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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3/09 15:17:59
Name 저녁달빛
Subject 영원한 "레슬매니아" 이고 싶었던 그를 생각하며...
1999년 저는 하이텔 프로레슬링 동호회 "레슬메니아"의 운영시삽이었습니다.


1996년. 난생 처음으로 스타 스포츠에서 중계해준 WWF 방송을 보고, 그 알 수 없는 매력에 흠뻑 빠져서
매주 빼놓지 않고 예약녹화해서 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2년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의 최대의
PC통신 업체였던 하이텔에 가입해서 본격적으로 동호회 활동을 했었습니다.

그 당시 회원수는 약 800명이 약간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5대 통신업체의 회원수를 모두 합쳐도 3000명이
약간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지금 현재의 프로레슬링을 시청하는 인구가 대략 100만명 정도에 이른다고
하니까,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프로레슬링을 짜고 치는 고스톱 수준으로
본 사람들도 꽤나 많았었고, 설사 좋아한다고 치더라도 볼 수 있는 환경이 요즘처럼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케이블이 지금처럼 대중적으로 보급되지도 않았고, 단지 지역 유선 방송사에서 운 좋게 홍콩 스타 스포츠를
보여주면 볼 수 있는 것이었고, 그것도 안된다면 AFKN을 통해서 2달이나 늦은 "WWF SuperStar"를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정은 열악했지만, 나름대로 열성적인 레슬매니아들 덕분에 그 당시는 동호회 활동 자체가 재미있었습니다.
거기다 일본에 자주 출장을 나가시는 어떤 회원분 덕택에 1년에 2-3번 정도는 상영회도 가지기도 했습니다.

이 와중에 저는 누구못지 않게 열정을 가지고 동호회 활동을 했습니다. 거기다 98년 3월쯤에는 제 스스로
리포터(영문으로 올려진 경기 결과물을 번역하는 사람)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제가 쓴 리포트는 5대
통신 업체의 레슬링 동호회에 모두 올라왔었습니다. 그러면서, WWF가 아닌 WCW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런 저를 좋게 봐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대표시삽이었던 형이 저에게 운영 시삽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의를 했습니다.

저는 그냥 게시물 삭제와 자료의 업로드 정도만 해주면 된다는 말에 그냥 했습니다. 하지만 대표시삽 형은
아마 그때부터 다른 생각을 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1999년 12월... 저는 다음달에 입대날짜를 받아놓고 있었습니다. 난생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부가 아닌
다른 것에 흥미를 느끼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공유했던 추억은 접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남들이 밀레니엄을 즐기고 있을때, 뭔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으로 입대했습니다.

2000년 초, 군 입대 후 처음으로 시삽형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요즘 프로레슬링 사이트를 만들다고
정신이 없다고 하더군요. 유명 레슬러인 이왕표 선수의 라이센스까지 독점 채결했다면서, 나중에 너가
제대하면 일자리를 마련해주겠다는 말까지 해주더군요. 저는 그 당시만 하더라도, 형의 일이 모두 잘될것
처럼 느꼈습니다.

거기다, 100일 휴가 나가서 우연히 들어가본 그 사이트는 나름대로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요즘처럼
어설프지만 쇼핑몰도 있었고, 여러 아이템도 제법 갖춰진 편이었습니다.

2001년... 어느날 군에서 형에게 전화를 했는데, 도통 받지를 않았습니다. 저는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긴게
아닌가 싶어 조마조마 했습니다. 그래서 전 휴가 때, 정지시킨 아이디를 해제시켜서 동호회에 들어가보았
습니다. 전(前) 운영진 중에 한분이었던 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형이 그만 과로와 정신적 충격으로
쓰러졌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프로레슬링의 전반적인 상황과 너무나도 앞서서 일을 추진했던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이트 운영이 힘들어졌다고 그러시더군요. 그러면서, 지금은 거의 식물인간 상태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전 한동안 정신이 멍해져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한숨만 나왔습니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우면서도, 조금만 더 나중을 생각을 했었더라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 그 형을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형과 함께 있었던 지난 2년여 동안의 시간이
저에겐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형을 꼭 말렸을 겁니다.

전 이후 그 형의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제대 후에 다시 동호회를 찾았지만, 이미 2002년도에는
유니텔, 넷츠고, 채널아이 등이 PC 통신 사업에서 손을 땐 상태였고, 모두 웹을 기반으로한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하이텔, 천리안도 현재는 이름만 남아있는 상태이고, 하이텔만이
아직도 예전의 동호회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2003년 이후엔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어렵게 알아낸 소식에 의하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만 들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케이블을 통해서 프로레슬링을 보곤하지만, 그때 만큼의 감흥은 일어나지 않더군요.
저는 한때 레슬매니아였지만 아마 그 형은 영원히 레슬매니아가 되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글을 빌어서 그 형의 명복을 빌고 싶습니다.


P.s : 1. 문득 과거 생각이 나서 글로 옮겨적어봤습니다.
      2. 98,99년 당시 저의 하이텔 아이디는 hitman98 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3. 그 당시 저를 알고 계신 분들이 여기에 계신다면 정말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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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블루
05/03/09 15:49
수정 아이콘
우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그 97,98년 당시에 나우누리와 하이텔 레슬링 동호회 자주 갔었는데 여기서 만나뵙게 되니 반갑네요.
그 당시 홍콩 스타스포츠가 4주 정도 느렸었는데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님의 리포트를 열심히 보곤 했죠. 그런데 요즘은 예전만큼의 재미를 못느껴 안보게되네요.
05/03/09 16:37
수정 아이콘
아 그때 하이텔레슬링동호회 시삽이셨군요...
전 그때 유령회원이였습니다.
그때 님의 게시물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쓰시는 WWF랑 WCW 리포트 정말 재밌게 읽었더랬죠 ^^
자빠진이봉주
05/03/09 17:19
수정 아이콘
전 어렸을적 아버지가 바둑을 좋아하셔서 케이블을 달아서 홍콩 그 채널에서 레슬링을 보았죠. 전 시골에 살아서 인터넷 머 이런건 잘 몰랏지만 그래도 참 즐거웠던거 같습니다. 밤에 언더테이커가 나오면 어쩌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소변보러도 나가지 못햇던적이 있었는데, 참고로 전 브렛하트를 가장 좋아합니다 ^^
성대룡
05/03/09 17:26
수정 아이콘
제가 스타스포츠에서 더락에게 반해서 WWE를 보게 되었는데...그때 당시 대머리가 나와서 온갖 악한 짓을 다하고 더락이 대머리에게 많이 당하더라구요...그 대머리가 오스틴이 었습니다....전 그당시 인터넷이 없을때 대머리인 한 레슬러가 사장에게 호스로 물뿌리고 사장을 무참하게 밟는 짓을 많이 봤는데 악역인줄 알았는데 인기가 많은 거 보니 선역 이었더군요....더락도 초등학교 때 봐서 영어를 몰랐을때 한 유행어를 할떄마다 관중들이 다따라하고 더락의 화려한 쇼맨쉽 특히 스맥다운 호텔이란 노래를 부르면서 링 벨로 가격 한다 던지 물을 넣고 상대방 얼굴에 뱉는 다던지 경기력도 그 당시 역동적이고 몸집이 큰 선수가 빨라서 정말 좋아했던 레슬러 였는데.... 요즘은 그때 보다 감동을 못받고 있습니다.. 저도...시청률도 좋았던 그 시절이 그립군요....
오재홍
05/03/10 08:58
수정 아이콘
이 글 보면서 소름이 돋네요. 그야말로 통신시절 '낭만의 시대'에 맨 앞에 섰던 사람들의 후기 같군요. 그 사라진 열정은 아쉽지만 뒷사람들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네요. 요즘시대에는 만들어놓고 관리안하는 사람들 많은데... 이런분을 귀감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하네요
iSterion
05/03/10 10:29
수정 아이콘
저도 그시절에 리포트(번역일)을 하이텔에서 하곤했었는데..
물론뭐 오랫동안 한건 아니지만.
그때 일들이 생각이 나네요..
05/03/11 00:17
수정 아이콘
간만에 로그인 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전 나우누리 WMGR에 가입했었는데, 활동은 주로 웹상에서 했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레슬링에서 손을 뗏었는데.. 정말 가끔씩 채널을 돌리다가 보곤 하죠. 시절 참 좋아졌습니다. 3~4년전만 해도 Raw 방송시간이 시시때때로 바뀌곤 했었는데.. 이젠 Raw, Smackdown!, After burn, bottom line 등.. (HeAT도 하나요?) 너무나도 다양해진 프로그램에 넓어진 프로레슬링의 인지도를 새삼 느낍니다.
또 레슬링 매니아층에서도 극소수만이 접했었던 이종격투기란 분야도 근 3년사이에 인지도가 엄청나게 넓어져서 Pride를 안방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이니...(프라이드 1 봤을때가 생각나네요, 우연히 채널돌리다가 보게 됐는데 그 흥분됨과 기쁨이란... 다카다 노부히코와 힉슨 그레이시를 티비로 마주보게 될 줄은...처음엔 천창욱님께서 해설을 하셨었죠^^)

WWE 첫 한국투어때 천창욱님도 뵙고(워낙 경기장 내에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서 창욱님과는 얘기를 나누진 못했습니다.) 성민수님과는 경기가 다 끝난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1시간여 가량 여러가지 프로레슬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그뒤론 만나뵐 기회가 없네요-
혹시 강정모씨라고 아시나요? 강정모님과는 메일도 주고받고 대화도 하면서 꽤 친분이 있었는데, 연락을 못한지 근 2년이 다되가네요.
요즘 WWE는 예전만한 맛을 느낄 수 있을만한 임펙트 강한 레슬러도 없고... 로망이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너무나도 미국적으로, 상업적으로 가닥을 잡아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업네요..
간만에 WWF라는 코드를 공유하고 계신 분을 만나 재수생이 잘시간을 30분이나 넘겨버린채 이렇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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