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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8/13 19:42:31
Name p.p
Subject [잡담] 사람과 사람
(술자리)
어젯밤 우리 일행 술자리에 복장이 특이한 분이 한 분 계셨다.
부산 해운대 쪽에는 저녁 무렵 비가 심하게 쏟아 졌는데,
그 빗속에도 우리 모두 넥타이 단정히 매고 양복 입은 , 전형적인 샐러리맨 모습이었는데,
한 양반이 머리는 거의 백발이면서 청바지에 흰 티셔츠, 청 조끼에 청 모자 쓰신 분이 있었다.
이 복장은 상당히 튀는 복장이어서 젊은 청년들도 잘 소화 못하는데 노인이시면서 몸매는 삼십대 같고
키도 늘씬하셔서 멋지게 어울리시는 분이었다.
다른 사람은 모두 아는 사람인데 그 분만 모르는 분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서야 아~!  했다.


88올림픽 개,폐회식 연출 하셨으며 총 진행감독 하셨던 분,
93 엑스포 개,폐회식 연출과 95 광복 50주년 기념식 연출,
그 외 대규모 국책행사의 연출을 상당수 도맡아 하셨으며 지금 곧 부산에서 펼쳐질
2002 부산아시안게임 총 연출을 맡으신 유경환선생님이셨다.

저녁 겸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니 창조적인 작업을 하시는 분 답게 참으로 유머스럽고 재미 있는 분이셨다.
이분도 아시안게임 연출 관계로 몇 달째 부산에서 혼자 지내고 계신다고 했다.
나 역시 회사일로 혼자 부산에서 지낸다는 얘기를 옆 사람에게서 들으시고는 앞으로 자주 만나서
같이 술이나 나누자고 했다.
그런데, 술이 엄청 세셨다.  
서울서 내려 온 우리회사 임원 중에 폭탄주를 즐기는 엄청난 대주가가 있었는데,
전혀 술잔에서 밀리지 않으셨다.  
난 술이 약한 편이라... 속으로... 자주 못 만나 뵙겠는데요... 했다. ^^;;;

아시안게임에서 인공기를 어떻게 처리 할 것인지...  뭐, 결국은 당국의 지시대로 되겠지만...
노땅들의 대화는 직설적이거나 토론하는 방식이 아니고 우회적이고 은유적인 말들이 많아서 그런지
부담없고 즐거운 자리였다.
즐거운 모임에 대한 대가로 잠은 세 시간 반 밖에 못 잤지만...  -_-;;;



(아내와 어머니)
아침 여섯시 반, 챠임벨 울리는 소리에 잠 깨어 비몽사몽간에 씻고서 식탁에 앉았다.
어머니께서 꽃게탕 국을 끓여 놓으셨는데, 숟가락질 하지 않는 날 보고는  "왜 국이 안 시원하나?"고
채근하셨다.
얼른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고 아이구, 너무 시원합니다...   하고 열심히 밥 먹는다.

칠순의 어머니께 집안 일 시키는 나는 효자다.
자괴적인 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런데, 주위의 나이 드신 분들은 칠순의 어머니께 밥 짓게 하고 집안 일 하시게 하는 날 보고...  효자라고 말해 준다.

어머니는 무릎에 류마티스가 있어 힘들어 하셨는데, 어느 틈엔가 건강해 지셨다.
십년 전 환갑 때는 해외여행 다녀 오시라고 그렇게 권해도...  힘들게 뭐 하러 해외 나가느냐 고,
며느리들이 모시고 다녀 오겠다고 해도 귀찮다고 하시더니 얼마 전엔 칠순 기념으로 노인대학 친구 분들과 백두산 여행을 다녀 오셨다.

"어머니는 정말 마술사 같아요!" "재료도 준비된 게 몇 가지 없는데 어쩌면 뚝딱뚝딱 순식간에 반찬을 그렇게 맛나게 만듭니까?"

어머니는 만면에 득의만만한 웃음을 지으신다.



식탁에 밥과 국이 항상 나란히 있는 식탁만 보다가, 결혼해서 국을 전혀 먹지 않는 아내의 식성에
처음에는 적응이 상당히 힘들었다.
처갓댁의 식탁은 찌개는 있어도 국은 안 끓이는 음식문화였다.
국은 위장의 소화기능을 저해한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소개로 만난 나를 처음엔 못 마땅해 했었다.
키도 작고 얼굴이 새까맣다고 날 마땅찮게 보았었다.

아내는 167센티의 키에 학교때 배구선수로 어깨는 딱 벌어졌었고 허리는 잘록 했으며 팔다리가 유난히 길었다.  
첫눈에 데뷰 초기의 소피아 로렌을 연상 시켰던... 그래서 난 보자마자 뻑 갔었다.

그런 아내가 보기엔 171센티의 내 키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을 것이다.

또 난 총각 때 스쿠버 다이빙에 심취해서 주말이면 산소통 매고 동우회 회원들과 섬으로 헤매고 다녔기에 여름이면 새까맸었다.

아내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내가 장인장모님께 결혼 전에 점수를 얻었던 건, 젓가락으로 먹기 힘든 음식은,
아예 손가락으로 집어 먹었던 행동 때문이었다. 그리곤 손가락에 묻어 있는 양념을 쪽쪽 빨아 먹으며
"아~ 맛있다!" "너무너무 맛있는데요?"


아내는 음식에 인공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는다.

난 모처럼 집에 갔을 때 아내가 해 주는 밥을 먹을 때면 너무너무 행복하다.

"당신 음식은 최고야!  음식 맛이 너무 깔끔해!  역시 음식에는 인공조미료가 들어 가지 않아야 해!"

아내는 입이 귀밑에 까지 찢어 진다.

"그치? 부산어머니는 음식에 '미X' 을 너무 많이 넣으셔! 그래서 음식이 닝닝해, 그치?"

아내와 어머니는 이십여년이 지났어도 음식에 관한 한 여전히 라이벌 관계인가 보다...



(신발)
술자리에서 얘기 하다보면 평소 잘 알고 있다 싶던 상대의  모르고 있던 집안 일도 알게 된다.
모 팀장은 4대가 한집에 산다고 했다.  이야~  말로만 듣던 4대가 한집에 살다니...

저녁이면 현관에 신발이 너무 많아서 문을 잠그지 않아도 도둑이 들지 않는다고 웃는다.
우리 모두 웃었다.

부산 우리 아파트에는 어머니 나, 조카 셋이 사는데도 현관에 신발이 항상 수두룩하니 늘려 있는 게 보통이다.
항상 조카의 운동화 서너 켤레, 구두 몇 켤레, 샌달 등등...
처음엔 조카 친구들이 왔나?  했었는데, 어머니는 모두 조카 신발이란다.
신발장에 넣을 데가 없나? 하고 열어 보았더니 신발장은 비어 있다.

현관에 신발 많은 얘기를 받아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
자기집은 네 식구였는데 항상 현관에 신발이 잔뜩 흩어져 있어 한번은 퇴근해서 큰 아들을 불러 나무랐단다.
아내와 둘째 아들은 신발 한 켤레씩만 내 놓는데 큰아들만 항상 있는 신발 모두 현관에 늘어 놓고 신발장에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내보고도 아들놈 교육 제대로 안 시킨다고 잔소리 했단다.

옆에서 누가 냉큼 "항상 술 마시고 늦게 집에 갔는데, 신발이 눈에 들어 옵디까?"  한다...
"그나마 회사일에 바빠서 집에 제대로 못 들어 간 날도 많지 않았습니까?"  한다...


그러던 큰 아들이 군대 갔다.
어느 날 퇴근해 보니 문득 현관에 신발이 단 두 켤레만 있는 게 눈에 들어 오더란다.
아내와 둘째 아들 신발...  두 켤레...

이제 저 둘째 놈도 군대 가 버리면 신발이 한 켤레만 남아 있겠지...

순간, 쓸쓸해 졌었다고...    큰 아들놈에게 신발정리 안 한다고 나무란 거 외에는 대화 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 몹시 쓸쓸해 졌었다고 했다.



갑자기 조카에게 신발 가지고 잔소리 안한 게 큰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 잠을 너무 못자서 오늘은 헬쓰 하러 가지 않았다.

잡담이 길었는데, 오랜만에 보일러 켜서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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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님의 글을 읽을때마다 너무나, 너무나도 인간적인 채취가 느껴집니다. 씨익~ ^^
항즐이
02/08/13 23:35
수정 아이콘
동감이요 ^^
02/08/14 00:15
수정 아이콘
음 정말 인간적이군요... ^^ 저도 그 나이가 되면 그런 생각의 단상에 빠질까요? ^^
waterbrood
02/08/14 05:59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02/08/14 10:16
수정 아이콘
왠지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02/08/14 20:28
수정 아이콘
행복은 역시 스스로 만들어야 하나 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목마른땅
02/08/15 03:59
수정 아이콘
저도 공룡님께 한표.. '행복'이란 단어 아직 어린 저에게는 조금 부담되는 단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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