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글쓰기이벤트 모음
14회차 - PGR21
13회차 - 여행
12회차 - 의료인
11회차 - 성탄절
10회차 - 추석
9회차 - 휴가
8회차 - 가정
7회차 - 인문사회
6회차 - 이해
5회차 - 추억
4회차 - 감사
3회차 - 지식
2회차 - 키배
1회차 - 자유주제
Date
2022/05/22 20:58:33
Name
연휘가람
Subject
[일반] [15] 카레 (수정됨)
한 손에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다니던 국민학교와 초등학교를 가로지르던 시절. 우리 어머니들께서는 우리 아이의 다른 한 손에 들려 보낼 도시락 반찬이 늘 걱정이었을 것이다. 집안 형편의 정도를 가장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했던 것이 바로 도시락 반찬이었고 , 아이들 기가 죽게하지 않기 위해 아침 저녁 상의 반찬은 줄이더라도 도시락만은 꽉 눌러 담아주셨던 나와 친구들의 도시락이 기억이 난다. 하지만 가득 담긴 도시락의 시간이 긴 친구들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곧 마치 출발 한 시간 뒤의 마라톤 경기처럼 도시락을 나눠 먹는 그룹은 자연히 나누어졌다. 내 도시락도 돼지고기가 아주 약간 들어간 김치볶음이 전부인 날이 대부분이었으나 다행히 반찬의 가짓수보다는 김치볶음의 맛을 인정 받아 여러 반찬을 가져오는 친구들과 밥을 먹는 날이 많았었다. 친구들의 도시락에서 당시 십여 년 인생 속 처음 먹어 본 음식이 매우 많았었다. 그리고 그 중에 카레가 있었다. 카레를 싸온 친구는 카레를 싫어했는지 투정을 부렸으나 난 처음 맛 본 카레에 푹 빠져버렸고 도시락을 바꿔 먹을 정도로 좋았었다. 하교 후 어머니에게 카레를 처음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었다고 우리도 해먹자고 졸라 댔었으나 어머니께서는 한동안 카레를 해주지 않으셨었다. 평소 떼를 잘 쓰지 않았던 나지만 유독 카레만은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얼마 뒤 성화에 못 이기신 어머니는 오늘 저녁엔 카레를 먹자고 말씀하셨었고 잔뜩 기대에 찼던 나는 저녁 밥상을 보자마자 실망했었다. 도시락으로 먹어봤던 카레와는 너무 다른 노란색 국이 상에 있던 것이다. 당연히 맛 자체도 아이들 입맛에 맞지 않는 강한 향의 액체 였을 뿐이고 그렇게 졸라대던 아이가 시큰둥하자 어머니는 카레를 치우시며 앞으로 카레는 없다! 라고 선포하셨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카레라는 음식은 당시의 어머니에게도 생소했던 것 같다. 유튜브나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뚝딱 알아 낼 수도 없던 시절 , 어쩌면 어머니는 아이가 카레를 먹고 좋아하던 첫 날 부터 카레라는 음식을 하는 방법을 수소문 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난 어머니의 그 정성을 몰랐던 철부지 아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와 다시 그 때의 카레에 대해 어머니와 이야기 하기엔 세월이 많이 지났고 , 어쩌면 나도 모르게 드렸던 수 없이 많은 상처 중 하나여서 기억도 못 하실 에피소드일 수 있지만 나에게 카레란 여러 감정과 생각이 담겨진 음식이 되었다. 어떤 음식들에는 과거의 한 장면을 고스란히 떠오르게 하는 힘이 있다고 했던가. 앞으로의 카레에는 미안함이 아닌 즐거움을 담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노력해야지.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