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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07/16 09:16:01 |
Name |
zeros |
Subject |
Mr.Waiting - 9 |
어느 덧 나의 이메일엔 그녀가 보낸 귀국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그 버스에서 가늠했었던 6개월은 이제 과거가 되어있었다. 나의 휴가날짜역시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기다려지고 기대되었다. 그러나 문득 다른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녀와 나의 관계는 너무 애매했다. 가끔씩 그녀에 대해 누군가가 물어올 때마다 나는 대답할 말을 한참동안 찾아야했다. 이제는 선을 긋고 싶었다. 더 이상 이런 이도저도 아닌 관계를 유지하긴 싫었다. 천천히 그녀에게 할 말을 준비했다. 6달 보다 더 길게 느껴지던 1달이 지나고, 나는 드디어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마치 첫 휴가를 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 앞에서면 제대로 말을 꺼내지 못할 나를 알기에 미리 그녀에게 할 말을 적어놓았던 수첩을 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 선임의 잠꼬대 섞인 질책을 한 귀로 흘려버리며, 난 날이 밝을 때까지 수첩의 글씨들과 씨름을 했다. 난 우리가 자주 가던 영화관 근처에 있는 레코드점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음반 구경이라도 하려는 심산이었지만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토록 기다리던 전화번호가 전화기에 떠올랐다. 우린 테이블에 앉았고, 따뜻한 커피 두 잔이 그녀와 나 사이에 있었다. 지난 6개월 동안 서로에게 일어난 일들을 위로하고 위로받았다. 테이블 위엔 그녀의 한 손이 나의 한 손이 올려져있었다. 그녀가 일본에서 겪었던 힘든 일을 이야기 할 때마다 이미 닿은 듯 가까웠던 그녀의 손가락을 잡고 싶었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난 그녀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였다. 두려워서였다. 내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 또 달아날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 이야기를 꺼내야했다. 나는 테이블 위에 있던 손의 손가락들을 접었다. 그녀를 잃게 될 수도 있을 이 말을 꼭 해야할지 망설여졌다.
“나 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어.”
“응. 뭔데?”
난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녀도 조금은 눈치를 챘었을 것이다. 그 잠시 동안 마음을 굳게 먹으려 했지만 난 새벽녘 생각했던 간결하고도 직접적인 말을 결국하지 못하였다. 난 이미 네게 마음을 보여줬다는 그 말을 하지 못하였다.
“난 우리가 너무 애매한 거 같아.”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모른척 하지도 않았다. 말을 잃은 그녀 앞에서, 난 이미 뱉어버린 말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너무도 어려웠다.
“너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지?”
그녀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내 얼굴을 바라보지 않는 그녀의 침묵이 무거웠다.
“그래서 난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꽤 오랜 정적이 찾아왔다. 내가 생각해왔던 만큼 그녀에게 완벽히 솔직한 나를 보이진 못했지만 그녀라면 나의 마음을 아리라 생각했다. 난 기다렸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넌 좀 그런 거 못 느껴? 우리는 이제 그냥 친구나 그런 게 아니라 평생지기 같은 거. 그런 느낌 말이야.”
“응. 알아.”
“우리 나중에 시간 많을 때 다시 이야기 하자. 술도 한잔하면서.”
입을 닫은 그녀가 가방을 열었다. 작은 쇼핑백이 나왔다.
“자. 이거 네 거야.”
“웬 거야?”
“그냥. 생각나서 사왔어.”
작은 쇼핑백엔 기린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장난감이라니. 참 그녀다운 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장난에 나는 웃었고, 잠시 찾아왔던 정적과 어색함은 사라져버렸다. 이 후 짧은 시간을 웃음으로 채우며 우린 마치 그 어떤 심각한 얘기도 나누지 않았던 양 헤어졌다. 그러나 그 날 그녀가 나에게 던졌던 단어들은 나에게 꽤나 큰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혼자 생각해봐야 결국 의미 없는 일이라고 넘겨버리며 잠을 청했다.
그 날 이후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갔다. 귀국한 지 얼마 안되어 정리할 일이 많겠거니 생각했지만, 점점 더 길어지는 그녀의 침묵에 난 동요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 내가 꺼냈던 말 때문에 그런건 지. 생각이 많아졌다. 생각들은 나를 옥죄었다. 차가운 나날들은 흘러갔다. 언젠가 다시 이야기 할 수 있을 기회가 올 거라고 나 자신을 위로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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