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04/10/19 23:22:49
Name Satine
Subject 2004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가을을 보내며..






너무 오래된 일이라 게이머 송병석을 처음 보았다거나 이름을 들었던때를 기억해내기는 쉽지않습니다.
게이머 데뷔 이후부터 한참의 세월을 건너뛰고야, 그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다던 프리미어리그에서
처음으로 그는 '재미있는 게임을 하는 선수네' 라는 인상을 제게 심어주었습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아직도 종종 vod를 다시 찾아보게 되는 장진남선수와의 로템에서의
혈전은 몇킬을 한 아칸이 있었다던지, 성큰밭에 달려들던 프로토스의 모양새가 어떠했는지등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습니다.

autumn은 보는 입장에서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수있는 게임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정석을 좋아하는
프로토스라는 편견을 가지고 그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사실 그는 같은팀의 박정석과같이
힘싸움을 즐겨하는 물량형의 프로토스라고 칭하기에도, 그렇다고 온갖 기상천외한 전략들을
생각해내는 강민류의 프로토스라고 칭하기에도 무언가 썩 마음에 차질 않았습니다. 매 경기,
종잡을수 없을만큼 확연히 달라지는 컬러에 암만 autumn의 경기를 꼼꼼히 살펴보아도, 정의내릴
수 없는 본인만의 스타일이 있는 선수라고 생각했습니다.

2004년, 10월 19일. 어쩌면 게이머로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경기를 앞두고 송병석선수는
"내가 그린 그림대로만 경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져도 관계없으니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자.
오늘 제가 게임에 임하는 목표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펠레노르에서 gg를 치던 순간,
그의 머리속에 스쳐간 생각은 무엇일까 감히 짐작해보게 됩니다.

가슴졸이며 경기를 지켜보는 팬으로서 그의 마지막 경기가 아쉽지 않을수 없습니다. 이때 이렇게
했더라면, 저때 저렇게 했더라면-하고 끊임없이 이미 끝나버린 경기를 머릿속으로 되감고 되감고
안타까워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마지막 경기라면, 근래에 본 어떤 경기보다 손에 땀을 쥐었고,
그 어떤 경기보다 흥미진진했다고, 너무나 훌륭하게 잘 싸워냈다고 이야기해주고싶습니다.

프로게이머란 직업이 귀에 영 생소할 그때부터 6년의 세월동안 꾸준히 목표에 도전해온 사람의
마지막이기에 더더욱 안타깝기만합니다. 어렸을때에는 노력하면 이루어지지 않는것은 없다라고
배웠었던것과는 달리 세상의, 그리고 스타리그의 벽은 모질게도 autumn의 앞에 서있었습니다.
그를 응원하게 된 이유도 다름이 아니라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는 모습이 인상깊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이루지 못한 꿈이었겠지만, 그에게는 후회가 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후회란 패배자의 것입니다. 그만큼의 열정과 투혼과 도전정신이라면, 어떤것에 도전하던 언젠간
자신이 바라던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순간까지 빛났던 투혼은
패배자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나간 경기에 미련과 후회를 두기보단, 앞으로의 본인의 미래에 또
다시 열정과 투혼을 불태우십시오.

게이트에서 나오는 족족 상대 진영으로 달리던 질럿들, 넥서스 주위를 빼곡히 둘러쌌던 캐논들,
성큰밭에 우직하게 달려들던 병력들, 늘 기가막히게 떨어지던 스톰, 유난히 잘쓰던 아비터,
한웅렬 선수 상대로는 실패하더니 결국 다른 테란 상대로 성공해낸 스카웃 전략, 자기한테 맵이
꽤 불리하다 싶으면 너무 자주 보여주던 전진게이트 or 캐논러쉬유난히 솔직하고 입바른말 못하던
성격, 네티즌과 맞서싸우던 무모함, 그러나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들에겐 유별나게 예의를 지킬줄
아는 모습, 안티마저 팬으로 흡수하는 묘한 마력, 잘할께요- 열심히 하겠습니다-란 인터뷰밖에
할줄 모르던 게이머들 사이에서, 프로토스전 자신있다던 상대에게 '우습죠' 라고 말해버리는 자신감,
툭툭 던지던 재미있는 말들, 그리고 이마위로 주륵주륵 흐르던 굵은 땀방울.

이제 다시 보기 힘들 송병석의 모든 모습들을 끝나가는 나의 2004년 가을과 함께 기억속에
오래도록 묻어두겠습니다. 끝까지 좋은 추억을 남겨주어서 감사합니다.

어떤길을 걷게되건, 저에겐 autumn으로 기억될 당신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P.S.) 이런글을 쓰면서조차 이대로 물러설수 없다는 autumn의 말 한마디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가장 바라는것은 사실 그가 포기하지 않는것인지도 모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souLflower
04/10/19 23:29
수정 아이콘
저도 그가...포기하지 않기를 바라지만....현실은...군대문제는... 송병석선수의 그 의지마저 꺾어 놓을꺼같아...슬픕니다....
카이레스
04/10/19 23:45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글입니다....제가 다 뭉클하네요....현실의 문제....후..송병석 선수 힘내세요!
카탈리
04/10/19 23:57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ㅜㅜ
Milky_way[K]
04/10/20 10:1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입니다...
송병석선수 힘내세요.. 왠만하면 은퇴는 ㅠ_ㅜ
하지만 현실의 문제라...
힘내시고.. 항상 송병석선수의 앞에 지금보다 강한 운이 따르기를....
안전제일
04/10/20 11:54
수정 아이콘
좋은글입니다..
송병석선수의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할말이 없네요..ㅠ.ㅠ)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392 옵저버 시스템 개선안 한가지. [12] 버로우드론3438 04/10/20 3438 0
8391 하얗게.. 정말 하얗게... 불태워 버렸어..... [9] llVioletll4243 04/10/20 4243 0
8390 자신의 스타일을 바꾼다는 것.... [1] 낭만메카닉3181 04/10/20 3181 0
8389 송병석 선수가 은퇴한다니 아쉽나요..? [52] 비롱투란6432 04/10/19 6432 0
8388 2004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가을을 보내며.. [5] Satine3168 04/10/19 3168 0
8387 변형태 선수에게 [16] Sid Vicious3995 04/10/19 3995 0
8386 To. Autumn - 송병석 선수의 챌린지리그 탈락에 부쳐 [15] Altair~★4517 04/10/19 4517 0
8385 아...진짜 온게임넷 맵.....진짜 열받네요... [117] 정지웅6744 04/10/19 6744 0
8384 송병석 선수 당신의 마지막 투혼에 경의를 표합니다 [4] 하늘소망3269 04/10/19 3269 0
8383 허무..... 그리고 눈물. [3] 요린★3292 04/10/19 3292 0
8382 가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 legend3273 04/10/19 3273 0
8381 챌린지 리그를 보고오는길입니다. [8] 귀여운곰탕이3147 04/10/19 3147 0
8380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버렸어요. [16] 라블리쿠키3177 04/10/19 3177 0
8379 헐..방금 배신당할뻔 했습니다..; [13] 강은희3500 04/10/19 3500 0
8378 시험 두개를 준비하면서. [9] scv의 힘!!3234 04/10/19 3234 0
8377 프로라는 의미와 리그에 대한 정확한 이해 [1] 그대는눈물겹3234 04/10/19 3234 0
8376 빵을 드셔 보셨습니까? [4] BaekGomToss3280 04/10/19 3280 0
8375 [쉬어갑시다]대한민국 축구이야기. [17] 삼삼한Stay3297 04/10/19 3297 0
8374 [초잡담]임요환,서지훈선수의 관계... [19] EzMura4973 04/10/19 4973 0
8373 주훈감독님의 의견에 대한 사견입니다. [57] 최연성같은플4538 04/10/19 4538 0
8372 코뿔소.. 지금 선택은 틀렸다... [9] relove3375 04/10/19 3375 0
8371 그냥 나름대로 생각해본 어제 박태민선수의 패배요인 [14] 아드레날린아3299 04/10/19 3299 0
8370 주훈 감독인터뷰와 그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서 써진 글(스갤 펌) [19] SetsuNa4451 04/10/19 4451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