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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05/23 16:41:07 |
Name |
불소 |
Subject |
어제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
저는 어제 무척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정말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응원한 선수가 지기는 했지만, 극적인 영화와도 같은 승리를 보기도 했고, 여자친구도 무척이나 만족을 했으니 성공적인 데이트였죠. 작년에 오프 갔을 때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나기도 했었고, 가까이에서 MC용준을 본 경험 또한 무척 특별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진짜 운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KT 팬이라서 이영호 선수를 보러 간 것이었고,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조금 늦긴 했지만 그래도 김정우 선수의 우승 소감이 나올 때 퇴장을 시작했으니 그렇게 늦게 나온 건 아니었습니다. 한 30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이 보시기엔 우스울 정도의 대기 시간이었죠. 그런데 이게 어떻게 나온 거냐면 출구 앞쪽에서 줄을 서고 있었는데, 이쪽이 아닌 거 같아 왼쪽에 있던 대각선의 줄로 옮겨갔더니 이쪽이 빠져나가고 있던 겁니다. 그러니까, 군중은 크게 두 무리로 서 있었는데 그 나가고 있던 무리가 원래 나가야 할 먼저 줄을 선 대기자들이 아니고 옆에서 끼어들던 사람이었던 겁니다. 전 덕분에 운이 좋게도 일찍 나갈 수 있었습니다.
퇴장만 운이 좋았던 게 아닙니다. 입장도 운이 좋았죠. 저는 KT 공홈에서 골마 응원단을 신청해둔 상태라 3시까지 가면 될 것으로 생각했었고, 제가 조금 늦게 출발하기는 했어도 3시 20분에 격납고 앞 대기장소로 이동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줄이 끝없이 늘어지더군요. VIP냐 아니냐만 물었기에 전 아니라고만 대답했고, 긴 줄을 따라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막 너머로 팬들이 보이는데 금빛 망토를 두르고 있더군요. 전 처음에 그분들이 앉은 자리에 이영호 응원단이라고 다른 팻말이 있길래 그냥 팬클럽 자리인 줄 알았습니다. 생각해보니 금빛 망토는 KT 공홈 응원단이 착용하는 것이었고, 확인해보니 거기가 KT 공홈 신청자들 대기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여자친구 데리고 꾸역꾸역 끼어들어 가서 겨우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훨씬 일찍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무척 운이 좋았습니다. 늦게 도착했지만 어떻게 끼어들어가 일찍 들어갈 수 있었고, 꼼짝없이 빗속에서 기다려야 할 것을 비집고 들어가 저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전부터 기다리신 분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이쯤 되면 거의 사기 수준이죠. 퇴장할 때도 뒤늦게 나왔지만, 줄을 잘 타서 일찍 나올 수 있었습니다. 비록 막차를 타고 가다 택시로 옮겨가야 했지만요.
저는 분명히 저렇게 빨리 입장할 수도 없었고, 그래야 했습니다. 분명히 늦게 왔으니까요. 하지만, 재밌지 않나요? 몇시간째 기다리던 사람보다 30분 기다리던 사람이 더 빨리 입장했습니다. 아 이건 다른 결승 오프에서도 경험해보긴 했네요. 하지만 저는 어떤 안내도 받지 못했고, 어떤 설명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오프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돔 아트홀에서 열렀던 로스트사가 MSL 결승이었습니다. 이번 오프와는 규모가 비교가 안 되었었죠. 그때는 응원단 규모가 일반팬들에 비해 그렇게 적은 게 아니었지만, 어제는 응원단 신청자가 380명이었고 참가자는 12000여 명이었죠. 이 40분의 1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팬들이 빗속에서 우왕좌왕하면서 기다렸어야 했을지. 아, 김정우 선수 측 응원단도 있으니 20분의 1로 정정하겠습니다.
퇴장도 말이 안 됩니다. 이미 왼쪽 라인의 2/3가 빠져나온 상태에서 나오기 시작했는데, 30분 만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아, 이 시간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CJ 선수 몇 분이 밖으로 나오실 때 제가 입구에 있었으니 이걸 목격한 분이라면 정확한 시간을 아실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저는 다른 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빨리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제 제가 한 달간 써야 할 운을 다 써버린 건 아닌가 무서움이 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제가 굉장한 반칙을 한 것 같고, 다른 분들에게 죄송스러운 느낌까지 들 정도입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일찍 일찍 나왔지만, 수천 명의 팬들은 이 이상한 시스템에 붙잡혀서 고생해야만 했으니까요. 첫 글을 이렇게 두루뭉술하면서 이상한 뻘소리로 쓰자니 웃음이 나옵니다만,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오프가 4번째였고(로사 MSL 결승, 위너스 용산 플옵, 프로리그 황달록) 모두 큰 이벤트였기에 고생해야만 했습니다. 일행들과 같이 앉지 못한 적도 있었고,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해야 했던 적도 있었고, 불친절하고 위압적인 경고를 받은 적도 있었기에 오프에 대한 기억이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전 아직 스타판에 대한 애정이 있는 데다가 원래 KCM과 승원좌를 좋아하는 마음에 이번 MSL 결승을 갈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번 MSL마저 절 실망시킨다면 다시는 오프를 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ps : 퇴장할 때 보면 뭐라고 부르는 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퇴장 대기자라는 조그만 천막이 있던 거 기억하시려나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거기에는 '나갈 분들은 셔틀버스를 타고 나가야 하니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글이 써진 종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어제 퇴장은 분명히 온게임넷이 계획한 그대로였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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