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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5/10 20:17:19
Name Bar Sur
Subject [잡담] 치인설몽(痴人說夢)
저도 그건 압니다. 난중에 그에 15층이나 되는 아파트가 섰지요. 그 전엔 황토에 푸른 밭 뿐이었다니까요. 색깔이 아주 선명해서 그런지 벌레도 잘 꼬이는 그런 배추밭이었죠. 여름날 밤에라도 그 근처를 지나칠라치면 반딧불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인린해서 아조 저절로 오금이 저렸지요. 아주 안믿겨질지 몰라도 진짭네다. 바로 거기 말입니다. 거기. 거기가 아조 사연많은 동네에요. 형씨도 살아봤다니 잘 알것 아니어요? 치녀가 출처모를 씨를 베어가지고 와서 동네 사람들이 거기서 보살펴줬거등요. 그러다 몇 년 못가서 곧 죽었지요. 어쩌다 죽었는지는 모르지요. 거야 뻔한 이야기 아니겠어요? 것도 모르고 우리는 그 근처에서 두꺼비를 향해 돌을 던지며 놀았더래요. 죽었는지 죽은 척 하는 건지 불깐 것 마냥 배를 뒤집고서 꼼짝않는 두꺼비를 보고 궁흉한 희열도 느꼈던 거지요. 너희들, 두꺼비 거죽이 벗겨지면 그 안에 독에 눈이 먼단다. 알것냐? 응? 그건 동네 어느 형의 말이었습니다. 도로 생각해보면 재미난 심술이었지요. 그건 왕두꺼비 때려잡네 어쩌네하면서 천둥벌거숭이로 동네 이곳저곳을 싸돌아다니던 우리를 겁주기 위한 거니까 말예요. 그런데 그날 우리는 뒤집어진 두꺼비 배에서 검은 그을음 같은 것을 보았어요. 진짜라니까요? 내장이 튀어나온건지도 몰르것네요. 그 형의 말이 떠올라서 우리는 저절로 옴씰해져서 냅다 두꺼비 시체를 뒤로 하고 달렸죠. 집에 와서는 수돗물에다 눈이며 코며 얼굴을 빡빡 문질러 씻구요.

근데 하필 그날 그 계집이 함께 있었습니다. 어째선지 동네 아줌매들이 잘 챙겨주는 계집이었는데, 친구도 없이 갓밝이 때부터 하루죙일 100년 된 당산나무 아래 그늘에만 앉아있다가 해가 저기 뒷산너머로 거물거물해질즈음이면 마을을 한 바퀴 도닐어다니는 게 낙인 계집이었어요. 평소에는 여간 얼러도 데면데면한 것을 어쩌다 그날이 뭔날이었는지 따라왔었지요. 어린 것이 제법 늙숙한 테가 있는 그런 아였어요. 안 그래도 따라다니면서 짱알짱알 거리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것이 아조 소슬한 데가 있더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두 눈가에 묘한 푸른 빛이 도는 것이 형형하기까지 했지요. 그 계집 출처를 몰라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여튼 일이 틀어질려고 미리 정해져있었는지, 하필이면 그놈의 두꺼비를 때려잡아놓고 나랑 남자놈들만 그얘를 거기 고대로 놔두고 도망쳐온겝니다. 그만큼 황망했던 게지요. 동네방네 뽀록나면 집안 챙피할 일이기도 해서, 어린마음엔 그게 가장 걱정이 되어서 그 계집을 달래보려고 무던히 애를 써야했지 않겠어요? 근데 그 일로 그 계집애가 지르퉁해서 그 뒤로는 다시는 말도 안 겁디다. 그야 불언가상이지요. 근데, 그래도 그리 나쁜 계집은 아니었어요. 참말로. 말입니다. 내 말이 이상한가요? 근데 진짜 나쁜 계집은 아니었어요. 근데 내가 지금 이 이야기를 왜 하고 있는 겁니까? 어허, 낸들 알겠습니까? 치인설몽(痴人說夢) 듣는 셈 치세요. 그냥 거기에 푸른 배추밭에 배가 뒤집힌 두꺼비와 출처 모를 계집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 위로 15층짜리 아파트가 세워졌구요. 형씨는 그것도 모르고 거기에 살았나요?

--

오랜만에 학교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진득하게 소설이나 읽을 여유가 있었는데,

내가 읽으려던 책에 주인모를 책갈피가 끼어있었다.

그 주인과 책갈피에 얽힌 사연을 생각해보다가 잠이 들어서 다음 강의에 지각할 뻔했다는 건 아주 사소한 이야기다.

그 짧은 잠결에 책갈피와 그 주인이 아니라, 윗글의 사연을 꿈꿨던 건 아무래도 쉽게 이해하긴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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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lla-Felix
06/05/10 22:00
수정 아이콘
재미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Nada-inPQ
06/05/11 00:45
수정 아이콘
바서님/ 오랜만입니다. 나름대로 바쁘다는 이유로 그러고 보니, 최근엔 거의 들르지도 못했군요. 잘 봤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길..
06/05/11 06:2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건강히, 잘 지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바래왔던것처럼요.
빵과장미
06/05/11 09:37
수정 아이콘
치인설몽이라.. 바보에게 꿈이야기를 해준다는 뜻인데, 곰곰이 되씹어 생각해보니 조금 기분이 나쁘네요.
독자들이 치인이라는 건데, 무슨 의도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06/05/11 09:46
수정 아이콘
Bar Sur 님이 스스로에게 '치인'이라 표현한 듯싶은데요.
마지막 네 줄을 보면 말이죠...
06/05/11 11:02
수정 아이콘
국어사전
치인-설몽(痴人說夢) [명사] [치인이 꿈 이야기를 한다는 뜻으로] ‘종작없이 허황한 말을 지껄임’을 이르는 말.
한자사전
痴人說夢치인설몽
어리석은 사람이 꿈 이야기를 한다는 뜻으로, ①종잡을 수 없이 되는 대로 지껄임을 이르는 말 ②설명(說明)이 요령(要領)부득임의 비유(比喩)

한마디로, 헛소리란 말입니다.
빵과장미
06/05/11 11:48
수정 아이콘
Bar Sur님/ 그 국어사전과 한자사전은 조금 이상한데요. 제가 알고 있는 '치인설몽'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남송(南宋:1127∼1279)의 석혜홍(釋惠洪)이 쓴《냉재야화(冷齋夜話)》〈권9(卷九)〉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당나라 시대, 서역(西域)의 고승인 승가(僧伽)가 양자강과 회하(淮河) 유역에 있는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지방을 행각할 때의 일이다. 승가는 한 마을에 이르러 어떤 사람과 이런 문답을 했다.
"당신은 성이 무엇이오[汝何姓]?"
"성은 하가요[姓何哥]."
"어느 나라 사람이오[何國人]?"
"하나라 사람이오[何國人]."
승가가 죽은 뒤 당나라의 서도가(書道家) 이옹(李邕)에게 승가의 비문을 맡겼는데 그는 '대사의 성은 하 씨(何氏)이고 하나라 사람[何國人]이다'라고 썼다. 이옹은 승가가 농담으로 한 대답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이다.
석혜홍은 이옹의 이 어리석음에 대해《냉재야화》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는 곧 이른바 어리석은 사람에게 꿈을 이야기한 것이다[此正所謂對癡說夢耳].' 이옹은 결국 꿈을 참인 줄 믿고 말았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즉, 치인설몽(痴人說夢)은 치인이 꿈 이야기를 한다고 풀이할 것이 아니라 대치인설몽(對痴人說夢)의 줄임이므로, 치인에게 꿈이야기를 한다고 풀어야 할 말입니다. 잘못 실린 사전인 것 같습니다.
06/05/11 12:07
수정 아이콘
빵과장미님 // 틀렸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라면 얼마든지 뜻이 분화하거나 변형되었을 가능성 또한 있는 거죠. 아마도 고사로부터 의미가 변화된 것으로 사용되다가 그 새로운 의미로 우리말 사전에 실린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무엇보다도 저같은 경우엔 저 고사를 염두에 두고 사용한 것이 아니니까요. 물론 빵과장미님의 지적으로 그 본 의미와 고사까지 알았으니 그걸로 좋은 것 아닐까요? =) 지적 감사합니다.
06/05/11 12:12
수정 아이콘
국립국어원 발간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치인-설몽(癡人說夢)
「명」어리석은 사람이 꿈 이야기를 한다는 뜻으로, 허황된 말을 지껄임을 이르는 말.

이라고 되어 있네요...

빵과장미 님의 것은 네이버 백과사전에 실려 있고...

일교시닷컴에 의하면 원래 유래는 빵과장미 님이 이르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주석에 이렇게 달려 있네요. "'치인설몽'이란 말은 요즈음에는 본뜻과는 반대로 바보(치인)가 '종작없이 지껄인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음."이라고.
고려원북스에서 나온 <말힘 글힘을 살리는 고사성어>에도 일교시닷컴과 유사한 내용이 실려 있고요.
아마 원래의 유래와는 달리 뜻이 변한 경우가 아닌 듯싶습니다.
빵과장미
06/05/11 12:14
수정 아이콘
네. 그 말씀도 맞네요. 다만 제 뜻은 저 고사성어가 듣는 사람에 따라서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였답니다. Bar Sur님의 뜻이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알았으니 오해는 풀렸지만 말이죠.

Artemis님이 가져오신 국어대사전에도 그렇게 실려있는 걸로 보아 '치인설몽'은 고사의 유래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 온지 꽤 오래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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