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는 점과 선의 움직임이야.라고 그녀가 말했다.
위치와 위치의 합. 그리고 그 사이의 이동들. 어쩌면 그녀는 그래서 우리는 소위 말하는 입체적인 경험들을 못하는 건 아닐까. 하고 말했다. 우리는 점과 점들, 그리고 그 점을 이은 선 만을 경험할 수 밖에 없는 건 아닐까. 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얘기를 했던 그녀는 타지로 떠나버렸다. 그러고는 연락이 끊겼다. 그녀의 흔적을 굳이 찾으려고 한 적은 없었다. 모든 이야기는 각자의 방식대로 종료되는 법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꽤 오랜 기간 내 머릿속 구석진 곳에 저장되어 있었다. 내가 왜 그녀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와 나는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고, 그녀의 말도 그저 지나가는 말들 이었다. 어쩌면, 그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있냐고 물어본다면 글쎄요, 기억나지 않는데요. 라고 대답할지도 모르는 그런 얘기일 수도.
여행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여행이라고 부르는 행동은 그저 점과 선의 연결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공간을 들리고, 또 다른 공간을 들리는 동선의 연속, 그 속에서 우리는 아무리 현지인이 자주 먹는 메뉴를 먹어도, 현지인의 장소를 가고, 현지인이 하는 방식 대로 행동한다고 해도 우리의 경험에는 결핍된 지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야기와 경험의 깊이라고 해야할 그런 지점이.
그런 점에서 나는 오히려 이방인인 것이 편했다. 삶의 깊이와 그에 따른 고난들을 회피할 수 있는 정당한 수단으로 여행지는 오히려 나에게 편한 장소였다. 깊이와 비비적 대면서 삽질의 연속을 피할 수 있는 장소로써 말이다.
순례자의 길은 그래서 나를 위해 적합한 장소였다. 나는 종교에 심취하거나 혹은 어떤 개인적인 목표로서 여기 왔다기 보단 모두가 이방인인 장소를 찾기 위해서 여기 왔다고 해도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순례길은 완전하게 점과 선들의 연속으로 이뤄진 장소였고, 여기 와 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이방인이었다. 어쩌면 이 햇빛이 눈부시게 비치는 장소는 나를 위한 장소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잠깐은 들었다. 나를 순례자의 길에서 끌어낸 사건은 그 때 발생했다. 어느 날, 오래된 SNS를 통해 메세지가 날아왔다. 그녀의 친구를 통해서 메세지가 전해졌다. 그녀가 죽었다고.
내 순례길은 공교롭게도 그녀가 있던 장소에서 멀지 않았다. 국경을 몇개 넘긴 해야겠지만, 길 위에서 몇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공교롭게도 집에서 부터 멀리 벗어난 장소를 찾다보니 우리는 비슷한 장소에 멈추게 된 것일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처음 나는 그녀의 장례식에 잠깐 갔다가 순례길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는 동안 나는 어쩌면 이 순례길이 원래 그녀를 만나는 것이 종착점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순례의 종점은 거기서 만나게 될 어느 순간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녀의 빈소는 거기 자리 잡고 있던 사람들의 손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내가 도착한 시간대는 너무 늦어서 사람이 드문 드문 있었다. 여기서 잠깐 있다가 곧 집으로 옮길거야. 인상이 좋아보이던 아저씨가 말했다. 결국은 돌아가야지…. 하고 나를 힐끔보다가 덧붙였다. 나는 지금 후줄근한 내 얼굴과 짐을 한 꾸러미 싼 채 짊어진 내 상황에 대해 설명하려고 했다가 포기했다. 내 모습이 부끄럽거나 그렇진 않았지만, 내 모습은 상당히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는 건 나도 깨닫고 있었다.
밤이 깊어질 수록 하나 둘씩 자리를 뜨고 있었다. 나는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여기서도 나는 이방인이었다. 그녀도 여기서 이방인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에게 그녀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녀는 여기서 이방인이었는지. 내 마지막 말에 아저씨는 희한한 질문을 다한다는 표정을 했지만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의 대답도 잘 모르겠다는 말 뿐이었을 뿐. 그녀는 그닥 주변과 교류가 많은 타입의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어쩌면 자신의 경험들을 입체화하는데 실패했던 것일까. 혹은 자신의 경험들을 입체화하기에는 너무 겁이 많이 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 있으면 있을 수록 나는 결국 돌아가야할 장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한다. 나는 그래서 아저씨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를 한국으로 돌려보낼 사람이 있는지. 아저씨는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잠깐 지었으나 얼마되지 않아 나에게 다시 이전의 긍정적인 얼굴상으로 바꾸며 내가 가겠다는 얘기에 반색을 표했다. 학생, 괜찮아? 여기 있어야하는거 아니야? 라는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나는 돌아 갈 곳이 있어야하니까요.라고 대답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 나는 또 다시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분을 받았다.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느낌. 여전히 햇빛은 눈부셨고, 나는 어쩔 줄 몰라했다. 그녀를 집에 데려가고 나면 무엇이 달라질까. 혹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대답은 오직 내가 도착한 후에야 이뤄질 수 있을 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섞여 들어가지 못하는 이방인일 뿐인 것일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의 가족을 봤다. 처음에 솔직한 내 감정은, 말하자면 당황이었다. 나는 오로지 나의 생각으로만 가득했기에 그녀의 가족들을 봤을때 어떤 얘기를 해야할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떤 관계 인지, 내가 왜 그녀를 데리고 와야했는지 내 자신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웠다. 단지 돌아가야한다는 생각만이 가득 했을 뿐. 그렇기에 차 안에선 침묵만이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 무슨 말을 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얘기들일 뿐이었을 테니, 차라리 그게 낫다 싶은채로 나는 눈을 창밖으로 고정했다.
나는 그녀의 집에서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대답을 제외하곤 말을 그닥 많이 하지 않았고, 가족들도 그러했다. 그렇게 침묵이 흐르고 나는 자리를 뜨기위해 일어섰다. 그때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밥이라도 먹고 가렴.
나는 거절할 명분이 충분치 않았다. 이렇게 저렇게 말을 빙빙 돌려가며 대답하려 했지만 어머니의 꽤 간곡한 권유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아야 했다. 그리곤 어머니는 능숙하게 식사를 차렸다. 화려하진 않지만 단정하고 깔끔한 한상 차림이었다. 나와 가족들이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는 동안 그녀의 어머니가 나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고맙다.
네?
데리고 와줘서. 돌아오게 해줘서… 고맙다.
나는 내가 울었는지 솔직히 말해서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울어놓고선 그 기억을 까맣게 잃어버린 것일지도. 다만 나도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이 그때 그 순간에 울컥, 하고 솟아올랐던건 확실하다. 내가 왜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그 이후로 그 식탁 위에서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할 수 없다. 여전히 바뀐 건 없었고, 분위기는 무거웠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내가 집 앞에서 잠깐 생각을 하고 있었을때, 나는 원점으로 돌아온 동시에 뭔가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긴 여행의 끝이 여기 멈춰선 채로 마무리될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했지만 여행의 끝에서 결국 모든 것은 돌아오고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든 깊이를 갖추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길고 길었던 여행을 마치고 다시금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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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주제를 떠올렸을때 저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생각은 순례와 회귀였습니다. 다시금 돌아오는, 몸을 맞대고 깊이가 생기는 그런 상황을 상상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망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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