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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4/10 16:55:03
Name CoMbI COLa
Subject [일반] 지갑 절도범이 잡혔습니다.
>> 이전 글 : https://pgr21.net../freedom/95296 <<

그저께 금요일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받아보니 사건 담당 형사분이셨고, 절도범의 거주지를 파악하여 일요일(오늘) 출석하여 조사할 예정이랍니다. 금요일에 통화한 내용은 제가 기억하는 정확한 피해 금액(범인의 주장과 비교 위해)과 절도범에 대한 처벌 의사였습니다. 당시 아픈 다리를 이끌고 멀리 까지 가서 지갑을 되찾아 온 수고로움에 처벌을 요청하려 했는데, 형사분이 덧붙이시더군요. 기초생활수급자 +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라고요.

고민이 좀 됐습니다. 사실 처벌을 원했던 것은 제 개인적인 분노 절반, 사회의 공익(앞으로 절도를 하지 않도록 하는? 뭐 그런 의미로) 절반이었는데 앞의 절반이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졌고, 뒤의 절반도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고민을 하자 일단 일요일에 조사가 마무리 되면 다시 연락을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방금 오후 2시쯤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상대방이 사과를 하고 싶어 하는데 연결을 원하느냐 해서 필요없다고 했고, 지갑에서 빼갔던 현금 12,000원과 티머니 카드를 가지고 왔기에 경찰서로 찾으러 오라고요. 근데 제가 다리가 불편한 상황이라 나중에 가지러 가겠다고 하니, 경찰서와 저희 집이 가까워서 직접 가져다주셨습니다. 집 앞에서 서류에 인적사항을 적고 서명을 하면서 팩트체크를 좀 했습니다.

-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것은 맞다. (의사 소견 이런건 아니고 누가 봐도 알 수 있다고 함)
- 기초생활수급자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조사 과정에 필요하지 않아서 할 수 없음)
- (범인 주장) 순간의 유혹으로 훔쳤으나 죄책감에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었으며, 지갑은 당일 바로 지하철 역에 맡겼다.
- 오이도역에서 주웠다는 것은 거짓말, 간 적이 없다.
- 신중동역까지 간 이유는 원래 목적지였기 때문.

여기까지 듣고서 제가 내린 결정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였습니다. 물론 절도는 반의사불벌죄(말이 왜 이리 어렵...)가 아니므로 제가 원하지 않는다 해도 약식으로 벌금은 내게 됩니다.  대신 제 의사를 감안하여 벌금이 줄어들 수 있는거죠. 앞서 말했듯이 본 때를 보여주는 것도 온전한 사고가 가능한 사람에게 의미있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고, 어차피 벌금은 내기 때문에 최소한 제 마음이라도 편하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직접 와 주신 형사분께 2,000원짜리 커피 하나 사드리고 나니 세종대왕님 한 장 남았습니다. 원래 제 돈이었지만 괜히 꽁돈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p.s. 잃어버린 이후로 민증, 보안카드, 자주 안 쓰는 카드들은 집에 고이 모셔두고 있습니다. 지갑에는 운전면허증과 주결제 카드 1장(가끔 삼페 먹통일 때)만 넣고 다닙니다. 현금도 안 가지고 다니려 했는데, 얼마 전에 동네 철물점에서 8,000원짜리 멀티탭 사는데 카드 결제하면 9,000원이라는 소리를 듣고(불법 여부는 떠나서) 만원 정도는 갖고 다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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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0 16:58
수정 아이콘
잘하셨어요 저도 어머니 핸드폰을 찾은적이 있는데 안에 들은 돈이 비었는데 그냥 찾아주는 것만 해도 고마워서 아무말도 안했습니다.
더군다나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기가 어렵죠
초록물고기
22/04/10 17:18
수정 아이콘
잘하셨습니다. 법 적용은 사법기관에서 알아서 할 것이지만, 피해자로서 가해자에 대한 불처벌의사를 밝히는 것도 피해자의 권리니까요. 저도 예전에 절도범을 잡은 적이 있는데 피해액 몇만원 정도였고 피해자의 사정을 봐서 불벌의사 표해서 기소유예로 끝난적이 있는데,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루카와
22/04/10 17:36
수정 아이콘
고생많으셨습니다. 잘하셨어요.
League of Legend
22/04/10 17:52
수정 아이콘
지갑을 찾아서 다행이네요. 절도범의 사정(?)을 듣고 나면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설레발
22/04/10 18:01
수정 아이콘
아니 그럼 신중동역에 지갑을 맡긴 당사자가 알고보니 범인이었다는 결론인가요? 허허..
CoMbI COLa
22/04/10 18:23
수정 아이콘
네, 저는 CCTV에서 본 사람과 안내소 직원이 말한 사람의 옷 색깔이 달라서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설레발
22/04/10 18:33
수정 아이콘
그 와중에 환복(?)까지 했군요. 나름 치밀했네 크크
어쨌든 마음고생 하신거에 시간 빼앗기신 것 치고는 너무 허무한 엔딩이지만 그래도 뭐.. 정상적인 분이 아니라고하니 어쩔 수 없으셨겠네요. 고생하셨습니다.
CoMbI COLa
22/04/10 18:55
수정 아이콘
말씀대로 환복까지 해서 안 걸리려 노력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지하철 타면서 그냥 겉옷을 벗어서 들고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에 적기엔 좀 과한 관심법 같아서 뺐습니다 흐흐
임시회원
22/04/10 18:02
수정 아이콘
반의사 불벌이긴 한데 검사가 가벼운 절도정도는 웬만하면 기소유예 해줍니다.
CoMbI COLa
22/04/10 18:57
수정 아이콘
하긴 되돌려 준 것도 있고, 초범이기도 하니 기소유예 가능성이 꽤 높겠군요.
남자답게
22/04/10 18:33
수정 아이콘
삼페 먹통일때가 있나보네요. 전 아직은 못겪어봐서 흐흐.. 저도 혹시몰라 비상금으로 폰케이스에 5만원짜리 하나만 넣어서 다니긴합니다.
CoMbI COLa
22/04/10 18:59
수정 아이콘
저도 직접 겪은 적은 없는데, 예전에 편의점 일했을 때 휴대폰 하나 달랑 들고 왔다가 삼페 안 돼서 되돌아 가는 손님들이 왕왕 있었습니다.
싶어요싶어요
22/04/10 19:13
수정 아이콘
와 몇년전 저랑 똑같네요 크크크크

-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것은 맞다. (의사 소견 이런건 아니고 누가 봐도 알 수 있다고 함)
- 기초생활수급자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조사 과정에 필요하지 않아서 할 수 없음)
- (범인 주장) 순간의 유혹으로 훔쳤으나 죄책감에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었으며,

여기까지 완전 동일합니다.
라라 안티포바
22/04/10 20:03
수정 아이콘
다행이네요.
저도 최근에 돈깨지는 일이 있었는데, 최악의경우를 상정했다가 막상 견적이 예상치보다 낮게나와서 꽁돈생긴 기분으로 정신승리했습니다.
22/04/10 22:26
수정 아이콘
정신이 온전치 않은데 환복까지 했다라...
세상은 재밌네요. 여튼 고생하셨습니다.
탑클라우드
22/04/11 00:55
수정 아이콘
군 생활 당시 후임 중에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결국은 일병 2호봉 때인가 의가사했습니다)
이 친구가 어떨 때는 정말 영악하기도 해서, 진짜 정신적으로 어려운 게 맞나 싶다가도 또 어떤 때는
이 놈 이거 사회 나가면 어떻게 살아가려나 싶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모쪼록 잘 마무리되어 다행입니다. 깔끔하게 처리하였고 마음도 다치지 않으셨으니,
이제 올 해는 좋은 일만 찾아올거예요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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