺾어서는 안 되는 꽃도 존재한다. 하지만 반대로 아무리 저어하고 만류하더라고 결국 꺾어버리고 마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문장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건 상황과 사건이 만들어내는 인과관계의 단면들 뿐.


그렇기에 다만 우리는 기억해낼 수 있을 뿐이다. 그녀와 함께 했던 그 날 레스토랑의 따스했던 조명과, 한심스러웠던 내 소심함과, 그녀의 미묘한 웃음.



이 순간,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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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날이조
05/06/29 14:22
수정 아이콘
멋진글이네요. 가슴이... 쓰리네요... OTL
05/06/29 14:30
수정 아이콘
누두 크로키를 보는 것 같은 느낌 이군요...

뭔가 덧붙혀 쓸려다가... 지우고 말았습니다.

이글은... 이순간 가장 빛나기 때문에....
05/06/29 15:05
수정 아이콘
ㅡ ㅡ b 쵝오십니다.. .. 쿨럭 //
마요네즈
05/06/29 15:09
수정 아이콘
花樣年華..... 흠.. 역시 Bar Sur님의 문장력은.. 대단하다는..
05/06/29 15:31
수정 아이콘
잠깐동안 '내 인생에서 가장 빛이 나던 순간들'을 기억했습니다.
Bar Sur님께 감사를...
마그리트
05/06/29 17:05
수정 아이콘
저 영화를 같이 보던 여자가 다른 남자랑 결혼한지 벌써 어언 5년 +_+
젠장.
마리아
05/06/29 20:45
수정 아이콘
제 싸이에 올릴께요^^!
그믐달
05/06/29 22:05
수정 아이콘
결국 내 인생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이 순간'이겠죠..
나머지는 그냥 아름다운 기억일테구요... 아후...왠지 싸~~..하다..;;
05/06/30 00:18
수정 아이콘
멋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Endless_No.1
05/06/30 16:43
수정 아이콘
한줄기 감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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