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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7/21 10:54:07
Name 퉤퉤우엑우엑
Subject [소설] My Team-2
이 이야기는 완전한 픽션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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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우리 팀의 프로리그 성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다.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면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잖아.
재혁은 대답을 기다리는 듯 가만히 앉아서 앞에 있는 낮은 테이블 쪽을 주시한다.

"어..."

잠깐의 침묵이 있고서야 난 대답했다.

"우리 팀이 프로리그에서 내는 성적 말이라면, 상당히 못하고 있잖아. 지난 전기리그 때도 내가 이긴 경기를 제외하면 다른 팀원이 이긴 경기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야. 그리고 그 덕에 단 1승도 못했고."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가 아냐. 그보다 더하다면 더하달까. 우리 팀원은 딱 두번 이겼고, 넌 딱 두번 졌어."
"아, 그랬냐."

재혁이 '자료'라는 걸 자신의 입으로 말하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평소에 그리 진지한 녀석도 아니고 '통계', '수치'따위의 단어를 그리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거든, 이재혁이란 사람은.

"그리고 우리팀이 한번 이기고 네가 한번 지던 그 각각의 경기가 우리 팀의 3:2 경기야. 유일한."

난 가만히 듣고만 있는다. 아까의 재혁이처럼, 테이블만을 주시한 채.

"'팀을 신뢰하면, 팀은 곧 너 자신이 된다' 란 말이 있어-난 한번도 듣지 못했다-. 내가 아까 한 말로도 알겠지만, 넌 개인전에선 모두 이겼고, 네가 졌던 2번의 경기는 모두 에이스 결정전이었다는 거야."

...그랬다.
3:2경기라면 에이스 결정전까지 갔겠지. 그리고 너무나 '당연히' 내가 나갔을 거고, 내가 졌으니까 우리가 2승이 아닌 2패를 추가한 거다.

"네가 에이스 결정전에서만 진다고 뭐라 하는 건 절대 아냐. 에이스 결정전에 너 대신 차라리 다른 사람이 나갔으면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한가지, 넌 에이스 결정전을 할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어. 우리가 이길거라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 때문에 진건 아니겠지만 임하는 자세에 따라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긴 할거야. 네 경기가 끝나도 혹시 모를 에이스 결정전을 위해 긴장하고 있으란거야."

할말이 없다. 어떻게 다 잘아는지. 내가 팀원의 승리를 확신하거나 최소한 예견한 적도 없다. 그 동안 그래 왔으니까.

"팀을 믿어봐."

그가 한 얘기는 '나의 에이스 결정전 패배'에 대한 결론이 아닌 것 같았다. 갑자기 또 팀을 믿어보라니, 무슨 말인거야.

"너 자신의 개인리그에서는 단 한경기도 내주거나 하고 싶지 않지? 하지만 넌 프로리그에서는 자신의 경기만 이기면 됐지, 다른 경기에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잖아. '어차피 질거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
"나도 마찬가지일지도 몰라. 남의 경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보다 당연히 자신의 경기부터 관심을 가지지. 자신보다 남을 먼저 챙기는 건 성인군자에게나 가능한 일이지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한텐 무리한 요구야. 현실적으로 고려한다면 충분히 그렇다고 생각해."

나도 마찬가지라고...?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한테 설교하기 전에 자신부터...

"하지만,"

재혁은 한숨을 한번 쉬고 다시 말한다. 입가에는 약간의 미소가-

"난 팀을 믿고 있어."

'팀을 믿다' 라는 말을 몇번째 하는건가, 이 녀석은.

"말했지? 처음에."

재혁이 서서히 일어난다.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으로 향한다. 아주 천천히. 마지막에 할 말이 남은 것 같다.
역시나 재혁은 뒤를 돌며 한마디 한다.

"팀은 나야. 난 팀을 신뢰하고 있으니까."

그리고는 평소의 걸음걸이대로 지하실로 향한다.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을 닫는 소리와 재혁이 걷는 소리도 사라진다.("늦어서 미안해요, 형.")

재혁이 한 말들이 무슨 의미인지는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 조금 파악한 것 같다. 그저 '팀을 믿으라' 는 소리였겠지. 생각해보면, 나머지는 별 말이 아닌 것도 같다. 사실, 그리 기억에 남지도 않던 소리였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나도 재혁이와 똑같은 길을 걷는다. 걸음걸이의 속도마저도 비슷하게 계단으로 내려간다. 연습실까지의 계단은 열 여덟개. 오늘 처음 센거라 정확하진 않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저도 왔어요."

연습실의 문은 다시 한번 한 사람의 걷는 소리를 없앴다.




우리의 2번째 경기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기가 되어버렸다.
3:0. 그날 경기의 엔트리엔 난 어느새 4경기로 빠져있었고 우리 팀은 도미노처럼 무너져내렸다. 재혁이 말한 '팀을 믿는' 것이 고작 이런거라면 그런 어딘가 위대해 보이는 말이라도 거부하겠어. 최소한 이런 패배는 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말야.

또 다시 천천히 걸어 밴에 도착한다. 그리고 또 다시 숙소에 도착할거고.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다른 듯했다. 감독님이 날 불러 세웠으니까.

"규준아, 잠깐 나 좀보자."

라는 말로 나를 불렀다. 내가 차에서 내려 감독님에게 갈 때, 뭔가 뒤에서 소음이 나더니 허전해 졌다.
감독님은 저리 가라는 듯이 손짓을 하고 있었다. 옆으로. 그 의미는 아마...

내 뒤에 지금은 없는 밴을 보낸 것이겠지.

"감독님!?"
"아아, 괜찮아. 오늘은 택시로 갈거니까."

택시라니, 택시라니. 거기까지 거리가 얼만지는 알긴 하는건가. 족히 만원권은 뜯기고 남을 비용이라고.
난 이런저런 비용 생각을 하느라, 감독님이 드라마처럼 능수능란하게 택시를 바로 잡아내는 것에 대해 신기함을 느끼지 못했다.
어찌 됐든, 지금은 이렇게 택시에 실려서 가고 있고 다른 마땅한 교통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만족해야겠지.

"3:0이니까 뭔가 이상하냐?"

또 갑자기 감독님이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요즘 사람들이 왜 이런거지? 재혁이도 그러더니 감독님마저.

"..."
"네가 경기를 못나가서 3:0으로 졌다고 생각해?"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나갔다면 3:1로는 졌을테니까.

"3:0으로 진거나 3:1로 진거나 뭐가 다르지?"
"에?"

순간 놀라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3:0으로 진거나 3:1이나 뭐가 다르냐고? 승점에 충분히 차이가 있는데?

"이게 네 개인전이라고 생각해봐. 3:0으로 진거나 3:1이나 뭐가 달라.
다른 거라곤 상대와의 상대전적에서 차이가 날 뿐이야. 결과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
"하...하지만, 프로리그에서는 승점에서 차이가 나는걸요."
"그래. 그 말이 나올 줄 알았어. 그래서 말하는 건데, 우리팀에게 '승점'이란게 필요하냐?"

승점이란게 필요하냐...? 우리팀에게...?

"생각해봐. 우리의 목표가 플레이오프 진출은 아냐. 그러기엔 더 좋은 팀들이 너무 많아. 우리의 목표는 플레이오프라는 배부른 생각을 할때가 아니라 '일단 1승'을 하는 게 목표가 돼야 해. 그런 우리에게 승점이 큰 필요가 있나? 아니지. 우리에게 승점이란 건 큰 필요가 없어. 3:0으로 지나 네가 들어가서 3:1로 지나 1패일 뿐이지."

'어...'하고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말을 잇는다.

"우선 1승을 하는 것. 그게 먼저야. 플레이오프고 자시고 일단 1승부터. 알겠어?
그리고 그 1승을 위해선 몇대몇으로 지느냐가 크게 중요하지 않아. 니가 생각하듯이 우리가 딱 한번만 이겨주면 에이스 결정전을 포함해서 너 혼자 2승을 올릴 가능성이 있어. 최소한 우린 그렇게 믿고 있어. 전기리그 때 넌 그걸 두번 되돌리긴 했지만."
"알았어요. 재혁이한테도 한번 들었으니까."

감독님은 조금 놀라는 눈치다. 난 그걸 모르는 것처럼 말을 계속했다.

"에이스 결정전을 준비하라는 거죠? 또 우리팀을 믿으라는 거고."
"......"

감독님은 말 없이 날 바라보다가 공연히 택시기사에게 '언제쯤 도착합니까' 라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말한 순간에 숙소가 보인다. 감독님, 체면 한번 제대로 구기셨군요.




다음 경기에는 내가 2경기 엔트리에 포함되어 있었다. 엔트리를 확인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2경기는 상대에서 진영수와의(*내용의 자연스러움을 위해 존칭을 붙이지 못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정석적인 힘싸움으로 가뿐히 승리했다. 남은 건...두명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 뿐.

3경기, 팀플에서, 처음보는 조합이 나타났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이 일어난다.
한 사람은 동생인 동규, 한 사람은 동갑인 성.

'아...저번에 연습상대를 해준게 아니라 연습상대를 구한거였구나...'

상균이 형과 재혁이가 저들과 연습하던 기억이 난다. 그게 내가 생각했던 것과 반대였구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고보면 동규와 성이 테란과 저그로 어느 정도 잘 맞는 팀플상대였었구나.
그런데, 잘할 수 있을까. 처음으로 나서는 팀플조합인데 잘할 수 있긴 할까.
상대는 박상익/김선묵. 아직도 이길거란 생각을 완전히 하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 그래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길 수 있을거야."

옆에서 누군가가 말한다. 감독님.

"모르긴 몰라도, 거의 잠도 안자고 둘이서 매일 연습했어. 그 덕에 죽어간 두명이 있긴해도."

감독님이 죽어간 두명을 가리키는 듯이 그 둘을 쳐다본다. 당연하다. 상균이 형과 재혁이. 보통 나오던 우리 팀의 팀플멤버다.

그리고, 경기는 시작됐다.







p.s으아...이렇게 내용이 길어질 줄은 몰랐는데, 쓰다보니 분량이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이리 될 줄 알았으면 아예 '2부작'이라는 호칭을 빼버릴 것을 그랬군요...
독자 분들에게 사과와 양해를 부탁드리며-BIFROST님께서 예견한 것처럼 2부작이 되지 않는군요...-좀 더 회수를 늘리겠습니다. 그런 만큼, 더 발전한 내용구성으로 뵙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2부작' 이란 단어를 없애버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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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21 11:06
수정 아이콘
재미나게 신나게 잘 보구 있어요..^^(응원1)
가츠좋아^^
06/07/21 11:32
수정 아이콘
재밌군효 후후
하얀그림자
06/07/21 12:03
수정 아이콘
역시 이런 소설은 좀 길게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죠.
퉤퉤우엑우엑
06/07/21 12:17
수정 아이콘
3부, 내지는 4부 정도로 끝낼까 합니다. 애초에 장편을 생각하고 쓴 소설이 아니라서요.
06/07/21 12:26
수정 아이콘
재밌어요~
뱀다리후보생
06/07/21 12:36
수정 아이콘
근데 프로게이머 하고 같이 합숙하면 저런 생각이 나올가...
팀의식..
06/07/21 21:36
수정 아이콘
다음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SKT_T1빠~
06/07/24 01:37
수정 아이콘
잼잇네..yo~언능 연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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