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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11/13 18:35:14
Name p.p
Subject 부모 그리고 자식


우촌마을 들머리 당산나무 밑에 흰 펼침막이 내걸리고 '위태호 행정고시 합격‘을 축하하는 마을 주민들의 진심어린 글귀가 그렇게 빛나 보일 수 없었을 때만해도 능화댁은 살아 있었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고마워 했다. 우촌마을 생기고 나서 첫 경사라고도 했고, 능화댁 남편 위구대씨가 20년 가까이 머슴살이 한 뒤끝에 하늘도 무심치 않았다는 코끝 찡해오는 격려도 있었다.

위태호는 깡촌 출신 수재였다. 능화댁이 낳은 일곱 자식 중에 막내이면서 유일한 아들이기도 했다. 위구대씨가 머슴살이를 그만 두고 자신의 토지로 농사를 짓게 된 것은 위태호가 태어나던 해부터였다. 아들의 장래를 걱정해서였다. 아들이 큰 인물되면 아버지가 남의 집 머슴이었다는 사실이 누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서였다.

딸 여섯 모두 초등학교 문턱만 넘겼지만 하나같이 도시로 나가 공장에 다니거나 부잣집 식모살이를 하기도 하고, 버스차장도 해서 모은 돈을 고향 부모님에 보냈다. 그렇게 모은 재산이 논 스물 다섯 마지기라는 알부자를 만들었고, 위태호는 걱정없이 체계적으로 공부를 했다. 더구나 하늘이 낸 수재여서 시험마다 백점이고, 수석이었다. 부산으로 유학가서 중·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줄곧 수석이었다.

위구대씨는 그런 아들이 보고 싶어서 자주 부산 나들이를 했는데, 아들 하숙집에서 기다리다 못해 학교 교문 앞까지 가서 기다렸다. 아들이 아버지를 보고 얼른 피해버렸다. 나이보다 훨씬 겉늙은데다 백발이 아무렇게나 뒤엉킨 짧은 머리, 검정 고무신, 낡은 점퍼와 허름한 바지, 구부정한 허리, 갈쿠리같은 손등의 굵고 징그러운 동맥, 남은 것보다 빠져버린 것이 더 많은 누렇게 색이 변한 이빨 등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친구들이 보면 놀림감으로밖에 안되리라는 판단을 했다. 그런줄도 모르는 아버지는 아들 하숙집으로 다시 찾아왔다. 아이들이 다 나올 때까지 교문에서 기다렸다고 했다. 위구대씨의 그런 모습은 자주 보였지만 번번이 아들은 피해서 달아났다. 우등생 아들은 유명한 법과대학에 또 수석입학을 했다. 이번에는 서울로 유학을 가버리는 바람에 위구대씨의 아들 만나기도 그 만큼 더 어려워졌다. 아들은 서울로 간 그날부터 고향과는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어쩌다 고향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외면해버렸다.

능화댁은 그런 아들을 감쌌다. 못난 사람들이 자기 아들을 깎아내리려 한다는 것이다. 방학 때가 되어도 고향에는 오지 않았다. 능화댁이 서울 아들을 찾아갔다. 이틀만에 우촌마을로 돌아온 능화댁은 말이 없었다. 위구대씨가 거듭해서 아들 소식을 물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숨을 내쉬거나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더러븐 늠. 내가 지늠을 우찌 낳아서 키웠는데, 에미를 종년으로 알아!"

그런지 두 해 뒤에 위태호가 행정고시 수석합격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고, 소문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위태호는 고향에 오지 않았다. 그의 큰 누이가 서울로 동생을 찾아갔을 때 그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출세에 지장이 되니까 더 이상 형제니, 부모니, 고향 따위를 들먹거리지 말고, 찾아오지도 말라고.

다시 일년 뒤 위태호는 중앙청의 관료가 되면서 재벌이라는 사람의 딸과 혼인을 했다. 결혼한다는 소식도 없었다. 소문으로 알게 된 능화댁과 누이들이 서울의 호텔 예식장으로 찾아갔지만, 초청자 명단에 들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정문을 지키는 이상한 청년들로부터 저지당했다. 집에 돌아온 능화댁은 여러 날 바깥 출입을 않고 누워 울기만 했다. 그 아들 낳으려고 십년 넘게 해온 칠성기도가 이런 참담함으로 돌아왔느냐며 피울음을 울었다.

세월은 불효자니 개망나니니 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흘렀다. 위태호는 승승장구했다. 자식도 두었고, 직위도 높아졌다. 능화댁은 자식놈이 낳은 손주들을 한번만 봤으면 좋겠다며 한숨으로 살다가 심장병으로 죽었다. 다섯째사위가 서울로 위태호를 찾아갔다. 지방 일간지 기자였다. 위태호는 신문기자에게는 약했다. 결국 능화댁 장례식에 왔다. 그런데 그냥 오지 않았다. 중앙 일간지 일면에다 오단 크기의 부고를 냈다. 느닷없이 국무총리와 내무부장관 이름이 새겨진 큼직한 조화가 우촌마을로 배달되고, 300대 가까운 검은 승용차가 오고, 도지사와 군수까지 우촌마을에 나타났다.

능화댁의 장례식은 그렇게 끝났다. 위태호는 능화댁 주검이 무덤으로 변해버린 산에서 곧장 서울로 떠나버렸다. 급한 해외출장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다시 고향과는 발길을 끊었다. 위구대씨가 중풍을 앓게 되었다. 다섯 번째 사위가 또 위태호를 찾아갔다. 며칠 뒤 앰뷸런스가 와서 위구대씨를 싣고 서울로 갔다. 위구대씨는 병원에서 두어 달 보내다가 병문안온 큰 딸을 따라서 우촌마을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뒤 위구대씨 이름으로 된 내용증명 한 통이 위태호 차관 사무실로 배달되었다.
[펌] 2004.11.11.  국제신문 칼럼 / 정동주



기사읽고 느낀점 : 이상하다? 국회의원 출마하려며 고향마을 ‘관리’해 줘야 하는데?...




2004.11. 6. 토요일 서울의 애들 자취집으로 갔다.
추수도 한참 끝난 시골에서 뭐 가지고 갈게 없어서 가면서 가락동시장에 들러 생선회를 조금 샀다.
저번 서울 갔을 때 아들녀석이 자취집 근처에 있는 일식집에서 저녁 사 줬는데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딸애에게서 전화가 왔다. 벌써 해가 지고 있는데 어디쯤 오시냐고, 배고픈데 빨리 오라고 했다.




금년 구월, 부산에서 치룬 조카딸애 결혼식에 아들에게 꼭 참석하라고 했다.
스물여섯 동갑의 어린 신랑신부는 일기예보의 비 온다는 걱정보다는 바쁘게 지낸다는 사촌동생 녀석의 참석여부를 더 걱정했다.
게임을 좋아하는 신랑친구들이 진짜 식장에서 프로게이머 보게 되냐며 성화라는 것이었다.
막상 결혼식장 로비에서 옆 결혼식장 학생 축하객들까지 사인해 달라고 몰리자, 양가 혼주님들도 덩달아 벙실벙실 하셨다.


이런저런 일로 사귄 게임 팬 중 한 분이 서울에서 결혼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꼭 참석해서 축하 드리고 싶은 분이었는데 마침 그 날 다른 일정과 겹쳐 도저히 서울 갈 수가 없었다.
아들녀석에게 말했더니 대신해서 선선히 식장에 다녀왔다.




애들 집에 도착해서 아이들이 미리 사 놓은 백세주로 술 한잔씩 하고
매운탕까지 끓여 저녁 먹고 나니 벌써 밤 10시가 가까웠다.
아내와 서울 가면서, 밤에는 네식구가 한명 광 팔고 고스톱 치자는 농담을 했었는데,
정말로 고스톱 치기는 그렇고 그냥 잠들기도 그렇고 해서 동대문 의류타운으로 쇼핑 가기로 했다.

가면서 아들녀석이
"저 나이 정도되면 가족들과 같이 다니는 애 없어요"
라며 생색을 냈다.


우리부부는 대꾸없이 그냥 헤벌레 벌어지려는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공부 못하면 어때, 게임에 미쳤으면 어때! 똑바로 살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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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울프
04/11/13 19:01
수정 아이콘
흐뭇하시겠습니다..^^
아들 자랑도 팔불출이라면 팔불출이죠???...^^;;
p.p님 글 읽으면서 항상 느끼는 거지만 좋은 아버님
덕에 좋은 아드님이 나신 것 같습니다...
기다림...그리
04/11/13 19:25
수정 아이콘
p.p님 같이 아들 잘 이해해주시고 잘 챙겨주시는 아버님도 없죠... 담부터는 같이 생색내세요........ ^^
04/11/13 21:21
수정 아이콘
이 글 보니 아빠가 보고 싶네요..
p.p님에 사랑이 그득 느껴지는 글..
-rookie-
04/11/13 22:55
수정 아이콘
늘 건강하시요?
반갑습니다. 아드님 많이 사랑해주세요. ^^
이뿌니사과
04/11/14 00:17
수정 아이콘
^^ 좋은 아버님 좋은 아드님이시네요.
안전제일
04/11/27 10:31
수정 아이콘
좋으시겠어요.^^;
이제야 읽었네요 으하하하-

아아 울 어머님, 아버님한테도 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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