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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2/17 01:13:06
Name Daydreamer
Subject [Daydreamer의 自由短想] #3.(KOR 우승특집) 투지鬪志에 대하여
Daydreamer의 자유단상 #3. (KOR 우승특집) 투지鬪志에 대하여


경기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

스포츠는 모른다고들 합니다. 공은 둥글다고들 합니다. 변수가 많은 게 스포츠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통계 기술의 발달으로 인해 점점 그 변수는 줄어만 가고 있습니다. 더더군다나 자본이 스포츠에 유입되기 시작한 이후로, 자본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인 ‘우연성’을 제거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가해지면서 상당부분 스포츠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또한 자본이 들어가게 되면서 점차 자본이 많이 들어간 팀의 승률이 높아지게 되고, 토토를 비롯한 각종 도박에서도 ‘대박’을 노리지 않는 이상 그런 팀의 배당은 안정적이기 마련입니다.
E-sports도 예외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왔고 또 그런 확률이 더 높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포츠에는 천재가 존재합니다(다른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이). 그것이 골프 같은 개인경기일 경우 타이거 우즈처럼 괴물급의 성적을 올리는데 전혀 막히는 것이 없고, 그 한계는 자신뿐입니다. 하지만 팀 경기가 되면, 그리고 팀원들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되면 마이클 조던이나 웨인 그레츠키 같은 희대의 천재들이라 해서 팀을 항상 승리로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플레이 끝에 이기는 경우가 더 많지만, 분투 끝에 지는 경기도 왕왕 있습니다. 팀원들이라는 요소가 있고, 축구처럼 한 팀에 열한 명쯤 되어버리면, 지단이나 호나우두 급의 한 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선수라 해도 약팀에게 어이없이 져버리는 경우도 생깁니다.
하지만 E-sports는 개인경기. 또는 프로리그라고 해봐야 2:2 팀플이 끝이죠. 아무래도 유명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가 경기하게 될 경우 유명 선수 쪽으로 토토가(...) 몰리기 마련입니다. 저 같아도 그렇게 할 거구요.

네임밸류 < 준비, 준비 < ?

하지만 E-sports의, 전략 게임이라는 특성상 강한 선수를 꺾는 방법이 있습니다. 테란한시가 오리온이었던 시절, 강도경, 변길섭, 박정석, 나도현 등을 보유하고 있던 명문팀 한빛스타즈를 에버배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만났던 것을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주훈 감독은 초시계로 시간까지 재 가면서 경기를 준비하는 것으로 유명했었는데요. 이것이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상대의 엔트리를 정확히 읽고, 그에 맞는 전략을 짜 왔죠. 3경기 이창훈 선수의 더블 레어 이후 폭탄드랍이나 4경기 임요환 선수의 언덕탱크 등.
예, 개개인의 실력, 그리고 그 실력을 통해 드러나게 되는 이른바 이름값(물론 뛰어난 실력에 비해 주목도가 드문 변은종 선수 같은 예외도 있습니다만... 실버벨 파이팅)을 이기는 방법은 게임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입니다. E-sports만의 특징이고,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한 요소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철저히 전략전술을 준비해온 자는 무적일까요?

장면 1.



흔히 4전 5기라는 말로 잘 알려진 홍수환 선수. 그가 4전 5기를 낳게 된 ‘지옥에서 온 악마’ 카라스카야 선수와의 경기를 다시 되짚어 보겠습니다. 적지였고, 더구나 홍수환 선수는 체급을 올려서 처음 갖는 타이틀 도전 게임이었기 때문에, 또한 카라스카야가 무시무시한 파괴력이 있기 때문에 홍수환 선수가 아웃복싱을 해야만 그나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전문가 사이에서는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1라운드 공이 땡 하고 울리자마자 홍수환 선수가 인파이팅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난타전을 벌이다가 라운드가 끝났습니다. 약간 당황한 듯한 카라스카야 선수와 의기양양한 듯한 홍수환 선수. 2라운드가 시작되고, 비슷한 양상이 벌어집니다. 이때 아나운서 왈,

“그래도 조심해야겠죠? 카라스카야 선수는 하드 펀처가 아닙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홍수환 선수 크게 한방 맞고 다운됩니다. 일어섰지만 다시, 또 다시, 또 또 다시 다운. 2라운드 동안 네 번이나 다운되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네 번째 다운은 앞의 것과는 달리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버린 것이었기에 더더욱 절망적이었죠. 모두들 경기는 이대로 끝날거다, 라고 생각하던 참에 3라운드가 시작되고, 홍수환 선수가 일방적으로 몰립니다. 다들 안타까운 눈으로 코치가 언제 타월을 던질 것인가 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에 갑자기 홍수환 선수의 소나기 펀치가 쏟아지고, 최종적으로 뒤로 비틀거리는 카라스카야의 턱에 찍어넣은 훅 한방으로 카라스카야는 침몰하고 맙니다. 경기 끝나고 예의 그 아나운서가 묻습니다.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짜식이 건방져서 꼭 이길라고 했습니다.”

짜식이 건방져서. 짜식이 건방져서. 그래서 그 수많은 펀치를 두들겨 맞으면서도 꺾이지 않았던 홍수환 선수. 그저 짜식이 건방져서... 이런 투지가 있었기에 그는 챔피언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장면 2.



1970년 NBA 결승전. NBA의 엠블럼에 아직도 남아있는 ‘미스터 클러치’ 제리 웨스트, 고공농구를 처음으로 개척했던 엘진 베일러, 그리고 누구도 막을 수 없을것만 같은 윌트 체임벌린이 있던 LA 레이커스와, 개개인의 능력은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지만 유기적인 팀플레이로 이겨 왔던 뉴욕 닉스가 결승전에서 맞붙었습니다. 당시 닉스의 핵심은 주장을 맡고 있던 윌리스 리드의 골밑 플레이였습니다. 그런데 5차전에서 리드가 발목을 삐는 사태가 발생하고 맙니다. 당연히 이제는 LA의 우승이 기정사실화되는듯 했죠. 그러나 닉스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뛰어 간신히 3:3으로 시리즈 스코어가 동점이 된 가운데 7차전에 돌입했습니다. 리드는 출전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고, 스타군단 LA를 이기는 것은 역시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리드가 선발로 출전했고, 게다가 중거리 점퍼로 득점까지 해버린 겁니다. 물론 그 이후에 교체되어 나가긴 했지만, 이 플레이는 닉스 선수들에게 불을 질러버립니다. “마치 몇 단계 위로 올라서 버린 느낌”이라고, 지금 미국 상원의원인 빌 브래들리가 말할 정도로 선수들은 투지에 불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들린 듯한 활약을 보여준 윌트 프레이저로 인해 결국 마지막 경기는, 그리고 그 해의 우승 반지는 닉스가 가져가게 됩니다.

위 두 장면에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여러분들도 이제 눈치채셨을 겁니다. 스포츠의 승부는 순수 재능이 물론 중요하지만, 재능을 이기는 것은 철저한 준비이고, 그 준비를 이기는 것은 이기고자 하는 불같은 투지, 그리고 팀의 경우에는 팀 케미스트리라고 하는 팀의 단결과 인화(人和)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듯 합니다.


KOR, 투지에서 이겼다



KOR이 3라운드 파이널과 그랜드파이널 플레이오프에서 두 번 연속으로 ‘게임계의 레알 마드리드’로 불리는 거함 KTF를 격침했습니다. KTF의 라인업을 볼까요. 김정민, 변길섭, 홍진호, 조용호, 강민, 박정석. 우승자만 셋이고, 이들의 연봉을 합치면 어지간한 팀의 1년 운영비가 나옵니다. 게다가 3라운드 파이널이나 이미 어제가 되어버린 플레이오프에서의 경기, KOR의 이명근 감독이 “예측이 모두 틀렸다”라고 할 정도로, ‘스타급 쎈쓰’를 보유한 KTF는 게임 준비에서도 역시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상대보다 더 뛰어났다고도 할 수 있죠.
그런데 겨우 선수 여섯명이 전부인 KOR의 선수들이 그것도 두 번 연속으로 KTF를 제압한 것은 다름아닌 ‘투지’의 차이였다고 생각합니다. KTF 선수들이라 해서 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부자 구단이면서도 2004년에는 개인리그와 팀 리그 공히 우승 경험이 없는 그들에게도 우승은 절실한 그것이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렇지만 KOR의 투지가 KTF의 투지를 능가할 만큼 더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상치 못한 상대의 엔트리와 전략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물고 늘어지던 그들. 그들보다 환경도 좋고 지금까지의 실적도 좋았던 상대에게 전혀 기죽지 않고 맞섰던, 그리고 결국은 승리를 따 냈던 KOR의 여섯 전사들, 주진철, 신정민, 한동욱, 차재욱, 전태규, 박명수, 그리고 이명근 감독. 오늘의 승리를 축하합니다. 동시에, 지금의 불꽃같은 투지, 시들지 않고 다음 경기에까지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역시 잘 싸워주었던 KTF에게도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KOR의 우승 기념으로 필받아서 써봤습니다. 다음에는 약속대로 박정석과 경상도 남자라는 제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이번 글은 강석진 고등과학원 교수가 쓴 ‘축구공 위의 수학자’라는 책에서 홍수환 선수의 에피소드를 인용했습니다. 사진은 비타넷의 Eva010님 게시물에서 따왔구요.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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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17 02:02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_._*) ... 승리에 대한 집착이라고 까지 할정도의 굶주림..

슬램덩크 에서 해남대부속 고등학교 전 에서 등장하는 대사죠..

그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준비할수 밖에없고 재반 조건을 배제하고

승리만을 향해 나아 가게 되죠 .. 그사이에 잃어버리는것도 많을것입니다 ..

전태규 선수의 방송외도와 그것을 그만둔 과감성.. 역시 그도 승부사 .승냥이였지 가축이 아니었던것이죠..

지난번 결승전 전태규 선수 어머님 .. 너무 다소곳하니 이쁘시더군요..

결승에서 다시한번 이쁜모습의 인터뷰가 보고 싶습니다 .. -,-;;
05/02/17 03:47
수정 아이콘
*^^*

잘봤습니다.
KOR의 선수들은 7입니다. 여섯명의 게이머와 그들에게 끊임없는 애정과 응원을 보내는 KOR팬들!^^*
항상 함께하는 7이기에 그 무엇도 두렵지 않습니다.*^^*
Lenaparkzzang
05/02/17 08:04
수정 아이콘
맞아요. 7이에요.
안전제일
05/02/17 12:05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멋지네요. 역시 승부라는건 정말 굉장한 매력이 있는 겁니다.
그것을 위해 불태우는 게 열정이고 투지겠지요.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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