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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4/25 00:09:10
Name 설탕가루인형
Subject [잡담] 아래아래페이지에 있는 일국의 지도자상에 대해..
댓글쓰다가 너무 길어져서 편집하기가 어려운 관계로 그냥 새로 하나 씁니다.

본문 내용은 별로 안 긴데 댓글 읽으면서 생각하는데 오래 걸리더군요.

일본, 일본인물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에서부터 우리나라의 역사도 모르면서 일본역사에 관심을 갖는다는 얘기도 있구..이번학기 들어서부터 지난주까지 대망20권을 다 읽었는데 도저히 글을 안쓸래야 안쓸수가 없어서 댓글쓰다가 이렇게 다시 쓰는데요.

대망을 읽으면서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요즘 수업때문에 일본역사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서 대망의 내용에 각색된 부분이 많다는건 알지만서도 전체적인 의미에서 같은 시대에 바로 이웃나라인 조선과 어떻게 생각이 이렇게 틀릴수 있는지에 가장 놀랐습니다.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 모두 일본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목적은 같았습니다. 서양문물의 수입, 교역을 통한 이득 모두 자신의 세력을 기르기 위해서라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본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에 반해 이당시의 조선을 보면 정말 한가하지요. 국사란 과목을 고등학교때 정말 좋아했는데 이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의 알지 못합니다.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서 정쟁이 있었다는것과 율곡의 10만양병설 주장이 수용되지 않았다는 내용뿐입니다. 일본의 근대화가 빨랐던 이유가 봉건시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그시절 그들이 목숨걸고 싸우며 발전되나가고 있을때 조선 정치인들은 예법같은 것으로 정말 한가하게 싸우고 있었다는게 정말 한심스러웠습니다. 뭐 한가한게 좋은거긴 하지만 백성들이 한가한게 아닌 세금받아다 쓰는 윗사람들만 한가한거니까요.

일국의 지도자상에 대해 왜 일본의 역사속에서 그 사람을 찾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만 굳이 세명중에서 찾자면 이에야스밖에 없겠지요. 노부나가란 인물은 그야말로 전국시대에나 어울리는 인물이고 히데요시는 태합에 오른뒤에는 잘한점이 거의 안보이니까요.

불멸의 이순신 보다가 왜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는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보고 읽은 대망이었는데 얻은게 너무 많은 책이네요. 할복이라는 제도에 대해서도 편견이 좀 사라졌는데요. 이전에는 그냥 야만적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당시의 정치인인 다이묘나 그 밑의 무사들의 할복은 오히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단순한 야만적행위가 아닌듯하네요. 군대가면 정신교육시간때 늘 배우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정신의 예에 왜 우리나라사람은 없는지가 참 불만이었는데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의무와 책임을 제대로 졌으면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며칠전에 교보문고에서 본책에서 이런 내용을 봤습니다.
불과 100여년전만해도 이순신에 대해 모르는 우리나라 국민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순신에 대한 연구는 오히려 일본에서 해군의 전통과 전술을 만들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책 읽다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우리나라의 영웅을 다른나라사람을 통해 알아야 하는지, 고조선시대인 홍산문화에 대해서도 중국인들이 연구를 더 많이 하고 있는데 제대로 애국할려면 많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결론으로는 이에야스등은 일본인이기 때문에 알필요 없다는 식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본해군이 발전을 위해 자신들의 적이었던 이순신을 연구하듯이 우리나라에 도움이 된다면 일본인이던 중국인이던 다 배워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오랜만에 쓰려니 딴소리를 자꾸 써서 더 못쓰겠네요. ㅡㅜ

ps. 이토히로부미에 대해서 얼마나 아시나요?? 한일합방의 주역으로 안중근의사에게 저격당한 나쁜놈이라고만 볼 사람이 아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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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lla-Felix
05/04/25 00:20
수정 아이콘
일본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일본 역사 소설을 읽는 것은 반드시 좋은 일 만은 아닙니다.
특히 '일본'역사 소설은 시바 료타로 이후로 글로서 사상을 지배하겠다는
입장으로 일본의 우익화에 앞장선 주범들 입니다.
(이인화가 어설픈 시바 료타로 따라쟁이죠. 영원한 제국. 기억납니다.)
차라리 흥미 위주의 소설은 그나마 조금 낫습니다.
역사와 소설을 비교해 보면 그들의 미화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좀 심하게 눈꼴 사납죠.
제발 여러분들도 일본 역사소설을 읽을때는 비판적으로 읽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책, 소설도 제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눈시울
05/04/25 00:22
수정 아이콘
뭐 개인적으로는 이런 글이 아무리 올라와도 결국 남는 건 평행선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인터넷을 통해선 수많은 평행선과 맞닥뜨리게 되고, 그런 부분은 '딴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나보네'
하고 넘어가는 게 괜히 재언급을 통해 시간낭비하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간은 흘러갔는데 여전히 같은 위치에 있는 건, 그리 권장할만한 모습은 못 되잖습니까. 귀찮기도 하고요. ^^;;
순정보이
05/04/25 00:25
수정 아이콘
그건 소설일뿐입니다... 이것말고도 무사시에 대해서 열나게 토론 어쩌고 꼴갑떠는 인간들보면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외에는 안듬.. 쪽바리 문화에서 배우면 배웠지 인물에서는 배울점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근대화=발전이라는 사고방식도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발하라
05/04/25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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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원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죠)이란 소설을 쓴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는 태평양 전쟁시 전선을 전전한 종군작가입니다.(우익이죠)대망은 전쟁에서 패한 일본인들에게 희망을 주기위해 센고쿠시대의 인물들을 갖은 미화로 포장해놓았습니다..흥미위주로는 좋지만 책들의 내용을 곧이 곧대로 믿으면 안되겠죠..이토히로부미를 거론하셨는데 농민의 자식으로 유신후 일본의 정치정쟁에서 살아남아 두루두로 요직을 겸하고 근대 일본정치를 완성한 인물이지만 우리나라 역사의 입장으로서는 좋은말을 할 수없습니다.그게 역사의 이기성이란 겁니다.글쓴분은 너무 일본쪽 관련책을 호감적으로 읽으신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카이사르
05/04/25 00:36
수정 아이콘
이토히로부미. 이등박문은 일본 근대헌법의 아버지죠.
의회정치가 무엇인지를 일본인에게 제대로 가르쳐준 정치의 대가입니다.
군부와 정계사이를 조율하면서 그 궁극적인 목적은 아시아에서 일본의 지위확립, 나아가 서양에 대한 발언권의 획득이었죠. 그와중에 우리나라가 희생당한 겁니다. 그도 어차피 일본인이니깐요.

이토는 조선을 독립국으로 남겨두고 조선에서 경제적 이익만 차지하자는 쪽이었는데 안중근의사에게 죽었죠~(이 부분이 정말로 확실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대체로 이렇게들 알고있죠.)

우리나라에서 박영효나 김옥균이 변혁기에 외세의 간섭없이 권력의 중심부에 다가갔다면 아마도 지금의 일본에서의 이토의 대접을 받지않았을까 싶습니다. 굉장히 아까운 사람들이지요.

그래도 이토는 싫습니다. 감정상 말입니다.


그리고 대망은 어디까지나 소설입니다.
그 당시 그들은 왜 그렇게 지들끼리 싸우고 그랬냐~섬나라이니깐요.

서양열강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중국이었고 일본은 섬나라니깐 그냥 놔둔 것입니다. 교역국정도로 생각했죠. 그리고 그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없고 그러니 지들끼리 싸우고 그런겁니다. 가끔 배부르면 우리나라나 중국 해변가에 가서 쌈질이나하고....

노부가나, 히데요시, 이에야스.
이들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야심가에 불과하다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일본의 발전을 위해서 그랬다? 아마도 그것은 반사적 이익에 불과한게 아닐까요? 이에야스가 그랬다면 도쿠가와 막부를 없애서 서양과의 교류를 확대해서 근대화에 힘썻어야죠. 그가 한일은 쇄국정책입니다.
05/04/25 02:18
수정 아이콘
자기배를 칼로 째서 자살하는 것이랑 책임감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책임감있는 지휘관이라면 굴욕을 이기고 살아남아서 전후처리를 완수하는 것이 무관으로써의 책임감으로 보입니다.
배째고 죽으면 자신의 명예는 지킬 수 있겠지만 뒷수습은 누가 한단말인가요?
이런 글을 올린 의도부터해서 왜놈들의 배째기를 옹호하는 것까지 정말 국적이 의심스럽습니다.
정말 요즘 젊은 세대들의 정신상태가 걱정입니다.
05/04/25 02:46
수정 아이콘
아직도 친일 사학의 잔재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동인과 서인이 나눠어 정쟁만 일삼았다는 것은 친일 사학의 잔재죠. 사실 세계 최초의 양당 정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정쟁을 일삼았던 예법은 사실 현재 식으로 따지자면 헌법 같은 것이지요. 국회에서 특정 당이 자기들 멋대로 “땅땅땅”쳐서 법 통과시켜선 안되겠죠.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일본의 근대화가 빨랐던 이유는 나라가 갈라져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나라가 몇 쪼가리로 쪼개져 미친 듯이 싸움질 했으니 열강이 침투하기도 좋았겠죠. 힘이 약한 쪽은 강한 쪽을 누르기 위해 외국에 손을 빌렸을 테니까요.

10만양별설 주장이 수용되지 않은 이유도 단순히 당파 싸움이었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 사신이 일본에 건너갔을 때 토요토미는 절대 남의 땅을 넘보는 기색 따윈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조선 입장에서도 일본이 중국을 등에 업고 있는데도 시비를 걸어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구요. 또한 중국 눈치 보여서 10만양병설도 생각하기 힘들었겠죠. 아마도 중국 또한 일본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서 10만의 군사를 모은다고 한다면 코웃음 쳤겠죠. 그때당시만 해도 일본은 그만큼 하류 국가였으니까요.
05/04/25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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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를 둘러 보아도, 백성을 위하여 귀족들이 봉기하여 왕을 바꿔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물론 지들 이익을 위해서 그런 것이었겠지만 적어도 백성을 위한다는 대의 정도는 갖고 있었죠.)
김민우
05/04/25 04:34
수정 아이콘
대망...새로나온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집에 전집이 있습니다만...

소설은 소설입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3인 모두 우리나라와의 역사 관계를 배제하고, 전국시대에 보인 활약만 냉정히 생각하면 분명히 배울 점이 있기는 있습니다. 다만 이런 인물들의 장단점은 역사서를 통해서 보고 생각해야지, 소설만을 보고 생각하시면 꽤나 난감합니다 -_-;

쉽게 말해서 삼국지 연의를 보고 유비의 인간성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것과 비슷하겠군요. 연의에서는 불우한 영웅이었다가 마지막에 촉한의 황제가 되고, 아까운 죽음을 맞는 인물이지만, 정사의 기록에 의거해서 생각해보면 기껏해야 중앙 조조 정권에 맞서서 떠돌아다니다가 지방에서 세력을 확립해 50년 정도 버틴 지방 정권의 군주에 불과하죠.
05/04/25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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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런글 좋습니다.
이렇게 논제를 던질수 있는 곳도 드물고 진지하게 달리는 댓글도 좋습니다
지식이 쌓이는 느낌이랄까요?

예전 이원복교수의 책이였나 에서 3명(이에야스 히데요시 노부나가)를 울지않는 새에 대한 대처로 빗대어 설명한게 기억이 나네요.아주 오래전에 읽은건데...

그게 뭐였는지 기억나시는 분 없나요?

울게한다,울지않는 새는 필요없다 쏴죽여라,그리고 또 하나였던거 같은데...
05/04/25 05:22
수정 아이콘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내 위인, 울지않는 새를 울리는 이야기로 셋을 빗대어 이야기 하죠. 유명한 얘깁니다.

울지않는 새따위 필요없어. 쳐죽인다. 노부나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울리고야 말겠어. 히대요시

울지 않는다고? 기다리지. 이에야스.

세 사람의 기질을 아주 잘 나타낸 고사라고 들었습니다.
김민우
05/04/25 05:22
수정 아이콘
이원복 선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에 나오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한 비유는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Not Yet 님이 언급하신 새의 비유인데요. 울지 않는 새 한마리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의 세 사람의 성격을 풍자한 거죠. 성격이 직선적인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는 필요없다고 베어버리고, 꾀돌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떻게라도 울게 만들고(각종 방법 동원), 느긋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다...

나머지 하나는 일종의 시였죠. 천하를 떡으로 비유한 내용...실컷 반죽하고 만들어놓은건 노부나가와 히데요시가 해놓고, 막상 먹은건 이에야스 -.-
김민우
05/04/25 05:23
수정 아이콘
앗 40초 차로 댓글이 -.-;
정현준
05/04/25 08:11
수정 아이콘
조선 시대 붕당 정치를 당쟁으로만 보는 것은 식민 사학의 영향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식민 사학이 얼마만큼 큰 위력을 떨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죠. 우리 나라 교과서를 쓴 저자들도 이 흐름에서 별로 벗어나지를 못하구요(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디만. 요즘엔 교과서를 본 적이 없어서 -_-a).
박광용 교수나 이덕일 님의 책을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지루하지도 않고(제 입장에선 -_-;;) 꼼꼼하게 설명되어 있죠.
설탕가루인형
05/04/25 09:10
수정 아이콘
친일사학의 잔재라는 사실은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된 역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르겠네요. 재야학자들의 역사책을 보면 오히려 일본우익들처럼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으로 우리나라역사를 쓴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이게 다 지금까지의 친일사학의 영향떄문에 그런것 같기도 하고..위에님이 말씀하신 박광용교수님이아 이덕일님의 책은 읽어봐야겠네요. 그리고 일본놈의 배째기를 옹호한다고 하셨는데..옹호는 아닙니다만... 굴욕적으로 살아남아서 하는 뒷처리..전쟁이나 반란에서 지고 나서 패자가 할만한 뒤처리는 많지 않습니다. 동양에서는 이럴때는 다 9족이 멸하지요. 의도와 국적이 의심스럽다구요? 전 PGR자유게시판이 어느 주제에 대해서라도 가장 토론결과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NOT YET님이 말씀하신것처럼 배우는것도 많구요. 글에서 말한대로 많이, 제대로 알기 위해서 썼을뿐입니다. 저도 얼마전에야 알았던 이런 내용들을 다른분들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설탕가루인형
05/04/25 09:46
수정 아이콘
그리고 일본책들을 호의적으로 본건 아닌것 같구요..무조건 일본놈들 싫어서 안보다가 관심을 갖고 보니까 그냥 싫어할 것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정도랄까...본문에서도 썼듯이 다른책들을 보면서 대망이 많이 각색되었다는 것도 알았구요 (람세스 이후로 이런류의 소설을 보게 되면 항상 다른책들하고 비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람세스에 뒤통수를 너무 세게 맞아서..ㅡㅡa) 이토히로부미도 호의가 아닌, 마찬가지로 무조건 적인 나쁜놈에서 이런사람이었구나..로 바뀐 정도일뿐 이겠네요.
이정도의 글에 의도과 국적이 의심스럽다는 검형님이 오히려 너무 편협한 관점을 갖고 계신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또 하나의 즐거
05/04/25 09:46
수정 아이콘
저도 그냥 싫어할 것은 아니다란 생각입니다.
배울것은 배워야죠. 그것이 미화된 소설일지라 하더라도요..
다만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그것이 전부는 아닐것이다.. 란 마음을 덧붙여야 하겠지요.
또 소설을 통해 그 사람 전부를 본 받는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공적을 본 받으려 하는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사람 무조건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하는 것 보다는 그 사람의 무엇은 정말 잘 한 일이다..라고 하는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소설에서의 미화도 나쁜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어짜피 미화 한 것은 그 사람의 공적이고 우리는 그 공적을 배우려 하는 것이니까요..
물론 그 사람이 그 공족을 이루어 냈으니까 대단하다란 생각에 나쁜점이 덮혀지기도 하겠지만 인물과 공적을 분리해서 생각해 낸다면..
뭐.. 소설을 통해 무언가 배우는 것이 그리 나쁘지 많은 않은것 같습니다.
05/04/2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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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식민사학이란게 정말 무섭네요.
특히 한국사를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거나 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무의식중에 저렇게 깊숙히 침투해있다니 정말 소름끼칠 뿐입니다.
글쓴님의 본문중에도 일본학자(우익)들이 주장하는 '정체성론'(한국이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겪을 때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으며 근대화로 향하기 위한 필수코스인 봉건제가 이행되지못했다. 따라서 이러한 생각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일본침략은 정당하다라는 논쟁의 침략 미화론으로 발전했죠. 굉장히 무서운 생각입니다--;)
'당파성론'('다른 열강들이 근대화로 향하기 위해 발전하고 있을동안 조선왕조는 한낱 당쟁만 일삼았다'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시데하'라는 인물이 그런 주장을 펴는데 앞장섰죠. 이런 생각은 강점 때 일본 우익 학자들에 의해 더욱더 널리 보급되었고 지금까지 심한 폐해를 낳고 있죠. 글쓴님의 본문에서도 보이듯 조선이 당쟁이나 하고 있었기에 나라가 그 모양이 되었다거나 하는 주장을 당연하다는듯이 받아들이는 풍토가 여전합니다,) 등은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에 선입견이 되고 있네요.
05/04/25 13:54
수정 아이콘
배를 째는 행위를 책임감있는 행동이라고 미화하는 글을 쓴 사람이 편협 운운하는 건 정말 우습습니다.
전시에 패장은 굴욕을 받더라도 살아남아 전후처리를 하는 것이 의무입니다. 배를 째고 죽어 그 의무를 회피하면 자신의 명예는 지킬 수 있겠지만 그걸 과연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행위를 옹호하는 것부터 불과 반세기전 한민족을 짓밟았던 사람들에게 우리의 지도사상에 누가 맞을지 운운하는 글을 굳이 공지사항을 위반하면서까지 옹호하는 것을 보면 설탕가루인형님은 왜색에 너무 빠져있다는 것을 부인하긴 힘들어보이는군요.
배규수
05/04/25 14:04
수정 아이콘
식민사학이란게 완전히 무시할수 있는건 또 아니죠.
당시 섬나라분들이 주석을 붙여 다신 자신들만의 ' 망상적 주장토로' 부분이 무시해도 좋을 부분입니다.그러나 지난 조선의 역사와 행동, 그리고 그 잘잘못을 따져놓은 당시 상황의 원흉을 일목요연히 따져놓은 부분은 결코 그냥 지나칠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건 우리나라가 일본의 ' 침략을 받게된 사실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실이기 때문이죠.
실로 식민사학아래로 밝혀 온 무혈, 무상합병 이라는 충격적인 식민지화 사실이라던지, 힘없이 무너져 버린 지난 조선 왕조의 소멸이라던지 하는 말들은 전부 사실입니다. 그에 조선인들은 이러한원인에 따른 현실적 결과물 인' 합병'을 받아들이게 되기도 하죠. 문화식민 통치 시기였나? 그때는 수많은 지식인들과 사회간부층들이 친일로 반향을 돌린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식민사학이란건 절대 거짓말이라고 할수 없는 부분또한 내포하고 있습니다. 36년간 쇄뇌되어온 부분이기도 하며, 그렇기에 아직까지 가시화되어 문제가 제기 되기도 하는거겠죠.
Eternity
05/04/2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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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제가꼽는 무익한 당파싸움은 '예송논쟁'입니다.
현종/숙종대의 예송논쟁을 보고 있으면 저는 기가 차더군요.

예송논쟁은.. 국왕의 죽음에 있어 그 왕을 정통으로 볼 것인지 아닌지에 따라 대비의 장례절차가 어떻게 되느냐.. 를 가리는, 어떻게보면 단순할 수도 있는 문제였습니다. (물론 2차 예송논쟁은 또 다른 문제로 벌어집니다만, 내용 자체가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덕일 씨가 쓴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참고하시면 좋겠네요.) 그런데 후기 성리학자들과 붕당정치가들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대비가 1년상을 치르는지 3년상을 치르는지가 왕권의 정통성과 직결되는 예민한 문제였었기도 했었죠. 때문에... 예송논쟁과 그 이후에 일어난 환국으로 몇 차례에 걸쳐서 수 많은 중신과 선비들이 당파싸움의 희생양으로 사사되었는지 셀 수 조차 없습니다. 잠시 한 당파가 우세를 점하면 상대당파를 몰살시키다시피하고, 후에 다시 뒤집어지면 '당했었던' 파가 복수의 칼날을 들이대었었으니까요.

이런 당파싸움이 정당정치라니요. 조선시대의 당파간에 '정책상'의 분명한 차이가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초기 동-서인 당파간에는 사상과 정책의 차이가 있었고, 이후 어느 정도는 그런 차별성이 이어집니다만, 인조반정후 서인에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지고, 다시 노론의 시파와 벽파가 갈라지고, 다시 그 중에서 안동김씨가문이 요직을 점령하는 순조-철종조에 이르는 당파들 간에 정책상의 차별성이 있는지 의문이군요. 오직 순간순간의 '보신과 영달'을 위한 자리매김이 있을 뿐, 중대한 국사를 볼 때에 '당파의 정체성과 차별성'이 있기는 했었는지요. 송시열이 재해석한 주자학을 신봉하고, 상대당파에 대한 무자비한 사사의 칼날을 날려대며, 동시에 그들의 학문과 사상에 반기를 드는 자가 있다면 사문난적으로 몰아 쳐 죽이기 바빴던 자들이 '정당정치가'라니요. 그들이 일반백성의 삶을 보살피기나 했었다면야 다행이겠지만 그마저도 아니지요.

적어도 임란 이후 조선조의 당파싸움은, 명분을 세워서 어떤 세력이 어떤 세력을 누르고 집권하느냐 하는, 왕을 둘러싼 헤게모니 쟁탈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왕의 후궁문제 하나로 당파 하나의 존망이 오락가락 하는 것이 과연 '정당'입니까? 잘 봐줘야 당시 특권층 이익집단의 모임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고, 중신을 등용함에 있어, 능력있는 인재들보다는, 학맥과 지연과 가문에 따라 중신을 등용했던 당파정치의 폐단이 훨씬 더 크게 드러나는 부분이 아닌지요? 물론 초기에 어느정도 순작용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와 같은 붕당정치의 폐단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Sulla-Felix
05/04/25 17:01
수정 아이콘
위의 예가 바로 일제시대를 겪으면서 이루어진 역사의 조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예송논쟁은 20세기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논쟁 만큼이나 치열한 사상전
이었습니다.
정통적 주자학의 관점에서 왕권의 위치를 어디에다 두어야 하는 가에
대한 논쟁입니다. 쉽게 요약하자면 군신의 관계는 부자의 관계의
위에 있나 아래에 있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 체제에 있어
군주중심의 중앙 집권국가와 하향식 질서를 이루는 유교봉건국가
중 어느 것이 낫냐 라는 논쟁입니다.
현대에 들어 욕먹고 있는 송시열이 사리 사욕을 위해 왕한테 대들어서
귀양을 밥먹듯이 가고 결국에서 사약먹고 죽겠습니까? 보신과 영달을
위해서? 당파가 추구하는 정치사상이 대립되기 때문입니다.
안동김씨등은 할말 없지만 세도정치의 근원은 어디일까요? 당쟁?
아닙니다. 왕권중심의 중앙집권을 이루려던 정조는 지지세력인 남인
에게마저 버림받고 쓸쓸히 숨을 거두면서 바로 김조순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안동김씨의 권력화가 이사람으로 부터 시작되죠.
결과적으로 세도정치는 붕당의 연장이 아닌 붕당 극복을 위한 대립항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DayWalker
05/04/25 18:48
수정 아이콘
Sulla-Felix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이 대부분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 예송논쟁에 대한 부분도 학교다니면서 단골로 나오는 주제였었습니다만, 일단은 '치열한 사상전인 동시에 붕당정치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로 결론지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붕당과 오늘날의 정당정치를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가 많습니다. 그 형태나 당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정당정치와 비교하는 것은 그 당시 다른나라에 비해서 볼 때 우리나라의 붕당이 정당정치와 가장 흡사한 정치형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며, 일제의 당파성론에 대한 반론의 용도로서 부각된 '필요에 의한 연구'였기 때문입니다.
Eternity님께서 제기하신 정책상의 차이가 있었느냐는 질문은 '그렇다'로 대답드릴수 있을겁니다. 분명 성리학이라는 일관된 정치사상은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정책상의 차이와는 다른 것이니까요. 오늘날도 다들 다른 정책을 제시하지만, 민주주의라는 대의는 모두가 인정하는 것처럼요.
조선은 어쨌거나 사상적이던 정치적이던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몰락하게 됩니다만, 썩지 않는것은 없죠. 이미 썩기 시작한 시대의 과오만을 들어 그 시대 전체를 비판할 순 없는 것이니까요. 이러저러한 비판이 있지만 조선은 그래도 500년을 지속한 나라 아닙니까? 그것은 그만큼 그 정치형태가 효과적이었다는 걸 반증한다고 봅니다.
정체성론, 당파성론 등 식민사학에 대한 정리는 古 이기백 선생님의 [한국사신론]에 간단하고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워낙 유명한 책이니 다들 보셨겠지만, 혹시 안 읽어보신 분이라면 추천하고 싶네요.^^
05/04/25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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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저 3인물이 무슨 현대한국의 지도자 상으로 맞는지 모르겠네요. 혼란한 일본전국시대에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자식목숨도 비정
하게 버리는등 그들의 일생을 보면 잔혹한 인물들이었으며 권력을
쥐기위해 이전투구한 것외에는 흥미위주로만 보면 되는 인물들이라
봅니다만. 현대의 지도자상으로 전혀 맞지 않는 인물들입니다.
05/04/25 21:36
수정 아이콘
쪽바리 인물들이라고 해도 배울점은 있고 배척할점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쪽바리 인물이라고 무조건 배척하기만 하기보다는 쪽바리 인물에서 배울것은 배움으로서 그들보다 앞서 나가는게 더 가치있다고 보는데요.

삼성이 소니를 배워서 소니를 뛰어넘었듯이 말입니다. 삼성이 소니에 대한 벤치마킹이 없었다면 지금의 삼성은 없었습니다.
Eternity
05/04/25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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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walker님께//

제 역사지식이 취미수준 이상에 이르지 못하고, 예송논쟁이나 조선 중후기의 당쟁에 대하여 언급된 책 중에 읽어본 것이 이덕일 씨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 불과하므로 제 짧은 지식이 절대적이라고 감히 주장하지는 못합니다. 물론 현대의 정당정치의 모습과 다르다고 하여 붕당정치가 하급한 정치형태였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적어도, 최소한 동시대의 도쿠가와 막부나 무로마치 막부에 비한다면 훨씬 나은체제라고 보고 있기도 합니다. 길어야 300년을 넘기지 못했던 여타의 '절대왕조'보다 200여년 더 조선왕조가 유지되었던 이유로 붕당정치가 일정부분 기여한 바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Daywalker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조선조 중후기, 특히 노론과 소론이라는 붕당 사이와, 그리고 시파와 벽파간의 정책상의 차이가 있었는지는 저는 잘 모르겠군요. 당쟁의 와중에서 영달을 위한 입장의 차이와 인맥과 학맥외의 어떤 부분에서 차별화가 되는지요? 송시열과 윤증의 입장차이와 대 남인정책의 차이가 노론과 소론을 가른 결정적인 이유가 아니었던가요. (물론 이 부분에서는 Daywalker님께서 추천하신 책까지 제가 읽고와야만 저 역시 제대로 된 덧글을 달 수 있겠지만, 제가 당장 열흘 뒤면 국방부의 부름을 받는지라.. 읽을 짬까지는 내지 못할 것 같아 송구스럽네요. ^^;;;)

오히려 조선조 후기에 들어와서는 붕당정치의 이득보다는 폐해가 더 컸다는 점은 인정하셔야지 않을지요. 광해군의 개혁정책이 인조반정으로 좌절된 것도, 무리한 대청정책으로 조선이 전란에 휩싸였었던 것도, 현종 숙종대의 거듭된 환국으로 조선을 위해 일해야할 중신과 선비들이 계속 사사되었던 것도, 급기야는 일국의 세자가 뒤주에 갇혀서 부왕의 손에 죽기까지 했던 것도 크고작은 당쟁의 여파와 무관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초기 붕당정치의 순기능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만, 후기 붕당정치의 폐해를 볼 때에, 우리가 붕당정치를 무조건 깎아내릴 필요는 없겠지만, 또한 '정당정치의 맹아'라는 식으로 억지로 위상을 세울 필요 또한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성리학의 이상에서 벗어나 '군자들이 국가대사를 논하는 붕당'의 이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당파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위붕(僞朋)'으로까지 깎아내려가면서 실제 백성들의 삶과는 무관한 -하찮은 문제는 아니었겠습니다만 - 논쟁을 펼쳤던 정치체제가 붕당정치인만큼, 그러한 체제를 높이 평가하고 싶지는 않네요.

Sulla-Felix님께//

위에 Daywalker님께 드린 글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제가 그 부분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시각은 한정되어 있고, 지식 또한 짧습니다. 하지만 예송논쟁이 인조이후 왕위를 이었어야 할 소현세자의 급사, 차남 봉림대군(효종)의 즉위, 그리고 이어지는 소현세자의 아들 석철의 죽음 때문에 이어지는 '장자'와 '서자'의 차이에서 벌어지는 예법의 논쟁이라고 알고 있었는데요.(물론 봉림대군도 인조의 적자였습니다만, 위에서의 '서자'는 장자가 아닌 다른 적자를 가리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봉림대군은 장자가 아니라 차자이므로 자의대비의 상복은 1년복으로 충분하다는 의견과, 봉림대군이 왕통을 이은 이상에는 3년복을 입어야 한다는 입장이 충돌했던 것이 예송논쟁 아닌지요.) 물론 예송논쟁에서 군주중심국가와 유교봉건국가의 차이 - 효종이 왕통을 이은 이상 왕가의 법도와 일반 사대부의 법도는 달라야 한다는 주장과 왕가도 예법의 예외일 수 없다는 주장의 대립 - 를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입니다만 예송논쟁의 핵심은 그것보다는 효종의 왕통이 과연 '정통성'을 지녔는지를 가지고 사대부들이 서로 당파의 이득을 위해 '필요에 따라' 입장을 정리하고 논쟁을 벌였던 것으로 보는 게 좀 더 설득력이 있는 건 아닐지요.

물론 송시열의 위대한 거유(巨儒)임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입장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는 학자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송시열도 당파의 이익을 위해 대동법에 극렬히 반대했다가, 성과가 나타난 이후에서야 그 이득을 인정하기도 했고, 막후에서 공작정치를 휘둘렀던 대신을 '자당'이라는 이유로 감싸기도 했던 사람이죠. 송시열이라는 학자가 사리사욕에 눈이 멀었던 이는 아니겠습니다만, 당파의 이익을 위해 공작정치를 펼쳐 타당을 사사하는 등의 불의를 모른 척 하고 넘어갔던 것 또한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닌지요. 서인의 거두 송시열이 그러할진대, 그 아래에 있었던 자들은 어떠한가요. 정치사상이 대립된다고 하여 지인의 비문에까지 조롱을 퍼붓고, 정치사상을 위해 불의에도 눈을 감았던 이가 필요이상의 영예를 얻고 '송자'로까지 추앙받는 것은 조금 지나친 감이 있다고 봅니다.

그릐고.. 정조가 남인에게 버림을 받았다기보다는.. 정조대에는 거듭된 환국과 사사로 이미 남인 세력자체가 남아있지 않아 대신급 직책을 맡을만한 남인은 영의정 채제공밖에 없었고, - 그나마 정조 승하하기 전후에 그마저 죽지요 - 남아있는 남인세력은 실무자급의 젊은 소장파 학자들밖에 없었지 않은가요. 남인에게 버림받았다.. 라는 평가는 조금 과하신 게 아닌가 합니다.

흠.. 그리고 김조순에게 부탁을 했다기 보다는.. 당시의 대왕대비가 안동 김씨 사람이었고, 김조순 또한 유력한 외척이었죠. 김조순이 이전까지의 붕당정치와 무관한 인물도 아니었거니와, 외척정치가 붕당극복의 대립항으로 나왔다면 정말 더욱 할 말이 없지요. 안동김씨의 외척정치는 붕당정치의 극복이 아니라, 오히려 붕당정치의 악습만을 계승한 형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Sulla-Felix
05/04/25 23:03
수정 아이콘
Eternity// 정말 일목 요연하게 잘 쓰셨네요. 좋은 댓글 감사
드립니다. 이정도의 역사 인식만 되도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아직도 일반적인 역사 인식이 못 따라 와서 저런 글을 남기게
된 것이죠. 아직도 송시열, 그냥 나쁜놈. 당쟁, 그냥 나쁜짓.
우리가 그냥 무능해서 일본에게 먹혔다. 일본을 배우자.
이런 생각이 의외로 많습니다. 한국의 학자들과 문화 인사들은
반성해야 합니다. 연구만 하면 뭐합니까. 일반인들은 연구 성과를
알지도 못하는데.

-예송논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서 저는 사상성을 더 부각시켰고
이터니티님은 실제적 모습을 더 부각 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정치투쟁은 권력싸움입니다. 현존 김영삼, 김대중등의
정치역정도 현실주의의 눈으로 보면 단순한 권력 투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론이 없으면 단순한
시각의 차이로 남겨 두고 싶습니다. 문제는 역사에 관심이 없는
보통 사람들은 저런 배경에는 관심없고 다만 '상복문제로 싸우다니
정신나간 놈들.' 이런 식입니다. 역사 교과서를 조금만 세심하게 썼더
라면....

-송시열에 대해서는 저도 부정적 인식입니다.(남인쪽 팬입니다.)
다만 첫 댓글의 글이 지나치게 일본식 인식이 담겨있고 부정적이라
그에대한 반발로서 좋은 점을 부각시키게 되었습니다.

-정조가 남인에게 버림받은 사실은 실제로 기록에 존재합니다.
신권을 인정하며 좋게 좋게 이끌어 가려던 정조가 계속된좌절에
막판에 폭주하는데(오회연교사건-"무조건 내말에 따르란 말이다!!")
이때는 당시 야당격인 노론은 물론 남인쪽에서도 극심한 반발이
일어납니다. 정조가 병사하는데이러한 정치적 좌절에 의한
스트레스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본문을 너무 벗어 난것 같아서 이만 줄입니다.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설탕가루인형
05/04/25 23:15
수정 아이콘
공지사항에 그런 내용이 있었군요..
마음의손잡이님의 9918번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3페이지나 넘어간 글에 댓글 다는게 의미가 없는듯 하고 그대로 비판적인 댓글만 달린채로 넘어가는것도 마음에 안들고 해서 쓴 것인데 이런 공지사항이 있는줄도 모르고 쓴것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내용에 있어서 일본을 옹호한다고들 말하시는데 더구나 왜색이라니요.
일본에 대해서 아는것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싫어만 하다가 조금은 알게되었지만 그래도 그냥 싫다정도가 되었을뿐인데 단지 알게되었다는게 왜색인가요??
댓글들을 보니 일본에 대해서 많이 아시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일본이 싫으신 분이 많은데요.. 저도 글에 썼듯이 '편견이 좀 사라졌다', '나쁜놈이라고만 볼게 아니다'고만 생각할뿐 옹호하지는 않습니다.
검형님 댓글을 보고 할복에 대해서 책임성과 연관시키는게 좀 무리가 있다고도 생각을 해봤는데요..
하지만 역시 미화하는것이 아닌 무조건적으로 야만적인 행동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났을뿐입니다.
당시의 일본인들이 왜 할복을 했는가를 생각해보니 결국 책임성과 관련될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연관지은 것이구요.
오히려 패장이 굴욕적으로라도 살아남아 전후처리를 하는게 의무라는 검형님의 말씀이 잘 이해가 안가는데 대체 어떤 전후처리를 말하는것인지요.
자신의 잘못으로, 비록 작다고는 하지만 한 나라가 망한다음에 대체 어떤 뒷처리를 하라는것인지 저로써는 모르겠습니다.
또한 우리의 지도자상에 누가 맞을지 운운하는 글에 대해선 FTossLove님이 이전글의 댓글에 "노부나가, 이에야스, 히데요시는 각각 특색이 뚜렸했던 사람들이었고 이 세명 중에서 한 번 비교해 보면 어떨까하고 생각해보자는 거지 그게 꼭 한국의 지도자들이 그런 사람이었으면 한다는 말입니까?그런 식의 비약이라면 카이사르나 알렉산더 등 외국 위인들하고는 비교조차 못하겠네요." 라고 하신 것처럼 그냥 한번 생각해볼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삼국지의 인물에 대해서 현재와 비교를 하는데 이들이 다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에 빠져있는건 아니듯이 마찬가지로 Nada-in SQ님의 글은 그냥 한번 생각해볼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검형님이 "노부나가든 이에야스든 쪽바리들이 만들어낸 허상을 여기서 얘기할 필요성은 전혀 없습니다"라고 하신것처럼 그냥 무시해야만 할 주제만은 아니구요.
순정보이
05/04/26 01:14
수정 아이콘
할복에대한 견해 하나만으로도 님은 욕먹어도 할말 없습니다...쩝
DayWalker
05/04/26 01:21
수정 아이콘
Eternity님께//
먼저 답변이 늦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갑자기 술약속이 잡히는 바람에 신나게 마시다가 지금 들어왔네요.^^;;

길게 답변을 드릴만한 지적 수준이나 지식이 받쳐주지 못하여 아쉽지만 님께서 주신 질문에 대해서만 아는대로 최대한 간략하게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책상의 차이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에서 얘기했던 것이 예송논쟁의 경우에 관련된 문제라면 거기에서의 정책상의 차이는 왕에 대한 정통성의 논의라 하겠습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에서는 시민을 위한 정책이 우선이었겠지만, 조선조의 정책상의 차이는 대부분 왕과 양반의 권력을 위하고, 그들 사이에서의 삶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민의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님께서 제기한 부분이 실제적인 모습에 대한 것이었다라고 저는 이해했기에, 실제로 왕을 위시한 양반들의 정치는 그들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는게 맞겠지요.
그것에 대한 것은 님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만, 제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그들의 관심사였고, 그들의 가장 큰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양반정치의 선진성에 대해 사람들이 드는 공론정치가 오늘날의 여론과 비슷하다는 것은 공론은 양반들 내부에서만 존재하는 여론이었고, 오늘날의 여론은 대부분 서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여론이 실제로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만, 그것은 여기서 얘기하는 주제가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그 문제는 사상 뿐만이 아니라 정치에까지 관련된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전에 거기까지 자세히 말씀드렸으면 오해가 없었을텐데, 늦게나마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두번째로, 조선 후기에 들어서 붕당정치의 폐해가 컸다는 것은 위에서도 저 역시 인정하는 바였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커진다는, 다르게 말하면 썩어간다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민을 위해 정치를 한다는 대의를 가진 양반들이었습니다만, 정말로 그렇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상주의적 생각이겠지요, 그만큼 사회가 덜 발전했던 거구요.
뭐 이 문제는 제 생각과 님의 생각이 일치하였지만, 사소한 오해였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제가 드리는 결론은 양반 정치는 정치참여 자격이 지배층인 양반에 국한되고 있다는 점, 정치적 명분에 지나치게 칩착하고 있다는 점, 공론을 대변하는 제도적 대의장치가 결여되어 있는데다 공론 여부를 군주의 판단에 의존함으로써 조정장치가 결여되어 있는 점 등 분명 중세적 한계를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근간으로 정치참여의 폭을 그나마 확대하고 집권세력의 독점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점 등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점에서 양반정치는 우리에게 '청산의 대상이 아닌 비판적 계승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짧게 말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언변이 딸리다 보니 약간 길어진 것 같네요. 이해해 주시길 바라구요, 전 다녀왔지만 군대 문제는 OTL입니다.ㅜㅠ 잘 다녀오시구요, 몸 건강히 제대해서 다시 저와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DayWalker
05/04/26 01:26
수정 아이콘
아참, 군대 가서도 책을 읽을만한 시간은 오실 겁니다. 한국사신론 이외에도, 한국사 시민강좌 29집을 보면 양반문화에 대한 다양한 논문이 실려있을 겁니다. 그걸 참고하시면 더 좋을 듯 하군요. 양반에 대한 논문만 해도 평생 볼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만, 교양서적으로는 이 책 한권이면 충분할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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