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3/09/05 18:55:28
Name rogue19
Subject [바둑] 조치훈 9단 이야기..
brecht1005 님의 영향으로 바둑 이야기가 pgr에 꾸준히 보이는군요.
바둑 팬이자 스타의 팬으로서 pgr에서 이 둘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즐길 수 있는 것은 참 기분좋은 일이네요. ^^
brecht1005 님께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사실 여타 게시판에서도 종종 바둑과 스타의 비교에 대한 글을 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공통점이 분명히 존재하는 모양입니다.
저도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저는 차이점이 더 많이 떠오르던걸요.
어쨋든 brecht1005 님의 글을 보고 저도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렇다고 brecht1005 님처럼 자세히 쓸 자신은 없고, 생각나는 것만 간단하게 써보려구요

* 조치훈 9단

조치훈 9단이라면 한때는 길가에 지나가는 코흘리개도 알 정도로 유명했었죠.
남의 나라 일본에서, 그것도 당시 바둑의 최강국이던 나라에서 안방을 차지하고 일인자의 권세를 누림으로써 국민적인 영웅으로 불리기도 했었죠.(당시 일본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더욱 그렇기도 했지만요.)
이후 우리나라 바둑이 최강국의 위치를 빼앗아오게 되어 조치훈 9단에 대한 관심도 비교적 줄어들긴 했습니다만 그 전까지 그는 바둑계에서 항상 뉴스의 중심에 서있던 사람입니다.
그 당시 조치훈9단의 영향력은 스타 방송 초창기 임요환 선수의 영향력과 비교할 만 하지요.


조치훈 9단이라면 뉴스메이커로 소문난 사람입니다. 바둑의 내용이 항상 드라마틱했을 뿐만 아니라 뉴스거리를 몰고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했죠.
조치훈 9단하면 생각나는 이야기만 해도, 삼패빅, 3연패 후 4연승, 3연승 후 4연패(^^;;;), 휠체어대국, 최초의 최정상 복귀, 장고파, 성냥개비 부러뜨리기, 이틀바둑의 최강자, 대삼관, 패 두번 따고 무승부 등등 정말 많습니다. 두서없이 나열했습니다만...
보통 바둑기사의 두배도 넘을 듯한 뉴스거리를 제공하는 기사였죠.

하나씩 생각나는 대로 얘기해볼까요?

(1) 삼패빅

바둑은 여간해서 무승부가 나지 않습니다. 무승부가 났다면 정말 특수한 경우이기 때문에 반드시 뉴스거리가 되지요. 삼패빅이 그런 경우의 하나인데 한판의 바둑에서 동시에 세군데 패가 발생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계속 돌아가면서 패만 따도 영원히 바둑이 안 끝나기 때문에 무승부가 됩니다. 이 삼패빅이 나오기 정말 힘들기 때문에 일본 바둑계의 고사도 있을 정도입니다. 자세한 얘기는 길어서 생략합니다만 삼패빅이 나오면 흉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얘기였죠.
이런 삼패빅이 조치훈9단의 바둑에서 3번(아마 맞을 겁니다--;;)이나 나왔습니다.

(2) 3연패 후 4연승, 3연승 후 4연패

일본의 3대 메이저 기전은 7번 승부(7전 4선승제)입니다. 기성전,명인전,본인방전이죠.
이 3대 기전은 이틀걸이 바둑입니다. 한판이 이틀에 걸쳐서 진행이 됩니다.
일본에 후지사와 슈코 9단이 있습니다.
잠시 후지사와 9단에 대해 얘기하자면 일본 기계의 전후 3총사 가운데 한명으로 후지사와, 가지와라, 야마베 3사람을 말하는데, 이들은 독특한 스타일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었죠. 이런 독특한 스타일 때문에 팬은 많았지만 뚜렷한 성적을 남긴 사람은 후지사와 9단 뿐입니다.
후지사와 9단은 신생 기전에 강하기로 유명했습니다. 아사히 신문사로 넘어가서 새로 시작한 명인전을 비롯, 신생 기전의 초대 우승자를 여러번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 제일 유명했던 것이 기성전입니다. 당시 전례가 없던 막대한 상금의 기전이 탄생을 했는데 후지사와 9단이 사업실패로 막대한 빚을 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바둑관련 사업이었는데 사업에서 말아먹은 자금을 마련하느라 경륜 등 도박에 손을 대고 빚이 더 커져 있었죠.
그런데 막대한 상금의 기전이 탄생을 한 겁니다. 신생기전에 강한 후지사와 9단이 눈독을 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죠. 결국 천재형 기사 중의 한명인 하시모토 우타로 9단과 결승에서 만나게 되어 우승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결국 빚은 다 못갚았다는...

그 후 이 서열 첫번째의 기전(어느 기전보다 도전이 거셌겠죠)에서 6연패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매번 이번엔 어렵다는 평가와 공교롭게도 항상 최고 컨디션의 도전자를 맞아가면서 이룩한 6연패였죠. 상대를 열거하자면 가토, 이시다, 임해봉, 오오다케 등 모두 한 시대를 제패했었던 강자들이었습니다. 도전자들과의 나이 차도 한참 났었죠.
그리고 7번째 상대로 조치훈이 등장합니다. 당시 명인 타이틀을 따고 최고조의 컨디션을 보이던 조치훈 9단이었기에 언제나 나오던 예상이 또 나옵니다. 이번에는 정말 힘들다...
하지만 뚜껑이 열리자 후지사와 9단이 3연승(!)으로 치고 나갑니다. 사람들은 경악하고 조치훈 9단도 할 말을 잃었죠. 하지만 막판에 몰린 조9단은 그때부터 벼랑에 몰릴수록 강한 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3연패 후 3연승, 매판이 막판이었지만 한판한판을 7번승부가 아닌 단판승부로 생각하고 버텨나갔다고 합니다. 후지사와 9단은 노쇠한 몸을 이끌고 입에 수건을 물고 바둑을 두면서 집념을 보였지만 결국 4연패하고 타이틀을 내주고 맙니다.

개인적으로 후지사와 9단을 좋아하기 때문에 글이 갑자기 길어져 버렸네요..^^;;
그 때의 바둑을 생각해보면 조치훈 9단을 응원했음에도 후지사와 9단의 바둑에는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창의적이며 고정관념을 뒤집어 버리는 수들은 전략적인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를 보면서 느끼는 희열을 떠올리게 합니다.

조치훈 9단의 바둑 얘기가 갑자기 샛길로 빠져 버렸네요^^;;;

조치훈 9단은 이후에도 3연패 후 4연승을 몇번 더 합니다. 명인전서 대 오오다케 9단, 본인방전에서 대 고바야시 9단을 상대로 말이죠.
3연패 후 4연승이 조치훈 9단의 대명사가 됩니다.. 그걸로 모자랐는지 임해봉 9단을 상대로 3연승 후 4연패도 하지요 ^^

(3) 휠체어대국

조치훈9단의 경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얘기지요.
명인전과 기성전 두 기전에서 동시에 항상 조치훈 9단의 최대 라이벌로 지목되어 왔던 고바야시 9단의 도전을 받습니다.  라이벌이라지만 두 기사의 우승 경력은 비교가 안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상대전적은 고바야시 9단이 앞서는 상태였고 결승에서의 전적은 조9단이 앞서고 있었기에 더욱 많은 관심을 모았던 승부였습니다.
먼저 열린 명인전에서 고바야시 9단이 승리하면서 남은 기성전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집니다. 상승세를 탄 고바야시 9단이냐.. 위기에 몰릴수록 강해진다는 조9단의 반격이냐..
그러나 대국을 앞두고 조9단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상황이 묘해집니다. 기전을 연기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고민하던 요미우리 신문사에게 조9단은 출전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역사에 없던 휠체어 대국이 성사됩니다.
첫판을 고바야시 9단에게 쉽게 내주자 '역시 안되겠지'하던 사람들에게 조9단은 둘째 판의 완승을 보여 주며 일침을 가합니다. 고바야시 9단의 회고를 들어보면 '이겨도 찜찜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2국에서 완패를 당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저히 환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정확히 이렇게 얘기한 건 아니지만 정리하자면 대충 이렇습니다^^)
결국 조9단은 4승 2패로 패배하고 말지만 휠체어에 앉은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고바야시 9단이 찜찜해 하지 않을 정도의 명승부를 보여 줍니다.

글이 지루하진 않은지..--;;  더 지루해지기 전에 마무리하고 더 읽어보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다시 쓰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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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extremis
03/09/05 19:37
수정 아이콘
지루하다뇨..^^
언제나 승부사들의 이야기는 재미가 있습니다.
바둑이 그렇게 쉬운 종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긴 세월을 이어왔던건 치열한 승부사들이 전해주는 감동과 재미가 있기 때문이겠죠..^^
종종 바둑 일화들에 대한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i_random
03/09/05 21:54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최일권
03/09/05 22:20
수정 아이콘
rogue19 님이 언급하신 대삼관은 일본의 3대 기전인 기성전, 명인전, 본인방을 동시에 석권하는 걸 뜻합니다, 그리고 그 기전의 결승전이 다 이틀걸이 바둑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틀걸이 바둑의 최강자란 별명이 생겼고요 또 조치훈 하면 불꽃투혼 이라는 별칭도 유명합니다 본인이 '목숨걸고 둔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고 (휠체어 대국 당시 상당히 큰 교통사고를 당한 직후 였다고 하더군요 ) 승부근성이 강해서 바둑이 불리해지면 스스로 머리를 쥐어 뜯으며 자학하는게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라고 하더군요 ^^; 후지사와 슈코 9단은 당시 도박과 술 등으로 무절제하게 살다가도 결승전이 벌어진 한달여 간은 모든 걸 절제하면서 무섭게 바둑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타이틀을 방어하고 나면 다시 주색잡기에 빠져 들고요... 바둑 스타일이나 생활 스타일이 워낙 특이해서 별명이 '괴물'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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