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피식 웃게 했던 송강호씨의 대사입니다.

"대한민국의 강간의 왕국이냐?"

하면서 김상경씨에게 '반칙왕' 시절의 드랍킥을 선사했었지요.

그 재미있었던 대사가 늦은 밤 자꾸 생각이 납니다.


오늘 씁쓸한 경험을 했습니다.

실습의 일환으로 산부인과 교수님의 외래 참관을 하게 되었는데, rape 피해자의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그분들을 이렇게 글 소재로 쓰게 되어 죄송하고 불편한 마음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첫 번째 씁쓸한 생각이 든 것은 학교 담임 선생님의 '진단서 제출' 요청이었습니다.

산부인과 교수님이 불같이 화를 내셨고 저도 많이 답답했습니다.
학교가 그 진단서를 가져서 무엇을 하려고 할까요? 피해학생 결석계로라도 써주려고 했을까요.
그것을 정신적 공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상태의 피해학생에게 요구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피해 학생 부모님께 사용 용도를 정확히 밝히고 조심스레 요청을 했으면 모를까, 그 진단서는 경찰 외에는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꼭 가지고 오랬다며 줄 필요 없다는 교수님께 쭈뼛쭈뼛하던 그 어머니 모습이 아직 떠오릅니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학교에서는 학교의 수치로 여겨 전학시키려고 한다는군요(출처는 모두 그분 말씀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왜곡은 있을 수 있습니다만 학교가 피해 학생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은 어느 정도 확실한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씁쓸한 생각이 든 것은 조용히 묻어두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였습니다.

가해자는 고등학생 몇 명이라고 합니다. 가해자의 얼굴도 알고, 충분히 잡을 만한 정보도 알고 있습니다만 피해 학생 부모님이 심사숙고한 끝에 묻어두기로 했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 실정상 피해자 보호도 안 되고, 반복 진술을 몇 번씩 하며 상처를 긁다 못해 후벼 판다는 것과 소문이 난다는 점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해자들은 상습범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날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 부모님들께 강요할 수는 없겠지요. 당장 딸의 상처 치료와 아직 앞날이 창창한 딸의 보호가 당연히 먼저이니까요.

세 번째 씁쓸한 생각이 든 것은 교수님과의 대화 후였습니다.

rape 피해자를 많이 보지만 신고는 상당수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병원조차 오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공식 통계 같은 경우는 너무도 과소평가 되어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나라(선진국들 포함)도 역시 성범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만큼은 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대책을 생각해보지도 않은 무책임한채로 그냥 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