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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12/18 16:09:53
Name 김송현
Link #1 http://www.ddanzi.com/ddanziilbo/president/election/election2002_1218.asp
Subject [펌]이제 마지막 순간이 왔다.
딴지에서 퍼왔습니다...
오늘 이글을 읽고 어찌나 감동 먹었던지......
투표권가진 여러분.....
꼭 투표합시당~

아~ 그리고 대마고그라는 말은....DEMO (대중) + logos (말) 이 합쳐져서 대중을 현혹하는 말(데마고기)를 퍼뜨리는 놈(데마고그)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는군요 저도 무슨말인지 몰랐지만 딴지게시판에 올라와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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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순간이 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약 24시간 후면 투표가 시작될 것이다. 시간대별로 투표율이 속속 보도되고, 뉴스는 다시금 익숙한 광경들로 채워질 것이다. 한 마을 주민 전원이 투표한 이야기, 투표소까지 어렵게 당도한 오지마을 사람들 이야기, 투표함에 종이를 반만 넣고 앞을 바라보며 웃음짓는 각 후보들의 모습,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으니 즐거워요 하며 웃음짓는 젊은이들의 인터뷰...

오후 6시, TV의 시계바늘이 정각을 가리키는 순간 모 후보 당선유력 하는 대문짝만한 글자가 나타날 것이며, 다 같이 주르르 앉아 TV를 시청하는 각 당의 표정이 화면을 채울 것이고, 평소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몇시간이고 숫자만 계속 들여다보고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저녁이 펼쳐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밤 열두시가 넘으면 '고난과 역경을 딛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기까지' 운운하는 낯간지러운 프로그램들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고, 새벽 6시면 장사진을 이룬 모 후보 자택 앞을 중계방송할 것이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후보와 모습과 함께 터지는 환호 소리, 작열하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 이어지는 소감문.. 아침 9시면 기자회견...

그때쯤이면, 2002년의 겨울 하늘, 그 찬 바람 속 내내 가득했던 긴장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그것은 새 권력자의 탄생을 알리는 예식이고 성스러운 제례이다. 사람은 바뀌지만 식순은 늘 똑같은 하나의 퍼포먼스이기도 하다.

나는 대통령 한 사람이 나라를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각 후보의 열혈 지지자들에게는 미적지근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윗사람 한 사람이 바뀌었다고 대단히 큰 변화가 일어나는 그런 사회는 이미 아니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의식을 기다린다. 축구팬들이 4년에 한번씩 열광하듯, 5년에 한번씩 그날의 의식을 기다린다. 특히나 올해는 그 기다림이 더더욱 간절하다. 앞으로도 올해처럼 흥미진진하게 기다리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올해는 바로, 2002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올해를 오노 규탄 열풍 속에서 시작했다. 곧 이어 국민경선이 있었으며, 월드컵이 있었다. 촛불 시위가 있었고, 대선이 있었다.

올해 우리는 국가주의에 매몰되지 않고서도 '대한민국'을 외치는 법을 배웠고, 민족주의에 함몰되지 않고서도 미국을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으며, 미 대사관 앞에서 판 벌이고 집회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았고, '불온한 정당'이 사상 최초로 살아남는 성공을 맛보았다. 2년전 절망 속에서 잡기 시작한 인물을 대통령 후보로까지 만들었으며, 네티즌의 힘으로 수만명을 모으기도 했다.

기득권 주류가 아무리 무시하고 깎아내려도 살아남는 새로운 시민사회의 힘, 비통하고 처연한 것이 아니라 밝고 경쾌한 변혁의 에너지, 무력감과 피해의식이 아닌 자신감과 자긍심, 그런 것들이 우리가 올해 목격한 것들이다. 그 중심에는 월드컵이 있었고 촛불시위가 있었고 국민경선이 있었고 대선이 있었다.


87년 대선을 생각해 본다. 여의도 광장을 가득 메웠던, 정말 내 평생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사람의 바다, 100만 인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엄청났던 스피커 시스템과, 그 질리도록 많은 군중을 휘어잡던 날고 긴다는 웅변가들의 카리스마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여의도에서 시청을 향해 아저씨 아줌마들과 행진해 가던 감격과, 시청 앞에서의 마무리 집회...

'재벌해체'라는 뻘건 글씨를 버젓이 써놓은 것을 보며 괜히 나혼자 조마조마했던 대학로에서의 백기완 유세와, 이미 깜깜하진 시청 앞 광장에서 봉고차 위에 올라 그 수많은 사람들을 울음바다로 만들어버리던 그의 카리스마...

여의도의 김대중 백만명 집회에서 시청까지 걸어갔었고, 역시 여의도의 김영삼 백만명 집회에서 시청까지 걸어갔고, 또 역시 여의도 노태우 집회에 일당 받고 피켓을 들었던, 바야흐로 이제 정치의 계절이 오는구나 싶었던 그 때...

한편으로는 노태우는 전라도에 가서, 김대중은 경상도에 가서 돌멩이 세례를 받아야 했던 그 살벌하기 그지없던 지역감정과, 날아오는 돌을 투명 플라스틱 방패로 막아내는 와중에도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어야만 했던 그들의 처연함과, 양김의 분열과, 비행기가 폭파됐다더니 느닷없이 선거 전날 김현희를 입국시키며 분위기 싸늘하게 만들던 안기부와, 때되면 한번씩 터지던 간첩단 사건, 노동자들의 분신 투신....

그렇다. 그것은 가히 데마고그들의 전성시대였다. 이제는 수만명 수십만명을 휘어잡는 웅변가들의 카리스마도 볼 수 없을 것이고, 사람들의 새카만 머리수가 만들어내던 흥분된 분위기는 다시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사람은 많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그 무엇이 없었다. 민중후보에게 '민중'은 없었으며, '민주화'는 지역으로 힘없이 해체되어 버렸고, 빨갱이는 여전히 무서운 낙인이었다.

그 무엇, 무엇인지 몰랐지만 그 무엇만 있었더라면 노태우의 '보통사람, 믿어주세요' 하는 맥빠진 목소리에 힘없이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 무엇만 있었더라면 3당합당도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배신당했지만, 그 배신을 응징할 그 무엇이 없었기에 말없이 추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는 몰랐다. 15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92년 대선이 있던 밤. 나는 눈 덮인 산 속에 있었다. 투표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오후 나는 월악산 만수봉에 올라갔고, 잘 다져지지 않는 푸석푸석한 신설을 밟아 텐트를 쳤으며, 달빛에 빛나던 하얀 능선에 까닭모를 공포를 느꼈다. 아무도 없는 겨울산 속엔 바람만이 분주했다.

라디오를 켰을 때 흘러나오던 소리. 여전히 번잡한 서울역의 소음. 그리고 '김영삼 후보 당선을 너무 축하드려요'하던 젊은 여자의 밝은 목소리...

그날 밤의 썰렁함을 나는 절대로 잊을 수 없다.



다시 5년이 지난 97년. 그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총선이고 대선이고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된 것이.

10년 전 마이크 앞에 서 있던 웅변가들에게 더 이상 무대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새로운 데마고그들이 피씨통신에서 커 나가기 시작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나도 그 대열의 말단에 서 있었다.

말바꾸기 잘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은 곧 빨갱이를 연상시켰다. 우리는 여전히 '빨갱이'라는 그 허상과 싸워야 했다. 믿을 수 없고 음험하고 뒤통수 잘 치며 사상이 불순하고 사회 안정을 해친다는, 온갖 나쁜 것들이 다 들어가 있는 그 관념과...

'그들'은 우리와 직접 대적하지 않았다. 항상 그랬다.  우리는 때로는 실체도 없는 그 무엇과 아둥바둥해야 했다.

오익제 사건이 있었고, 김대중 비자금 폭로가 있었고, '김대중 승리를 기원한다' 운운하는 북한의 편지라는 게 있었고, 그때도 역시 조선일보가 있었으며, IMF 재협상 논쟁이 있었고, 박정희 흉내내던 이인제와, 김영삼 인형 화형시키던 이회창과, 늙은 김대중과 느끼한 김종필이 있었다.

'김대중 시멘트 표'는 그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는 지식인 집단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들이 머리를 쥐어짜는 대신 전라도는 정말 말 그대로 표를 쥐어짰다. 자정이 지나면서 TV엔 말로만 듣던 금남로에 넘쳐나는 인파가 보이기 시작했고, KBS는 당황스럽게도 인동초 어쩌구 하는 프로그램을 제일 먼저 내보냈다.

선거 전날까지만 해도 국정의 파트너 운운하던 김종필은 아침에 되자 기자들 앞에서 "김대중 당선자를 이제부터 잘 모시고" 운운하는 생소하기 그지없는 어법을 돌연 쓰기 시작했고, 재벌그룹들이 전라도 출신 임원을 영입하려고 혈안이라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김대중이 대통령 됐으니 전라도 출신이어야 줄대기 쉽다는 판타지는 권력이 만든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만들어져 올라갔다는 것을. 지역감정이라는 것은 거대한 거짓말의 체계라는 것을. 온 사회가 그 거짓말을 믿으니 그것이 저절로 진실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그러고 나서 쉽게 대통령 탓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우리는 한번도 대선을 '제대로' 치뤄본 적이 없다. 네갈래로 갈갈이 찢어졌던 87년, 3당합당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아야 했던 92년, 지역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그것을 이용해야만 했던 97년....

그런데 처음으로, 그 망할 놈의 지역이라는 것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다. 이번 선거는 세대간의 싸움이라고 한다. 지역주의가 여전히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역시 이번 선거의 키포인트는 세대이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의 같은 세대가 같은 정치적 입장을 공유한다는 것,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는 이것이 도대체 왜 이렇게 빌어먹을 정도로 어려웠단 말인가?

그리고 그 뭣같았던 색깔론의 벽도 탈색되어 가고 있다. 좌파임을 자임하는 당이 두 개나 나오고, '이 썩어빠진 자본주의 사회를' 운운하는 말이 버젓이 TV 토론에 나오는 상황에서 '나는 빨갱이 아니예요'라는 수세적 변명을 더 이상 외치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미국이 북한이 우리의 선거를 좌지우지 못하게 되는 사상 최초의 선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회창이건 노무현이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지역주의가 아래에서부터 만들어져 올라간 것이듯이, 변화도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조중동이 철저하게 무시한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끌어올린 것, 그것도 주최측이 없는 대규모 집회를 만들어 낸 것, 이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무엇인가 단단하고 낡은 틀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87년에 우리가 무엇인지 몰랐던 그 무엇이 이제 조금씩 눈에 보이고 있는 것이다.

월드컵은 우리에게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영토로 하는 국가로써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우리의 자긍심을 표현하는 단어였다. 달리 부를 단어가 없어서 대한민국이라 했을 뿐이다. 그 '대한민국', 백기완이 그렸던 '민중', 6월항쟁 때 우리가 상정했던 '시민'의 동의어로써의 '대한민국'은 이제 낡은 틀을 깨고 나오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설사 조금 못 미치는 점이 있더라도 그렇게 만들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뜻깊은 2002년, 그 대미를 장식할 대선이 드디어 막바지에 이르렀다. 글을 쓰는 동안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 20시간 정도면 투표 시작이다.

5년만에 돌아오는 의식은 시작되었다. 마지막 순간이 왔다. 이제는 당신이 그 마지막 점을 찍어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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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inmania
02/12/18 17:27
수정 아이콘
내일은 꼭 투표하고 스타해야 겠군요..^^
황무지
http://home.nec.go.kr
선관위 홈페이지입니다.
어디에서 투표하면 되는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beholder
02/12/18 20:59
수정 아이콘
감동적인 글입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명확히 밝히면서도 남을 선동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을 수 있다는 거... 많이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퇴근길에 아버지 가게에 들르니 지지후보를 이회창씨로 결정했다 하시는군요. 당장 돈 100만원도 못만드시는 분이 공적자금 40조가 어디로 쓰였는지 어떻게 아시느냐고 맥없는 항변하다, 그냥 아버지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제 아버지도 제 의사를 존중해주시리라 믿습니다.

투표하세요. 부디. 누구든, 멀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은 일을 회피하시지 말고, 책임을 져야 하는 일에 당당히 나서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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