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6/03/29 00:17:07
Name legend
Subject 하드코어 질럿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PGR채널로 향하였다.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늦은 밤까지 남아
대학진학을 위해 공부해야 하는 나에게 있어 1시간 남짓한 이 짧은 휴식시간에 즐기는
스타야말로 피로를 말끔히 없애주는 청량제이다.

PGR채널에 들어가자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이 채널 단골들이 몇 명 보인다.그리고 그 중
나와 꽤 아는 사이인 RUN이라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Zerg-Lord>하이~
<RUN>하이요.
<Zerg-Lord>휴,오늘도 피곤한 하루를 끝내고 왔습니닷.ㅠㅠ
<RUN>^^고생하셨어요.
<Zerg-Lord>음,뭐 별다른 일도 없고...후,그냥 한겜 뛰죠?
<RUN>ㅇㅋ

그리고 나와 그는 평소처럼 루나에서 게임을 시작하였다.

<Zerg-Lord>GG/GL
<RUN>gg

맵이 열리고 게임이 시작되었다.나의 종족은 저그,상대는 프로토스이다.
그리고 위치를 보니 11시였다.가로일까,세로일까,아니면 대각선일까.
실력도 그리 뛰어나지 않은 중수 정도에,스타일도 튀지 않은 운영형 스타일
인 나는 이번 게임도 다른때와 다름없이 12드론 앞마당을 가져가며 차근
차근 초반에 올 러쉬를 대비해놓기 시작했다.

왜냐하면,내가 상대하는 그는 나와 처음 게임을 했을때부터 아니 훨씬 그
이전부터 저그전엔 꼭 하드코어 러쉬만 하는 사람이었다.몇년전이라면
당연한 말이었겠지만 요즘같은 때에 보통 더블넥을 하지,그토록 강렬하고
폭풍같은 하드코어 러쉬를 하는 사람은 아마도 저 사람뿐일것이다.

드론정찰을 해보니 상대의 진영은 5시,대각선이다.하지만 대비를 해놓아야
한다.그의 진영을 확인해보니 어김없이 투게이트의 하드코어 러쉬를 할 준
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빠르고,비수같은 날카로움으로 그는 나의 앞마당을 공략해왔다.해처리
가 펴지자마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프로브로 콜로니의 건설을 방해하면서
어느새 도착한 질럿이 합류하여 방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이정도는 예상했던 일,저글링이 막 완성되어 앞마당으로 보내어
졌고 콜로니도 우여곡절끝에 하나가 간신히 크립에 정착하였다.그러나 그의
질럿은 멈추지 않았다.3기에서 5기,5기에서 7기...뭔가 이상하다?

아무리 그라도 요즘 들어서는 예전같은 올인성 하드코어는 거의 하지 않는다.
대충 압박을 가한 다음 멀티 확보와 테크를 올리는 그런 평범한 2게이트의
정석을 따르기 시작했었다.하지만 오늘은 뭔가 다르다.이것은...진정한 의미
의 하드코어,스타크래프트 세계의 모든 초반공격 중 가장 강렬하고 파괴적인
러쉬가 시작된것이다.

그의 질럿은 언제나 화려하고 멋졌지만,이번은 더욱 확연히 달라보였다.
꼭...질럿이 스스로 살아움직이는듯한 움직임이었다.수많은 저글링들이 크립
위에 피바다가 된 채 죽어가고,콜로니의 파괴된 흔적들이 수군데 생겨났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맵 전체를 전부 부셔버릴듯이 달려들던 질럿들은 어
느새 성큰콜로니와 저글링들의 연합에 하나씩 쓰러져갔고,프로토스의 폭풍
같던 질주도 끝났다.한순간 미친듯이 타올랐던 불꽃이 하얀 재만을 남기고
사라졌듯이...
그리고 마지막 질럿이 파란 불꽃으로 산화하는 순간 그의 게임도 끝났다.

<RUN>gg
RUN has a laft game.

게임이 끝났다는 메시지가 뜨고 점수판으로 이동하였다.무의식적으로 리플레이
를 저장한 후 다시 배틀넷으로 돌아왔을때가 되서야 제정신을 차렸다.마우스에
서 손을 뗐을때 느껴진 시원하고 차가운 감촉에 놀라 손바닥을 들여다보니 땀에
흠뻑 절은 축축한 손바닥이 보였다.마우스도 마찬가지로 번질번질 물기때문에
눅눅해보였다.내가 한 게임은 무엇이었을까?그것은...내 생각엔 게임이 아니었
다.무언가를 태운듯한 매캐한 냄새가 내 코를 찌르는듯 하다.
한동안 나와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갑작스레 그가 말하
였다.

<RUN>이제 더 이상 하드코어는 안 할 생각입니다.
<Zerg-Lord>....예?그게 무슨
<RUN>요즘 들어서 하드코어라는게 더 이상 저그에게 통할 러쉬가 아니라는걸
느꼈습니다.이젠 더블넥같은 유행전략을 써봐야겠죠.^^
<Zerg-Lord>그렇다면 이제...
<RUN>예,아까 게임이 제 마지막 하드코어 러쉬였습니다.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왠지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모든 힘을 다해서 플레이했는데 결국 져
버렸네요.하하^^;;

한 순간,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히었다.아무 말도 없는 나에게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RUN>스타를 한 지 몇년이나 지나고 그동안 수많은 전략이 나오고 바뀌었지만
제가 가장 좋아했던 이 하드코어 러쉬만은 도저히 버릴수가 없더군요.이것마저
버린다면...더 이상 내가 추구했던 낭만이 영원히 사라져버리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하지만 이젠 더 이상 미련 가지지 말아야겠죠.과거의 낭만
보단 현재의 승리가...더 중요하니까.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당신의 그 러쉬는 최고였다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하드코어 질럿이었다고,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저 조용히,숨죽여 채팅창을 바라볼뿐이었다.

그렇게 낭만시대를 살고 있던 게이머 한명이 현실로 귀환했다.그냥
평범하디 평범한,배틀넷에서 있었던 아주 작은 일이었다.
* 메딕아빠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3-30 07:29)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GeNiuS.PlayeR
06/03/29 00:21
수정 아이콘
이 글 하나에... 엄청나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듯 한데요...

잘 읽었습니다.
먹고살기힘들
06/03/29 00:23
수정 아이콘
저도 로템에서 저그전에는 12시 6시의 대각선이 나와도 하드코어 합니다.
베넷 공방이기에 승률은 반타작은 합니다.
Nada-inPQ
06/03/29 00:23
수정 아이콘
그런 것 같습니다..낭만이라...

게임에서만큼은 낭만처럼 살아도 되지 않을까요,.그래도 낭만인데..
이상윤
06/03/29 00:25
수정 아이콘
요즘 하드코어 질럿러시는 팀플아니면 보기가 힘들죠.
현란한암내
06/03/29 00:25
수정 아이콘
전 무조건 언제나 하드코어입니다. 11프로브까지 뽑고 쉬는 진정한 하드코어요... 프로토스가 돈을 안남기고 제대로 쓸줄만 안다면 최강의 종족이라는 마인드입니다
낭만토스
06/03/29 00:29
수정 아이콘
참 우연이네요. 문학작품과 스타를 연관지어서 패러디하는 걸 요즘 가~끔 하고 있는데 마침 하고 있던게 이것과 비슷한 주제였습니다. 단지 소재가 legend 님은 저그전 하드코어고, 전 토스전 FD 일뿐이고요. 잘 읽었습니다~
현란한암내
06/03/29 00:31
수정 아이콘
저의 하드코어경험담을 말해본다면... 가로 세로거리면 성큰을 안짓는다면... 90%앞마당을 부실수 있구요... 1개를 짓는다면... 50%정도
2개를 짓는다면 10%정도 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을 내자면... 성큰을 못짓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전 프로브 2기로 성큰 못짓게 드론들 따라당깁니다... 예를 들면 이재훈선수가 박성준선수 2:0으로 이길때 그런거같네요
카이레스
06/03/29 00:34
수정 아이콘
좀 더 다양한 전략과 섞어서 하드코어를 구사하신다면 더 강해지실 겁니다^^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하얀그림자
06/03/29 00:41
수정 아이콘
저도 프로토스유저인데요. 저도 저그 상대로는 거의 하드코어 갑니다. 하드코어가 아니라면 드래군 리버. 이 두가지 전략으로 저그 상대로했죠. 더블넥...전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거의 안해봤는데...왠지 제 스타일이 아니더라구요..
06/03/29 00:47
수정 아이콘
하드코어... 전 하드코어로 져본적이 별로 없습니다.. 라오발에서 특히요.. 앞마당 방해만 제대로 해주면 헤처리 타이밍이 늦춰져서 반드시 헤처리를 날릴수 있게 되더라구요.. 문제는 본진 투헷 바로 가버리면 OTL.
삼겹돌이
06/03/29 01:30
수정 아이콘
왠지 요즘 프로토스의 모습을 보는듯한....
왠지 모르게 우울하네요
하지만 새로운 유행을 프로토스가 선도할거라고 믿습니다
현란한암내
06/03/29 02:28
수정 아이콘
본진 투햇가면... 포토짓고 3질럿 2포토로 입구 막고 더블넥하면 필승임당
sgoodsq289
06/03/29 13:39
수정 아이콘
흐음........나름대로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만
좀 깨는 소리인것 같지만....

하드코어 질럿을 또 쓸 수 있는거 아닌가요;;ㅋ
경우에 따라서 말이죠ㅋ
저렇게 아예 앞으로는 더블넥으로만 갈겁니다.... 이런 식으로 전략을 확 줄여버리면;
이길 가능성이 좀 줄어드는거 아닌가요;ㅋ

예전에 제가 프로토스한테 곧잘 썼던게..... 저글링 히드라 타이밍 러쉬였는데;
한참 하다가 그거 잘 안통하니깐..... 이제 나는 이건 안하겠어!
이랬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하면 거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고; 한마디로 하자면 말도 안되는 말이었죠;
경우에 따라서 이 전략이든 저 전략이든 쓰는게 스타이지요.

걍 예전 생각나서 써봅니다 ㅋ

마지막; 이라는게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에...... 저도 이 글을 보고 가슴 한쪽이 찡 했으나....
현실은 현실이죠;
EpikHigh-Kebee
06/03/29 16:51
수정 아이콘
와.. 글을 이렇게도 쓰실 수 있는군요... 정말 굉장합니다.
무심코 읽었는데도 많은게 느껴지네요.
후...
라구요
06/03/30 19:49
수정 아이콘
하드코어 막히면......... 많이 힘들어지는건 사실이죠..
확실히.. 칼타이밍 .. 컨트롤이 필요합니다.. 멋진글이네요..
그래도 대세는.. 더블넥..ㅠㅠ
06/03/31 16:31
수정 아이콘
ㅋㅋ 졸 웃기삼ㅋㅋㅋㅋ
06/04/02 16:25
수정 아이콘
하드코어 질럿은 컨트롤을 잘 하시는 분들이 해야 그나마 좋은거 같던데요...제 실력으로는 더블넥 성공 아니면 저그전 힘들어서...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710 내맘속의 해태 - 최연성 [25] 글레디에이터6654 06/04/22 6654
709 舊4대토스, 新4대토스 비교하기 [17] ROSSA8539 06/04/21 8539
708 프로토스의 한(恨), 그리고 Nal_ra [35] Zera_8662 06/04/21 8662
707 이영표선수 이야기... [14] 이의용6708 06/04/21 6708
706 조금 늦은 관전기] 제우스의 벼락과 아이기스는 아직 부러지지 않았다... [20] Wayak6670 06/04/19 6670
705 YANG..의 맵 시리즈 (5) - Blue Diamond Final [9] Yang6278 06/04/19 6278
704 맵의 새로운 패러다임... 백두대간(白頭大幹) [30] 라구요9900 06/04/16 9900
703 바둑과 스타크래프트 - 위기십결 (圍棋十訣) [14] netgo5953 06/04/15 5953
702 자신이 한말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는것. [8] 제네식7383 06/04/13 7383
701 스타크래프트 esports 팀 운영방안에 대한 제언 [11] netgo6076 06/04/12 6076
700 사형제도에 관하여... [76] IntiFadA5708 06/04/11 5708
699 미국 실리콘 밸리 - 첫 이야기 - 정리해고, 퇴직 [11] netgo6745 06/04/11 6745
698 이번 신규맵을 해보고.. [11] 하늘하늘8146 06/04/11 8146
697 [잡담]스틸 드래프트가 만들어지기까지. [36] Davi4ever7323 06/04/08 7323
696 [스타 추리소설] <왜 그는 임요환부터...?> -61편(BGM) [29] unipolar6394 06/04/07 6394
695 최연성의 스포츠서울 스타고백 모음집 + 최연성 선수에 대한 나의 생각 [57] 말코비치16671 06/04/03 16671
694 온게임넷 스타리그 24강 대진방식 정리(베타버전) [66] http9440 06/04/01 9440
693 프로토스로 저그를 이기는 법. [71] 4thrace13708 06/04/01 13708
692 "이윤열, 개선이 아닌 개혁으로" [31] Frank Lampard12306 06/03/29 12306
691 하드코어 질럿 [17] legend7638 06/03/29 7638
690 #유즈맵세팅 개론, 그리고 생산과컨트롤 [15] Ase_Pain9666 06/03/28 9666
689 [yoRR의 토막수필.#19]일상다반사. [18] 윤여광5203 06/03/28 5203
688 동네 오락실 격투게임의 고수들과 박지호 스피릿!! [20] 마음속의빛8330 06/03/26 833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