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관련 이야기가 절반 이상이라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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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야구 관련 커뮤니티를 들어가면 생소한 용어들 때문에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RC'라든가 'RC/27'에 '조정방어율' 에 'VORP'까지...... 세어버메트릭스(Sabermatrics)라고 불리는 이 통계방식은 타율이나 승률과 같은 표면적인 데이터에 대한 허상을 버리고 보다 더 구체적인 계산법을 통해 '누가 가장 가치있는 선수인가'를 평가하는 tool로서 각광받고 있다. 실제로 올해에는 세이버매트릭스의 계산방법을 활용해 추신수의 활약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뜨는 등 점점 야구선수에 대해 일반 팬들 사이에서도 복잡한 통계방식을 통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 '허상뿐인' 타율도 4할을 기록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4할타율은 그야말로 마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벌써 70년 가까이 4할타자가 등장하지 않고 있고 한국에서도 역시 프로야구 원년의 백인천을 제외하면 4할타자는 전무하다. 스즈키 이치로가 2004년 .372의 타율로 262안타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단일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깼을 때 05시즌을 앞두고 이치로의 4할 가능성에 대한 추측성 기사들이 난무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05시즌의 이치로는 .303이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이치로의 05시즌 타율이 커리어 사상 가장 부진한 시즌인 점을 상기해본다면 아마 시즌 전의 과도한 기대감이 그를 괴롭히지 않았나 막연히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만큼 4할은 경기 내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경기 외적인 측면에서도 선수에게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에 현대야구에서 달성하기 힘든 기록임에는 분명하다.
우리는 왜 4할에 열광하는가? 설령 이치로가 4할을 친다고 하더라도 반대편 리그에서 푸홀스가 3할 6푼에 60홈런을 친다면 팬들은 두 패로 갈려 끝없는 논쟁의 수렁에 빠져들 것이다. '70년만에 나온 이치로의 대 기록이 더 값지다' 'RC/27로 계산하면 이치로는 푸홀스는 커녕 추신수의 발끝에도 못 미쳐' 등등. 이미 세이버매트릭스식 계산법에 익숙해진 팬들은 4할타자가 설령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끝없이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며 폄하하려 들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할을 값지게 쳐 줄 수 있는 이유는 그 기록이 '약물로도 불가능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모든 야구팬을 들뜨게 했던 맥과이어와 소사의 홈런 경쟁이 약물로 얼룩졌다는 사실은 많은 팬들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덕분에 인간이 아닌 능력을 보여주며 메이저리그를 지배했던 배리본즈가 약물을 했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팬들은 그들이 과거의 역사적 기록들을 깰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약물 덕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들이 믿고 있던 수 많은 기록들이 얼마나 약물로 인해 훼손되었는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70홈런도, 40대 중반 나이의 선발 20승도 약물이 가능하게 해주었다. 다만 수위타자만큼은 소위 '약쟁이'들이 가져가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일부 팬들은 그다지 압도적인 성적이 아니더라도 '약쟁이 아닌 선수'에 대해 공정한 평가가 돌아가야 한다며 약물 복용 관련 기록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는 기록의 스포츠입니까? 라고 지금 나에게 물으면 절반은 '예'라고 대답할 수 있다. 아마 3~4년 전에 이런 질문을 들었다면 대번에 '아니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경기는 이전에 스타를 많이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 시청한다고 하더라도 적당히 게임의 룰만 알면 어떤 선수가 잘하고 어떤 선수가 못 하는지 판별이 어렵지는 않다. 무명의 선수라고 하더라도 단 한 경기만으로도 스타가 되는 일은 스타의 이런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단 1패만으로도 선수의 능력이 폄하되는 일은 허다했으며 골수 스타팬들은 '모든 중요한 경기를 보는 것'을 전제로 소통을 하였기 때문에 굳이 누적 기록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선수의 기량에 대해 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스타의 역사도 10년 가까이 지속됨에따라 기록의 통계적 분석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새로 스타를 보기 시작하는 유저가 과거의 VOD를 모두 복습할 수는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일종의 Tool이 필요해진 것이다. 팬들이 접하기 가장 쉬운 통계자료는 우승경력이나 케스파랭킹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우승경력만으로는 더 이상 그들에게 당시의 임팩트를 전달할 수는 없다. 오늘 처음 스타를 접한 사람에게는 마재윤이나 김준영이나 똑같은 스타리그 1회 우승자로 비춰질테니말이다.
타자는 세 타석에 한 번만 안타를 쳐도 상당히 좋은 타자로 평가된다. .333의 타율이면 투고타저의 시대에서는 타율왕도 차지할 수 있는 타율이다. 스타의 경우는 어떨까? 기본적으로 승률은 반반이기 때문에 세 번에 두 번 정도 이기면 좋은 선수로 분류될 것이다. 연간 승률이 66%이상이면 A급 혹은 S급 선수로 분류되기에 무리가 없다. 올해의 공식전 승률을 살펴보면 2009년 개인리그 우승경력 한 번 없는 김택용의 승률이 70%가 넘는다는 점이 이채롭다.(12월 19일 기준) 김택용은 야구로 비유하자면 홈런은 잘 치지만 중요한 부분에서 삼진을 휙휙 당하는 선수일 것이다. 때로는 임팩트 있는 경기를 보여주지만 중요한 순간에서 어이없이 지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아마 야구선수였다면 '택풍기'라 불리며 주구창창 욕을 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조금 더 개인적인 취향대로 이야기를 진전시키자면, 김택용은 뉴욕 양키스의 A-rod와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두 선수는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이며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점이 비슷하다. 다른 팀에서 활동하다 제국으로 이적하여 한 동안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여 '제국의 역적'소리를 듣기도 하였으나 올해 먹튀라는 오명을 벗고 멋진 활약을 하여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비록 아깝게 Final MVP에는 뽑히지 못하였으나 이번 시즌 우승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시즌은 두 선수의 운명을 좌우할만큼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이다. 그들은 가까스로 좋은 기록을 이어오고 있으나 과거 보여줬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가 한풀 꺾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게다가 약간 부진하다고는 하나 여전히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받는 부담감도 상당할 것이다. 2010시즌은 그들이 앞으로 레전드로 남을 수 있을지를 좌우하는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프로토스 이야기 하면 빠질 수 없는 송병구는 매니 라미레즈에게 대칭시켜보고 싶다. 그들은 두 말 할 나위 없이 훌륭한 선수이나 No.2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와는 상관없이 팀을 승리로 이끄는데 있어서는 리그 No.1선수를 능가하는 활약상을 보였다. 그들은 우승에 목말랐던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팀의 전성시대를 가져왔으나 한 동안 본의 아니게 부진에 빠졌던 점도 비슷하다. 수비능력이나 준우승경력 때문에 팬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하는 유쾌한 선수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막말로 인하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해서 일부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입지가 예전만 못한 그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이 리그를 좌지우지할 만큼의 훌륭한 선수들임에는 분명하다.
'발전이 없는 선수'로 유명한 알버트 푸홀스는 이제동과 닮았다. 신인부터 놀라운 성적을 보여주며 리그의 역사를 바꿀 선수로 평가될만큼 괴물같은 면모를 보여온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제동이 처음 연습실에 들어왔을 때는 별로 실력이 없었다는 오영종의 말과 푸홀스가 마이너 시절 최희섭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다는 일화들을 지금 떠올려보면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짓게 한다. 그들은 신인시절부터 MVP급 활약을 펼쳤으나 각기 배리본즈와 마재윤에 가려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불운한 경력이 있다. 하지만 그 불운에 굴하지 않고 계속 기록을 쌓아가 각 리그에 전설적인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기복이 없다는 점에서 그들은 리그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 활약이 어디까지 이어나갈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푸홀스는 파워히터긴 하지만 높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현역 선수로서 통산 타율이 리그 전체 TOP3 안에 드는 이러한 푸홀스에게는 아무도 4할타율을 요구하지 않는다. 푸홀스는 굳이 4할을 치지 않더라도 최고의 선수임을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4할타율은 어쩌면 이름뿐인 '본좌'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수 년간 본좌라는 소리를 듣는 선수가 새로 등장하지 않았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4할도, 본좌도 달성하기 힘든 조건이 되었고 굳이 '본좌'를 뽑지 않더라도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는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즌 중반까지 푸홀스가 4할이상의 타율을 기록한다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또 맘이 달라진다. 그때는 또 한 번 이루지 못할 꿈에 걸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이제동은 지금 또 한 번 4할타율의 언저리에 와 있는 셈이다. 아직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모든 팬들은 이제동이 4할타율을 기록할지에 대해 또 한 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역사는 그 누구도 혼자서 걸어가게 하지 않는다. 스타리그 2연속 우승, 케스파랭킹 부동의 1위 이제동에게 다시 한 번 인생 최고의 라이벌이 앞을 막아섰다. 한 동안 개인리그에서 잠잠하던 이영호는 이제 완벽히 부활해서 이제동을 위협하고 있다. 그들의 대결은 예상보다 빨리 다가와서 모두들 미리보는 결승전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이영호는 '최종병기'라는 별명이 처음 생겼던 2008년 초 이후의 그 괴물스러운 이영호보다도 더 강한 모습니다. 야구에 비교하자면 조 마우어의 컨택에 라이언 하워드의 파워를 합한 느낌이랄까.(개인적인 취향으로 팀은 LA dogers소속이었으면 좋겠군요) 사상최악의 적을 맞은 이제동은 이미 일격을 당했고 불리한 입장에서 2차전을 준비해야 되는 처지에 이르렀다.
리쌍록의 승자는 다시 한 번 모두의 기대를 받으며 팬들을 '본좌 로드'의 꿈에 부풀게 할 것이다. 고타율을 기록하던 누군가가 4할 달성에 대한 압박감을 받듯이 리쌍록의 승자 역시 우승을 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으며 무거운 어깨를 이끌고 경기석에 앉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4할 타자와 본좌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인물일까? 굳이 4할과 본좌라는 이름에 매달려 선수들에게 또 하나의 짐을 지울 필요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미 우리는 본좌 없이도 4할타자 없이도 충분히 경기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안다. 그것은 수 년간 - 수십 년간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래도 울고 웃으며 경기를 보아왔다. 4할타자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4할에 대한 기대를 걸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그때는 또 그 기대감에 기대에 경기를 잠시 즐기면 되는 것이다. 2009년 겨울, 우리는 다시 한 번 '4할타자'에 도전하여 우리를 즐겁게 해 줄 두 명의 선수를 찾았다. 둘 중 누가 승리해서 리그를 지배해도 상관없고 무승부로 끝난다고 해도 괜찮다. 다만 확실한 건 여기서 이기는 한 명은 확실히 앞서나가 우리에게 또 한 번 4할의 꿈에 젖을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될 것이다. 그 꿈이 이루어져도,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우리는 내년 이맘 때 또 한 번 우리의 꿈을 누군가에게 걸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