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으로 두개 글을 쓰는 것은 보기가 않좋아 자제하려 했는데,
아무도 글을 안쓰시길래 또 몇 마디 끄적여봅니다.

저는 임요환 선수를 정말 좋아합니다.
최연성 선수, 박성준 선수, 박경락 선수를 정말 좋아하고,
홍진호 선수 또한 무척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들 중 누구라도 임요환 선수와 붙게 된다면 전 임선수를 응원하지요.
왜냐하면 임요환이니까!! 입니다. +_+;;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요환 선수.
2002년이 지나고 나서부터 과거와는 달리 그 포스가 약해지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토스전이 어쩌네, 메카닉이 어쩌니, 물량이 어쩌니.
임요환 선수의 플에이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죠.
언젠가 PGR에서 임요환 선수에게
'자객'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주자라는 의견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자객'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도 어울리는 것이지만,
'황제'라는 표현이 너무 무겁다는 것이 그 요지였던 것 같습니다.
전성기의 임요환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에게 항상 과도한 기대를 해왔고,
임요환 선수는 악착같이 그 기대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황제의 귀환은 실패하고 말았네요.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기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2004년 봄이었나요?
임요환 선수에게 비슷한 기회가 한번 있었더군요.
그때도 당대 최고인 이윤열 선수와 프리미어리그 결승에서 만났지요.
당시 임요환 선수의 패배와 이번 최연성 선수와의 경기에서 패배는
사뭇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성적은 이윤열 선수가 임요환 선수를 압도했지만,
아직 임요환 선수에게는 황제의 큰 옷이 걸쳐져 있었습니다.
날고 기는 이윤열을 제압해줄 황제의 위풍당당함.
그때는 임요환 선수에게 그런 것을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결과는 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었지요.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임요환 선수는.. 뭐랄까요.
정말 황제의 옷을 완전히 벗어버린 듯한 느낌입니다.
예전에 임요환 선수가 졌을 때는
'황제가 또 졌네' 라는 실망감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임요환 선수의 시합 자체를 좋은 승부로 보고
그를 좋은 선수로 기억하게 된 듯 합니다.
어쩌면 임요환 선수는 그에게 지긋지긋할지도 모르는
'황제의 옷'을 벗어던져버리게 된 걸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임요환 선수를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상에 있을 때 그의 플레이 자체도 대단했지만,  
정상에서 벗어날 때 받는 그 심리적인 부담감.
최근 2년 동안 임요환 선수는 이 부담감과 싸우느라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버티고 있고, 이기고 있고, 또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지고 나서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이 모습에서 저는 숭고한 감동을 느낍니다.

지금까지 임요환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가끔씩 황제의 옷으로 부풀려졌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이제부터는 속부터 단단한 선수가 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최연성 선수와의 경기는, 어쩌면 게이머 임요환이라는 사람에게
또 다른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이번 온게임넷 결승에서 임요환 선수가 우승했다면
정말 기뻤을 테지만, 감동을 받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임요환 선수가 다시 특정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게 된다면
저는 임요환이라는 사람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위대한 프로게이머'라고 부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