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좋아하시나요?

전 여행 가는 걸 무지 좋아합니다. 비록 돈이 없어서 해외여행은 못가지만 우리나라에도 갈 만한데 정말 많습니다.

전 그 중에서도 강원도를 특히 좋아합니다. 강원도 도로 중에 제가 안 가 본 도로는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입니다.
후줄그레한 베르나를 끌고 비포장 길을 갈 때면 몇번씩 돌에 부딪쳐서 쿵쿵 소리를 내죠.
그럴 때면 맨날 마누라한테 쿠사리 먹으면서도 그냥 강원도가 좋더군요.

푸르디 푸른 나무들의 신선함, 계곡을 흐르며 부서지는 하얀 물줄기들,
가슴을 탁 틔워주는 맑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 마음 속의 모든 찌꺼기들이 다 씻겨 내려가는 듯 합니다.

다니다 보면 간혹 박물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역시 강원도라 수도권의 깨끗한 박물관하고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고 관리는 하는지 안하는지 잘 모르겠는, 그냥 무심한 모습들이죠.
삼척에는 석탄 박물관이 있고 강릉에는 참소리 박물관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제일 좋았던 곳은 횡성에 있던 강원박물관이었습니다.
사실 볼 건 별로 없습니다.
상당히 외진 곳에 있는데 그냥 장승들이랑, 항아리들만 좀 있고 행랑이 긴 초가집이 있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그 한적함, 여유로움이 좋아서 아이들이랑 사진찍으며 행복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은 없어졌다는 얘길 들은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가 보고 싶었는데 많이 아쉽네요.

pgr에 있으면 pgr은 변해야 한다는 얘기가 자주 들려옵니다. 비단 요근래에만 나왔던 얘기들은 아니죠.
저 역시 지금의 pgr이 완전한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변화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변화라는 것이 어떠한 변화여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말로만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할 뿐 내심으로는 변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pgr이 좋거든요.

하지만 pgr이 변화해야한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저 역시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마음가짐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내심으로는 불안합니다.
그 변화라는 것이 지금의 pgr이 갖는 모습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것이 되면 어쩌나 하구요.

제가 느끼는 pgr은 위에서 말한 강원도 외진 곳에 있는 소박한 박물관 같은 곳입니다.
나를 아는 사람 누구 하나 없어도 다른 사람들의 정성어린 글들을 하나 하나 읽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풍요로워집니다.

사람들이 쉬거나 즐기기 위해서 찾는 곳은 여러 종류가 있죠.
에버랜드 같은 놀이동산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면서 한바탕 신나게 놀 수도 있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가서 한껏 멋을 부린 모습으로 품위있는 식사를 하며 행복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저처럼 시골의 한적한 곳을 찾아서 그 여유로움과 나른함을 즐길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햐 하는 게 세상살이입니다.
시골의 한적한 박물관에 놀이동산도 같이 지으면 여유로움도 느끼고 한바탕 신나게 놀 수도 있는 일석이조가 아니라
여유로움도 잃고 다른 사람에게 방해만 될 수도 있습니다.

pgr이 보다 개방되고 규제를 풀어서 지금의 잘 다듬어진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개개인의 사사롭고 자유로운 의사표시도 이루어진다면 좋겠죠.
저도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사사로운 자기 표현도 분쟁으로 치닫고 잘 다듬어진 좋은 글들도 묻혀버릴 위험이 더 클 것 같습니다.
인간이 완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거니까요.

필요하다면 변화는 이루어져야겠지요.
운영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좀 더 나은 개선책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가꾸어왔던 pgr의 기본 기조는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건 pgr이 아니니까요.

시골의 박물관 옆에 놀이동산을 지어서 박물관도 놀이동산도 같이 망하는 결과는 안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놀이동산은 놀이동산대로 박물관은 박물관대로 존재할 때 더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든 놀이동산 옆에 박물관을 만들고 모든 박물관 옆에 놀이 동산을 만든다면 세상이 더 재미있어질까요?

다행히도 지금 게임계에는 pgr외에 여러 사이트가 있습니다.
그 사이트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들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그 자신만의 색깔들이 더 분명해지는 방향으로 각 사이트가 발전해 나갈 때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더 풍성한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pgr의 변화 역시 그러한 발전이 되길 바랍니다.






ps 1.
변화를 원하시는 분들께는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유라는 것이 본질을 왜곡하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마음을 전달하는 데는 비유라는 방식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변화에 대한 토론보다는 제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ps 2.
pgr의 기조를 바꾸는 것이 아닌 그동안의 안좋았던 모습들(특히 댓글 논쟁 등)을 바꾸는 변화는 적극 지지합니다.

ps 3.
이런 류의 글이 너무 많이 올라오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은 줄 알면서도
하드코어한 프로젝트가 끝나고 모처럼 시간이 남아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양해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