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5/04/20 23:51
(수정됨) 현대사와 나, 내 가족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실감할 때마다 기분이 참 묘해지곤 하죠. 저희집 같은경우는 뭐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한 게 아니니 부끄러울 것도 딱히 없다고 생각하는(가족은 가족이고 나는 나니까), 할아버지가 왜경이었던 집안입니다. 무려 김일성 일문의 고향인 평남 대동에서 경찰하다가, 해방되고 쏘오련군이 들어오면 뼈도 못 추릴테니까, 다 내팽개치고 마누라와 자식들만 이고지고 남으로 도망왔죠. 그래서, 족보도 없고, 할아버지가 이북에 있을때 본 기억으로만 조상을 기억하는. 김일성이 본관이니 족보니 하는거 다 봉건잔재라고 박살을 냈다니까, 통일후 먼 고향에 찾아가도 확인할 길은 없겠십니다. 월남후 자연스레 조병옥 산하의 경찰로 승계되셨고, 여순사건 진압에 참가했다가, 그 참상을 보고 이짓하단 오래 못살겠다고 생각하셔서 그만두고 나왔죠. 한국전쟁때는 또 잡혔다간 또 뼈도 못 추리니, 또 한번 뒤도 안 돌아보고 부산으로 도망갔고, 전쟁이 끝나고도 또 전쟁나면 또 도망와야하니 한동안 부산살다가, 몇년 지나 서울로 돌아와서 지금으로 이어지고 있네요. 그러다보니 님 가족이 겪은거 같은 고초는 겪을 일이 없었긴 하고, 경찰 나오면서 무려 남대문시장의 점포를 하나 받아 나온지라, 그걸 종잣돈 삼아 지금까지도 유복하게 살고 있긴 하네요. 할아버지가 중간에 많이 날린지라, 기댓값보단 못하긴 하지만. 역시 독립운동가는 3대가 굶고 민족반역자는 3대가 떵떵거리는건지. 그런 점에서 보면 저의 안온한 생활도 나라 팔아먹은 부분에 기댄게 있으니, 당당할 것도 없지 싶기도 하고. 그 할아버지는 생전에 애국을 참 강조하셨었죠. 할아버지의 애국은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하긴 합니다. 이젠 물어볼 길 없지만.
혼자 산책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이 생각이 종종 떠오르고, 그저께도 꽤 길게 산책할 때도 이 생각을 떠올리고 그랬는데, 이 글을 보니 풀어놔보고 싶어졌네요 후후. 서로 다른, 엇갈린 세월을 보내왔지만, 무상하기는 마찬가진거 같습니다. 그냥 어르신들 기일에 산소나 열심히 다니는 것 말고는 헛헛함 달랠길이 있나 싶긴 해요. 저는 결혼도 안했고 애도 없으니, 저 죽으면 이젠 이 이야기는 제 대에서 갈 길을 잃기도 할테구요. 조카들이 있는데, 조카들이 이런 이야기를 재밌어 할 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혀두 저러한 이야기들은 대한민국 초기사가 워낙 질곡이 심했으니 있었던 일 들이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제는 군사반란도 망치질 세번에 일단락나는 세상이 되었으니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저런 이야기는 고대의 신화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지 싶긴 합니다. 마, 기억해주면 좋고 아닌들 어차피 나 죽으면 끝인데 뭔 상관이랴 싶긴 합니다만서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