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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10/31 03:33:40
Name 멜로
Subject 체스로 본 스타크래프트의 현주소
체스라는 게임은 각 플레이어가 8개의 폰(졸병) 나이트, 비숍, 룩 두 개씩과 공격의 중추인 퀸으로 구성된
기물들로 상대의 왕을 체크메이트 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언뜻 보면 장기와 크게 다름이 없어 보이지만 폰(졸병)의 움직임에서 크게 차이가 납니다.

폰은 한번에 한칸 앞으로 전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와 다르게 바로 앞이나 옆에 있는 기물들을 먹을 수 없고, 앞쪽 대각선 방향 기준으로 한칸 떨어진 기물만 먹을 수 있는 게 다르죠.
바로 이런 차이점에서 체스의 묘미를 볼 수 있습니다. 폰의 운영에 따라서 경기양상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거든요.
그랜드마스터 Phillandor 가 "폰은 체스라는 게임의 영혼이다" 라고 말한 것처럼 폰은 경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폰의 두가지 운영에 대해 알아봅시다.
보통 시작할 때 폰들이 기물보다 앞쪽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폰을 먼저 전진배치하고 기물을 안전하게 발전시키는 양상이 거의 대부분이죠.
따라서 초중반에 폰과 폰이 머리를 맞대고 있거나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발생합니다.
여기서 폰의 운영이 갈리게 됩니다. 쉬운 이해를 위해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번              2번             3번
  O               O                 O
O                 X               OX
XX                                X
폰이 이런꼴로 배치되어 있다고 칩시다. 여기서 X 의 선택은 왼쪽 대각선으로 움직여 O를 먹느냐
아니면 그냥 한칸 앞으로 이동하여 상대 폰과 머리를 맞대느냐. 이런 두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만약 대각선으로 상대의 폰을 먹었다면 2번과 같은 꼴이,
그냥 머리를 맞대는 쪽으로 폰을 미는 선택을 했다면 3번과 같은 꼴이 나오게 되는거죠.

2번의 선택을 했다면 폰이 사라지게 되기 떄문에 나이트, 비숍, 룩과 퀸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역동적인 게임이 되는 것이고
3번의 선택을 했다면 머리를 맞대는 순간 그 폰은 이제 앞으로도 못 움직이고 대각선으로도 먹을 수 없게 되는거죠.  머리를 맞댄 폰들의 행렬에 기물들이 이동할 수 있는 영역이 굉장히 제한되어버리고 기물간 싸움의 위치가 한정되면서 장기전으로 가게 됩니다. 스타로 치자면 테테전에서 서로 안들어가고 장기적인 시즈모드 위주의 반땅싸움으로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양상이죠.

일반적으로 2번과 같은 꼴을 열린 게임 (Open Game)
3번과 같은 꼴을 닫힌 게임 (Closed Game)이라고 합니다.
Open Game이 된다면 당연히 기물들의 이동이 많아지고 되고 변수도 굉장히 많아집니다. 반드시 선점해야할 위치가 제시각각 변하고 상대의 킹에게 직접적인 공격을 하던가 체크메이를 위협하여 상대의 원하지 않는 기물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등 변수가 굉장히 많아집니다. 여기서는 폰 하나 움직이는 것으로 시간낭비하면 그대로 주도권 빼앗길 정도로 기물의 움직임이 가장 중요하죠.
Closed Game 이 된다면 폰의 기나긴 행렬에서 그나마 조금 열려있는 곳이나 상대적으로 약한 위치를 저격하여 자신의 기물들을 움직여 공격하게 되어있습니다. 상대도 마찬가지구요. 따라서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뻔하고 상대도 내가 뭐할지 다 알고 있으니 게임이 자연스래 길어지는 것이죠.

요즘 제가 스타크래프트를 보면서, 아니 직접 배틀넷 공방에서 하면서 느끼는 것이 3번과 같은 경우, 즉 Closed Game 닫힌 게임의 뻔한 분위기입니다. 시작하면서 앞마당을 상대보다 먼저 가져갑니다. 그러면서 병력이 조금 모였다 싶으면 다른 세번째 멀티를 먹기 위해 적절하게 진출하며 제 2 멀티를 먹습니다. 이제 테크 다 확보하고 좀 안전해졌다 싶으면 싸웁니다.

체스로 치자면 이런거죠.
상대가 '야 좀 싸우자' 하고 폰을 들이밉니다 (1번) 그러면 자신은 '좀 있다 싸울래' 하고 폰을 밀어서 닫아버립니다 (3번)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됩니다. 이제 공격위치, 기물을 움직여야 할 위치가 좁혀집니다. 한마디로 변수가 없어지는 것이죠.
뭐 체크메이트니 위협이니 이런거 신경쓸거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든든한 폰 라인이 철벽 방어를 해주고 있거든요.
기물 천천히 조심스럽게 안정적으로 움직여도 됩니다. 어차피 상대도 느리게 나올 수 밖에 없으니까.
이제 결전의 날이 다가옵니다. 이제 그 좁혀진 싸움장소에서 막 기물들을 신나게 바꿉니다. 여기서 조금 밀렸다, 상대가 내 폰라인 뒷편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이러면 뭐 괜히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면서 머리 아플것도 없이 기권이죠.

스타크래프트는 전략 게임이라는 것에서는 체스와 같지만 시간의 활용에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내가 하나 움직이면 상대도 하나 움직이고 이런 턴제가 아닌,
동시에 시작해서 내가 마우스를 잡고 있는 이상 시간은 계속 흐르는 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이기 때문이지요.
스타의 묘미는 실시간이라는 특별함에서 오는 것이지요. 순수한 이성적 판단, 안정성, 다음 수를 생각하며 차갑게 생각하는 체스와 달리
동물적인 감각, 번뜩이는 센스, 혀를 내두르게 하는 신의 컨트롤 등 머리로만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닙니다.
순간적인 결정력, 동물적 감각이라는 변수가 있기에
스타크래프트를 전략게임이면서 액션게임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게 하였고 하나의 스포츠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수가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다 진 게임을 컨트롤이나 센스로 극복하여 역전을 이끌어낼 수가 있는것입니다.
체스로 치자면 자신의 기량의 따라서 기물을 한번에 두번 움직일 수 있고 룩이 상하좌우가 아닌 대각선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가 뭘 할지 정확히 예측하며 하는 체스와는 다릅니다. 스타는 초반부터 변수가 무궁무진하게 생기는걸요.

하지만 요즘의 스타 경기들을 보면 과연 이게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가 의구심을 품게 합니다.

모든 게임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처음에 해야할 정석이 생기고 일반적인 움직임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여기서 스스로의 판단으로 변칙플레이를 하여 상대를 제압하거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상대에게 밀리거나 이렇게 되는 것이죠.

스타도 마찬가지로 다른 게임의 정석처럼 초반 빌드라는 것이 있습니다. 12때 해처리 피고 11때 스포닝 풀 올리고...
이런식으로 초반은 흘러가게 되고. 그 이후 중반부터 선택권이 다양해 지면서 본인 스스로에 선택에 따라 변수를 주는겁니다.

이렇게 지속적인 초반 빌드 연구로 초반의 모든 변수에 대항할 수 있는 보다 정교한 초반빌드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초반 빌드들이 점점 정교해짐으로써 첫 싸움은 점점 늦게 시작되었죠.
이제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정교한 초반빌드를 채택하고 싸움은 늦게 하는 것이 정석화 되었습니다.
체스에서 폰을 밀어서 닫힌 게임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고 가장 좋은 선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면서
"아 이제 어차피 싸움 늦게 할꺼고 상대가 초반에 무슨 빌드 쓸것인지 아니까 초반빌드에다가 빌드 조립 조금만 더해서 조금 늦게 싸우더라도 상대의 모든 변수를 빌드로 차단하면서 한방에 밀어버리자"
라는 마인드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빌드의 최적화입니다.
어차피 늦게 싸울거니까 변수는 없을 테고 싸우기 전까지 내가 할꺼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빌드를 누가누가 더 최적화 잘 시키고 그것을 죽도록 연습해서 외워왔느냐가 승리 공식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빌드 = 승리 라는 공식이 성립하게 되었죠.

만약 빌드최적화가 빌드최적화와 맞붙으면? 그때 한타 싸움으로 승리가 결정되는 것이죠. 제가 아까 말한 체스에서 좁은 범위에서 기물을 모두 맞바꿔주고 근소하게 밀리면 끝까지 계속 밀리게 되는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이로 인해서 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에서 동물적인 감각의 비중이 점점 사라져 가고
체스와 같은 순수한 머리싸움 같다는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들게 되었습니다.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심각할지 몰라도
보는 사람입장에서는 그보다 지루한 것은 없습니다. 체스도 관전하면 정말 재미없죠.

김성제의 신들린 리버 컨트롤, 임요환의 센스 드랍쉽 등 정말 멋지고 감각적인 플레이는 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몽상가 강민의 창의적이고 뭔가 특별한 경기운영은 온데간데 없고
400 가까이의 APM, 입이 벌어지는 멀티태스킹과 탄탄한 기본기의 이제동, 송병구 같은 선수들이 주름잡게 되었죠.
당연히 이런 주름잡는 선수들이 모델이 되고 선수들은 승률을 위해 안정적인 최적화빌드를 연구하게 됩니다.
다같이 같은 빌드 쓰니 할것도 뻔하고 언제쯤이 결정적인 순간인지 뻔하게 되었습니다. 스포츠 특유의 긴장감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저로서는 이런 스타크래프트가 Closed Game 과 같은 양상을 띄는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한 선수의 기막힌 센스가 승패를 가르고 순간의 판단이 경기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스타크래프는 더 이상 오락도 아니며 대중을 위한 스포츠도 아닙니다.

스타크래프트는 "공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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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루
08/10/31 06:18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공감은 되지 않습니다만... 글은 참 설득력 있고 재밌게 읽었네요.
信主NISSI
08/10/31 06:40
수정 아이콘
제가 요즘 쓰려했던 주제와 비슷한 내용이네요... 이로서 제 글은 더 늦어진다는.. ^^;;

체스의 전략구성과는 다르게 스타의 경우 발전양상에 맵이라는 요소가 있습니다.(패치도 있지만 방송리그에선 한번밖에 영향이 없었으므로.) 닫힌게임을 하는 요소들 중 맵이 일정부분을 닫아준 부분도 있죠. 물론 선수들이 그러한 부분을 원했구요.

같이발전을 해온 것입니다만, 고도의 발전으로 혁신적인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뭐, 이런소리는 2002년부터 있어왔고, 패러다임을 바꾸는 선수는 더이상 없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계속 나오고는 있지만, 갈수록 패러다임을 바꾸는 선수들의 수도 줄어들고, 바뀌는 폭도 줄어들고 있긴 하죠...

뭐 스타2가 1년여앞으로 다가온 마당에, 이제와서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요...
신예ⓣerran
08/10/31 07:30
수정 아이콘
중간에 체스 설명에서 잠깐 헷갈렸는데요 O의 선택이 아니라 X의 선택 아닌가요?;;
라구요
08/10/31 08:00
수정 아이콘
체스룰을 이해하는 사람은 꽤 재미난 글이네요..
절묘한 순간에 에이스(킹)와의 위치를 바꿔버리는.....캐슬링효과도 심심찮게 볼수 있어요..
참 재미난 비교 .. 잘 보고갑니다.
08/10/31 08:09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추천하나 드립니다.
모모리
08/10/31 10:45
수정 아이콘
체스와 장기 둘 다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체스의 묘미는 역시 폰이 좌우의 기물을 공격할 수 없다는 규칙인 것 같습니다.
체스 처음 할 때는 저 규칙이 참 답답했는데 말이죠.
08/10/31 11:16
수정 아이콘
글 내용은 좋은데 결과적으로 그리하여 스타는 재미없다 이건 완전 사견같네요. 스타가 클로즈 게임이다라는 의견은 완전 비공감 때려주고 싶네요..
즐거운하루
08/10/31 11:31
수정 아이콘
송병구 선수의 신들린 리버컨 캐리어컨, 박명수선수의 뮤탈컨 이제동선수의 저글링컨, 이런 컨트롤과 얼마전 송병구선수가 보여줫던 상대본진에 게이트를 짓는 전략적인 플레이등 아직 남아있습니다. 단 리버컨은 김성제선수에서 송병구선수로 임요환 선수의 전략은 다른선수들에게로 넘어갔을뿐이죠.
08/10/31 15:26
수정 아이콘
신예ⓣerran님// 제가 실수했네요 수정했습니다.
gg님// 스타는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방송리그 출현과 선수들이 만들어낸 고수준의 빌드 덕분에 얼추 밸런스는 맞춰졌지만 게임의 양상들이 다 비슷하게 돌아간다는 것이죠. 축구에서 언제 골 터질지 알면 재미 하나도 없는 것하고 같은 겁니다.
Boxer의형님
08/11/01 14:19
수정 아이콘
스타크래프트 팬사이트라는 점에서 그리 큰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글은 아닌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공감하고, 하고 싶었던 말이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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