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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11/07 16:24:42 |
Name |
Point of No Return |
Subject |
[공모-단편] Honesty |
우와, PGR에서 이런것도 하는군요.
할까말까 고민하다가, 일단은 들이대보자는 심정에서 합니다만, 기준에 맞는건지 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기준에 안맞으면 적절하게 삭제 또는 말머리 수정 부탁드리며...
5개월전쯤엔가? 드랍동에 써놨던건데...
왜 썼냐고 물어보시면...
시험을 앞두고 불면증에 시달리던 어느날 밤, 갑자기 임요환 선수의 연애가 걱정되서 썼다.. 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게임도 좋지만, 어쨌든 불타오르는 청춘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임요환이 등장하고 그가 그 안에서 게이머가 맞긴 한데 게임얘긴 거의 안나와서 참 쑥스럽네요.
"어쩌나, 난 임요환 싫은데..."
"어쩌나, 난 연애소설은 싫은데..."
"어쩌나, 게임얘기 안나오면 싫은데..."
하시는 분들은 잽싸게 뒤로 버튼을 눌러주시길 바랍니다^^
&
<그는 왜 임요환부터...?> 재미있게 읽고있습니다.
작가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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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sty - 진실, 정직
I can always find someone to say they sympathize, If I wear my heart out on my sleeve. But I don't want some pretty face to tell me pretty lies. All I want is someone to believe.
1)
광합성 하기 좋은 어느 초겨울날. 무겁지 않을 정도로 짐이 들어가있는 등산용 노스페이스 색을 매고 인천공항을 돌아다니고 있다. 아직 티케팅 게시시간이 되지 않았다. 아침도 거르고 서둘러 나온터라 배가 고프긴하지만, 딱히 뭔가 챙겨먹어야 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불안마음에 난 핸드폰이 꺼져있나 다시 한 번 살피고는 허겁지겁 걷는다. 내가 다다란 곳은 로밍폰 대여부스.
"대여신청 하셨나요?"
"네."
"신분증 주시겠습니까."
나는 손에 들고있는 여권을 건냈다. 컴퓨터를 두들기던 직원은 내 얼굴과 여권과 컴퓨터 모니터를 번갈아 한번씩 보더니만 뒤쪽에서 박스를 하나 꺼내온다.
"번호는 핸드폰 안쪽에 붙어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통화장애가 생기거나 문의가 있으실때 하실수 있는 비상 연락처입니다..."
빨간색 펄이 들어가있는 제법 큰 핸드폰이었다. 충전기와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않고 그곳을 벗어난다.
나는 오늘 특별한 계획없이 일본으로 떠난다.
언제 돌아올진 모르지만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여행이 될듯 싶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간다.
처음으로 컴퓨터와 상관없이 컴퓨터 없이 밖으로 나가려 하고있다.
그래서 어제 저녁때 숙소를 나와 집으로 갔고, 비행기는 직항이 아닌 시카고로 향하는 나리타 경유 비행기를 선택했다.
"창가자리로 해주세요."
빨간 색연필로 게이트와 좌석이 표시된 티켓을 받으들고나니, 비로소 실감이 난다. 아직 출국장도 거치지 않고 면세점 간판도 보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들뜬다.
출국장에서 순서를 기다릴때, 나를 알아보는 몇몇 외국인에게 싸인을 해줬다. 어딜가냐고 물어왔지만 나는 모른다는 조금 무모한 대답을 했다. 그들은 금방 수긍하는 눈치였다.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내 옆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여권에 도장이 쾅 찍히고 면세점 간판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일 정면에 보이는 구찌 매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반사적으로 쇼윈도 앞에 멈춰섰다. 앞으로 정장 입을 일이 몇번이나 있을까 하고 대충 세어보았더니... 그럴 만한 일이 크게 없을 것 같아서 휙 옆으로 몸을 돌려 걸었다.
결국 내가 산건 소니의 디지털 카메라와 에스티로더의 향수와 샤넬의 립스틱이었다.
게이트 앞에 가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나는 뒤쪽 자리라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른편으로 보이는 비행기는 벌써 게이트와 연결이 되있었다. 깨끗하다는 인상 말고는 다르게 느끼는건 없었다. 그렇지만 기념이 될까 싶어서 디카를 꺼내 동영상을 찍는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가방을 다리 밑에 두고 앞에 꽂혀있는 수많은 안내책자들을 들추기 시작한다. 이 비행기는 에어버스 330이라고 한다. 원래 좋은 비행기인지 아니면 새비행기인건지... 아무튼 깔끔하다.
갑자기 몰려오는 피곤함을 참을 수 없어 안전벨트를 매고 쿠션을 창쪽에 댄채로 잠이 들어버렸다.
"sir..."
누군가의 손이 내 어깨를 살짝 두드리고 있었다. 비행기는 이미 하늘에 두리둥실 떠 있었고, 그다지 미인은 아닌 일본인 스튜어디스가 나에게 초밥이 담긴 도시락을 건낸다.
"green tea please..."
배가 고팠는지 입에서 바로 이 말이 나왔다. 그래도 용케 영어가 나오는구나.
앞쪽에 있는 전광판에는 이제 고작 15분동안 비행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도착하려면 아직, 2시간 30분이나 남았다. 직항이 아니라 느린건가, 비행사마다 다니는 길이 달라서 느린건가... 하고 생각하며 도시락 뚜껑을 연다.
혼자서 처음이지만 아주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의외로 재미있다. 무언가 실수하면 어쩔까하고 걱정도 진짜 많이 했는데... 실수 할일은 정말 없는듯 싶다.
초밥으로 채워진 배를 어루만지며 여유롭게 녹차를 마시다가, 안내서적 틈에 우악스럽게 끼워져있는 헤드폰을 발견했다. 아마도 옆자리에 앉은 험하게 생긴 아줌마가 놔두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해본다. 비닐을 뜯어서는 해드폰 잭이 들어갈만한 적당한 구멍을 찾아 넣었다. 이름모를 클래식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 구멍 옆에 꽂혀있는 리모콘을 꺼내 들었다.
조금씩 잡음이 들어가는 최신일본음악을 들으며 나는 다시 잠들었다. 깨어나면 일본이겠지...
2)
입국심사는 정말 지루했다.
여권에 도장을 받고 그 좁은 입구를 통과할때의 기분은, 정말 말할 수 업을 만큼 상쾌했다. 그리고 나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녀를 보기 위해서다.
내 마음이 급했던걸까, 아니면 출구까지의 거리가 긴걸까? 걸어도 걸어도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검색대 앞에 설때까지 나는 출구를 찾지 못했다. 내 가방을 살펴보던 공항 직원이 출구쪽을 손으로 가리키자 그때서야 내가 확실히 출구 앞까지 왔다는 걸 알았다. 가방을 한쪽어깨에 둘러매고 나는 급하지 않게 뛰어 출구를 빠져나갔다.
"야야!! 여기여기!"
나보다 그녀가 먼저 나를 찾았다. 그녀도 나도 서로를 가로막고 있는 사람들의 행렬을 뚫고 서로의 손을 잡았다.
"뭐야... 정말 온거야? 왠일이야... 어떻게 혼자 온거야."
"어떻게 혼자오긴, 비행기 타고 왔지."
영화라도 찍는 것 처럼 우리는 사람과 바리케이트를 사이에 두고 포옹을 했다.
우리는 8개월만에 만났다. 나는 그녀가 출국하던 날 경기때문에 배웅조차 나가지 못했다. 그녀는 이해한다고 했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거 알지만... 그 후 한동안은 참을 수 없는 무언가에 시달렸다. 그래서 나는 공식적인 휴가는 이틀 후 인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생일에 맞춰 일본까지 날아왔다.
"일 많이 힘들어? 얼굴이 왜이래."
"많이 힘들다기보단, 아무리 그래도 남의 나라에서 일하는건데. 나는 몰라도 내 몸은 아는거지. 근데 너도 뭐, 나 만만찮다."
"힘도 들지만, 역시 예전같지 않다고나 할까. 하하하."
스카이라이너는 햇빛과 겨울공기를 시원하게 뚫으며 달리고 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창 밖을 보고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마냥 실실 웃었다. 손을 잡고 있는것도 잊지 않고.
"얼마나 있다 가는거야?"
"글쎄... 모르겠어. 그냥 무작정 온거야."
무작장 일의 약속을 어기고 바다까지 건너가서 보고싶었던 그녀를 처음 만난건 스물여섯번째 생일이 막 지나서였다. 오랫만에 나간 고등학교 반창회에서 만난 친구가 '애같은 연애'는 그만하라는 차원에서 그녀를 소개시켜 줬다. 소개팅이라... 것도 어른다운 연애의 시작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응?... 아니... 그냥, 너 처음 만났을때 생각나서."
"특별한게 뭐 있다고 그런걸 다 기억하고 있어? 하하하하..."
그녀의 말대로 보통의 소개팅과 다를 것 없이 보통이었다. 강남역 근처의 어느 카페에서 친구와 셋이 처음 만났다. 우리를 소개시켜준 친구는 식사가 나오기도 전에 자리를 떠버렸고, 우리는 어색한 분위기속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왠지 그쪽한테 미안한데요.'
'네? 뭐가요..?'
'저야 아직 학생이니까 시간적인 여유가 있긴하지만, 그런 타이트한 일을 하고계시니까... 뭔가 이런 시간도 꽤 아까울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그땐 시즌중이라 그런 생각이 좀 있긴했지만, 그렇게까지 말하니 조금은 당황스럽고 웃기고 그랬다.
전에 만나던 여자들과는 달리 특별히 끌리거나 좋거나 하는건 없었지만, 가끔 경기하는 곳에 찾아와 그린티 프라프치노를 내 앞에 두고 사라지는 그녀에게 중독되었다고나 할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린티 프라프치노에 중독된거야.'
'내가 거기다가 박영주 중독성 첨가제라도 넣었을까봐?'
'그런가? 어쨌든 저쨌든 지금 우리 모습이라면 된거잖아... 안그래?'
거리낌없이 찾아오는 그녀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것 부터가 나는 좋은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조급함도 없고 아주 특별함도 없고...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평범함과 무난함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나는 그녀가 좋았다. 내가 가질 수 없는 평범함을, 그녀는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날씨 좋다."
"여긴 낮엔 별로 안추워. 해가 져야 조금 춥지."
우에노역 건너편에 있는 커다란 온도 전광판은 17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초겨울의 날씨치고는 너무 따뜻한 날씨다.
나는 자켓을 벗고 남방만 입은채로 두어발자국 떨어져 그녀를 좇았다.
무릎을 살짝 가리는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구두소리를 또각또각 내며 택시쪽으로 종종걸음을 옮겼다. 나는 멍하게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본다. 택시 문이 열리고 그녀는 나를 향해 돌아본다. 모든게 내 머리속에 기억되려는듯 슬로우 모션으로 진행되고 있는 듯 하다. 그만큼 나는 그녀가 너무 보고싶었다.
"일단 집에 갔다가 저녁때 할거 생각하자."
"응."
나는 아직까지 그녀와 함께 일본땅을 밟고 있다는걸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은 그녀가 어디있든, 나는 그 주변은 신경쓰지 않을 것 같다. 나와 그녀가 함께 있다는게 중요하지, 장소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까.
택시는 우리가 거슬러 올라왔던 길을 지나, 시내로 들어가고 있다.
3)
내가 사온 립스틱을 바른 그녀는 아주 만족하다는 얼굴을 한다. 향수도 한번 뿌려보고 좋다고 연신 싱글벙글 한다. 나는 어쨌든 저쨌든 그녀를 바라보는게 좋다.
"휴가 얼마나 받았는데?"
"여름휴가를 안썼으니까... 일주일정도...? 그나저나, 우리 뭐할까? 어디 가고싶은데 없어?"
"글쎄... 난 모르니까, 니가 가자는데로 따라가지 뭐."
그녀의 방은 사진으로 봤던 것 보다 작았다. 싱글 침대에는 연분홍빛 시트가 씌워져 있고 책상위에는 소설책 몇권과 화장품들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다. 그리고 헹거에는 그녀의 옷들이 나란히 걸려있다. 나와 그녀는 벽에 나란히 기대 앉아 발들을 까딱거리며 소리를 죽여놓은 TV를 보고있다.
평소와는 다른 공기와 다른 느낌 그리고 오래간만에 보는 그녀때문에 내 마음은 부르르 떨리며 뛰고있다. 긴장과 설레임이 한데 섞여 정신없이 몸을 순환하고 있다. 나는 내 어깨에 기대있는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녀도 고개를 들어 내 볼에 입을 맞춘다.
"정말 특별한 생일이 될거야. 고마워..."
"고마울거 하나도 없어. 당연한 일이니까."
우리는 순진한 아이들처럼 좁은 침대에서 서로를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 서로 부시시한 모습에 웃기도 하고 내 가슴에 파고들며 부비적거리는 그녀를 꼭 껴안아 주기도 하고 가벼운 키스도 나눴다.
떨어지 싫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이대로 여기 그냥 주저앉을까 하는 위험한 생각도 한다.
그래서 난 함부로 사랑하려고 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쉽게 빠져들고 정신을 팔아버리는 그 성격때문에, 일을 위해서 난 그렇게 애를 썼다. 물론 그녀를 만나기 전에도 몇명의 여자를 만났지만 이렇게 까지 간절하지는 않았다. 그녀들보다는 일을 우선시했다. 그리고 모두 그런 내가 싫다고 내 곁을 떠났다. 진실하지 않았던 그녀들의 모습을 알았기에 나는 떠난 그녀들 때문에 상처따위 받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인생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남들은 다 가지고 있는 평범함을 나는 누리지 못하고 있으니까... 나를 진실하게 대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나는 그녀 앞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서 평범함과 일상을 배워나갔다. 밤이되면 잠이들고, 아침이 되면 깨어나고 식사는 하루 세끼에 친구들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하는지... 오랫동안 일을 하면서 알 수 없었던 그런 일상들을 배웠다. 갑작스럽게 바뀌진 않았지만 나는 미동하고 있다. 남들도 모르게 나는 그렇게 복잡했던 내 청춘에서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가려 준비를 하고 있다.
"벌써 이틀이나 지났어~"
아침일찍 우에노 공원에 갔던 우리는 역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 앉아 사람들 구경을 했다. 확실히 외국이구나 하고 느낀건 우리나라에선 있을 수 없는 담배연기.
"좀 더 멀리 나가볼까?"
"아니... 피곤하잖아. 너 언제 갈지도 모르고..."
"가이드만 시키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
"미안하면 있는동안 잘 해~ 아, 그런데 배고프지 않아? 우리 아침먹은지 벌써 여섯시간이나 지났어. 밥 먹고 아사쿠사로 가자."
생글 웃으며 그녀는 내 디카로 내 모습을 찍는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처럼 웃는다.
나는 진심으로 행복한 웃음을 짓고있다.
4)
일때문에 잠깐 회사로 들어간 그녀를 바래다주고는 시부야로 향했다. 스타벅스가 맞은편에 보이는 횡단보도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있다. 거의 처음으로 혼자서 느껴보는 엄청난 인파다.
무작정 길을 건너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간판만 일본어일 뿐이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른점은 없어보였다.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 자스민티와 명란젓이 들어간 주먹밥 비슷하게 생긴걸 사서 길을 걸으며 먹었다. 우리나라에선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겠지. 하며 즐거운 표정으로 그것들을 즐겼다. 그리고 전혀 의식할 필요 없는 거리의 사람들도 즐겼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낯선 핸드폰 소리가 내 주머니에서 울린다. 적당한 계단이 있는 곳을 찾아 앉아서는 손에 들고있던 자스민차 패트를 놓고 전화를 받았다. 발신번호는 찍히지 않았다.
"여보세요."
"너 도대체 거긴 왜간거야??"
꽤나 애먹은 듯한 훈이형의 목소리다. 나는 아주 잠깐동안 '산통깨네' 하는 생각을 하고는 말문을 열었다.
"여자친구 만나러 왔어. 내일이 생일이야."
"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너 그거 무단이탈이야! 그리구 지금 위에서 얼마나 찾는지나 알어?"
"허락 못받은건 미안한데... 근데 왜 그 아저씨들이 날 찾어. 찾으면 형을 찾아야지, 그 사람들 나한테 무슨 볼 일이 있다고."
미처 생각 못하고 있었다. 연봉협상을 해야한다는 걸. 알아챘을땐 이미 늦었다. 애먹은 듯한 형의 목소리는 이미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니가 목숨이 하난줄 알아? 너 하나에 우리팀 애들 목숨이 달려있어. 지금까지 이렇게 온게 누구때문인데... 지금 그런말이 나와? 너 도대체 생각이 있는애야 없는애야? 지금 연애질이 문제야? 애들 다 죽이고 싶어? 아예 다 말아먹을래?"
난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형 말이 틀린게 하나도 없기때문이다. 게임으로서 나는 팀의 에이스는 되지 못하지만, 상품가치라는 것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프론트에서 그 많은 돈을 동생들에게 지급하는 것도 결국은 나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편하게 게임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덕분이라는 것을... 형 말대로 나는 생각이 없었다. 그저 일본에 와서 그녀를 만날 생각만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늘 걱정하던, 무언가에 미치는 것. 이렇게 되버렸다.
"잔말말고 당장 들어와."
"당장은... 안되."
그래도 당장은 안된다. 프론트와의 약속은 구체적으로 잡혀있지도 않은 상태였다. 물론 시즌이 끝나자마자 협상이 시작될거라는건 관습적인 일이지만...
이렇게 나의 이기심이 고개를 슬슬 내미려고 하고있다.
그렇지만 그녀를 그냥 두고 갈 순 없다. 이렇게 되면 돌이킬 수 없을거라 생각된다.
"나 못찾았다고 하던지, 일본에 있다고 사실대로 말하던지... 어떻게해서든 날짜를 좀 미뤄봐, 그리 급한것도 아니잖아."
"급해 이자식아. 이렇게 그냥 있다간 연성이... 다른 팀으로 가버릴지도 몰라. 그러니까 하루빨리 잡아야지. 걔 지금 갈팡질팡이란 말이야. 연성이 데려간단 팀에서 다른 애들 두어명도 같이 물어갈려고 아주 작정을 했어. 그렇게 되기전에 얼른 어떻게 해야지. 당하고 있을거야? 니 동생들, 다 뺏기고 싶어?"
"그게 왜 뺏기는거야. 걔들도 생각이 있고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사고를 가지고 있는 애들이야. 애들 하고싶은데로 놔둬."
"그럼 넌, 넌 어쩔건데? 이대로 애들 다 가버리면... 넌 어쩔건데?"
알 수 없는 한숨만 나온다.
"나도 여기서 끝인거지. 그렇게 되면 거기까지인거야."
형도 더이상 할 말이 없는건지, 푸욱- 하고 한숨을 내쉰다. 형은 그래, 알았다. 다시 전화할테니가 빨리 들어올 생각이나 해. 하면서 툭- 하고 무겁게 전화를 끊었다.
남은 주먹밥을 입에 쑤셔넣으면서, 아무것도 없는 머리속에 무언가를 생각해내려고 집중을 한다. 아무거나 생각해내지 않으면 형과의 대화가 머리속에서 계속 맴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거리를 지나다가 와인으로 가득찬 조그만 가게를 발견해 그곳에서 '페러덕스'라는 와인을 샀다. 주인이 날 보더니 그냥 권해줬다. 그리고 난 그게 맘에 들었다.
와인이 담겨진 쇼핑백을 소중하게 들고 이케부쿠로역 동문 앞에 있는 부엉이상 앞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약속시간은 정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기다리게 하고싶진 않았다. 그리고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어디선가 풍겨오는 달콤한 파이냄새에 이끌려 역 안에있는 애플파이 가게에서 커다란 파이를 하나 샀다. 그녀도 나도 단 맛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그저 맛있는 냄새에 이끌렸을 뿐이다.
"뭐 그렇게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있어?"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어느새 앞에 서 있었다. 손에 들려있던 파이와 와인을 번갈아 보던 그녀는 피식 웃으며 파이상자를 집어 든다.
"뭐야, 전화해도 받지도 않고. 그럴려면 전화는 왜 가지고왔어?"
"어... 미안, 미안."
"온김에 여기 구경좀 하다갈까? 저녁도 먹고 들어가고."
"얘내들은 어떻게 하고..."
"와인이랑 파이를 저녁으로 먹기엔... 좀 느끼하지 않어? 그러지 말고... 여기 길건너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진짜 맛있는 라면집 있거든. 그거 먹고 선샤인호텔 구경하러 가자.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순 없잖아."
내 기분을 알아차린건지 그녀의 텐션이 높은건지... 그녀는 거부할 수 없는 함박웃음을 지어보이며 적절한 애교도 섞어가며 나를 바깥쪽으로 이끌었다.
그래, 일단 잠시 잊자. 몇시간 후면 그녀의 생일이고, 나는 그걸 축하해주로 그런 일도 내팽겨치고 일본까지 왔으니까. 일은... 오늘밤이 지나고 생각해도 되잖아.
5)
"있잖아, 사실은..."
머뭇거리던 그녀는 남아있는 와인을 다 마시고도 한참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불안한 그 얼굴때문에 나까지 불안해졌다. 짧은 시간동안 내 머리에서는 이런 저런 생각들을 마구 해내고 있다.
"사실은, 감독님한테 내가 연락했어."
일단 최악의 말은 아니니 안도를 했지만, 왜 전화 했을까 궁금하다.
"정말 솔직히, 솔직히 말이야. 8개월동안 사진으로만 보던 너를 직접 보게 될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아무것도 안따지고 우리 생각만 하면... 정말 좋긴한데... 차라리 그냥 생일에 맞춰서 들어왔으면 이런 일도 없지 않았을까..하는 생각 했어."
"그랬으면 못왔을거야."
"아무튼... 난 널 정말... 정말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하지만... 그러니까 널 그만큼 생각하기때문에, 전화 한거야. 아... 뭘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난 처음 만났을때의 특별한 니 모습이 그 빛이 발산될 수 있을때까지 그 자리를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나때문에 너의 그 특별함이 퇴색된다는건, 좀 그렇잖아."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면 나는 절반정도는 인정하려들지 않았을것이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늘 나에게 진실되고 정직했기때문에, 지금의 말들도 그런거라 생각한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면 그런거라고 단정지어버리는, 조금은 어린아이같은 판단을 해버린다. 그리고 타지에서의 생일에 나때문에 우울해하는 그녀에게 미안해 하고 있다.
그렇게 우울함과 와인의 알콜이 섞여 그녀는 금방 잠들었다. 정말 한참동안이나 잠든 모습을 지켜봤다. 얼굴을 보듬어주고, 손등에 키스를 하고 그런 느낌을 잊지않으려 나는 내 감각에 그것들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 뒤척이는 그녀를 뒤로하고 발코니로 나와 연성이에게 전화를 한다. 6개월넘게 바꿔놓지 않은 녀석의 컬러링이 요란하게 나오고 반복을 하려는 순간 쌩쌩한 목소리로 녀석이 전화를 받는다.
"누구세요."
"나다."
"일본 공기는 좋아?"
"훈이형이 그러던?"
"누나가 아는 그 순간 나도 아는거야. 나 영주누나 참모잖아. 몰랐어?"
연성이는 전혀 심각하지 않다. 낮에 훈이형이 한 말은 혹시 나를 불러들이려는 수작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될 정도로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다.
"어쩔거야, 갈거야?"
그냥 직접적으로 물어본다. 그게 연성이에겐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난 고양이 같은 놈이라, 함부로 나가지 못해. 잠자리 밥자리 엄청 탄다고."
"그럼 훈이형이 한 말은 뭐야?"
"것도 사실이야. 그쪽에서 나랑 용욱이랑 인규까지 해먹으려고 하더라고. 아직 만나지는 않았는데, 뭐 어쨌든 이래저래 그렇게 됐어. 감독님 말대로 하루빨리 형이 와주면 어느정도 교통정리는 된다고... 그쪽을 만나고 자시고 하는건, 교통정리가 된 후에 할 일이라고 생각해 난."
자고 일어나니 내 머리맡에는 오늘 저녁 비행기 표와 챙겨진 가방이 있었다. 그녀는 내가 일어나길 기다렸다는 듯 입고갈 옷들을 챙겨주고 남은 짐들을 가방에 차곡차곡 넣기 시작한다. 난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녀가 하는대로 그렇게 따른다.
"자기가 했든 자기때문이든 어쨌든 자신과 연결되있는 일이 벌려져 있으면 어느정도 해결을 해야된다고 생각해 난. 내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응."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도 좋지만, 현명한 사람도 좋아. 넌 내가 처음 만났을때도 현명했고 만나온 동안에도 그랬어. 지금도 그렇지?"
"응."
"하여튼 대답은 잘해요, 자... 좀 정신 없겠지만 공항에 여유있게 도착하려면 지금 나가야되."
그녀의 손에 이끌려 정신없이 공항으로 향했다. 그녀는 창밖만 바라보고 나는 꼭 다문 그녀의 입술만 바라본다. 그렇게 나는 그녀와 나 사이에 있는 '평범함' 갭을 또 한번 느낀다. 내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다른사람과 다를바 없는 사람이었다면, 그녀와 비슷한 입장의 사람이었다면...
그녀는 티케팅을 하고는 입국장에 들어갈때 가지 표를 건내주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무서웠다. 조금씩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내 일때문이 아니라, 정말 그녀에게 일이 있는건 아닐까....
안내방송이 나오자 비로소 그녀는 내 손에 티켓을 쥐어줬다. 그 손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요환아, 내가 새벽에 한 말 기억하지?"
"무슨 말..."
"너의 특별함. 난 너의 그 특별함이 계속되길 바란다고."
"..."
"너는 나의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는 것을 좋아하고, 나는 너에게 있는 그 반대되는 것을 좋아하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진실된 현실을 좋아하는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꼭, 자연스럽게 소멸될때까지 자리를 지켜줬으면 좋겠어. 나도 열심히 할테니까."
이유없이 울고싶은 기분이 든다. 그녀는 나를 한번 꼭 끌어안아 주고는 입국장 안쪽으로 가라고 손짓을 하며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며 애써 웃음을 지어보인다. 그녀도 웃는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는걸, 나는 알 수 있다.
"바보야, 얼른 들어가. 글구 다음부턴 감독님 허락 꼭 받고 와야되!"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웃는 그녀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았다. 그녀에게서 다시는 볼 수 없는 가장 진실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강한 그녀를 느낄 수 있다.
그녀와 함께 한 시간중에서 가장 깊게 기억될 날이 될것이다.
그녀의 더 깊은 진심과 정직한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한다.
그녀의 그런 것들을 사랑한다.
커다란 나무의 뿌리가 파고들어간 땅의 깊이 만큼이나,
보이지 않은 하늘의 별들 만큼이나,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그녀와 그녀의 진심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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