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04/10/07 00:52:13
Name 비오는수요일
Subject 나의 추게유산답사기 1
my message 29

로그인 두시간째.
하릴없이 떠나지 못하고 흐느적거리다 그곳에 가보았다.
벼르고 또 벼르던 그곳.

정지용시인이 내 마음과 같았을까?

별똥

별똥 떠러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 날 가 보려,
벼르다 벼르다
이젠 다 자랐소.

아직 다 자라진 못했기에, '지금이야말로 호기(好期)다' 하며 달려가본 그곳에서,
정원가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넉넉한 웃음으로 나를 반긴다.
자신을 '서인'이라고 밝힌 그는, 그저 '이만하면 제법 잘 가꿔져있지 않소?'하며,
나를 안으로 이끌고 들어간다.

티탄족이 사는것처럼 느껴지던 정원의 첫 마당에서, 자신이 누구의 '팬'이라고
밝히지도 않은 이가, 갈길바쁜 나를 붙잡고 난데없는 독수리타령을 한다.
저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정원의 끝, 그리고 곳곳에서 보물찾기를 시작하려
조바심이 난 마당에 말이다.
급한맘은 이내 호수가되어 정지한다.
그의 독수리는 창공으로 떠난지 오래지만, 난 그의 얘기가 만든 늪에 빠져버려
석고상이 되었다.

슬며시 내 소매를 잡아당기는 느낌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왠 꼬맹이가 서있다.
메가웹이 자신의 별장이라는 그 꼬맹이는, '항즐이'라는 사람의 도움으로
'해원'이라는 이의 할루시네이션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세상의 그 무엇이라도 투영할 수 있을법한 그 눈망울이 참으로 신기해서 물어봤다.
'해원'이라는 사람이 누구냐고.
그 꼬맹이가 대답했다.
자신이 해원이고 해원이 곧 자신이라고. 그와 자신의 눈은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언뜻 보기에 정원은 그 시작과 끝이 한눈에 들어왔지만, 왠일인지
나는 곧장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한걸음 옮길때마다 나무뒤에서, 혹은 바위뒤에서 나오곤 하는 그들때문이다.
조금씩 다리가 아파올 무렵, 발밑 풀잎에서 바람소리가 들렸다.
아니, 조그만 속삭임이 들려온다.
다리를 들어보라고. 그리고, 'L...'을 눌러보라고.
고개숙여 쳐다보니, 작지만 좀처럼 '격정에 사로잡히지 않을(Apatheia)'것처럼
보이는 그녀가 앉아있다.
마주앉아 들어본 그녀의 얘기는 짧지만 아름다워 시리기까지한 독백이었다.
단테의 열정이 옮은것일까?
돌아서서 떠올려본 그녀는 베아트리체의 모습이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4/10/07 01:06
수정 아이콘
대단합니다. 수요일님.......정말 추게의 분들과 멋지게 매치시켰군요.
04/10/07 01:24
수정 아이콘
어쩐지 소름이... 정말 대단합니다.
Endless_No.1
04/10/07 10:38
수정 아이콘
아~ 다시한번 추게의 글들을 읽고 싶어지는데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112 Pygmalion Effect in Loser's mind [2] Lunatic Love3356 04/10/08 3356 0
8111 리모컨을 돌려드립니다. [36] 秀SOO수3346 04/10/08 3346 0
8109 앙드레 류! [1] 찬양자3311 04/10/08 3311 0
8108 헥사트론, 3라운드 진출권을 확보하라. [9] Velikii_Van3620 04/10/07 3620 0
8107 이 빌드...정말 강력한 것 같군요. [13] EzMura4341 04/10/07 4341 0
8106 금주 프리미어리그 각리그 최대 빅메치 [32] 초보랜덤5384 04/10/07 5384 0
8105 태규 선수 힘내세요 [5] BaekGomToss3075 04/10/07 3075 0
8104 [기사]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35] 한빛짱4572 04/10/07 4572 0
8103 [바둑소식] 삼성화재 8강이 끝났네요~ [3] 그렇구나...3248 04/10/07 3248 0
8102 노력하면 모든지 할수 있다고? 훗.. (거짓말..) [30] 비롱투란3310 04/10/07 3310 0
8100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본인의 경력이랍니다. [7] 올드보이3215 04/10/07 3215 0
8098 최수범 선수의 온게임넷 본선 "3" 경기일지 [34] Altair~★4499 04/10/07 4499 0
8097 꿈꾸는 이를 위해... [19] Lucky_Flair3400 04/10/07 3400 0
8095 [미셀러니보다 2등급 아래 잡담]가을의 전설 그리고 세상사 [6] 달라몬드3452 04/10/07 3452 0
8093 아비터는 내 품에와 잠들라! [23] 뉴[SuhmT]3533 04/10/07 3533 0
8091 [잡담]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15] CSP_Yellow3100 04/10/07 3100 0
8090 b형 남자 a형 여자 [33] KeepTheFaith12315 04/10/07 12315 0
8089 A Tragedy [11] Lunatic Love3519 04/10/07 3519 0
8087 나의 추게유산답사기 2 [18] 비오는수요일3168 04/10/07 3168 0
8086 나의 추게유산답사기 1 [3] 비오는수요일3106 04/10/07 3106 0
8085 [잡담] 퇴짜... 맞았습니다... [31] 착한악마.저그3469 04/10/07 3469 0
8084 Autumn Leaves [7] Lunatic Love3454 04/10/07 3454 0
8083 정말..프로리그 다운 경기를 보았습니다.(스포일러 듬뿍~) [10] 박지완4522 04/10/06 4522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