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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007/08/29 08:36:31 |
Name |
천마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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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쿠바를 다녀와서 |
안녕하세요 천마도사입니다.
한 때 피지알 운영자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생업이 너무 바빠 피지알 운영자 업무에 소홀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활동하시는 다른 운영자님 뵙기가 너무도 미안하고 죄송스러워 사직서를 내고 눈팅족으로 돌아선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세상은 빨리 돌아가고 사람들은 바쁘게 살아갑니다. 저도 뒤를 돌아볼 겨를없이 바쁘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덧 30살을 훌쩍 넘겨 버렸네요. 휴.. (앞서가고 계시는 인생 선배님들께는 죄송합니다.) 세월 참 빠릅니다 ^^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아주 살짝 제 젊은 날을 돌아보니, 뭐 그다지 큰 발자취를 남겼거나 놀랄만한 사건사고를 겪었다거나 미래를 위해 온 힘을 다해 매진했다는 등의 일은 없었습니다. 네; 이건 좀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딱 한가지 자랑할 만한 일이 있다면, 우연히 세계 여행을 할 소중한 기회가 아주 많았다는 점이고 그 덕에 참 많이도 돌아다닐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중에 쿠바가 있었습니다. 피지알에 쿠바에 대한 글이 올라왔고 쿠바에 대한 생각이 나기 시작했고 쿠바가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글쓰기 버튼을 누르게 된 것입니다.
쿠바행도 참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혼자 훌쩍 떠나기에는 참으로 소중하고 드문 기회라 평소 잘 알고 지내는 형에게 찾아갔습니다.
“형 쿠바 가자”
“어 그래”
“아 네;;;;”
주) 가끔 세상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쿠바에 가려면 멕시코를 거쳐 가거나 캐나다를 거쳐 가야 했습니다. 200만 원이 넘는 왕복 항공권을 마련하기까지, 쿠바에 대해 찾아보면서 이것저것 알아가기까지, 체 게바라 평전에서부터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 이르면서 쿠바에 대해 공부하기까지, 그리고 캐나다 밴쿠버, 토론토를 지나 아바나에 도착하게 되기까지의 세세한 과정은 생략하고 드디어 카리브해의 흑진주라 불리는 쿠바에 첫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행을 다니면서 특정 나라 특정 도시에 대한 호불호가 딱히 없었습니다. 런던은 런던이라 좋았고, 캄보디아는 캄보디아라 좋았습니다.
하지만 쿠바는 정말이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매력으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이 매력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공연을 직접 봐서 그런 것도 아니고,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레스토랑에서 모히또를 마시며 고히바 시가를 문 채 근사한 식사를 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으며, 보라카이와 몰디브보다 더 아름답게 다가왔던 베라데로 해변의 휴양지에서 느긋하게 피나콜라다를 마시며 놀았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쿠바의 사람들은 제가 아는 한 세계에서 가장 친근하고 열려있는 이들이었습니다. 아바나에서 마주치는 모든 이들이 이방인인 우리를 보면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합니다. 그 중에 많은 사람은 관광객들에게 살사를 가르쳐 주겠다거나, 시가를 팔겠다거나, 좋은 아가씨를 소개해 주겠다(!)는 핑계 등으로 달러를 벌고자 합니다. 여전히 여기도 자본주의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거든요. 하지만 그런 속셈조차 동남아시아나, 중국,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광객 상대의 전형적인 사기와는 많이 다릅니다.
“올라(안녕) 아미고(친구) 어디서 왔어?”
“꼬레아”
“북한?”
주) 북한 대사관이 있습니다.
“아니 숲 꼬레아 (남한;)”
“살사에 관심있어? 내가 싸게 가르쳐줄게”
“관심은 있는데 난 가난한 여행자라 돈이 없어”
이 친구는 길 한복판에서 멋진 살사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고 그 주변이 어느새 길거리 공연이 되어버립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이것저것 묻고 저도 (짧은 영어로, 몇 안되는 스페인어로) 대답하면서 친해집니다. 그리고 춤을 춰야 합니다. 다들 추기 시작하니까요. 가끔은 술판;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또 길을 가다보니 누가 불러 세웁니다.
“아미고! 가이드 필요해?”
“모히또가 맛있는 곳을 찾고 있긴 한데, 한잔 살 테니 알려줄래?”
이 친구도 영어를 잘 못하고, 제 영어도 썩 그럴 듯 하진 않습니다. 이 친구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친구를 불러오고, 셋이서 어느새 쿠바의 정치상황과 한국의 정치를 비교분석;하는 토론이 시작되었습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고 말레콘 해변에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할 때까지 그 토론은 계속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고 춤과 음악이 말레콘 해변 곳곳을 장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새 아미고와 아미가(여자)들은 이야기를 하고 춤을 추고 음악을 들었습니다. 맛있는 모히또를 찾고 있긴 했었지만, 그때 그들과 주머니를 탈탈 털어 모은 동전으로 산 싸구려 럼 한 병을 돌려 마시며 밤새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어딘가에 있었을 맛있는 모히또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력이 충분치 않아 밤이 되면 아바나에는 어둠이 짙게 깔립니다. 론리 플래닛 여행 책자에도 나와있듯이 위험하진 않습니다. 다들 친구들인걸요. 물론 관광수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경찰들도 관광객들의 안전과 편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그런 면도 있습니다.
못사는 나라 맞습니다. 필리핀 외곽에 있는 도시들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주) 필리핀은 스페인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세계 어느 나라의 사람들보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제가 겪었던 세계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친절하고, 다정하고, 유쾌했습니다.
..................................
쿠바의 매력은 참 설명하기 힘듭니다. 여행은 사람마다 목적이 있고, 그러기에 쿠바는 여행에서 제외 해야할 1순위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덥고, 도시는 지저분하고, 교통은 불편합니다.
사람들이 좋고 친절하다?
춤을 잘 추더라?
제가 겪은 위의 예시들은 쿠바를 설명하기 위해 써 내려가긴 했지만 쿠바의 매력을 설명하기에는 참으로 빈약합니다.
혹시 주변에 쿠바를 다녀오신 분을 만나보셨나요?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 공연은 참 좋았고 음악까페들도 맘에 들었어. 괜찮은 곳이야. 근데 거기서 한 녀석을 만났는데 말야…”
“에어컨은 낡아서 소리나고 조명은 어둡고 불편해서 잠을 설쳤다구. 근데 말이지…”
“헤밍웨이고 체 게바라고 다 관광상술로 밖에 안보이던데? 흠… 근데 말이야…”
제가 만나본 분들의 저 말줄임표 뒤에 오는 말과 그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눈이 반짝반짝해지는 모습을 보면 무언가 느낌이 오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설명하기 힘드네요 ^^
여기 쿠바에 우연히 다녀온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귀국과 동시에 스페인어 학원을 등록하고 다시 쿠바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사람은 평소에 게으르기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잠시 생업에 휩쓸려 먹고 살기에 잠시 바빴다가, 또 우연한 기회에 샌디에고에 오게 되었고, 샌디에고 바로 밑이 멕시코, 그리고 거기서 비행기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쿠바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즉시 방문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가 될지는 몰라도 몇 번의 쿠바여행을 마치고 나면 혹시 저 말줄임표 뒤에 오는 말들에 대해 설명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까지 쿠바가 지금의 그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 anistar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8-3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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