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3/05/17 04:50:27
Name 사랑의사막
Subject 황지우 - 뼈아픈 후회
뼈아픈 후회

                황 지 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에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高熱)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 주는 바람뿐

-----------------------------------------

pgr 재개통을 축하드립니다. 벌써부터 예의 그 활기가 느껴지는군요... 격론이 벌어진 글도 있고요... 제가 대학 초년생이었을 때(헉,,, 아주 오래된 이야기군요.. *.*;;) 이 시를 보고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올해 초 다시 이 시를 읽고 뼈저리게 다가오는 그 무엇인가가 있더군요.... 하덕규의 가시나무와 묘하게 통하는 시인데, 가시나무가 낭만적인 아픔이라면 이 시는 처절한 아픔이군요. '가위손'의 비극과 대조되는 저 '나르시스'의 비극... 나를 한번 되돌아보게 합니다.

저의 그 뼈저림과는 별개로 잡소리를 늘어놓자면 앞으로 pgr 공동체에서는 가위손의 비극으로 상징되는 운명적 갈라섬의 비애도 자신이 지나간 자리에 폐허와 사막만 남기는 뼈아픈 후회도 생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모두들 글쓰기 전에, 글을 읽고 난 후에 감정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고 한번씩만 자신을 되돌아본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누군가를 가위손으로 만들지 않았나? 내 뺨에 그려진 날카로운 자상은 가위손이 아니라 결국 내가 새긴 것 아닌가? 뺨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내 상처만 아파하지 않았나? 나의 뺨에 새겨진 날카로운 자상을 보며 어쩔 줄 몰라하며 저 안타깝게 어깨를 들썩이는 가위손의 마음에 새겨진 날카로운 상처를 몰라주지는 않았나?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기는 한 건가? 뼈아픈 후회를 자주 할 생각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3/05/17 09:53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 멋진 글이네요^^*
PGR의 공간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글인듯 하네요.
사랑했던 자리마다 폐허는 아닌지...
이카로스
03/05/17 21:59
수정 아이콘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한글귀인듯 싶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9373 결국은 각자의 주관이 다른 것이 ... [5] 애청자1150 03/05/17 1150
9372 다시 돌아온 PgR에서. [13] Normal1043 03/05/17 1043
9371 주진철선수... [13] kakaru-_-v1248 03/05/17 1248
9370 물빛노을님께 감사드리며... [56] i_random1545 03/05/17 1545
9368 스타크래프트의 종족들의 상황을 보면 참 재미난것 같습니다. [9] 삭제됨1363 03/05/17 1363
9366 4강무적임요환. [9] La_Storia2073 03/05/17 2073
9365 프로게이머..... 그리고 관중..... [9] 떠나가라~1387 03/05/17 1387
9364 부활을 꿈꾸며 [4] 해원1343 03/05/17 1343
9363 프로게이머의 이름이 붙은 전술들과 별명 정리1,2 [13] 플토매냐3579 03/05/17 3579
9361 프로선수들의 호칭에 대하여 [8] 임재일1468 03/05/17 1468
9360 반갑습니다. [5] 허브메드1510 03/05/17 1510
9358 PgR21은 PgR21일 뿐입니다.. (아래 임요환 선수에 대한 글과 그 논쟁을 보고..) [22] Canna1947 03/05/17 1947
9357 황지우 - 뼈아픈 후회 [2] 사랑의사막2326 03/05/17 2326
9356 예전 글들을 쭉 읽어보다가... [1] CnC.ME1163 03/05/17 1163
9355 정들었던 공간이.. [11] 낭천1350 03/05/17 1350
9354 이윤열의 착각? [17] wook982601 03/05/16 2601
9353 저그 게이머의 착각 [6] wook981751 03/05/16 1751
9352 오래된 친구처럼.... [1] Withinae1190 03/05/16 1190
9351 [나도 프로게임팀 감독]내일 KTF Ever 프로리그 대진은? [6] Dabeeforever1745 03/05/16 1745
9349 임요환은 광개토대왕, 이윤열은 장수왕 [41] 만달라2422 03/05/16 2422
9348 프로게이머 판이여 영원하라.... 유아은1348 03/05/16 1348
9347 참 연승하기 힘드네요... [1] 信主NISSI1111 03/05/16 1111
9346 여기서 HP 워3리그 보시는분~~~ [10] 초보랜덤1219 03/05/16 1219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