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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3/04 14:13:14
Name 서늘한바다
Subject 스타크래프트2-2
요환과 윤열은 오랫만에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무사히 8강에 진출하였고 앞으로 발매를 앞둔 SC2의 베타 테스트도 무사히 끝냈기 때문이다. TA사의 선수들 중에서도 초특급 대우를 받는 이들은 거의 황제와 같은 위치였다. 그러나 윤열은 무언가 여전히 쫓기는 기분을 없앨수 없었다. 부와 명예, 그토록 염원하던 변치 않을 듯한 팬들의 사랑을 얻었지만 마음 한켠은 자신이 소중한 것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형, 가끔 나는 기계가 되 가는 거 같아."
윤열은 컴퓨터 앞에 앉아 정민에서 몇번이고 메일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형, 아무래도 난 불안해. 그때는 그냥 여길 떠나면 되는줄 알았어. 그리고 다시 나왔을 때는 모든 것이 변할줄 알았는데... 결국 내가 변하지 않는걸. 아무것도 달라진건 없어. 난 어른이 되는게 죽도록 싫었지만 내가 어른이 되지 않는다고 세상이 날 영원히 소년으로 보아 주지는 않을 테니...."
윤열은 한참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 글은 정민에게 쓰는 글이 아니라 결국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쉬는 데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
어느 틈에 왔는지 요환이 윤열의 어깨를 두드렸다.
"으..응"
윤열은 재빨리 창을 닫고 요환을 바라보았다. 몇해전 한국에서 활동할 때보다 더 자신감이 붙은 모습이었다. 이미 2000만명이 넘는 팬을 거느린 스타 답게 요환은 모든일에 당당하고 활기 찼다.
"오랫만에 밖에 좀 나갈까? 진호는 벌써 나갔더라. 그동안 우리 고생 많이 했잖아. 한 이년동안 베타 테스트하느라 말이야. 가족들도 못만나고 친구들도. 인터넷도 기밀사항 유출 조항에 걸려서 사용못하고 말이야. 덕분에 스타 연습은 실컷했지만, 이제 결승전 끝나고 발표한다니 사람들과 만날 수도 있고 기분 좋다."
윤열은 문득 생각난듯 대답했다.
"그럼 우리 정민이 형이란 재훈형 만나러 가자. 저번에 인터뷰도 못하고 마음에 걸려."
요환은 빙그레 웃으며 재킷을 찾아 팔에 걸쳤다.
요환과 윤열은 정민과 재훈이 머문 숙소로 가기 위해 차를 탔다.
"형, 한국에서는 이제 스타 잘 안한대."
"다시 많이들 한다던데."
"이년 밖에 한국을 떠나 있지 않았는데...사람들은 너무 빨리 바뀐다."
윤열은 멍하게 앞을 응시했다.
"사람이니까...나도 가끔은 다른 게임을 하고 싶을 때 있어. 어떨때는 게임말고 다른게 하고 싶을 때도 많고."
"사람들은 뭐든지 순식간에 잊나봐.... 그러니까...."
"그러니까 신화가 되자. 그럴려고 이 곳에 온게 아니겠어? 신화가 되기 위해 이년 동안 그 못할 짓을 했지."
요환은 보기 드물게 강항 어조로 말을 했다. 그리고 캐리를 떠올렸다.
...........................................
"이게 무슨 음악이죠?"
유난히도 어두운 표정으로 캐리는 의자에 푹 몸을 맡긴채 음악을 듣고 있었다. 장중한 남성의 목소리가 마음을 갈기 갈기 찢듯이 부르짖었고 절규하는 듯 했다.
"레온 카발로의 '의상을 입어라'예요. 한 어릿광대가 자신의 아내의 불륜 사실을 눈치채고도 사람들을 웃겨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미쳐가면서 부르는 노래죠. 넌 어릿광대일 뿐이야. 자신을 조소하면서요... 가끔 내 처지가 이런 것 같아요. 요환씨를 볼때면 더욱요. 그냥 평범하게 내가 TA사 직원이 아니고 요환씨가 게이머가 아닌채 만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봐요. 우린 항상 서튼 상대의 언어로 사랑을 속삭이겠죠. 무엇보다 진실한 눈빛을 지녔을 테니 말 따위는 상관 없을 거예요. 때로는 강가를 거닐며 향기롭게 피어난 달맞이 꽃을 따다 요환씨 옷깃에 꽂아 주기고 할거예요. 달맞이 꽃은 요환씨 머리카락 사이 사이 향기롭게 펴져나가고 난 그런 요환씨에게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입맞출거예요....그런 꿈을 꿔요...."
캐리는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당신을 위해 반드시 신화가 되겠어. 결코 평범해 질 수 없는 인생을 산다면 신화가 되어서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수 있도록 할거야...
.....................................................................
"내가 처음 스타를 시작했을 땐 단지 이기고 싶었을 뿐이야. 좀 지나서는 날 응원해 주는사람들의 염원을 버릴수가 없게 되었지. 지금을 욕심일 수 있지만 스타크래프트의 진정한 황제로 기억되고 싶어.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고 멀어지는 신화 말이야."
윤열은 그런 요환의 말을 무끄럼히 바라보았다. 둘은 차 안에서 뭔가에 깊이 빠져들었다.

....................
요환과 윤열이 정민과 재훈의 숙소에 도착했을 때 정민은 혜연이 준 명함의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나나. 컴퓨터 네트워크 엔지니어링. 명함에 적힌 번호로연학을 했을 때 차갑게 들리는 목소리에 정민은 부담을 느꼈으나 밑져야 본전이란 심정으로 그녀가 알려준 주소로 찾아갔다. LA차이나 타운 뒷골목의 어수선한 곳에 나나라는 아주 작은 간판 하나 만이 걸려 있는 곳이 나나가 있는 곳이었다.
"Excuse me."
정민이 수줍게 창고에 들어서자 창고 군데군데 책상에 컴퓨터가 놓인 자리에서 서너명의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정민은 고개를 든 사람중에 놀랍게 진수가 끼어있는 것을 보았다.
"진수야!"
"정민아."
진수는 반갑게 정민에세 달려들어 정민을 안았다.
"오랫만이야.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왔어?"
"응....일이 좀 있어서..넌?"
"난 여기서 일해. 이제 네트워크에 관한 시스템 개발자지."
정민은 문든 진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신중을 기하기 위해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난 뒤 정민은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사실, 나나라는 사람을 찾아왔어. 도움을 받을게 있거든."
"나나를? 흠...나나라... 어떻게...나나를 알았어?"
"누가 소개 시켜 줬어. 나나를 만나야만 해."
진수는 좀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창고 구석 칸막이를 가르켰다.
"나나를 저기 있어. 나나를 아는 사람이라....."
"나나가 누군데? 어떤 사람인데?"
진수는 기가 막힌다는 듯 정민을 바라보았다.
"너 그럿도 몰랐다는 거야? 무슨 일로 찾아 왔는지...참.. 나나는 이 컴퓨터 업계에서는 전설이야. 진정한 해커이고 네트워크 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해. CIA에서도 쫓고 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니 말이야. 우리에게는 나나지만... 정말 그녀가 누군지는 몰라. 본명이나 개인적인 것들은 모두 베일에 싸였거든. 나도 아주 우연히 나나를 알게 되었어. 나나를 정말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정민은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움이 필요해서야. 나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
"물론이지. 나나는 킬러같은 사람이야. 모든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완벽하게 마치지. 지금까지 실패한 걸 난 본 적이 없어."
진수는 걱정스럽게 정민을 살폈다.
"무슨 일이야?"
"아냐..."
진수는 더이상 묻지 않고 칸막이를 두드렸다.
"나나. 손님이 오셨어."
칸막이 뒤에서 고개를 내민 여자는 이십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거리에서 만나면 우아한 전문직 여성으로 보일 그런 유형의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날카로웠고 빈틈이 없어 보였다.
"아....기다리고 있었어요. 김정민씨죠?"
"네.."
나나는 능숙하게 한국말을 구사했다. 긴 머리칼 한올이 이마에 드리워져 피곤해 보였으나 전혀 흐트려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니콜에게 연락 받았어요. 여기서 이야기하기에는 좀 어렵겠군요. 한시간 있다K바에서 봐요. 진수씨가 안내해 줄거예요. 진수씨 부탁해도 되죠?"
정민과 진수는 함께 K방 들어갔다. 둘은 드라이 마티니를 시키고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정민아..."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던 진수가 정민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혹시 SC2에 대해서 알고 있니?
"뭐?"
"SC2 말이야. 네가 니콜의 소개를 받고 왔다면....혹시 SC2때문에??"
정민은 진수가 SC2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지 고민했다.
"넌? SC2에 대해 알고 있니?"
진수는 보기 드물게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진남이가 그렇게 죽고 믿을 수가 없었어. 사인을 알수 없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죽을수가 있어? 미국으로 와서 공부를 하다 해킹에 관련하게 되었어. 우연히 진남이가 실려간 병원 의료관련 파일을 해킹했는데... 놀랍게도 진남이의 진짜 죽은 이유는 암호화 되어 있었어. 일반 병원 기록치고는 너무나 정교하게 암호망이 쳐 있어서 나 혼자만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엇는데 나나를 알게 된거야. 나나는 당시에 해킹의 천재로 알려져 있었지. 나나의 도움으로 병원 암호를 열었는데.....진남이는 프로미달 중독이었어. 살해 당한거야."
"진남이가?"
"그 뒤로 나는 이 일에 매달렸어. 나나도 이런 특이한 형태의 암호망을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하다며 추적에 도움을 주었어. 그러다 결국 도달한 곳이 SC2였어."
"그럼 너희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아직은 아니야. SC2에 대한 실마리를 잡았고 그럴 때 니콜이 우리에게 SC2프로젝트에 대해서 말해 주었어. 진남이가 죽은 이유도..."
정민은 진수가 없없이 눈물을 떨구는 것을 보았다. 마냥 순진해 보이는 눈망울이 슬픔과 상실감으로 흐려지는 것을 보니 진수에게 진남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남이가 해킹에 관심이 있었던거 아니? 우연히 SC2의 버그성 구멍에 접근했나봐. 추적팀이... 그걸 알게 되고 진남이는 그래서 죽었던 거야."
진수는 눈물을 닦았다. 정민은 SC2의 프로젝트가 얼마나 위협적인 순간 깨달았다. 이것이 꿈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얼마후 나나는 바에 도착했다. 술을 즐기는지 넉다운이라는 독한 칵테일을 주문한 그녀는 긴 갈색머리를 하나로 묶은 뒤 단숨에 칵테일을 들이켰다. 나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였다.
"니콜에게 소중한 분이시라고요? 이제부터 개인의 즐거움을 누릴 시간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SC2는 만만치 않을 테니까요. 진수에게 이야기를 들었죠?"
"SC2를 막을 방법은 있는 겁니까? 사람들에게 알릴 방법은요?"
"방화벽이 너무 강해요. 직접 본사로 침입해서 그들의 파일을 훔쳐온다는 것은 영화에서나 있을 일이고... 우리는 방화벽이 약해지는 틈을 노리는 수 밖에 없어요. 그때 침투해서 그들의 계획을 만인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우리가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예요."
나나는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지었다.
"도와주시는 겁니까?"
"도와드리는게 아니예요. 정민씨를 우리 팀에 합류시키는 거예요. 우린 이미 시작하고 있으니... 말예요."
"전 뭘하면 되죠?"
나나는 정민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해야죠. 당신은 프로게이머잖아요."
............
정민은 밤이 늦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재훈은 들어서는 정민에게 요환과 윤열이 다녀갔음을 말해 주었다.
"연습 많이 하고 있다고, 이제 좀 한가하다고 하더라. 스타 연습 많이 하라고 하던데..."
재훈은 그 순한 눈으로 정민을 바라보았다.
"오늘 요환이 하고 윤열이를 보니까 꼭 다른 세계 사람들을 보는거 같았어. 그래도 예전에는 같은 프로게이머이고 나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같은게 있었는데 오늘은 그렇지 못할 거 같았어. 연습 부족인가?"
재훈은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좀 괴롭다...."
"형.."
정민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재훈의 말을 가로 막았다. 재훈에게 모든 것을 얘기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정민은 결국 그 말을 입안에서 삼켜야 했다.
"형...혹시 요환이 형이나 윤열이가 SC2라는 것에 대해서 말한거 없어?"
"아...SC2.. 요환이가 말하고 갔어. 이번 대회 끝나면 SC2가 발매될 예정이라고 하더라. 대회 마지막 날에 소개할거라고 말이야. 새로운 유닛이 조금 등장하고 별달리 클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중요한 것은 유닛 조작이 아닌 상호교감이 될거라고 말이야. 그러면서 이걸 두고 갔어.SC2 CD야."
정민은 급히 컴퓨터에 CD를 넣었다. 컴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한없이 음울했지만 불안한 가운데도 SC2가 과연 어떤 게임인지 궁금했다. 게임을 다 깔고 정민은 게임을 실행했다.
                     Star CraFT 2
게임을 실행하자 나긋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Choose your words"
정민은 화면 상단에서 corea를 골라 엔터키를 쳤다.
"SC2에 합류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게임은 싱글 모드와 멀티모드가 가능하며 특수제작된 TA사의 가상현실유발장치를 부착하시면 플레이 하는 게이머와 함께 전투에 참여하실수 있습니다."
정민과 재훈은 놀라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정말 대단해... 이런 게임이 존재할수 있다니..."
재훈은 급히 싱글 모드를 눌렀다. 새 아이디를 입력하고 protoss를 고른후 ok를 칠때 SC2시디와 함께 요환이 두고간 헤드셋이 번쩍였다. 자세히 살펴보자 헤드셋 뒤쪽으로 작은 스마트폰 같은 단말기가 달려있었고 작은 화면에 아이디 창이 있었다.
정민은 재훈의 아이디를 창에 쳤다. 곧 로딩 표시가 나고 완료 되자 부착표시가 났다. 정민이 헤드셋을 머리게 끼자 곧 눈앞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들어왔다.
광활한 사막이 끝없이 펼쳐진 곳에 신비한 소리를 내는 거대한 건물들과 쉴새없이 건물들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수송선들.
정민은 자신이 스타크래프트의 유닛인 질럿이 된 것을 깨달았다.
곧 소환 명령이 떨어지면 게이트 웨이를 통해 전쟁터에 동원될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았고 머릿속에 누군가 입력하는 것처럼 전투 방법과 전쟁터에서의 전술들이 떠올랐다. 손을 가볍게 휘둘렀을 때 번쩍 빛나는 섬광에 짜릿할 만큼 희열이 도는 자신을 정민은 놀랍지만 차분하게 바라보았다.
곧 정민은 자신이 소환되었음을 느꼈다. 먼 우주에서의 여행은 두근거리고 행복함 마저 느껴졌다. 소환된 후 정민은 자신이 지정받은 위치를 향했다. 언덕위 절벽처럼 가파른 길 바로 위 쪽에 정민은 대기 명령을 받고 서 있었고 격렬한 전투욕에 몸을 떨었다.
정장에서의 상황은 순조로웠다. 속속 유닛이 추가되어 정민 곁에 섰고 정민 옆 한 질럿이 정찰 명을 받고 길을 떠나는 것을 보는 순간 갑자기 번쩍하는 빛이 나더니 멍한 눈앞에 재훈의 얼굴이 보였다.
"뭐야?"
"갑자기 다운이 됐어.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인데...넌 괜찮아?"
"으..응"
정민은 여전히 그 광활한 사막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어때?"
"모...모르겠어. 형.. 이 시디 나한테 줘. 이야기는 나중에 할께"
정민은 시디와 헤드셋을 가지고 차이나 타운으로 향했다.
진수와 나나는 뭔가에 홀린듯이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특히 진수의 눈빛은 진수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정민에게도 놀랄 정도로 번득이는 것이었다. 문득 진수에게 진남이 소중했음을 정민은 예리하게 느꼈다.
"정민아. 무슨 일이야?"
정민이 온 것을 알아챈 진수는 웃으며 정민을 맞이했다.
"SC2 시디를 가져왔어."
진수와 나나는 동시에 정민의 손을 바라보았다. 정민은 작은 백속에 넣었던 시디를 꺼냈다. 나나는 정민에게서 시디를 받아들고 경쾌하게 말했다.
"이제야 열쇠구멍이 보이는 군요."
나나는 시디를 드라이브에 넣었다. 뭔가를 열심히 살피면 나나는 진수를 불렀다.
"진수, 이건 생각보다 더 굉장해. 정민씨 게임을 해 봤낭요?"
"네 해 봤어요..."
정민은 다시금 팔다리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착각에 온몸이 굳어지는듯 했다.
"이 게임의 프로그램은 정말 굉장해요. 좀더 알아봐야 겠지만 말이예요."
나나는 굳은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TA사는 향후 계획을 이미 다 짜 놓았어요. 이번 세계대회로 다시 한번 스타크래프트가 부흥되고 많은 유저를 확복된 후 SC2를 발매할 거예요.,SC2는 이전에 일대일 대결 구도가 아닌 다대다의 대결 구도가 될수 있죠. 정민씨와 진수씨가 이전에 스타를 하듯 게임운영을 하고 유닛을 조작한다면 기타 사람들이 정민씨나 진수씨의 팀이 되어 일종의 가상현실을 체험하게 되는 거죠. 전투에 실제 참여하게 되는 거죠. 참여 순간 부터 전투에 대한 스킬을 얻게 되고 최면 상태로 들어가게 되는 거예요. 배틀넷에서도, 혹은 지금의 방송 같은 커다란 경기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팀이 되고 그의 유닛이 될수 있을 거예요.생각해봐요. 지금 임요환 선수처럼 인기 있는 게이머의 경기에 실제로 참여하고 싶지 않겠어요? 게이머에 대한 팬들의 열광을 이용한..."
나나는 정민을 바라보았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답이 나오질 않는 군요."
나나는 정민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나나의 시선에 정민은 엷은 미소를 지었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황수러워졌다. 나나는 굳어지는 정민의 표정을 보며 빙긋이 웃었다.
"한잔해요.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을 때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죠. 유레카...외칠수도 있지 않겠어요?
...............

정민은 나나와 함께 조용한 바로 갔다. 구슬픈 여가수의 노래소리가 푸른 조명 속에서 반사되듯이 귀에 울렸다.
"Are you pretending me...?"
끊어질 것만 같은 목소리가 불안하게 이어지는 중에 느릿하게 바텐더는 주문을 받았다.
"스카치 둘."
나나는 스카치 위스키를 얼음도 없이 마셨다. 폭음을 한다 싶을 정도로 들이키는 그녀가 안되보여 정민은 나나의 손목을 잡았다.
"술이 너무 지나치군요."
나나는 정민에게 손목을 맡긴채 냉소를 흘렸다.
"몸도 마음도 차가우니까요."
나나의 손목은 가늘었다. 비밀이 많은 여자...라고 하기에는 그녀는 너무나 작고 가녀린 손목을 지녔다.
정민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모두들... 내 손목을 놓아버렸거든요. 엄마도, 동생도, 남편도...."
나나는 정민에게 잡히지 않은 손으로 술잔을 들었다.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나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거예요..."
"하하하... "
나나는 미친듯이 웃었다. 그렇지만 손이 창백하게 질릴때 까지도 정민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녀는 외로운 것일까? 정민은 혜연을 떠올렸다. 외로울때도 힘들때도 웃어주던 혜연... 밝은 미소 속에 슬픔을 갈무리 했던 혜연. 지금 그녀는 어떻게 있을까? 울고 있지 않을까? 그녀는 지금....
"사랑하는 여자가 있어요. 그녀는 슬퍼도 울지 않았어요. 마음문을 닫지 않았어요...."
정민은 나나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나는 웃음을 그치고 멍하게 술잔을 바라보았다. 음악은 여가수의 음성에서 좀더 슬픈 하프곡으로 바뀌었다. 파가니니 주제에의한 변주곡을 하프로 편곡한 음악은 클래식적인 무거움을 버리고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것들, 슬픔을 자극했다.
"6살때 엄마가 죽었어요. 엄마는 미군의 현지처였죠. 그랬어요. 6살에 본 엄마는 너무나 에쁘고 커 보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는 연약했고 아무것도 없는 바보였어요. 두아이만 남기고 간 미군을 기다리다....바보같이 죽어버렸으니 말이예요."
나나는 쓸쓸하게 하지만 어제 본 영화를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나하고 동생은 보호자 하나 없는 고아가 되었죠...그런 아이들이 갈 곳은 하나 뿐이었어요. 고아원... 그런데 거기서도 우리는 잘 지내지 못했죠. 파란눈. 금발... 아이들은 가끔 어른들보다 더 잔인하죠. 그 잔인성을 숨기지 않으니까요. 괴로운 날들이었어요. 동생은 겨우 세살이었고 난 나보다 더 큰 아이들과 항상 싸워야만 했어요. 그러다 해외로 입양을 가게 되었어요.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로 간다....고아원 선생님들은 그렇게 말해 주었죠. 난 동생의 손목을 꼭 잡고 공항으로 갔어요. 동생은 마냥 즐거워했지만 난 불안했어요."
나나는 갑자기 정민의 눈을 바라보았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이었다. 자신도 견딜수 없을 듯한 눈빛이었다.
" 그 사람들은 .... 내게서 동생을 뺏어갔어요. 나와 동생은 다른 곳으로 입양되었던 거죠. 우리는 세상에서 단 둘 뿐이었는데 우리 둘 뿐인데 갈라 놓은 거죠. 내 손을 놓지마. 내 손을 꼭 잡아야해. 그렇지만 동생은 내 손을 놓았어요.그렇게 울부짖었는데... 나에겐 그 애뿐이었는데..."
나나는 벌떡 일어났다.
"SC2의 방화벽이 약해지는 건 아마 다음 세계 대회에서 일거예요. 갑자기 많은 유저를 수용해야만 할 테니까요. 하지만 TA사의 메인 서버에 접속하려면 일반 참여로는 안되요. 유닛 플레이어어의 피드백은 한계가 있어요. 메인 플레이어. 즉 최소 16강에는 든 게이머의 컴퓨터로만 메인 서버에 접속 할수가 있다는 거죠. 정민씨는 그러니 다음 대회 16강에 들어야 해요. 아니면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포섭하거나요..."
나나는 정민에게 악수를 청했다.
"난 술람미예요. 내 남편이 가장 사랑했던 이름이죠. 정민씨는 그 사람을 많이 닮았어요...."
나나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정민은 나나의 마지막 말이 자꾸만 들려오는 것 같아 목이 타게 독한 위스키를 꿀꺽 마셨다.



* 총알이 모자라...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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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신테란 윤얄
05/03/04 19:34
수정 아이콘
진짜 재미있군요,,~~
저그맨
05/03/04 20:57
수정 아이콘
우와,,, 재미있네여^^ 앞으로두 기대할께요
아케미
05/03/04 22:56
수정 아이콘
흥미진진한데요! 계속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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