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재미있는 성경이야기. 오늘도 시작하겠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주제로 적는 “소설”입니다.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말이 안 될수도 있지만 너무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성경 세계관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에 동감을 하는 재밌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 시간은 이스라엘 요단강 서쪽 땅 분배에서 유다, 에브라임, 므낫세 지파의 땅 분배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7지파의 땅 분배이고, 아래와 같이 분배 받은 땅의 장&단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아래의 두 개의 지도를 살펴보면서 각 지파의 땅을 분석해 봅시다.
1번 지역을 분배 받은 지파는 “아셀”입니다.
장점 : 지중해의 대표적은 항구 두로+시돈 = 페니키아가 있는 곳입니다.
즉 이곳을 통치할 능력이 있으면 단지 가나안 땅 정도가 아니라 온 유럽을 재패할 만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단점 : 두로+시돈은 훗날 그 정복왕 알렉산더 조차도 겨우 함락 시킬정도의 요충지였습니다.
과연 아셀 지파가 여기를 정복하고 통치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곳은 두로+시돈을 정복하지 못한다면 딱히 장점이 없는 땅이란 것이 문제입니다.
2번 지역을 분배 받은 지파는 “납달리”입니다.
장점 : 딱 봐도 땅이 꽤 큽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당시 가나안 땅의 지배자가 통치하고 있던
[하솔]이 있습니다.
과거 하솔 왕 야빈은 이곳을 중심으로 이집트 나일강 문명 -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간 교역 통로를 지배하면서 부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지파와는 다르게
[하솔은 여호수아가 직접 다 때려 부셨던 도시라서] 별도의 정복이 필요 없었습니다.
또한 동남쪽의 갈릴리 바다(호수) 쪽의 어업과 그 주변의 평지 땅 농사도 쏠쏠한 수입이 되었습니다.
단점 : 이곳이 가나안 땅의 출입구이자 이집트 -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통로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북쪽의 강대한 적들이 가나안 땅을 침공한다면 1차로 침공할 곳이 바로 이곳 납달리 지파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하필 납달리 지파는 요단강 서쪽 지파들 중에서 시므온 지파를 제외하고는
[가장 인구가 적은 약한 지파였습니다.]
차라리 인구가 많고 강력했던 유다지파가 이곳을 통치했으면 상황은 좀더 나았겠지만..
원래 약간의 변태 성질을 가진 여호와 하나님의 (약한 자는 강하게~ 강한 자는 약하게~) 선택은 가장 약한 납달리 지파가 가장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을 통치하게 허락하셨습니다.
3번 지역을 분배 받은 지파는 “스블론” 입니다
장점 및 단점 : 솔직히 별로입니다.
가나안 땅이 남쪽보다는 대체적으로 북쪽이 평지 지형이 많은데, 하필이면 딱 스블론 지파가 분배 받은 곳이
[가나안 북쪽에서 얼마 없는 산지의 대부분입니다...]
그나마 약간의 장점은 그래도 위에 아셀&납달리라는 완충지역이 있어서, 적의 침공을 받을 때 1빠따로 얻어 맞는 곳은 아니라는 정도?
여하튼 스불론은 이곳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영역을 점점 서쪽 지중해 바다와 동쪽 납달리 지파의 갈릴리 호수의 가버나움까지 영역을 조금씩 늘렸습니다.
그리고 훗날 예수 그리스도는 이곳 쓸모없는 스불론 땅의 나사렛에서 성장하며 동쪽 갈릴리 호수의 가버나움에서 주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4번 지역을 분배 받은 지파는 “잇사갈”입니다.
장점 : 네!! 바로 그곳입니다.
제가 전에 입에 닳도록 칭찬했던 가나안 땅의 곡창지대 - 이스르엘 평야가 있는 곳입니다.
최고 로또의 땅을 잇사갈 지파가 차지했습니다.
단점 : 솔직히 거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북쪽에서의 침공은 아셀, 납달리, 스불론 지파가 1차로 막아줄것이고
동쪽에서의 침공은 동쪽의 길르앗 민족 + 천연의 방어선 요단강이 지켜줄 것이고
남쪽에서의 침공은 에브라임 & 므낫세가 1차로 막아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천연의 위치가 훗날 최악의 위치 - 단점이 되어버립니다]
남쪽에서 대군이 쳐들어 온다?
일단 후퇴하고 잇사갈 지파의 므깃도 길목을 지키면서 윗 지방을 방어한다!!
북쪽에서 대군이 쳐들어 온다?
일단 후퇴하고 잇사갈 지파의 므깃도 길목을 지키면서 남쪽 지방을 방어한다!!
즉 가나안 땅 전체를 봤을 때 이곳은 오히려 최남단 & 최북단 보다 훨씬 중요한 요충지였고,
덕분에 가나안 땅의 유명한 큰 전투는 잇사갈 지역 쪽에서 펼쳐집니다.
그리고 또 이 땅의 단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땅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설명할 유명한 어떤 미친 왕은 이 좋은 땅을 탐내면서 그 곳 땅의 주인 - 무고한 사람을 죽여버리게 됩니다.
5번 지역을 분배 받은 곳은 “단” 지파입니다.
장점 : 블레셋 평야를 일부 가지고 있으며 “욥바”라는 항구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땅 자체는 좋습니다.
단점 : 근데 그 강력한 블레셋 족속과
[정면에서 부딪쳐야 합니다]
그나마 유다지파는 험한 산지가 그들을 블레셋으로부터 일단 지켜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단 지파는 산지가 없고 평지에서 블레셋과 맞서야 합니다.
단 지파는 유다 지파를 제외하고 가장 인구가 많은 강력한 지파였습니다.
마침 인구가 가장 많은 유다 지파도 바로 옆에 있으니 같이 연합해서 블레셋과 승부를 걸어 볼만 할수도 있겠습니다만? 과연?
결국 단 지파에서
[훗날 블레셋과 대결할 희대의 영웅]이 탄생하게 됩니다.
과연 단 지파는 블레셋의 위협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6번 지역을 분배 받은 곳은 “베냐민” 지파입니다.
장점 : 남쪽의 중앙 산지와 동쪽의 여리고 평지를 분배 받아서 딱 봐도 교통의 요충지를 차지했습니다.
무엇보다 어지간하면 외부의 침공을 받기 쉽지 않은 위치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지역이 여호수아가 초창기 정복했던 지역이라서 별도의 추가 정복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점 : 근데 결국 이곳 위치의 알파와 오메가인 핵심지역은
[예루살렘]인데, 여호수아가 하필 딱 여기만 점령을 안했습니다.
교통이 좋다는 것도 이곳 예루살렘을 정복해야 그 효과가 제대로 발휘됩니다.
과연 베냐민은 예루살렘을 정복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생각 못한 또 하나의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에 위치한 곳입니다.
즉 훗날 이스라엘의 암흑기 - 사사기 시대 = 이때는 온 이스라엘 12지파가 외부의 침공으로 고통 받던 시기입니다.
이때 베냐민은 유일하게 적의 침공을 제대로 받지 않고 혼자 비교적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즉 고생하고 있던 나머지 11지파와는 다르게 혼자 세력을 보존하고 있었고...
이러한 갈등은 사사기 시대 최악의 사건의 원인이 됩니다.
자 이제 하이라이트!!!
7번의 브엘세바를 분배 받은 곳은?
바로 “시므온” 지파입니다.
자~~~ 장점을 평가해보겠습니다.
장점 :
1. 비교적 평지입니다!!
[네~~ 근데 사막 평지입니다.]
2. 적들이 침공을 안합니다!!
[네~~ 워낙 쓸모 없는 땅이라 적이 애초에 침공을 안합니다.]
네 죄송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은 장점이 없는 사막입니다.
그런데 이곳을 시므온 지파가 분배 받았습니다.
왜 하필 시므온 지파였을까요...
예전 이스라엘 12지파의 아버지 - 야곱은 죽기 바로 직전에 자신의 12아들에게 훗날에 대한 예언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 중 둘째&셋재 아들이었던 시므온 & 레위에게는 아래와 같이 저주의 예언을 합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살인을 하였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땅을 가지지 못하고 이스라엘에서 뿔뿔히 흩어지며 살게 될 것이다]
시므온과 레위는 그 유명한 세겜 학살사건을 저질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벌로 이런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시므온은 그 저주의 결과대로.. 쓸모없는 브엘세바 땅을 분배 받았고,
이에 실망한 시므온 지파는 곧 자신의 땅을 포기하고 이스라엘 12지파에 뿔뿔히 흩어지며 살게 되며, 더 이상 시므온 지파에 대한 기록은 남지 않게 됩니다.
정말 야곱의 예언이 이루어진 겁니다.
그런데 이 야곱의 예언을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의 기본은
[운명론] 혹은
[예정론] 어쩌구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너무 깊숙이 들어가면 신학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해당 논리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입 밖으로 선포된 말씀은 절대로 취소되지 않는다]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예언 역시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이루어 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때때로 신앙인들을 낙심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실수를 합니다. 아니 때때로 큰 잘못을 하기도 합니다.
위의 야곱의 아들 시므온 & 레위도 돌이킬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저주를 받습니다.
근데 그게 무려 400년 전의 사건입니다.
[400년 후의 후손들이 그 400년 전 선조들의 잘못으로 본인들이 벌을 받는 것 - 솔직히 힘 빠지지 않나요?]
하나님께서 너무 냉정한 것 같이 않나요?
결론을 얘기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저 저주의 예언과 그 후의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위와 같이 시므온 지파는 저주에 따라 쓸모없는 땅을 분배 받고, 온 이스라엘에 자신들의 기업을 가지지 못하고 흩어졌습니다.
[그럼 같은 죄를 짓고 같은 저주를 받은 “레위” 지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시 한번 얘기하자면, 하나님의 예언은 절대적입니다.
레위 역시 가나안 땅에서 기업을 받지 못하고 뿔뿔히 흩어지는 운명에 처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시므온과는 조금 다릅니다.
야곱의 아들 레위는 400년전 세겜 학살 사건을 일으키고 크게 반성하며 회개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400년간 가나안 땅에 돌아가는 것을 잊고 세상 문명에 빠져 살았을 때,
그 중에서 유일하게 신앙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레위지파의 후손 -
즉 레위 -> 고핫 -> 아므람이었으며, 그 아므람과 아내 요게벳으로부터 이스라엘 출애굽의 영웅 모세, 아론, 미리암 3남매가 탄생하게 됩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이끈 건 저주 받은 레위 지파의 후손 - 모세와 아론이었습니다.
또한 모세가 출애굽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40년 동안 고생했을 때도 그 모세를 지지하고 지켜준 것은 오직 레위 지파였습니다.
이러한 출애굽의 1등 공신이지만 레위지파도 하나님의 저주는 피해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은 가나안 땅에 자신들의 기업을 가질 수 없습니다.
자꾸 이스라엘 12지파라고 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13지파입니다.
야곱의 12아들에서 요셉이 2배의 축복을 얻어 므낫세-에브라임으로 나누어지니까 총 13지파가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12지파 땅 분배 라고 합니다.
왜냐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중심으로한 레위 지파의 충성을 기억하셔서 그들을 아예
[제사장 민족 및 각 지방 예배에 쓰이는 일꾼]으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으로 따지면 모든 레위 지파를 전원 목사님, 전도사님, 그리고 교회 관리인으로 삼은겁니다.
단순 직업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설명으로는
[레위는 내 것이니까 너희들은 신경쓰지 마라] 라고 합니다.
레위 지파는 하나님의 것이니 결국 13지파는 레위 지파를 빼고 12지파로 정리됩니다.
즉 하나님은 비록 레위 지파에게 직접적인 땅은 안주셨지만, 대신 아예 자신의 직속으로 삼는 축복을 내린겁니다.
비록 레위 지파는 하나님의 저주를 피해 갈 수는 없었지만, 그 저주를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섬겼더니?
--> 그 저주가 사실상 최고의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시므온은 레위와 뭐가 달랐던 걸까요?]
레위는 학살 사건 후 바로 회개하며 올바른 신앙을 후손들에게 넘겼습니다.
그럼 시므온은?
창세기 46장에 보면 야곱의 가족들 몇 명이 요셉의 이집트 땅으로 이주했는지에 대해 나옵니다.
거기서 시므온의 아들들 이름이 나오는데, 특이하게도
[가나안 여인의 아들 사울]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성경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 -
[절대로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지 말라]입니다.
하지만 시므온은 학살 사건 이후로도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며 회개하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시므온의 후손들은 어땠을까요?
레위의 후손들은 출애굽 광야시절 모세를 적극 지지했습니다.
반대로 시므온의 후손들은 출애굽 광야시절
[바알브올]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사건의 주동자로 등장하며 사실상의 반란을 일으킵니다.
원래 시므온 지파는 민수기 1차 인구 조사 때 인구가 많은 강한 지파였지만,
이때의 바알브올 우상 사건 이후로 시므온 지파의 인구는 급속도록 줄어들어서 나중에 가나안 땅 들어가지 전 2차 인구 조사 때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적은 인구수를 기록하게 됩니다.
즉 시므온은 학살 사건 후에도 회개하지 않았고, 400년후 그의 후손들 역시 회개의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브엘세바 땅 분배라는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갑시다.
분명 레위는 저주를 받았지만, 저주를 이겨내고 최고의 축복을 얻어 냈습니다.
그럼 현재 브엘세바 땅을 분배 받은 시므온에게는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까요?
아닐겁니다.
브엘세바는 분명 인간적으로는 쓸모없는 저주의 땅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브엘세바는 사실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신앙의 회복 장소였습니다.
100세에 겨우 아이를 낳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삭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그토록 힘들게 낳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까요?
성경은 그것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or 어렵게 낳은 아들 이삭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럼 왜 그것을 시험해 봐야지만 알 수 있었을까요?
자식을 제물로 바치라는 -> 얼핏 생각하기엔 무모해 보이는 이 하나님의 명령은 사실 어느정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원래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헤어지고 제대로된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칭찬 받으며 살던 곳은
[헤브론]입니다.
네 그 갈렙이 그토록 원하던 그곳 헤브론입니다.
해발 930m의 살기 좋지 않은 척박한 땅 그 헤브론입니다.
그런데 이 아브라함이 이삭이 태어날 때 쯤 갑자기 그 은혜의 장소 헤브론을 떠나 평지 땅 그랄로 갑니다.
이곳 그랄은 사실상 블레셋 땅이며 풍요로운 땅입니다.
아브라함이 왜 그랄로 갔는지는 성경에 명확하게 이유가 나와있지 않습니다.
다만 아브라함은 이곳 그랄에서 이삭을 낳았으며, 이삭이 장성할 때까지 계속 그랄에 머무르며 살았습니다.
지금까지 척박한 헤브론 땅에서도 신앙생활 잘 하던 아브라함이 왜 갑자기 그랄에서 계속 살았던 걸까요?
혹시 힘들게 낳은 자녀 이삭만큼은 살기 어려운 땅보다는 편한 곳에서 양육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아내 사라가 90살의 노산이니, 척박한 헤브론 땅에서 산후조리 하는 것보다 풍요로운 그랄 땅에서 산후 조리 하는게 좋다는 판단이었을까요?
정답은 모릅니다. 성경에 그 명확한 이유가 나와있지 않으니 공식적인 정답은 “모른다”가 맞습니다.
다만 뭔가 꺼림직한 것은 사실입니다.
성경을 읽은 독자인 우리들만 꺼림직한 것은 아닙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여호와 하나님 역시 뭔가 꺼림직 했습니다.
그래서 무모해보일지라도 아브라함에게
[니가 지금 정말로 나를 더 사랑하는지 or 이삭을 사랑하는지 선택해라]고 명령하신 겁니다.
아시다시피 아브라함은 정말 자신의 소중한 아들을 포기하려는 마음으로 그 시험을 무사히 이겨냈습니다.
그럼 무서운 시험을 이겨낸 아브라함이 설마 이 모든 원인의 시작인 그랄로 다시 돌아갔을까요?
아니면 원래 신앙생활 하던 헤브론으로 돌아갔을까요?
아브라함은 헤브론이 아니고, 헤브론보다 더 척박한 땅 - 브엘세바로 거주지를 옮기며 거기서 이삭을 키우며 살아갑니다.
즉 브엘세바는 회개의 장소이자 기도의 장소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그리고 그의 아들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삭 역시 중간에 방황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황을 끝낸 이삭이 돌아간 곳은 브엘세바 였습니다.]
야곱 역시 이집트로 이주하기 바로 직전에,
[가나안 땅에서 마지막으로 예배를 드리던 장소는 바로 브엘세바 였습니다]
즉 브엘세바는 비록 인간들에게는 저주 받은 땅이었겠지만, 이곳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기도의 장소였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시므온 지파가 이곳 브엘세바를 분배 받은 저주에 순응하고 지금이라도 회개를 했다면?
물론 시므온이 설령 회개 했더라도 저주의 예언은 바뀌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므온이 설령 회개했더라도 그들은 훗날 이스라엘 내에서 뿔뿔히 흩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므온이 기도의 장소 - 브엘세바에 살면서 회개를 했다면, 분명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시므온을 축복했을 것입니다.
마치 레위의 후손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저주의 예언은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큰 축복을 받은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시므온에게 더 이상의 회개는 없었고,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이상의 기회도 없었습니다.
사실상
[브엘세바 땅 분배]가 시므온 지파에게는 마지막 기회였던 셈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땅 분배는 끝났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에게는 아직 고민이 있었습니다.
바로 어찌 어찌 분배는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 지파들의 나약한 모습을 봤다는 겁니다.
여호수아 자신이 리더였을 때는, 그런 나약한 지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의 사나운 민족들과의 전쟁에서 이겼지만
자신이 은퇴하고 나서도 이들이 잘 해낼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리고 그 걱정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전에 설명했듯이 여호수아는 은퇴하고 나서도 약 10년 ~ 20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스라엘 남은 지파들은 정복하지 못한 나머지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했지만..
예상한대로 남은 지파들의 성과는 처참했습니다.
여기서 여호수아에게 최대의 유혹이 찾아옵니다.
아니 과거나 지금이나 모든 최고 지도자들에게 있는 공통적인 유혹입니다.
[내가 언젠가는 은퇴를 해야하는데... 과연 내가 은퇴하고 나서도 남은 자들이 잘 할수 있을까?]
남은 자들이 나보다 못할 것은 뻔할 뻔자인데... 그러면 내가 좀 더 은퇴를 미루고 활약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 나름 성공한 독재자들에게 이런 유혹은 언제나 찾아옵니다.
박수칠 때 떠나야 하는데 그 선택을 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역시 똑같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결심을 하며 온 이스라엘 12지파의 지도자들을 한곳에 집합시킵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