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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1/18 13:27:40
Name ipa
Subject 이제동과 이영호의 결승을 기다리며.


이제동 선수 팬 입장에서 쓴 글입니다. 반말투는 양해를......




1.


승부에 있어서 당위는 오직 하나다. 이기는 것.

그밖의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중2병적인 낭만의 과다이거나 패자의 에둘러진 변명일 뿐이다.

정해진 규정범위를 넘지 아니하면서 이루어지는 모든 심리전과 전략적 도박은 당연히 허용되고, 나아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역사는 그것을 보다 폭넓게,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이가 승자로 올라 설 수 있음을 기억한다.

지피지기면 백전 무퇴라.
승부에서 만나게 되는 적은 그렇게 '알아야 할' 대상이지, 결코 '믿어야 할' 대상은 될 수 없다.

자신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감이라는 감정적 요인은 승리를 위한 플러스 요소임에 틀림없으나, 그 자신감에는 반드시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과 냉정한 평가가 전제되어야 한다.

知彼知己가 전제되지 않은 信彼信己는 다른 이름으로 무모함이며, 백전백패로 가는 이정표에 다름 아니다.  



2.


커뮤니티를 정말 간만에 서명빵으로 달아오르게 할 만큼 관심을 모았던 리쌍록.
역대 최다관중이 모인 크리스마스의 빅 매치업.

이영호는 정말 꼼꼼한 꼼수를 준비해왔다.
나도벙이나 임요벙의 벙커링과는 또다른, 광안리의 정명훈을 떠올리게 하는 잘 깎은 벙커링.

그리고 이제동은 12앞을 준비해왔다.
이제동의 준비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단능이라는 맵의 특성을 고려하면 일반적인 경우 벙커링을 해도 12앞으로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다. 더욱이 이제동이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믿는다면 충분히 가장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이제동은 12앞을 선택했기 때문에 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영호는 단순히 벙커링을 했기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니다.

이미 잘 알려진 정형화된 꼼수는 그저 '선택'의 문제다.
이 빌드를 쓸까, 말까를 결정하는 순간 준비는 거기서 끝이다.
승패는 그 선택이 옳았느냐, 틀렸느냐로 갈린다.
그 선택이 옳았느냐, 틀렸느냐는 상대에게 그것을 간파당했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하지만 꼼딩의 꼼수는 달랐다.

꼼수가 그 자체로 완성도를 가질 때, 상대의 간파는 그대로 격파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한 꼼수는 치밀한 준비와 연구를 통해 만들어지며, 따라서 꼼수에 대한 응수 역시 꼼수의 완성도에 비견할만큼 충분히 준비되어 있어야 비로소 격파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동은 분명 2세트에서 이영호의 벙커링까지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영호로부터 정명훈류의 필살 꼼수가 나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중점을 두어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동은 분명 '이기고' 싶었을테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영호 역시 그러길 바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영호는 오직 이기고 싶었다.
그리고 오직 이긴다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적화된 방법을 찾는 데 그에게 주어진 시간과 노력을 썼다.
그리고 이겼다.



3.

우직함은 교활함을 이기지 못한다.

-지금까지 교활함이 우직함에 지는 모습은 딱 한 번 봤다.
우직하게 3연벙을 지르는 상대에게 교활하게 12앞을 가져가다가 졌던 전설의 4강...-

스포츠 승부에 있어서는 고집을 먼저 버리는 쪽이 이긴다.

기세에서 밀릴 순 없다고? 사실 기세에선 밀려도 된다. 경기만 이기면 그만이다.

도재욱과 이영호의 8강 2경기.
초반의 유리한 상황을 순간의 실수로 말아먹고도 넘치는 경기력으로 역전을 거의 손에 쥐었던 도재욱의 발목을 낚아챈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기질이었다.
얼핏 보기엔 이영호의 핵이나 도재욱의 하템 배제나 똑같이 기세싸움이고 고집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도재욱의 하템 배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긴다"는 정신승리에만 치중한, 그저 순수한 고집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인 반면,
이영호의 핵은 "이런 방법으로도 이긴다" 혹은 "이렇게 해야 이긴다"는 전략적 선택이었을 뿐이다.
설사 둘 다 그저 기세싸움이 목적이었다고 평가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같다.
이영호의 핵은 실질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기세싸움이었던 반면, 도재욱의 하템 배제는 실질적으로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기세싸움이었다.
그나마도 이영호가 먼저 고집을 꺾었고, 최종적으로는 이겼다.

개인리그 다전제에서 역전패나 장기전 끝에 분패를 당한 쪽이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기에 그런 양상으로 흘러가는 경기는 무슨 수작을 쓰더라도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
진정한 기세란 그런 것이다.
하물며 그런 경기에서 고집을 부리다가 진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역량의 측면에서는 맞설만할지 몰라도, 판을 보는 그릇의 크기에 있어서 상대가 안 된다.



4.

이제 다시 한 번 이제동이다.

그가 이영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한없이 차가워져야 할 것이다.
결코 섣불리 그를 믿어서도 안 되고, 혼자 달아올라 눈 앞의 기세싸움에 큰 판을 보는 시야를 놓쳐서도 안 된다.

이미 한 번 겪었고, 배웠다.

무대는 결승전이고, 모두가 기대하는 최고의 매치업이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가려져야 하는 것은 승패일 뿐이고, 목적은 오직 이기는 것이다.
먼저 3판을 잡아내는 것이다.

그 밖의 모든 고려는 졌을 때 "패인"이라는 딱지가 붙어야 할 위험한 담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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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형폭풍저
10/01/18 13:31
수정 아이콘
영원할 줄 알았던 이윤열 선수의 커리어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는 이제동선수.. 이 선수의 끝은 과연 어디일지..
역대 최강의 포스를 꿈꾸는 자와 역대 최강의 커리어를 꿈꾸는 자의 본좌결정전이 무척이나 기다려지네요.
누구의 승리건 간에 깔끔하게 3:0이나 3:1의 승부가 나길 기대해봅니다.
마르키아르
10/01/18 13:41
수정 아이콘
사실 맵이 어쩌니 저쩌니 해도..

두선수간의 대결은..

그날 조금 더 "운"이 좋은 선수가 우승할꺼 같네요.

두선수 밤새워 100판쯤 경기하면

50 : 50 나오지 않을까요..
마르키아르
10/01/18 13:43
수정 아이콘
완성형폭풍저그가되자님//

사실 이윤열 선수의 커리어는..

스타크래프트2 라는 존재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그누구도 깨지 못하게 될꺼 같네요..

제동선수가 윤열선수를 커리어로 넘어설려면.. 지금 3,4년동안 쌓은 커리어를..

3,4년동안 더 해야하는데..

그것도 힘들거니와.. 그전에 스타2가 나오지 않을까요.^^:
10/01/18 13:44
수정 아이콘
누가 이기던 무조건 3:2...

경기당 이삼십분이 넘어가는 장기전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초반 경기운영은 누가 하던 똑같지만 후반 장기전은 이 선수들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완성형폭풍저
10/01/18 13:46
수정 아이콘
마르키아르님//
이제동선수가 이번에 우승하고 다음에 양대우승하면 되니까요..^^;; 일단은 포장..!! 포장에 신경쓴거죠.
최고의 떡밥이었던 머슴 vs 머신.
이번 msl은 머슴 이상의 포스 후보자 이영호 vs 머신 이상의 커리어 후보자 이제동.
누가 이기든 즐겁지 않을 수가 없네요. ^^
Karin2002
10/01/18 13:54
수정 아이콘
진짜 머머전 결승 이후 완전 탑투가 붙는 결승전은 처음인 것 같네요..
10/01/18 13:54
수정 아이콘
센게임배 정도만 나오면 대박이죠. 괴수 대격돌...
lost myself
10/01/18 14:23
수정 아이콘
저도 비슷한 주제로 글을 쓰려고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쓰신 글에서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직하게 3연벙을 지르는 상대에게 교활하게 12앞을 가져가다가 졌던 전설의 4강.."

3연벙은 우직한 게 아니라 엄청난 노림수 아니었나요?
오히려 홍진호 선수가 고집있게 12앞마당을 가져간 거구요.
스타판의 어느 누구도 3연벙을 할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죠.
그리고 만약 홍진호 선수가 교활하게 12앞마당을 가져간 거였다면
그 경기가 끝나고 "저그라는 종족 자체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와 같은 말을 하지 않았겠죠.

이 부분만 뭔가 조금 어색한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10/01/18 14:27
수정 아이콘
lost myself님// 아, 저런..... 개그였습니다....ㅠ.ㅠ
10/01/18 15:01
수정 아이콘
이제동은 '이기는' 것보다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영호 역시 그러길 바랬을지도 모른다.......

단능은 러쉬거리가 길고 이제동 선수의 컨트롤을 감안했을때 이영호 선수의 일반적인 벙커링이 성공할 확률은 낮았습니다.
이제동 선수는 배신당한 게 아니라 의표를 찔린거죠. 오버로드 커트로 시작한 잘 짜인 초반전략에요.
이제동 선수도 '보여주기' 위한 것보단 '이기고'싶었을겁니다. 양 선수 모두 그랬죠.
다만 이제동선수의 '이렇게 하면 내가 이겨'라는 생각의 근본적인 전제를 이영호선수의 전략이 흔들어버린거죠..

왠지 모를 씁쓸함이 남는 표현이네요....
아에리
10/01/18 15:14
수정 아이콘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위가 쓰릴정도로 긴장됩니다. 선수들은 어떨지..ㅡㅡ
하이브
10/01/18 19:26
수정 아이콘
저는 이영호선수가 요즘 자주 보여주는 전진 '6,7배럭 벙커링'이 굉장히 위협적으로 다가오더군요.
이제동 선수가 스타리그 8강 2경기에서 당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고,
한상봉 vs 이영호의 경기에서도 그것으로 이영호 선수가 한경기 따냈죠.

제가 보기엔 전진 6배럭 벙커링은 "상대가 12앞마당을 할 경우 무조건 먹히는 전략"입니다.
그렇다고 그게 무서워서 매 경기 선풀을 갈 수도 없으니
이제동선수도 참 골치아플 것 같습니다.
lost myself
10/01/18 22:16
수정 아이콘
ipa님// 크크크크크크 죄송합니다.^^;;
Karin2002
10/01/19 10:14
수정 아이콘
2회 이상 테란 우승자는 모두 본좌가 되었죠. 이영호도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yellinoe
10/01/19 10:30
수정 아이콘
Karin2002님// 여지껏 2회이상 우승한 테란이 4번밖에 없군요. 플토는 7?, 저그는 고작 2?
Different
10/01/19 14:25
수정 아이콘
하이브님//진짜 6배럭 벙커링이 강력하긴 해요...ㅠㅠ
그래도 러쉬거리가 길다면.....이제동 선수라면 막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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