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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19 12:31
광대로 살아가거나,
예언가로 살아가거나 해야될것 같습니다. 역사를 모르더라도 전반적인건 알지않을까요...물론 큼직큼직한 사건이 근접한 시기에 가야겠지만;;
13/02/19 12:37
흠,....이미 지난 일을 되집어 보면 가정하는건 정말 무의미한데
이런류라면 애기가 좀 달라질수도 있겠네요 일단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돈을 많이 번사람들중 다수가 역관출신입니다. 중국과의 외교시 통역은 정말 중요한일인데 역관에게는 조정에서 중국과의 무역거래를 허가해주는 증을 내주어 역관은 따로 장사를 할수있어서 엄청난 부를 쌓을수 있었습니다. 시기적으로 가장 무난하다고 할수있는 때는 조선중종시절-문정왕후시기가 적기라로 봅니다. 성종이후 조선의 경제규모가 급성장해지는 시기였고 문정왕후시절은 내수사의 권한이 커지며 사람이 필요해 이때 조금이라도 글을 알면(천자문정도만 알면 그냥 받아들이다 뿐만 아니라 크게썼다고 합니다.) 바로 받아주어 일을 시켰고 당시 중국과의 통교가 빈번하고 국경의 소요로 역관이 턱도없이 부족했다고 합니다. 지원만 하면 역관으로 가는길은 활짝 열려있었다고 하더군요 국경상황은(만주족과 북원의 잔여세력) 긴장상태였지만 실재 변란은 일어나지 않아 결과적으로 신변의 안전은 계속 유지됬고 당시 역관은 수행원의 하인까지 하인을 두었다 할정도로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또하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없이 살려면 의외일지 모르나 백정일을 하면 됬습니다. 많이 왜곡되어 알려져있다는 부분이 백정인데 분명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차별을 받았지만 백정은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각종세금과 부역에서 제외되었고 백정은 가축을 도살하는일 외에도 이의 판매에 대한 권리도 가지고 있었기에 실재 조선시대 백정 특히 임란이후의 백정은 일반백성보다 훨씬 잘살았다고 합니다. 조선영조 시절 수도 한양의 일일 평균 도축되는 가축수가 약 6000마리였다고 합니다. 이일은 오직 백정만이 할수있었고 그 판매역시 그들이 우선권을 가졌습니다.(언터처블이라고 들었습니다. 물론 사람인 우리들은 저런걸 하는게 아니다라는 인식때문이었지만) 백정들의 실재 생활수준은 유복했고 개중 도수라는 실력파 솜씨꾼들은 처첩을 거느리고 종로 화류방을 접수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일제초기 화류방 손님의 반은 백정이다라는 우스개소리도 있었다고 합니다.
13/02/19 13:00
조선후기라면 자본주의의 싹을 틔울 시기입니다. 그럼 청나라 사람들이 쓰는 중국어능력으로 청과 무역을 주고받는 서울, 평양, 개성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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