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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8/19 00:59:26
Name bettersuweet
Subject [일반] 여느 개죽음
30년 간의 서울살이를 끝내고, 경기도민이라는 어색한 타이틀을 처음으로 받아들고서 자동차로 출근하던 1년의 시간이 있었다. 매번 빡빡한 2호선 지하철 속에서 갇혀지낸 탓일까. 부천 to 강남, 스테레오 빠방한 음악이 흐르는 자차 출퇴근은 내겐 나름 설레는 경험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유치한 생각에 서울 여기저기를 순회하며 친구들의 귀가를 돕기도하고, 삘 꽂히면 액셀 닿는데로 어디든 쏘다니곤 했다.

 

그렇게 짜릿한 몇 달이 지나고 자동차 출퇴근이 더이상 스포츠가 아닌 일상이 될 때쯤, 문득 새롭게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보다 도로에서 일어나는 로드킬이 참 많구나` 하는 거였다. 사실에 서울에 살 때는 로드킬, 로드킬 말만 들었었지 와닿지 않았었는데 `신도시 → 시골 → 강남`을 주된 경로로 출퇴근하니 몇일에 한번 씩은 반드시 로드킬 현장을 마주치는 것이 일상이었다. 길을 잃은 동물들이 어줍잖게 도로를 건너려다가 중앙선 즈음에서 차에 치이는 일은 너무나도 흔했고, 그나마도 운좋은 동물들은 도로 옆 길가에 눕혀져 생을 마감하고, 운이 없으면 도로에 그대로 누워 짓이겨지다가 밤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글로 표현하자면 너무도 비참하고 비극적인 일이지만, 현실에서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반응은 꽤나 냉담했다. 그런 사고가 일어나는 도로들은 보통 시내 외곽의 빠른 도로들이기에, 사람들은 그들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거나 슬퍼하면서도 그들이 운전하는 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다시 현실로 돌아가곤 했다. 사실 나도 그랬다. 거의 1년간 수십 번의 로드킬 사건을 마주했고, 내 차가 그들 위로 지나가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조의를 표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여느 날, 운 좋게 빨리 퇴근한 나는 평소와 같이 강남에서 부천으로 긴 퇴근 여행을 시작했다. 저녁 일곱시의 강남은 교통체증의 산 증인이기에, 평소보다 두배는 천천히 느릿느릿 차를 돌렸고 부천 즈음 여느 터널 앞에 도착했다. 하수상하게도 앞 차들은 비상등을 깜빡하며 서행하기에 바빴고 나는 본능적으로 앞에서 또 어떤 사고가 펼쳐졌구나 직감할 수 있었다. 이 때 즈음의 나는 어느 정도 출퇴근 경험치가 쌓인 덕분에 앞 차들의 움직임을 보면 대략 어떤 사고가 펼쳐졌는지 추론할 수 있었다. 두 차선중 한 차선만 유독 막히고 다들 한 쪽 깜빡이만 켜고 있으면 추돌사건이요. 앞차들이 특정 구간에서만 몸을 살짝 비틀면 로드킬이구나 하는 식으로. 그날은 안타깝게도 앞차들의 움직임을 보아 로드킬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달라질 일은 없었다. 뭔지 모를 생명체의 명복을 빌며 조심조심 액셀을 밟는 게 내가 할 수 있는일의 전부니까. 그렇게 조심조심 액셀을 밟던 중,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강아지의 외침이 들렸다.

 

그리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터널 속이었기에 그 외침은 크게 증폭되었다. 무슨 용기였을까. 그 소리는 이미 현장을 몇미터 지나친 나를 멈춰 세웠고, 적어도 누군가 이 가엾은 생명체를 다시 밟지는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 현장 앞에 서서 손짓 하며 차들을 돌리려 애썼다. 한바탕 차들이 지나가고 뒤를 돌아보니, 뽀얀 포메라니언 한마리가 힘없이 누워있었다. 털이 그리 때타지않은 걸로 봐서 누군가의 손에서 이쁨받고 자라던 반려견이었던 듯 했고, 이제는 끙끙거리는 소리정도만 겨우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살려야한다". 이제는 우스갯소리가 되버린 문장이지만, 내 머릿속엔 그 한 문장만이 가득했다. 지금이라면 아직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 짜내 방법을 찾고 싶었다. 도로에 서서 `부천 동물병원`, `동물병원 출동` 같은 검색어를 연신 찾아보다가 몇 군데의 동물병원에 연락했지만, 대부분은 받지 않거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곤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길가에서 사고 당한 주인 모른 강아지를 멀리까지 구하러 오겠다는 수의사는 찾기 힘들었고, 지푸라기 잡는 마음에 112에 전화를 걸어 출동을 요청했다.

 

몇 분이 되지 않아 경찰 한 두분이 도착해 상황를 물었고, 처리하겠다는 답변을 하며 내심 내가 자리를 떠나주기를 원하는 눈치를 보였다. 나는 상황을 설명하며 내가 비용을 대서라도 강아지를 살리고 싶다는 뉘앙스를 풍겼었고, 경찰은 이런 경우 보통 강아지가 더이상 밟히지 않게 도로 멀리로 치워두는 정도에서 일을 마무리했기에, 뭔가를 더 기대하며 현장을 지켜보는 내가 부담스러웠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경찰분은 내게 다시 다가와 이미 저렇게 다쳤으면 살기는 어려울 거라고, 더이상 밟히지 않게 길 옆으로 치워두면 새벽에 시에서 거둬줄거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곧이어 강아지를 옮기주시곤 경찰분들은 떠났고, 나는 그 곳을 머뭇머뭇 지키다가 트렁크에 있던 신문지로 강아지를 덮어주고 자리를 떠났다.

 

매캐한 기분으로 밤을 맞이 하고, 다시 아침이 밝아와 그 터널을 지났다. 터널 속 신문지는 온데 간데 없었고, 세상은 간밤에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화창하고 쨍쨍했다. 그 도로 위에 누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어떤 심경일까, 아플 줄 알면서도 피하지 못하는 무기력함은 얼마나 큰 공포일까. 그간 내가 목격해온 수많은 현장들도 다 그처럼 처절하고 비참했을까. 끝을 경험하지 못한 나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아픔이다. 다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 터널을 지날 때, 그 이름 모를 포메의 목소리와 눈빛을 기억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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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9 03:1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도 이제 막 1년 안되게 타고 1주일에 100km 근방으로 운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번도 로드킬을 경험해보지 못했구요.. 내가 살기 위해 밣고 가야함을 머릿속으로는 인지하고 있지만 막상 닥치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 무섭네요..
21/08/19 05:03
수정 아이콘
문득 생각난건데, 요즘 비둘기 로드킬을 종종 발견하는데 예전과는 달리 비둘기들이 굉장히 둔해지고 날기를 귀찮아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을지 궁금하더라구요.
플라톤
21/08/19 09:43
수정 아이콘
20년 전쯤에도 날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오토바이 피하려다가 치이는 비둘기 봤어서 그냥 원래 그런 애들인가 싶습니다. 어릴적에 본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콩탕망탕
21/08/19 09:18
수정 아이콘
아.가슴 한켠이 먹먹해지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21/08/19 09:53
수정 아이콘
아직 로드킬을 한 경험은 없고 할 뻔한 적은 몇 번 있습니다.. 진짜 막 튀어나오는데 심장이 벌렁벌렁거리더군요...
로드킬은 진짜 하루에 몇 번 볼정도로 많기도 하죠... 근데 사체가 제대로 안보일정도인 경우도 있고 이제 막 죽어서 너무 고어스럽게 길가에 있기도 하고..
로드킬 막상 제가하면 멘탈 제대로 나갈꺼같아요..
민방위면제
21/08/19 10:05
수정 아이콘
제가 로드킬을 보며 느끼는 감상과 매우 비슷해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내 차가 그들 위로 지나가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조의를 표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1/08/19 10:10
수정 아이콘
https://youtu.be/s4MkPGGn71Y?t=13

몇달전에 겪은 일입니다. 한적했던 시간대에 그리 안붐비는 도로라 ...
제가 경적을 울렸는데 바빠서 비키라는 소리가 아니라 도로에서 벗어나길 바래서 울렸었습니다.
계속 도로 따라 가니 당황 스럽더라고요. 좀 어려보이는데다가 놀란거 같아서...
21/08/19 10:11
수정 아이콘
전 로드킬 피하려다 죽을 뻔 한 적 있습니다.
빗길에서 갑자기 청설모가 나와서 순간 고민하다가 살짝 피한다고 핸들을 틀었는데, 두바퀴반 정도 차량이 돌면서 반대편 차선도 넘어갔다가 다행히 1차선에서 멈췄습니다.
그 이후로는 비올 때마다 트라우마처럼 그 때 생각이 나서 서행하고 있습니다.
로드킬 안타깝지만 그 상황이 온다면 그냥 치고 지나가야 합니다ㅠ
벽빵아 사랑해
21/08/19 10:32
수정 아이콘
시골에서 살면 비 오는 날 개구리 로드킬 피할 수 가 없어요...... 개구리나 뱀 밟는거야 가슴 차갑게 뭐 어쩌라고 싶은데 두꺼비는 좀 틀리긴 합니다 가죽도 오래 남아 있고 크기도 크고 뭔가 영물을 죽였다는 생각에 찝찝함이 으으
스마스마
21/08/19 10:57
수정 아이콘
동물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로드킬의 위기가 오면 그냥 치어야 합니다. 차량이 약간 손상을 입고, 동물에게 상처가 가는 방향이 낫지 안 그러면 사람이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에 개구리 이야기 하셔서 그런데, 저도 예전에 업무로 지방 골프장 갈 때가 있었는데(그 때는 골프 치기 전) 새벽에 진행하는 업무라 3~4시쯤 현장을 가는데 골프장 가는 길에 있는 논밭에서 어마어마한 수의 청개구리가 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피할 수가 없었어요. 최대한 틈이 보이는대로 요리조리 피하면서 갔는데(그나마 새벽에 차량 없는 시간이라...) 아마 상당한 수의 청개구리를 밟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확인할 생각도 안했고 그럴 마음도 없었어요. 그냥 미안하기만 해서.

골프를 치기 시작하고, 아난티 골프장에 갈일이 있었는데, 설악IC로 빠지는 길에서 오리 가족이 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부모를 따라 도로벽면을 따라 나란히 가는 오리 가족을 보며(거위던가...) 귀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차량에 치이지 않기 만을 바라기도 했어요. 저도 시간이 급하니 그냥 지나 갔습니다만. 가끔 그들은 무사히 그들이 목표 지점에 도달했을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 아프지만 공감되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21/08/19 11:08
수정 아이콘
사람도 사고났다고 개인병원 의사가 전화 받고 직접 출동하지는 않죠.
bettersuweet
21/08/19 11:25
수정 아이콘
의외로 동물병원은 개인병원 의사가 직접 출동합니다. 치료비 책임질 사람만 명확하다면요.
Waldstein
21/08/19 12:28
수정 아이콘
개가 차에 치였다고 경찰이 와야하나...
StayAway
21/08/19 13:05
수정 아이콘
동물도 동물인데 곤충까지 영역을 확대하면
내가 고속도로 달리면서 죽인 벌레가 이미 수십만 마리라 죽어서 천국 못갈듯
서지훈'카리스
21/08/19 14:46
수정 아이콘
지역마다 동물 구조 관련 병원이 지정되어 있더군요 거기 아니면 데려다줘도 잘 안 받아주는 것 같아요
-안군-
21/08/19 16:47
수정 아이콘
얼마전에 택시를 타고 이수교를 지나다가 신호에 걸려서 서 있는데, 바로 앞쪽으로 오리 가족이 길을 건너고 있더군요
중간에 있는 연석을 새끼 오리들이 못 올라가서 어미 오리는 새끼를 하나씩 물어 올리고 있고, 그 와중에 뒤에 있는 새끼들은 도로쪽으로 나가고...
택시기사님도 저도 엄청 안타까워 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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